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공동
소공동 小公洞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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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공동주민센터 | |
![]() | |
로마자 표기 | Sogong-dong |
행정 | |
국가 | 대한민국 |
지역 | 서울특별시 중구 |
행정 구역 | 6통, 31반 |
법정동 | 소공동, 북창동, 태평로2가, 남대문로2가, 남대문로3가, 남대문로4가, 봉래동1가, 서소문동, 정동, 순화동, 의주로1가, 충정로1가 |
관청 소재지 | 서울특별시 중구 남대문로1길 31-5 |
지리 | |
면적 | 0.95km2 |
인문 | |
인구 | 2,232명(2022년 8월) |
세대 | 1,022세대 |
인구 밀도 | 2,300명/km2 |
지역 부호 | |
웹사이트 | 중구 소공동 주민센터 |
소공동(小公洞)은 서울특별시 중구에 속한 동으로 조선 태종의 둘째 딸인 경정공주(慶貞公主)의 궁이 있었으므로 속칭 작은공주골이라 하던 곳을 한자로 소공주동이라 하였고 이를 줄여서 소공동이라 부르게 되었다.[1]
역사[편집]
임진왜란 때에 우키타 히데이에가 소공동의 경정공주의 집에 머물렀고, 그가 물러난 후 명나라 장수 이여송이 머물렀다. 그 뒤 청나라 사절을 맞는 영빈소를 삼아 남별궁이라고 하였다. 임오군란 후에는 3000명의 청나라 군대가 이곳에 주둔하였다. 대한제국이 선포될 때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환구단이 세워졌는데, 그러나 1912년에 일제가 환구단을 헐고 그 자리에 총독부 철도호텔을 건축하였고, 이것은 후에 서울 웨스틴 조선호텔이 되었다. 철도호텔은 준공 당시에 한반도에서 가장 큰 건물이었다. 1938년에는 환구단 터에 8층 건물인 반도호텔이 신축되었다.[2] 1953년까지 반도호텔은 서울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 반도호텔은 지금의 롯데호텔 소공동점으로 바뀌었다.
명동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롯데영플라자 명동점은 일제강점기 당시에 정자옥(조지아) 백화점이 있던 자리로, 정자옥은 1921년 4월에 일본인이 설립한 현대식 백화점이었다.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5/50/Westin_Chosun_Seoul2.jpg/220px-Westin_Chosun_Seoul2.jpg)
시청 광장 남쪽의 소공동에는 1910년대부터 화교들이 모여서 369평의 땅에 중국음식점 한의원 목욕탕 잡화상 서점 등 16가구 25개의 점포들이 차이나 타운을 형성하고 있었다.[3] 이곳에 대해서 서울시는 1966년부터 재개발(소공지구 재개발)을 추진하여, 1971년 8월 20일, 이 지구 369평의 땅을 소유한 화교 14인과 서울시가 재개발사업의 추진에 합의함으로써 재개발이 본격화되기 시작하였다. 이 계획에 의하면 이 지구에 지하 3층 지상 18층의 화교빌딩을 건축하는 것이었다.[4]
소공동을 가로지르는 소공로는 1950-1970년대 고급맞춤양복점의 거리로 유명했다. 당시 해창양복점, 프라자양복점, 라이프양복점 등 당시 정재계 인사들이 자주 드나들던 맞춤양복점 거리였다. 현재 남아있는 맞춤양복점은 소공로 서쪽 부영호텔 건축으로 인해 남대문로7길로 이전했다.[5][6]
법정동[편집]
교통[편집]
- ● 수도권 전철 1호선, ● 서울 지하철 2호선 시청역
- ● 수도권 전철 5호선 서대문역
문화[편집]
문화재[편집]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c/cc/Korea-Seoul-Namdaemun-Sungnyemun-03.jpg/220px-Korea-Seoul-Namdaemun-Sungnyemun-03.jpg)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b/b1/Jungmyeongjeon_01.jpg/220px-Jungmyeongjeon_01.jpg)
- 덕수궁
- 숭례문
- 환구단
- 중명전
- 정동교회
- 배재학당 동관
- 강희맹 집터
- 남별궁터
- 대한민국임시정부 서울연통부지
- 명례궁터
- 소덕문터
- 이충순자결터
- 전환국터
- 미국공사관
- 강우규의사 항일의거자리
- 관립법어 학교터
- 남지터
- 독립신문사 터
- 서학당터
- 손탁호텔터
- 이황선생 집터
- 정미의병발원터
- 태평관터
- 한성부 남부 관아터
-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 ↑ “유래 및 연혁”. 《소공동사무소》. 2016년 7월 22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 ↑ 장림종 · 박진희 《대한민국 아파트 발굴사》효형출판(2009) ISBN 978-89-5872-078-2 29쪽 “그 후 1938년에 〈반도호텔〉이 8층으로 지어지면서 〈조선호텔〉의 높이를 훨씬 뛰어넘게 된다.”
- ↑ “서울 새 風俗圖 182} 外國人村 [32] 시들어가는 華僑村 <下>”. 《경향신문》. 1971년 6월 23일.
...경남극장 뒷골목에서 시청앞 광장쪽 큰길까지의 3각형의 4백여평의 땅엔 중국음식점 한의원 목욕탕 잡화상 서점 등 16가구 25개의 점포들이 다닥다닥 붙어 그런대로 중국인 취락다운...이곳에 중국인촌이 형성된 것은 1910년대.
- ↑ “首都圈 오늘의 課題 小公地區 再開發”. 《경향신문》. 1971년 8월 27일.
...서울시청 건너편 소공지구를 재개발하려는 서울시의 사업은 ... 서울시가 이지역의 재개발을 검토하기 시작한 것은 이미 5년전부터. ... 지난 20일 16명의 화교지주 중 14명이 서울시의 재개발사업에 승복한다는 계약서를 서울시와 교환...이들 화교 14인이 소유하고 있는 땅은 모두 24필지 3백69평으로...이 24개필지를 한데묶어 화교빌딩을 짓는데 그 면적은 총면적의 80%인 2백95평. ... 화교빌딩의 규모는 지하3층 지상 18층. ..
- ↑ “한때의 명성이 퇴색하고 있는 양복점거리 소공로”. 2011년 3월 10일. 2018년 11월 27일에 확인함.
- ↑ “소공동 양복점 거리-왕년엔 대통령도 회장님도 단골손님”. 《서울신문》. 2004년 2월 6일. 2018년 11월 27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