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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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탕

감자탕은 돼지 등뼈로 국물을 낸 (湯)으로, 감자와 야채, 파, 붉은 고추, 간 들깨 등이 들어가 매운 맛이 나는 한국의 국물 요리이다. 전라도 지역에서 유래되어 전국 각지로 전파되었다고 한다.

어원[편집]

'감자탕'의 어원은 확실하지 않으나, 다음과 같은 설이 있다.

  • 감자를 넣었기 때문에 감자탕이라는 설
  1. 본래는 돼지등뼈에 우거지 등을 넣고 끊여먹는 '뼈다귀탕'이었는데, 일제강점기부터 적극 보급되어 흔해진 감자가 들어가 감자탕이 되었다는 설[1]
  2. 감자탕의 주 재료는 원래 감자였고 그 탕의 국물을 내는데 사용한 것이 돼지등뼈였는데, 양돈업의 정책적 육성으로 1960년대 말부터 돼지고기의 부산물이 크게 늘어나면서 등뼈까지 감자탕에 합세하여 지금의 감자탕이 되었다는 설[2]
  • 돼지등뼈를 '감자뼈'라 부르거나 감저(甘猪)의 변형이기 때문에 감자탕이라는 설[3]

역사[편집]

감자탕의 유래는 고구려, 백제, 신라가 자웅을 겨루던 삼국시대에 돼지사육으로 명성이 자자했던 현재의 전라도 지역에서 농사에 이용되는 귀한 '소' 대신 '돼지'를 잡아 그 뼈를 우려낸 국물에 각종 채소를 넣어 음식을 만들어 뼈가 약한 노약자나 환자들에게 먹게 한데서 유래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전라도 지방에서 유래된 이 감자탕은 전국 각지로 전파된 한국 고유의 전통의 음식이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이 감자탕은 저렴한 식재료와 충분한 칼로리, 구수한 뼈국물 맛이 우러나 서민들 중에서도 특히 부두 노동자들에게 환영 받던 알짜 영양식이다. 이 감자탕이 대중화된 지역은 인천항이 개항됨과 동시에 전국 각지의 사람들이 몰려와 다양한 음식문화를 갖추게 된 인천이다.

감자탕에 유래에 대한 가장 신빙성 있어 보이는 설은 1899년 경인선 철도공사 때 많은 인부들이 철도공사에 동원되어 인천으로 몰리면서 이때 고안된 음식이라는 이야기 이다. 실제 ‘한동길 감자탕 집’을 3대째 운영하는 주인의 증언에 의하면, 한동길은 전라도에서 태어났다가 1894년 동학농민운동 때문에 인천으로 이주하게 되면서 가세가 기울자 생계 때문에 경인철도회사 인부로 일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인부들을 위해 싼 재료인 시래기, 감자,돼지 뼈를 이용한 탕국을 만들어 제공한 것이 인기를 얻게 되어 1900년 한강철교 공사 막바지에 이른 노량진 근처에서 함바집을 본격적으로 운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4][1]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감자탕엔 왜 감자가 없을까 시사IN, 2011.12.30.
  2. "공장수프 넣은 국물은 감자탕이 아니다!" 부산일보, 2012.12.6.
  3. 감자의 어원은 '감저(甘藷)'인데, 감자뼈라는 말은 감자탕이란 음식이 생긴 후에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감저(甘猪)'는 '감저(甘藷)'를 흉내내어 근거 없이 지어낸 말로 추측된다.
    "도축·정육 업계에서도 '감자'는 공식 용어가 아니다. 시중 정육점에서 돼지 등뼈 부위를 '감자(뼈)'라 표기하는 경우도 간혹 있지만, 이는 '감자탕 전용 등뼈'임을 알리기 위한 것일 뿐이다." 부산일보, 2012.12.6.
    "수천 년 내려온 돼지뼈 이름에 100여 년짜리 감자라는 이름이 끼어들 가능성은 희박하다. 축산 전문가들도 감자뼈라는 이름의 돼지뼈는 없다고 한다." 시사IN, 2011.12.30.
  4. “맛있고 재미있는 한식이야기 < 한식 스토리 < 한식(Hansik) < 한식 포털”. 2018년 6월 24일에 확인함.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