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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신당 연대회의
로고
약칭 진보신당 (한글), NPP (영문)
상징색 빨강 (퓨쳐 레드)
이념 사회민주주의, 민주사회주의,
녹색 정치, 여성주의, 진보주의
당직자
대표 노회찬
(당대표)
정종권, 박김영희, 윤난실
(부대표)
원내대표 조승수
역사
창당 1997년 11월 14일
(국민승리21)
2000년 1월 30일
(민주노동당)
2008년 3월 16일
(진보신당 연대회의)
내부 조직
중앙당사 서울 영등포구
양말산3길 19 대하빌딩 801호
(여의도동 14-11 대하빌딩 801호)

진보신당 연대회의[1](進步新黨 連帶會議, New Progressive Party of Korea, NPP)은 민주노동당에서 민중 민주 성향을 가진 당원들이 탈당하여 만든 대한민국진보정당이며 약칭은 진보신당(進步新黨)이다. 2008년 3월 16일 창당하였고, 노회찬 대표가 진보신당 대표를 맡고 있다.[2] 2009년 대한민국 재보궐 선거에 출마한 울산 북구조승수 후보가 민주노동당과의 후보 단일화를 통해 진보진영 단일후보로 당선됨으로써 원내정당이 되었다. 대부분의 정책 방향은 민주노동당과 유사하나, 민주노동당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의 우호적 관계를 중시하는 반면 진보신당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이라는 점이 다르다.[3]

2010년 6월 현재, 진보신당의 당원수는 16,918명이다.[4]

역사[편집]

'백선본'에서 민주노동당 창당까지[편집]

대한민국 진보세력의 흐름

1987년13대 대선을 앞두고 민중운동진영은 크게 셋으로 갈려 있었다. 민중진영의 독자후보를 내자는 '민중후보 독자출마파'(또는 '소수파')와 김대중을 비판적으로 지지하자는 '비판적지지파'(또는 '다수파'), 그리고 김영삼과 후보단일화를 하자는 '후보단일화파'가 그것이다. '민중후보 독자출마파'는 민중 민주 계열이 주를 이루고 있었으며, '비판적지지파'는 민족 해방 계열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이 두 진영의 분화는 1984년의 이른바 '사회구성체 논쟁'을 계기로 촉발되었는데, 그 의견대립이 여기까지 다다른 것이었다. 당시 '다수파'는 군사독재정권으로부터의 탈피라는 당면 과제를 우선 해결하려면 연대·연합을 해야한다는 성향이 강해 야당 지도자였던 김대중을 지지했다. 반면 '소수파'는 독자적 계급대표성을 가지는 지도자를 지지해야한다며 백기완 선생을 대선후보로 추대[5]하여 백기완 선거대책본부 ('백선본')을 꾸렸으나, 백기완 선생이 '후보단일화'를 주장하며 중도사퇴하여 해산되게 된다.

1990년대에 들어, 이들 '민중후보 독자출마파'는 한겨레민주당·민중의 당을 구성했던 세력과 함께 민중당을 창당한다. 그러나 92년14대 총선에서 원내진입에 실패하여 민중당이 해산되자 이들은 민중정치연합·진보정당추진위원회로 잠시 흩어졌다가, 1993년에 다시 진보정치연합으로 모이게 된다. 마침 1996년의 노동법 날치기 사건으로,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노동계 일각에서 노동자 정치세력의 필요성을 제기되자 진보정치연합은 1997년15대 대선을 앞두고 이들 노동세력과 함께 건설국민승리21('국민승리21')을 창당하여 권영길을 진보 후보로 내세웠다.

이후 내부에서 현재의 선거용 정당 체제를 해소하고 새 진보정당을 구성해야 한다는 논의가 벌어지면서, 국민승리21이 해산을 선언하고 '민주노동당 창당준비위원회'로 전환된다. 이는 2000년, 민주노동당의 창당으로 이어진다.

분당사태와 진보신당의 창당[편집]

이렇게 조직된 민주노동당에는 어떤 다른 운동 단체보다도 크고 다양한 세력이 공존하고 있었다. 창당 주도세력인 노회찬 등 소위 평등파 계열부터 권영길을 중심으로 한 민주노총 세력, 87년 대선 당시 비판적지지론을 주장했던 자주파 계열 등 다양한 사회 운동세력을 포괄하고 있었던 것이다. [6]

그런데 당 내에서 자주파의 세력이 커지고, 급기야 2004년 총선을 앞두고는 지역조직들과 주요 당권을 장악하면서 당내 다수파를 차지하였다.[7] 자주파 계열이 당권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과정에서 당내에서는 선거 과정이 충분히 민주적이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던 2007년 대선에서 권영길 후보가 심상정(2위), 노회찬(3위) 두 후보를 누르고 대통령 후보에 선출된다. 이때 역시 자주파 대의원들의 많은 수가 권영길 후보를 지지했고, 이에 대해 결선 투표에 오른 심상정 후보의 지지자들이 자주파 계열의 패권주의적 행태를 비판한 바 있었다. 그러던 중 일심회 사건이 발생하고, 대선에서도 당 지지율 및 2002년 대선보다 낮은 3%의 득표를 얻는 데 그치자, 당 내에서는 책임 소재를 놓고 논쟁이 벌어졌다.

당의 위기를 수습하기 위해 심상정 당시 국회의원이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임명되어 자주파 계열 당직자들의 친북 편향적 행위와 당권 장악을 위한 그들의 조직적 개입을 문제삼고, 당 내부의 정파 패권주의를 청산할 것을 골자로 하는 내용의 혁신안을 내놓았으나, 당 대의원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자주파의 반발로 채택되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실제로 자주파가 통일 문제만 전면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것도 아닌데 평등파가 자주파를 '종북주의'로 딱지 붙였다는 논쟁, 자주파가 평등파의 비판을 인식하지 못하고 "더 친북해야 한다"는 구호를 외친 데 대한 논쟁, 자주파도 진보파도 아닌 당원들의 양 정파의 패권주의에 대한 논쟁 등이 벌어졌다.

