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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좌부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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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좌부 불교(上座部佛教, 영어: buddhism of School/Way-of-the-Elders) 또는 테라바다/테라와다(Theravada)[1]부처의 계율을 원칙대로 고수하는 불교를 말한다.[2][3] 대중부 불교와 함께 인도 불교의 2대 부문(部門)의 하나이다.

테라바다라는 말은 "장로(長老)들의 길"이란 뜻으로 상좌부(上座部)라고 한역되었다. 상좌부 불교에서는 고타마 붓다가 사용한 언어인 팔리어(빠알리어)로 된 경전을 근간으로 하는데, 이는 산스크리트어로 쓰인 대승 경전과 대비된다. 이 팔리어 경전(아함경과 78% 일치하는 니까야)은 기원전 1세기스리랑카에서 최초로 쓰인 것으로 서력 기원후에 형체를 갖추어가기 시작한 대승권의 산스크리트어 경전이나 다른 경전보다도 고타마 붓다의 가르침이 더 정확하게 나타나 있다고 볼 수 있다.[4]

불교 전통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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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불교 전통의 성립과 발전 (기원전 450년경부터 기원후 1300년경까지) v  d  e  h

  450 BCE 250 BCE 100 CE 500 CE 700 CE 800 CE 1200 CE

 

인도

원시불교

 

 

 

부파불교 대승불교 밀교·금강승

 

 

 

 

 

스리랑카 · 
동남아시아

  상좌부 불교

 

 
 

 

 

 

중앙아시아

 

그레코 불교

 

티베트 불교

 

비단길을 통한 불교 전파

 

동아시아 · 
··

  천태종 · 정토종 · 일련종

밀교 · 진언종

 

 

  450 BCE 250 BCE 100 CE 500 CE 700 CE 800 CE 1200 CE
  범례:   = 상좌부 불교 전통   = 대승불교 전통   = 밀교·금강승 전통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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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 후 100년의 근본분열로 교단은 두 부파로 나뉘었는데 그 중 보수파인 상좌의 사람들에 의한 일파가 상좌부이다.

북방불교의 자료들에 의하면 불멸(佛滅) 후 100년 아쇼카왕 치세 때, 마하데바(Mahadeva: 大天)라고 하는 진보파 비구가 교의에 관한 5개조의 신설(新說)을 제창하고 그 승인을 교단에 구했을 때에, 또는 남방불교의 자료인 실론의 《도사(島史)》나 《대왕통사(大王統史)》에 따르면, 와지족의 비구가 계율에 대한 십사(十事)의 신설(十事非法)을 주창했기 때문에(오늘날에는 일반적으로 후자가 승인되고 있다) 불교교단이 신설에 찬성하는 진보파의 대중부(大衆部)와 이에 반대하는 보수파의 상좌부(上座部)로 양분되었다. 이것이 근본분열(根本分裂)이며, 이를 계기로 부파불교의 시대로 들어간다.[5] 인도의 아쇼카 왕 때인 기원전 3세기에 상좌부의 주도로 빠알리어로 행한 제3차 결집 직후, 아쇼카 왕의 아들 마힌다 장로를 통해 제3차 결집의 결과물을 가지고 상좌부는 스리랑카에 정착하였다. 스리랑카의 상좌부는 스스로를 "분별설부(Vibhajjavada)"[6]라 불렀으며 암송되어 오던 제3차 결집의 빠알리어 대장경을 기원전 1세기에 싱할리문자로 기록하였다. 현재의 테라와다는 이 분별설부의 삼장을 계승하였다. 주로 동남아시아에 분포하여서 남방 불교라고도 불린다.

이후 북방에서는 상좌부가 불멸 후 300년 초에 본상좌부(本上座部)와 설일체유부(說一體有部)로 나뉘고 본상좌부히말라야 지방으로 옮겨 설산부(雪山部)라고 불리었으며, 캐시미르 지방을 본거(本據)로 하여 세력을 확장하였다가 사라졌다. 그리고 그 후의 분파에 의한 8부의 성립은 모두 설일체유부의 것으로 된 것이며, 따라서 유부는 상좌부계(上座部系) 중에서도 여러 부파 중 최대의 것이 되었고, 후에 일어난 대승불교소승불교에 대한 비판 · 논란(論難)은 거의 모두 이 유부에게 돌려지는 상태였다. 그래서 북방에서는 상좌부불교라고 하면 당연히 설일체유부가 중심을 차지하게 되었다. 기원후 2세기 로 보여진다.

설일체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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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본상좌부(本上座部: 설산부)와 설일체유부는 입장의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본상좌부에서는 을 중시한 데 대하여 유부에서는 (論)을 중시하였다. 은 교법에 대한 연구로서의 아비달마이며, 유부가 전거(典據)로 삼은 것은 기원전 2세기 카티야야니푸트라(Katyayanputra: 迦多衍尼子)가 저술한 《발지론(發智論)》이었다.

