능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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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 K.0426, T.0945), 줄여서 《대불정수능엄경》 또는 《수능엄경》 또는 《능엄경》(楞嚴經)은 선(禪)을 닦아 인간의 감각작용에서 유발되기 쉬운 온갖 번뇌로부터 해탈의 경지에 이르는 요의(要義)를 설한 대승불교불경으로, 당나라 때 반랄밀제(般剌蜜帝)가 한역(漢譯)하였다.

주석서[편집]

중국의 주석서[편집]

  • 송나라 계환의 《능엄경요해》(약칭 계환해)

신라, 고려, 조선의 주석서[편집]

  • 고려 보환(普幻)의 《수능엄경환해산보기(首楞嚴經環解刪補記)》(약칭 환해) 2권
  • 조선 유일(有一)의 《능엄경사기(楞嚴經私記)》
  • 조선 의첨(義沾)의 《능엄경사기(楞嚴經私記)》

대한민국의 주석서[편집]

  • 운허(耘虛), 《首楞嚴經註解》(서울: 동국역경원), 1974.
  • 지관(智冠), 《능엄경약해》(서울: 해인사율원), 1994.[1] — 10권 중 전반부 5권을 해석.

문화재[편집]

이양재 소장 대한민국 보물 제973호[편집]

대불정여래밀인수증료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 (언해) 권4, 7, 8
(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
首楞嚴經 (諺解) 卷四, 七, 八)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보물

능엄경언해 제 5권
종목 보물 제973호
(1988년 12월 28일 지정)
주소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 55, 서울역사박물관 (신문로2가,서울역사박물관)
정보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정보

이 판본은 계환의 해석본에 의거, 조선 세조 7년(1461)에 국역하여 12권으로 엮어 을해자(乙亥字)와 한글자로 400여 부를 찍어 낸 것 중, 권 제4·7·8의 잔존 2책이 전래된 것이다.

이 국역본은 세종 31년(1449) 부왕의 명으로 수양대군(首陽大君)이 착수한 것이나 그 해석에 어려운 곳이 적지 않아 완성시키지 못하고 뒤로 미루어졌다. 그러다가 세조 7년(1461) 5월 회암사(檜巖寺)의 불사에서 석가분신사리의 출현이 있었을 때, 효령대군(孝寧大君)이 다시 그 국역의 완성을 세조에 주청함에 혜각존자(慧覺尊者) 신미(信眉)·한계회(韓繼禧)·김수온(金守溫) 등에 그 국역과 교정을 명하여 완성을 보게 한 것이다. 그 인출은 세조 원년(1455) 강희안(姜希顔)의 글씨를 자본(字本)으로 만든 을해자의 큰 자·중간자·작은 자를 사용하고, 한글은 이 능엄경 국역본을 찍기 위해 새로 주조한 한글활자를 사용하여 세조 7년(1461)에 이루어졌다. 그리고 초인하여 거듭 교정하고 주서(朱書)로 바로 잡은 다음 책머리의 서미(書眉)에 '校正(교정)'의 도장을 찍었다.

판식(版式)은 사주단변 유계의 매 반장에 큰 자는 9항 16자, 중간자는 9항 21자, 작은자와 한글자는 18항 21자를 배자하고, 판심(版心)은 위와 아래에 을해자본(乙亥字本)과 같이 내향흑어미(內向黑魚尾)를 표시하였다.

이 을해자 인본(印本)의 번역 내용을 거듭 교정한 다음, 큰자·중간자·작은자의 체제에 준거하여 간경도감(刊經都監)이 세조 8년(1462)에 다시 간행해 낸 것이 최초의 목판본 《능엄경언해》(楞嚴經諺解)이며, 그 체제가 이후 한문언해본의 규범이 되었다. 따라서 을해자 국역본은 국역판본사(國譯板本史)와 역경학사(譯經學史)의 연구는 물론, 특히 능엄경의 국역에 있어서 그 해석과 구결·구두의 차이를 비교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

을해자 국역의 전래본은 권 제1(보물 제760호)은 조병순, 권 제2·5(보물 제761호)는 서울대학교 규장각, 권 제3·7·8(보물 제762·948호)은 동국대학교 도서관, 권 제4·7·8(보물 제973호)은 이양재, 권 제6(보물 제1049호)은 최영란, 권 제7·8·9·10(보물 제763호)은 세종대왕기념사업회에 각각 소장되어 있어, 완질이 모두 갖추어져 있다

권 제4는 본래 권 제3과 함께 장책된 1책인데, 분책되어 권 제3은 동국대학교 도서관, 권 제4는 이곳으로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분책 이외는 책의 보존 상태가 비교적 양호한 편이다. 이들 책의 본문 국역(國譯)과 구결(口訣)에는 주묵(朱墨)으로 바로 잡은 '校正(교정)'이 빈출하며, 그 중에는 권수에 '校正(교정)'의 도장을 찍은 것도 볼 수 있다.

권 제7·9는 책머리의 책장, 권 제8·10은 권말의 책장이 각각 약간 결락되어 있다. 권 제10에는 세조 7년(천순 5년, 1461) 9월에 본 《능엄경》을 다시 번역 교정하여 완성시킨 내용의 국한문 발(跋)이 있어, 특히 중요시 되고 있다.

이 을해자 인본의 번역내용을 거듭 교정한 다음, 큰 자·중간자·작은 자의 체제에 준거하여 간경도감(刊經都監)이 세조 8년(1462)에 다시 간행해 낸 것이 최초의 목판본 《능엄경언해》(楞嚴經諺解)이며, 그 체제가 이후 한문언해본의 규범이 되었으며, 관형사의 주격 대격곡용이라는 특수한 형태가 능엄경언해본에서만 발견되기 때문에 언어학적으로 가치가 있다.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소장 대한민국 보물 제763호[편집]

권 제7·9는 책머리의 책장, 권 제8·10은 권말의 책장이 각각 약간 결락되어 있다. 권 제10에는 세조 7년(천순 5년, 1461) 9월에 본 능엄경을 다시 번역 교정하여 완성시킨 내용의 국한문 발(跋)이 있어, 특히 중요시 되고 있다.

동국대 소장 대한민국 국보 제212호[편집]

원각사 소장 대한민국 보물 제1794호[편집]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대한민국 보물 제1520호[편집]

한국학중앙연구원 소장 대한민국 보물 제1515호[편집]

각주[편집]

  1. “(출판)능엄경 약해-지관스님”. 《불교신문》. 1994년 4월 4일. 2016년 10월 17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