비대위의 혁신안이 부결되자 평등파 성향의 많은 당원들이 민주노동당에서 탈당하여, 먼저 탈당한 조승수 전 의원 등이 추진하던 '새로운 진보정당 운동'과 함께 총선에 대응하기 위하여 진보신당을 창당하였다.

창당대회

첫 총선에서의 패배와 촛불정국[편집]

진보신당은 의미 있는 야당이 되기 위해 창당 이후 처음으로 치르는 2008년 총선 때 의석을 확보할 것을 목표로 하였으나, 지역구에서 단 한 명의 당선인도 배출하지 못하고 비례대표 지지율 역시 2.94%로 비례대표 분배 기준인 '지역구 5석 이상 또는 비례대표 지지율 3%'[8]에 미달해 의회 진출에 실패하였다. 여론조사에서 줄곧 한나라당홍정욱 후보를 앞서던 노회찬 후보는 2천여 표의 근소한 차로 당선에 실패하였고, 민주당과의 후보 단일화 및 중앙당의 집중지원으로 당선을 노리던 심상정 후보 역시 후보 단일화 등이 무산된 가운데 재선에 실패하였다.[9] 다만, 의석이 없는 다른 소규모 정당과는 달리 정당 지지율 2%를 넘겼기에 정당등록취소를 면할 수 있었으며, 정부의 정당보조금도 일부분 받을 수 있었다.[10]

총선 이후 진보신당은 내부적으로는 총선용으로 만들어진 정당을 재창당하여 본격적인 틀을 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중앙당 측은 당 홈페이지를 통해 재창당에 대한 일반당원들의 의견을 물었으며 이런 작업의 일환으로 지난 2008년 5월 16일에는 재창당에 대한 평당원 토론회를 진행하였다. 그러나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로 인해 광장에 나간 시민들을 당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하면서 재창당 논의는 잠시 중단되었다.

'제2창당' 작업과 첫 정기당대회의 개최[편집]

촛불이 사그라들며 당 내부에서는 미뤄둔 '제2창당' 작업에 본격적으로 착수하자는 의견이 나타났다. 이와 관련하여 2008년 9월부터 당내의 의견을 모으기 위해 지역별 순회 토론회를 진행하였다. 토론회에서는 현재 진보신당이 내걸고 있는 '4대 가치'인 평등, 생태, 평화, 연대로는 이념지향을 드러내기 힘들며 사회주의, 사회민주주의, 반자본주의, 반제국주의, 사회주의와 사회민주주의의 통합, 생태주의, 여성주의의 복수(複數)의 이념 등을 가치에 포함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또한 새로운 당명으로 진보당, 사회진보당, 초록사회당, 민중희망당 등의 안이 나왔다.[11]

이를 바탕으로 2009년 3월 1일에 용산 구민회관에서 열린 첫 정기당대회 1차 대회에서는 현행 공동대표 체제를 임기 2년의 단독대표 체제로 전환하는 조직개편과 당명변경, 당 강령 개정, 재보궐선거 예비후보 선출 등이 결의되었다. [12] 정기당대회 1차 대회의 결의에 따라 3월 23일부터 3월 27일까지 닷새간 당원투표를 실시했고, 그 결과가 3월 29일에 송파 구민회관에서 열린 정기당대회 2차 대회에서 발표되었다. 개표결과로 심상정의 불출마선언으로 단독출마한 노회찬이 당대표로 선출되고 윤난실 · 이용길 · 정종권 · 박김영희가 부대표로 선출되었다.

3월 29일의 정기당대회 2차 대회에서는 새로운 강령안도 통과되었다. 이 중 가장 큰 논란거리였던 당명변경은 3월 5일에 열린 당 대표단 회의 결과와 3월 18일에 열린 제15차 확대운영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정기당대회 2차 대회에서 논의하지 않고, 지방선거 이후까지 현 명칭을 계속 사용하기로 결정했다.[13][14]

4.29 재보선과 원내 진입[편집]

4. 29 재보선을 앞두고, 진보신당은 3월 1일의 정기당대회 1차 대회에서 울산 북구조승수를, 전주 덕진염경석을 후보로 내보낼 것을 결의하였다.

당선증을 들고 있는 조승수 의원

특히 울산의 경우, 2010년의 지방선거 및 4.29 재보선에서 선거연합을 하자는 2월 25일의 합의에 따라 민주노동당과의 후보단일화가 예정되어 있었다. 3월 12일자로 지난 제18대 총선를 통해 울산 북구에서 재선에 성공한 윤두환의 의원직 상실이 확정되자, 진보 양당은 3월 24일부터 단일화를 위한 예비협상을 시작했다. 양당 간의 일진일퇴의 협상 끝에 결국 4월 6일,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은 후보단일화에 합의하였으나 이 합의는 민주노총 조합원 총투표를 둘러싼 양당 간의 이견과 조합원 총투표가 선거법에 저촉될 수 있다는 울산 선관위의 유권해석으로 난관에 부딪혔다. 그러나 4월 11일에 중앙선관위가 울산 선관위의 유권해석을 번복하는 새로운 유권해석을 내놓아 4월 12일에 다시 세부실무협상이 제기되었으나 여론조사의 범위를 두고 또다시 양당 간 의견 차이를 보였다. 이 과정에서 민주당김태선 후보가 "반 이명박 대연합을 위해 결단을 내렸다"며 양당간 후보단일화를 촉구하며 사퇴하였다. [15]

난항을 겪던 단일화를 결국 선거를 며칠 앞둔 4월 23일 최종적으로 합의하였으나 세부 내용에 대해서는 선거전략상 발표하지 않았다.[16] 이 결과, 4월 25일부터 26일까지 주말 동안 진행된 여론조사를 통해 4월 26일 저녁 조승수 후보가 단일 후보로 선출되었고,[17] 김창현 후보는 다음날인 4월 27일 기자회견을 열고 이 결과에 승복하고 후보를 사퇴하였다.[18]