그 후 6종의 논이 만들어져 합하여 《6족발지(六足發智)》라고 하는데 이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행하여졌으며, 기원 2세기 쿠샨 왕조카니시카왕의 보호 아래 연구 성과에 대한 집대성(集大成)이 이루어져서, 《대비바사론(大毘婆沙論)》 200권의 대저(大著)로 발전하여 유부의 교의가 완성되었다. 비바사(毘婆沙)란 분석 또는 주석이라는 뜻으로, 《발지론》을 축어적(逐語的)으로 해석하면서 다른 여러 부파의 교설을 백과전서(百科全書)처럼 인용하고 이를 유부의 입장에서 비판한 것이다.

그러나 《대비바사론》이 너무 방대하기 때문에 이의 강요서(綱要書)가 만들어지고, 특히 4세기에 세친(世親)이 저술한 《구사론(俱舍論)》이 가장 뛰어난 것으로 중시되었다. 세친유부(有部)에서 최후로 분파하여 경전만을 의지(依支)하는 경량부(經量部)에 속하며, 《구사론》을 통해 유부의 교리를 비판적으로 해설하였다. 예를 들면, 《구사론》 〈수면품〉에서 세친삼세실유설경량부적 입장, 즉 과미무체설의 입장에서 반박하고 있다.

북방에서는 본상좌부 불교에서 분파한 유부는 교리적인 연구면에서 크게 진전하여 학문불교적인 색채가 농후했으며, 북방에서 불교의 전통적인 사상을 이어받아 학문적인 논장으로 변형 확장시킨 부파로서의 역할을 하였다.

남방불교의 테라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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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의 상좌부에서 설일체유부가 분파되기 전에, 기원전 3세기의 상좌부 주도로 빠알리어로 이루어진 제 3차 결집에서 포교를 결정함에 따라, 마힌다 장로를 통해 스리랑카(실론 섬)로 전해진 상좌부(테라와다)는 빠알리어로 이루어진 제 3차 결집의 을 잘 간직하고, 위빳사나 수행 중심의 불교로 이어졌다. 남방의 테라와다는 설일체유부와 다른 칠론을 발전시켰고, 빠띠삼비다막가(무애해도)의 위빳사나 수행 전통을 이어가, 수행 중심의 아비담마 이론을 집대성한 위수디막가(청정도론)를 기원후 425년 전후에 완성했다[7]. 스리랑카의 테라와다는 동남아시아로 확장되어 현재 태국에서는 계행이, 미얀마에서는 아비담마와 위빳사나 수행이, 스리랑카에선 경전 연구가 특히 뛰어나다고 한다. 상좌부 불교(테라와다)는 스리랑카와 동남아시아 지역에 널리 퍼졌으므로 남방불교, 남전불교라고 불리게 되었다.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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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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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알파벳으로 Theravada로 표시하는 글자에서 v발음은 영어의 v가 아니라 우리말의 순경음ㅂ(ᄫ)으로, 남방불교 지역에서는 '우/오'로 발음된다. 즉 우리말로 보다 정확한 표기는 '테라ᄫᅡ다'이며 실제 발음은 '테라와다'이다. vipassana의 실제 발음이 '위빳사나'인 것과 같다. 우리말에서도 15세기 말을 일부 간직하는 경상도말에서는 아직도 "덥어라[더ᄫㅓ라]" "고맙아[고마ᄫᅡ]"하는 것을 현대의 서울말에선 "더워라," "고마와"라고 하는 것과 같다.
  2. 윤대헌. ‘불교성지’ 미얀마…2500년 佛밝힌 ‘신비탐험’. 스포츠경향. 기사입력 2006년 6월 7일. 최종수정 2008년 12월 25일.
  3. 김도연. 2500년전 ‘부처의 길’… 한발한발 따라 걷다. 문화일보. 기사입력 2012년 5월 22일. 최종수정 2012년 5월 22일.
  4. 보리수선원
  5. 종교·철학 > 세계의 종교 > 불 교 > 불교의 분파 >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종교·철학/세계의 종교/불 교/불교의 분파 > 소승20부,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6. 여기서 '분별(vibhajja)'이란 개념적으로 분석한다는 말이 아니라 해체하여 본다는 뜻이다. 관념적으로 조립된 전체상과 부분상으로서가 아니라, 관념으로 조립하여 구성하기 이전에 이미 해체(vibhajja)되어 실제로 나타나 있는 그대로를, 즉 관념으로 조립하는 시간 지체나 왜곡없이 현재 일어난 것을, 현재 일어난 그 자리에서 바로 알아차림이 vibhajja다. "상좌부 불교를 일본학자들은 분별상좌부라고 옮겼는데 분별이란 말이 상대를 폄하하는 말인 듯해서 잘 사용하지 않는다".(초기불교입문(초기불전연구원): 40-43).
  7. 청정도론1(초기불전연구원): 40쪽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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