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공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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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중구
소공동
小公洞 Sogong-dong
소공동주민센터
소공동주민센터
Seoul-jungu.png
면적 0.95 km2
인구 1,236명 (2012.9.30.)
세대 642가구 (2015.9.30.)
법정동 12
6
31
동주민센터 서울특별시 중구 남대문로1길 31-5(북창동 20-5)
홈페이지 중구 소공동 주민센터

소공동(小公洞)은 서울특별시 중구에 속한 으로 조선 태종의 둘째 딸인 경정공주(慶貞公主)의 궁이 있었으므로 속칭 작은공주골이라 하던 곳을 한자로 소공주동이라 하였고 이를 줄여서 소공동이라 부르게 되었다.[1]

역사[편집]

임진왜란 때에 우키타 히데이에가 소공동의 경정공주의 집에 머물렀고, 그가 물러난 후 명나라 장수 이여송이 머물렀다. 그 뒤 청나라 사절을 맞는 영빈소를 삼아 남별궁이라고 하였다. 임오군란 후에는 3000명의 청나라 군대가 이곳에 주둔하였다. 대한제국이 선포될 때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환구단이 세워졌는데, 그러나 1912년일제가 환구단을 헐고 그 자리에 총독부 철도호텔을 건축하였고, 이것은 후에 조선호텔이 되었다. 철도호텔은 준공 당시에 한반도에서 가장 큰 건물이었다. 1938년에는 환구단 터에 8층 건물인 반도호텔이 신축되었다.[2]1953년까지 반도호텔은 서울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 반도호텔은 지금의 롯데호텔 소공동점으로 바뀌었다.

명동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롯데영플라자 명동점은 일제 강점기 당시에 정자옥(조지아) 백화점이 있던 자리로, 정자옥은 1921년 4월일본인이 설립한 현대식 백화점이었다.

웨스틴 조선호텔내에 있는 환구단

시청 광장 남쪽의 소공동 에는 1910년대부터 화교들이 모여서 369평의 땅에 중국음식점 한의원 목욕탕 잡화상 서점 등 16가구 25개의 점포들이 차이나 타운을 형성하고 있었다. [3] 이곳에 대해서 서울시는 1966년부터 재개발(소공지구 재개발)을 추진하여, 1971년 8월 20일, 이 지구 369평의 땅을 소유한 화교 14인과 서울시가 재개발사업의 추진에 합의함으로써 재개발이 본격화되기 시작하였다. 이 계획에 의하면 이 지구에 지하3층 지상 18층의 화교빌딩을 건축하는 것이었다.[4]

법정동[편집]

  • 북창동
  • 소공동
  • 서소문동
  • 정동
  • 순화동 일부
  • 태평로2가
  • 의주로1가
  • 충정로1가
  • 남대문로2가 일부
  • 남대문로3가 일부
  • 남대문로4가 일부
  • 봉래동1가 일부

교통[편집]

문화[편집]

문화재[편집]

덕수궁 대한문
남대문이라고 불리는 숭례문
중명전
1885년에 설립된 한국 최초의 감리교 교회, 정동교회

각주[편집]

  1. “유래 및 연혁”. 《소공동사무소》. 2016년 7월 22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 장림종 · 박진희 《대한민국 아파트 발굴사》효형출판(2009) ISBN 978-89-5872-078-2 29쪽 “그 후 1938년에 〈반도호텔〉이 8층으로 지어지면서 〈조선호텔〉의 높이를 훨씬 뛰어넘게 된다.”
  3. “서울 새 風俗圖 182} 外國人村 [32] 시들어가는 華僑村 <下>”. 《경향신문》. 1971년 6월 23일. ...경남극장 뒷골목에서 시청앞 광장쪽 큰길까지의 3각형의 4백여평의 땅엔 중국음식점 한의원 목욕탕 잡화상 서점 등 16가구 25개의 점포들이 다닥다닥 붙어 그런대로 중국인 취락다운...이곳에 중국인촌이 형성된 것은 1910년대. 
  4. “首都圈 오늘의 課題 小公地區 再開發”. 《경향신문》. 1971년 8월 27일. ...서울시청 건너편 소공지구를 재개발하려는 서울시의 사업은 ... 서울시가 이지역의 재개발을 검토하기 시작한 것은 이미 5년전부터. ... 지난 20일 16명의 화교지주 중 14명이 서울시의 재개발사업에 승복한다는 계약서를 서울시와 교환...이들 화교 14인이 소유하고 있는 땅은 모두 24필지 3백69평으로...이 24개필지를 한데묶어 화교빌딩을 짓는데 그 면적은 총면적의 80%인 2백95평. ... 화교빌딩의 규모는 지하3층 지상 18층. ..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