4월 29일에 치러진 재보궐선거에서 조승수 후보는 49.2%의 지지를 얻어 울산 북구에서 당선되었고 전주 덕진에 출마한 염경석 후보는 같은 지역구에 출마한 무소속 정동영 후보의 압승으로 낙선하였다. 그러나 조승수의 당선으로 진보신당 연대회의는 의석을 얻어 원내정당으로 발돋움하였다. 원내 진입으로 진보신당은 국회 내에 사무실을 낼 수 있게 되었으며 대변인인 김종철을 통하여 현행 규정상 원내정당에게만 허락되는 국회 정론관 브리핑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한편 국가로부터 받는 보조금도 1억 4천만원 가량 증가하게 되었다.[19]

용산 참사와 쌍용차 사태[편집]

2009년 1월 28일에는 재개발에 반대하여 건물 옥상에 올라가 농성하던 영세 세입자들을 강제 진압하는 과정에서 화재사고가 일어나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용산 참사가 발생하였다. 진보신당 당원 중심의 미디어공동체인 칼라TV는 농성이 시작된 1월 19일부터 농성 거점지의 맞은편 빌딩에서 경찰과 용역의 불법 진압 행위를 감시하기 위한 활동을 펼치는 한편, 참사가 발생한 날에는 당시의 참혹한 광경을 촬영하여 시민들에게 사건의 진상을 알리기도 하였다.[20] 참사 이후, 진보신당은 다른 야당들과 공조하여 검찰수사기록 공개 거부로 용산 참사의 진실을 밝히지 않으려는 정부와 여당을 상대로 진상규명운동을 벌였으며, 원외에서는 유가족들과 함께 진상규명을 위한 '3보 1배' 운동을 벌이기도 하였다.

한편 상하이차의 매각 결정 이후, 경영이 불안해진 쌍용차는 대대적인 구조조정 계획을 단행한다. 수차례의 교섭에도 사측이 노측의 제안을 전혀 수용하지 않자, 노측은 정리해고에 반대하는 대대적인 총파업 투쟁을 결의하게 된다. 이에 2009 5월 29일, 사측이 직장폐쇄라는 강경한 조치를 취하자 노조를 중심으로 한 일부 노동자들이 평택에 위치한 공장을 점거하고 정리해고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사측의 식수 반입 방해, 의료진 공장 내 진입 방해 등 인권을 무시한 과잉 대응과 함께 최루액 살포 및 테이저건 사용 등 경찰의 강경 진압이 계속되자 진보신당을 비롯한 야 3당과 원외정당인 사회당 등과 함께 쌍용자동차 평택 공장 앞에서 '살인 진압 규탄대회' 등을 벌이며 함께 농성을 시작하였다. 이 과정에서 사측이 고용한 용역 직원 및 비해고 고용자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구사대에게 시민단체 관계자와 언론사 기자들이 폭행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2010년 6.2 지방선거[편집]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야5당(민주당, 국민참여당, 창조한국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과 4개 시민단체가 반MB연대를 목표로 '5+4 연석회의'가 결성되었으나, 지방선거를 앞두고 탈퇴한 진보신당은 노회찬 서울시장 후보가 독자 완주를 하고 심상정 경기도지사 후보는 유시민 후보를 지지하며 사퇴했다. 이 과정에서, 한명숙 서울시장 후보가 오세훈 후보에게 불과 4천여표, 0.6%p의 득표율 차이로 패하자 일부 네티즌들은 사퇴 및 단일화를 하지 않은 노회찬 후보(14만여표, 3.3% 득표)를 비난하였으며 일부 당원들은 탈당을 하기도 하였다. 이에 대해, 노회찬은 "내가 얻은 표는 개인에 대한 지지표라기보다는 이명박 정부도 심판해야지만 ‘민주당도 어떤 책임을 물을 대상’이라는 생각이 분명한 분들의 표"라며 단일화 무산의 책임에 대해서도 "한 후보 쪽도 단일화를 위해 협상하자는 제안이 일절 없었다."며 양측 모두에게 책임이 있음을 강조했으며,[21] 진보신당 김종철 대변인은 논평에서 "한나라당의 실정을 평가하지 못해 아쉽지만 진보신당은 한 후보나 민주당과는 엄연히 다른 정치를 추구해 왔기 때문에 진보신당 탓으로 돌리는 것은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진보신당이 이념적으로 큰 차이가 있는 민주당과 무조건적인 단일화를 할 필요는 없었다는 의견이나, 민주당과 달리 이념성향이 뚜렷하고 지역주의 색채가 없다는 점에서 노회찬 후보의 표를 무시해선 안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22]

한편, 진보신당은 이 선거에서 광역의원 3명, 기초의원 22명을 당선시켰으며, 광역 비례대표 득표율은 3.13%를 기록했다. 6월 19일에 열린 제6차 전국위원회에서는, 심상정 경기도지사 후보의 사퇴 행위에 대해 처벌해야 한다는 "지방선거에서의 해당행위에 관한 특별결의문 채택의 건"이 제출되었으나 부결되었다.

강령[편집]

소개[편집]

진보신당은 2009년 3월 1일3월 29일에 열린 제1회 정기당대회에서 강령 수정안을 의결하고, 이른바 '만남 강령'이라 명명된 새로운 강령을 마련하였다. 이 강령은 크게 당의 이념과 원칙을 제시하는, 8개 항으로 구성된 '전문'(前文)과 기존 진보신당의 정강(29개 테제)을 수정 확대하여 42개 항으로 구성된 '본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진보신당은 이를 위해 지난 2008년 12월부터 '강령작성소위원회'(위원장 김상봉)을 꾸려 강령작성작업을 진행해왔으며, 당의 기본적인 행동방향이 될 강령의 전문(前文) 초안은 강령소위의 위원장인 김상봉이 작성하였다. [23] 강령소위는 첫 정기당대회 전인 2009년 2월에 초안을 공개하고, 당원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2009년 3월 29일에 열린 제1회 정기당대회 2차 회의에서 최종수정안을 통과시켰다.

전문(前文)으로 미루어 볼 때, 진보신당은 '자본주의를 극복'(전문 3항)하려는 사회주의적 목표를 가지면서도 이러한 이념적 지향을 '정당정치와 결합'(전문 7항)시키겠다는 사회민주주의적 성격을 동시에 추구할 것으로 보인다.[23] 또한 진보신당은 이번 강령에서 노동자 · 서민 뿐만 아니라 '여성 · 소수자의 정당이고 녹색정당'(전문 8항)이란 점을 분명히 하여 노동자와 서민을 전면에 내세워 그 이념적 색채를 분명히 하였던 기존의 진보정당에 비해 보다 더 넓고 유연한 이념적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주요 내용[편집]

진보신당 강령에서 발췌[24]

  • 재벌이 금융, 언론을 비롯해 사회 전 영역으로 권력을 확장하는 것을 제도적으로 차단한다.
  • 재벌의 대기업 소유, 지배 구조를 해체하고 대안 기업 형태로 전환한다.
  • 공공부문를 사유화하는 것을 중단하고 교육, 보건등에서 공공부문을 확장한다.
  • 일체의 금융산업화 정책을 중단하고 주요 은행 국유화등을 통해 공공성을 강화한다.
  • 진보신당은 조세에서 능력에 따른 세금 부담을 실현코자 한다.
  • 진보신당은 핵발전소의 건설을 반대하며 단계적인 폐기를 주장한다. 또한 동북아 비핵화를 추진한다.
  • 국·공립대학교를 확대하고 대학교 무상교육 실시를 추진한다.
  • 진보신당은 생태적, 문화적인 이유로 공동 자산이 되어야할 토지와 주택용 토지에 대한 단계적 국공유화를 추진한다.
  • 진보신당은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추진한다. 공직자 소환제, 참여 자치 영역 확대, 시민들과의 만남이 가능한 선거법등을 추진한다.

강령을 둘러싼 논란[편집]

현 강령이 당대회를 통과하긴 하였으나, 이 과정에서 상당한 논란 역시 수반되었다. 가장 큰 논란은 바로 '강령의 친화성'에 대한 것이었다. 당 일각에서는 '현 강령안이 지나치게 어렵고 장황해 일반 대중들이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는 주장이 일어났다. 또한 '강령의 이념적 불분명성'에 대해서도 논란이 일었는데, 당 내부의 정파 중 하나인 '사회민주주의 공개정파를 준비하는 모임'은 레디앙에 성명서를 내어 "'만남 강령'의 정치관은 지나치게 사변적이고 귀족적"이라 주장하고, 강령 본문의 일부 항목들에 대해서는 '비현실적이고, 급진적이며, 본말이 전도된 주장'이라 지적하며 당원들에게 강령 채택을 보이콧할 것을 주문했다.[23][25][26]

조직 구성[편집]

중앙당 조직[편집]

진보신당은 크게 당 안팎의 문제에 대한 당의 입장을 결정하기 위한 '의결 기구'와 의결 기구에서 결정된 사안을 집행하는 '집행부'로 구성된다. 의결 기구는 다시 당 대회와 전국위원회로 나뉘며, 집행부 역시 당 지도부와 부문위원회으로 나눌 수 있다.

의결 기구[27][편집]

당대회[편집]

당대회는 진보신당의 최고 의결기관으로서 당의 대의원으로 구성된다. 강령과 당헌의 개정, 당의 합당과 해산, 재창당 등 조직의 진로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 등을 갖고 있다. 당 대의원은 당대표단, 당 소속 국회의원 및 광역자치단체장, 전국위원, 광역시·도당 위원장(수인인 경우 호선한 1인으로 함)과 지역별로 할당된 만큼 선출하는 '지역할당 선출 대의원'과 여성, 노동 등 부문별로 할당된 만큼 선출하는 '부문할당 선출 대의원' 및 일반 당원 중 추첨으로 선출되는 추첨 대의원으로 이뤄진다. 당 대의원의 임기는 2년이다.

당대회는 다시 정기 당대회와 임시 당대회로 나눌 수 있는데, 정기당대회는 2년마다 당대회 의장이 소집한다. 임시 당대회는 전국위원회의 의결이 있거나, 당대회 재적대의원 1/3이상의 요구가 있을 때, 의장이 60일 이내에 소집해야 한다.

전국위원회[편집]

전국위원회는 당의 일상적인 의결기관으로서 당의 전국위원으로 구성된다. 전국위원은 당 대표단, 당 소속 국회의원, 광역시·도당 위원장(수인인 경우 호선한 1인으로 함), 지역할당 선출 전국위원, 부문할당 선출 전국위원 및 추첨 전국위원으로 구성된다. 전국위원은 당규의 제정과 개정, 주요정책 및 당 방침의 수립, 사무총장 및 정책위의장, 부문·과제별위원회 설치 및 위원장 인준, 당헌, 당규의 해석 권한 등을 갖고 있다. 당 전국위원의 임기 역시 대의원과 마찬가지로 2년이다.

전국위원회는 정기 전국위원회와 임시 전국위원회로 나눌 수 있는데, 정기 전국위원회는 분기마다 당대표가 소집한다. 임시 전국위원회는 당대표 또는 전국위원회 위원 재적 1/3이상의 요구가 있을 때 당대표가 소집한다.

집행부[편집]

당 지도부[편집]

당 대표단은 당 대표와 여성 2인을 포함한 4인의 부대표단으로 이루어진다. (부대표단 선출에 여성할당제가 적용되었다.) 당 대표는 사무총장 및 정책위의장 등 중요 당직자를 임명하고, 전국위원의 제청을 받아 전국위원회를 소집할 수 있는 강력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 당 대표와 부대표의 임기는 2년이다. 2009년 현재 당 지도부는 아래와 같다.

부문위원회[편집]

부문위원회는 당에 주어진 과업의 해결을 위해 당원 및 당 내외의 활동가를 중심으로 조직된 단체이다. 현재 진보신당은 비정규직 문제를 다루는 비정규특별위원회와 태양광 발전 사업 등 당의 생태친화적 정책을 기획하는 녹색위원회, 노동 문제 해결을 위한 노동위원회(준)을 가지고 있으며, 최근 불거진 신종 플루 문제 및 의료보험 관련 정책 등 시민들의 건강에 대해 중점적으로 다루는 건강위원회와 여성·성적 소수자·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를 위한 정책을 생산하는 여성위원회와 성정치위원회, 장애인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

정책연구소[편집]

국고보조금을 지원받는 모든 정당은 별도 법인으로 정책연구소를 설립하게 되어 있는 정당법 (제38조)에 따라, 진보신당은 2008년 9월, 사단 법인 형태의 '진보신당 정책연구소 미래상상' (약칭 '상상연구소')을 설립하였다. 2010년 3월 27일에는 명칭을 '진보신당 상상연구소'로 바꾸었다. 사무실은 중앙당이 위치한 서울 영등포구 양말산3길 19 대하빌딩 801호에 위치하고 있다. 상상연구소의 구성원은 아래와 같다.

상상연구소는 중장기 정책 연구를 주 임무로 하고 있다. 당 정책위원회를 보조하여 정책위원회가 낼 입법안이나 정책 사업 기획의 기초 연구를 담당하며, 당의 중장기적 전략이나 정책 개발을 담당한다. 또한 당내 상임 정책연구위원 외에도 당 밖의 진보적 학자나 지식인, 활동가 등을 비상임 정책연구위원으로 조직해 정책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역할도 맡고 있다. 또한 당 간부직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과정을 개발하는 한편, 당의 이념 및 정책을 선전하는 단행본 등을 발간하고 있다.

그 외[편집]

이밖에 당 내의 갈등과 마찰 및 불미스러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당기 위원회를 두고 있다.

지역 조직[편집]

진보신당은 최근 창당한 울산시당[28], 경기도당,인천시당을 포함하여 모두 16개 시,도당이 활동하고 있으며, 진보신당 경기도당 부천당원협의회등의 지역당원협의회가 광역시도당 아래에 설치되었다. 경기도당의 경우 노회찬, 심상정 초청강연, 산우회등의 당원 소모임, 경기도 의회에 초등학생 대상의 무상급식에 사용할 예산통과를 요구하는 시민 서명운동 및 서명명단의 경기도 교육청 제출등으로 진보신당, 당원, 지역 주민들간의 소통을 맡고 있다.


주요 사건[편집]

2008년 촛불집회 참여[편집]

진보신당은 이명박 정부의 한미 쇠고기협상 논란의 초반부터 줄곧 이명박 정부의 정책에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해 왔다. 촛불집회5월 9일부터 진중권, 정태인, 심상정, 노회찬, 김부선, 조승수, 이명선 등의 사회로 집회 생중계, 시민 인터뷰, 기타 프로그램 등을 인터넷 생방송으로 진행하여 촛불 집회 참여자들의 많은 호응을 받았다. (이것이 '진보신당 칼라TV'[29]이다.)

방송 이외에도 연행자 면회 및 경찰서 항의 방문, 연행 과정에서 벌어지는 행위들에 대한 법률적 자문, 중간에 참여하고자 하는 시민들을 위한 중앙당 상황실 개설 등의 활동을 하였다.

특수임무수행자회의 당사 난입 및 폭행 사건[편집]

특임자회의 당사 난입으로 깨진 진보신당 현판

2008년 7월 1일 밤 10시 경 특수임무수행자회(이하 '특임자회') 사무총장과 소속 회원 5명이 진보신당 당사를 난입하여 당직자 및 당원들을 폭행하고 당사 현판과 같은 집기를 부수는 등 난동을 피웠다. 이 과정에서 칼라TV 진행자인 진중권 중앙대 겸임 교수 등 8명이 폭행을 당했으며,[30] 진보신당은 이들에게 폭행당한 당원 중 2명이 병원에 입원했다고 밝혔다.[31] 이에 특임자회측은 술을 마시고 진보신당 앞을 지나가던 중 우발적으로 일어난 사건이며, 진중권 교수가 노컷 뉴스에 특수임무수행자회의 위령제를 “‘북파 공작원의 개그쇼’라고 폄하하는 발언에 분노하고 있었다”라고 해명했다.[32] 사실 특수임무수행자회의 진보신당 관계자 및 당원에 대한 폭행은 이번 사건이 처음이 아니며 지난 2008년 6월 6일에도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위령제를 끝내고 가는 특임자회 회원에게 인터뷰를 시도하던 칼라TV 제작진에 폭력을 행사하여 이미 당원 1명의 코뼈가 부러진 바 있었다.[33] 한편, 이번 당사 난입 폭행사건에 대해 진보신당은 백색 정치 테러로 규정하는 논평을 내고 경찰의 엄정한 수사를 촉구하는 동시에, 특수임무수행자회의 무차별적 폭력에 대해 규탄하였다.

이후 특수임무수행자회는 진보신당에게 사과하였지만, 진중권의 칼럼에 대해서는 명예훼손을 이유로 소송을 제기하였다.

결국 2008년 9월 9일, 이 사건으로 특임자회의 사무총장과 회원 한 명은 각각 징역 10월과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았다.[34] 진중권에 대한 명예훼손에 관해서도 2009년 4월 5일 법원으로부터 '특수임무수행자회를 비판한 진중권에게는 손배책임 없다'며 원고패소 판결을 받았다.[35]

노회찬 대표의 조선일보 방문[편집]

기타[편집]

유명 인사들의 참여[편집]

창당 과정에서 홍세화(언론인), 박찬욱(영화감독), 임순례(영화감독), 안재성(소설가), 변영주(영화감독), 진중권(미학자), 김탁환(소설가), 김부선(영화배우) 등이 홍보대사를 맡았다. 이금희(아나운서), 박중훈(영화배우), 하리수(가수)는 개인 자격으로 노회찬 전 의원의 선거구 노원 병에서 틈틈이 노 전 의원의 선거 활동을 도와주었다.[36] 영화배우 문소리와 전 농구선수 박찬숙은 덕양 갑 선거구에 출마한 심상정 후보에 대한 지원유세에 동참하였다. 그리고, 유명 학원 강사로 이름을 날렸던 이범도 심상정 후보의 교육공약이 마음에 든다며 심상정 후보에 대한 지지선언을 하고, 유세 현장에 참가했다.[37]

국회 및 지역의원 현황[편집]

국회의원[편집]

지역의원[편집]

이름 분류 대지역 소지역 비고
최재연 광역 경기도
김해연 광역 경상남도
여영국 광역 경상남도
오진아 기초 서울특별시 마포구
최선 기초 서울특별시 강북구 재선
나경채 기초 서울특별시 관악구
홍준호 기초 서울특별시 구로구
김광모 기초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박욱영 기초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화덕헌 기초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장태수 기초 대구광역시 서구
김성년 기초 대구광역시 수성구
문성진 기초 인천광역시 동구
김규찬 기초 인천광역시 중구
황보곤 기초 울산광역시 동구
황세영 기초 울산광역시 중구 재선
김혜연 기초 경기도 고양시
황순식 기초 경기도 과천시 재선
서윤근 기초 전라북도 전주시 재선
엄정애 기초 경상북도 경산시
박경열 기초 경상북도 포항시 재선
이행규 기초 경상남도 거제시 재선
유영수 기초 경상남도 거제시
한기수 기초 경상남도 거제시 재선
이옥선 기초 경상남도 마산시 재선

역대 정보 기록[편집]

정당 현황[편집]

대한민국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매년 말 발표하는 '정당의 활동개황 및 회계보고'를 통해 살펴본 진보신당의 현황은 아래와 같다.

당원수[편집]

진보신당의 당원은 독일 사회민주당민주노동당처럼 당비를 납부하는 대신 의결권이 있는 진성당원이며, 2008년 현재 당원수는 다음과 같다.

연도별 당원수 분포비(%)1) 등록된
시·도당수
시·도당
평균당원수
2008년 15,260 0.4 7 2,180
2010년 16,918 16 1,057

1) 분포비는 당해 조사된 전체 정당가입자 중 진보신당의 당원이 차지하는 비율을 의미한다.

시·도당별 당원수[편집]
연도별 합계 서울 부산 대구 인천 광주 대전 울산 경기 강원 충북 충남 전북 전남 경북 경남 제주
2008년 15,260 5,206 1,497 1,248 2,819 1,129 1,448 1,913
2010년 16,918 5,814 958 1,311 1,311 457 384 536 3,021 441 327 446 569 264 579 919 240

※ 공란은 당해 현재 시·도당이 등록되지 않은 곳이다.

당비납부 현황[편집]

진보신당은 당원들의 당비만으로 운영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38], 진보신당 당원들은 소득액수에 맞추어 일정한 금액을 당비로 납부한다.[39] 당비는 당원이 약속한 납부날짜에 자동으로 이체된다.

연도별 당원수 납부자수 당비납부
비율(%)
전년대비
증감
합계 중앙당 시·도당
2008년 15,260 9,891 0 9,891 64.8 -

유급사무직원 수 현황[편집]

연도별 구분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평균
2008년 중앙당 30 30 51 80 67 55 58 59 47 47 52
시도당 9 10 12 13 19 18 18 22 22 23 17
합계 39 40 63 93 86 73 76 81 69 70 69

주요회의 개최상황[편집]

연도별 전국대의원
개최
수임기관회의 당무회의
(간부회의)
의원총회 비고
(기타회의)
1차 2차
2008년 12 5 정책위 6회

대표단 선거[편집]

2008년[편집]

3월 1일,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가칭)진보신당 창당준비위원회 결성대회'에서 공동대표 5인의 선출작업이 있었다. 여기에서 결정된 당대표단은 아래와 같다.

2009년[편집]

3월 1일에 열린 창당 이후 첫 정기당대회 1차 대회에서는 현행 공동대표체제를 임기 2년의 단일대표 체제로 전환할 것과 당대표 아래에 부대표 4인(여성최소 2인)을 두는 조직개편안이 확정되었다. 특히 신임대표의 권한을 강화하기 위해 사무총장과 정책위의장 등 주요당직자의 임명권한을 부여하기로 했다. 1차 대회가 열린 지 닷새 후인 3월 6일에는 상임공동대표인 심상정의 당대표단 경선 불출마 선언이 있었다.[40] 이에 후보자 등록 마감 결과, 당대표에는 노회찬 상임공동대표가 단독후보로 공고되었고, 부대표 후보로는 일반명부 후보는 정종권 현 집행위원장과 이용길 전 진보신당 조직위원장 이상 2인이, 여성명부 후보로는 박김영희 현 공동대표, 최현숙 현 성정치부문 확대운영위원, 윤난실 현 광주시당 공동대표 이상 3인이 후보등록을 마쳤다.[41]

2009년 대표단 선거에 출마한 후보들(왼쪽부터 이용길, 최현숙, 노회찬, 박김영희, 윤난실, 정종권)

3월 29일의 정기당대회 2차 대회에서는 이들에 대한 선거를 진행하였다. 선거결과와 신임 당대표단은 아래와 같다.


  • 선거 결과

선거 결과, 당대표 단독후보인 노회찬 후보를 찬성 97.9%로 신임 당대표로 내정하였고, 부대표 후보는 일반명부 후보인 정종권이용길 후보가 각각 찬성 93.3%와 94%의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한편 여성명부는 박김영희 후보가 1,873표를, 최현숙 후보가 1,483표를, 윤난실 후보가 3,195표를 득표하여 박김영희, 윤난실 후보가 당선되었다.[42]

후보자명 출마분류 출마명부 득표율 득표수(명) 결과 비고
노회찬 당대표 97.9% 6,513 당선 찬반투표
정종권 부대표 일반명부 93.3% 5,724 당선 찬반투표
이용길 부대표 일반명부 94.0% 5,265 당선 찬반투표
박김영희 부대표 여성명부 28.6% 1,873 당선 (3명 중 2등) 경선
최현숙 부대표 여성명부 22.6% 1,483 낙선 (3명 중 3등) 경선
윤난실 부대표 여성명부 48.8% 3,195 당선 (3명 중 1등) 경선

국회의원 총선[편집]

2008년[편집]

진보신당은 2008년 국회의원 총선에 총 46명의 후보(지역후보 35명, 비례후보로 11명)를 등록했지만, 단 한 명의 당선자도 배출하지 못했다. 노회찬 후보의 경우 여론조사에서 줄곧 앞서왔지만 실전에 패배하여 당 내의 아쉬움을 샀으며, 심상정 후보의 경우 민주당 한평석 후보와의 단일화 시도가 당내외적으로 논란이 되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자료를 토대로 재구성한 주요 후보의 투 · 개표결과는 다음과 같다.

2위 대 1위 출마지역 득표율 득표수(명)
심상정손범규(한나라당) 고양시 덕양구 37.67% 43.50% 25,049 대 28,921
노회찬홍정욱(한나라당) 서울특별시 노원구 40.05% 43.10% 32,111 대 34,554

지역구 후보의 배출지역을 살펴보면, 총 35명의 지역구 후보 중 60% 가량인 20명을 유권자가 밀집한 수도권에 배치하였다. (서울 14명, 경기 4명, 인천 2명) 비례대표는 민주노동당과 마찬가지로 장애인 운동가(박김영희)와 비정규직 노동자(이남신)를 1, 2번에 배치하였다.

정당득표에서는 2.94%(504,466표)를 획득하여, 정당법 제44조 제1항[43]에 따른 해산을 면할 수 있었으며 정치자금법 제27조 제2항[44]에 따라 보조금도 일부 지급받을 수 있었다.

재보궐 선거[편집]

2008년[편집]

후보자명 출마지역 출마분류 득표율 득표수(명) 결과
이승필 창원시 제4선거구 광역의원 20.14% 3,806 3명 중 3등
고영주 거제시 제1선거구 광역의원 17.15% 4,008 5명 중 3등
박창호 포항시 다선거구 기초의원 18.87% 1,474 7명 중 2등
이영철 김해시 바선거구 기초의원 21.24% 3,252 3명 중 3등
이윤상 천안시 바선거구 기초의원 16.54% 1,781 4명 중 4등

2009년[편집]

후보자명 출마지역 출마분류 득표율 득표수(명) 결과
조승수 울산광역시 북구 국회의원 49.20% 25,346 당선
염경석 전주시 덕진 국회의원 6.11% 4,861 낙선

미디어[편집]

음악[편집]

진보신당에서는 당가 경연대회에 응모된 당원들의 작품들과 기타 선거유세 등에 사용하기 위해 작곡한 노래를 '정보공유라이선스 2.0 허용'에 준해 배포하였다.

소식지 발행[편집]

현재는 하지 않지만, 진보신당에서는 당원들이 자유로운 주제로 쓴 글을 아래아한글 형식과 PDF형식의 소식지 《주간 진보신당》에 실었으며, 소식지는 매주 금요일에 발행[45]하여 당원들에게 전자우편으로 발송되었다.

공약설명책 발행[편집]

진보신당에서는 2010년 6월 2일에 시행될 지방선거 공약들을 서민들의 실제생활과 관련된 주제들인 기획재정,교육,복지,노동등에 걸쳐 설명한 공약설명책을 발행하였다.

같이 읽기[편집]

바깥 고리[편집]

== 주석 == <references/> {{대한민국의 정당}} [[분류:2008년 설립]] [[분류:대한민국의 정당]] [[분류:사회민주주의 정당]] [[분류:진보신당| ]] [[분류:진보적 정당]] [[ar:الحزب التقدمّي الجديد (كوريا الجنوبية)]] [[de:Neue Fortschrittspartei (Südkorea)]] [[en:New Progressive Party (South Korea)]] [[ja:進歩新党]] [[no:Jinbo Shin-dang]]

  1. 진보신당 당헌 1장 1조
  2. 중앙선거관리위원회 2009년 현재 정당등록 및 창당준비위원회 결성신고 현황
  3. 당 강령에 북한에서는 민중들을 억압한다며 북한의 독재를 비판하는 내용이 있다.
  4. 제6차 전국위원회 회의자료
  5. 강경훈 기자. “김대중과 재야(在野), 그 끈질긴 50년의 인연”. 민중의 소리. 2010년 7월 1일에 확인함. 
  6. 정운영, 《노회찬, 정운영이 만난 우리시대 진보의 파수꾼》, 랜덤하우스중앙, 2004 의 민주노동당 설립과정 부분
  7. 양정아. “ '간첩단 사건' 후폭풍…'자주파' 주도 민노당 강타하나? - '北추종' NL이 민노당 장악…PD "선군정치 철폐" 주장도”. 데일리안. 2008년 3월 31일에 확인함.  |제목=에 지움 문자가 있음(위치 1) (도움말)
  8. 공직선거법 제189조 제1항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비례대표국회의원선거에서 유효투표총수의 100분의 3 이상을 득표하였거나 지역구국회의원총선거에서 5석 이상의 의석을 차지한 각 정당(이하 이 조에서 "의석할당정당"이라 한다)에 대하여 당해 의석할당정당이 비례대표국회의원선거에서 얻은 득표비율에 따라 비례대표국회의원의석을 배분한다'
  9. 문용필. “진보신당 “후회나 절망은 없다”- 10일 당 지도부 성명통해 “총선후 재창당 이어가겠다” ”. 데일리 서프라이즈. 2008년 4월 10일에 확인함.  |제목=에 지움 문자가 있음(위치 1) (도움말)
  10. “2분기 정당보조금 75억 지급”. 동아일보. 2008년 6월 14일에 확인함. 
  11. 월간 진보신당 2009년 1월
  12. “<보도자료> 3월29일 2차 당대회서 당명개정논의, 당대표 선출키로 (1차 당대회 중간결과 보도자료)”. 진보신당. 
  13. “<브리핑> 3월 5일 당 대표단 회의결과(2차 당대회 서울개최 / 당명 관련 현행 유지의견 확운위 제출 등)”. 진보신당. 
  14. “제15차 확대운영위원회 회의결과”. 진보신당. 
  15. 정상근 기자. "단일화의 작은 밑거름 되겠다". 레디앙. 2009년 4월 30일에 확인함. 
  16. 정상근 기자. “노 "단일후보 승리 위해 양당 노력". 레디앙. 2009년 4월 30일에 확인함. 
  17. 정상근 기자. “환호 속 긴장 "자만이 가장 큰 적". 레디앙. 2009년 4월 30일에 확인함. 
  18. 정상근 기자. “김창현, 울산북구 재선거 후보사퇴”. 레디앙. 2009년 4월 30일에 확인함. 
  19. '1석의 힘'..진보신당 위상 상승”. 연합뉴스. 2009년 9월 11일에 확인함. 
  20. 유명준 기자. '용산 재개발 철거민 시위' 동영상에 네티즌 '발끈'. 세계일보. 2009년 9월 11일에 확인함. 
  21. 노회찬 “한명숙 패배 내탓이라니” 서울신문 2010년 6월 5일
  22. 서울=연합뉴스. [hthttp://news.donga.com/Politics/3/00/20100603/28835068/1 “진보신당 “민주당, 노회찬 탓 말라””]. 동아일보. 2010년 6월 27일에 확인함. 
  23. 정상근 기자. “ "사회주의-사민주의 택일 않는다" ”. 레디앙. 2009년 4월 8일에 확인함.  |제목=에 지움 문자가 있음(위치 1) (도움말)
  24. 진보신당 강령
  25. 정상근. “ ‘만남강령’ 통과, ‘당명개정’ 무산 ”. 레디앙. 2009년 4월 8일에 확인함.  |제목=에 지움 문자가 있음(위치 1) (도움말)
  26. 사회민주주의 공개정파를 준비하는 모임. “ '만남 강령' 반려하라 ”. 레디앙. 2009년 4월 8일에 확인함.  |제목=에 지움 문자가 있음(위치 1) (도움말)
  27. [당규 제9호] '대의기구에 관한 규정' 참고
  28. “진보신당 울산시당 창당”. 연합뉴스. 2009년 9월 11일에 확인함. 
  29. 칼라TV 홈페이지
  30. “MB캠프 특위위원장 출신 등 진보신당 당사 난동 2명 영장”. 한겨레. 
  31. “보수단체, 진보신당에 난입하여 당직자 폭행등 난동”. 진보신당. 
  32. “특수임무수행자회 “(진보신당 난입은) 우발적 사건””. 데일리 서프라이즈. 
  33. “이명박과 만난 HID, 서울대생 코뼈 산산조각냈다”. 데일리 서프라이즈. 2008년 7월 3일에 확인함. 
  34. 최현준 기자. “‘진보신당 난입’ 특임자회 사무총장 징역형”. 한겨레. 
  35. “법원, "특수임무수행자회 비판 진중권 손배책임 없다". 노컷 뉴스. 
  36. 배우 박중훈 "회찬이 형이 좋아", 프레시안, 2008년 3월 23일
  37. <심상정의원실> 우리 나라 최고 스타강사 이범, 덕양구에서 심상정 교육비전을 강의하다, 연합뉴스, 2008년 3월 31일
  38. 진보신당에서는 연말에 소득공제를 신고할 수 있도록 당비 납부 영수증을 당 누리집에서 인쇄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영수증 서식에 "진보신당은 당비만으로 당을 운영한다."라고 적혀있다.
  39. 소득이 120만원이상인 당원은 월 만원이상, 120만원 미만의 당원은 월 오천원이상의 당비를 납부할 수 있다.
  40. 당대표 경선 불출마를 결정하며 당원동지들께 드리는 글 진보신당 (2009년 3월 6일)
  41. 2009년 당대표단 후보등록결과 공고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진보신당 (2009년 3월 7일)
  42. 대표단 선출결과 및 노회찬 당대표 취임사 및 공동대표 이임사 진보신당 (2009년 3월 29일)
  43. '임기만료에 의한 국회의원선거에 참여하여 의석을 얻지 못하고 유효투표총수의 100분의 2 이상을 득표하지 못한 때에 선거관리위원회는 해당 정당의 해산을 명할 수 있다'는 규정
  44. '보조금 지급 당시 제1항의 규정에 의한 배분 · 지급대상이 아닌 정당으로서 5석 이상의 의석을 가진 정당에 대하여는 100분의 5씩을, 의석이 없거나 5석 미만의 의석을 가진 정당 중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정당에 대하여는 보조금의 100분의 2씩을 배분 · 지급한다'는 규정
  45. 중앙선거관리 위원회 2008년도 정당의 활동계획 및 회계보고》 P.3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