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이동

보우 (조선): 두 판 사이의 차이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편집 요약 없음
8번째 줄: 8번째 줄:


== 생애 및 활동 ==
== 생애 및 활동 ==
보우는 [[조선 중종]] 25년 [[금강산]] [[마하연암]](摩訶衍庵)에 입산하여 [[참선]]과 [[경학]] 연구에 전심하였다. 그후 하산하여 다시 [[설악산]] [[백담사]](白潭寺)의 승려으로 있던 중, [[문정왕후]](文定王侯)가 선{{.cw}}교(禪敎) 양과를 부활시키자 판선종사도대선사 [[봉은사]] [[주지]](判禪宗寺都大禪師奉恩寺住持)가 되고 [[봉선사]](奉先寺) 주지로서 [[교종]](敎宗)을 맡았던 [[수진]](守眞)과 더불어 선{{.cw}}교 양 면에서 그 위세가 빛나기 시작하였다.
보우는 [[조선 중종]] 25년 [[금강산]] [[마하연암]](摩訶衍庵)에 입산하여 [[참선]]과 [[경학]] 연구에 전심하였다.<ref name="글로벌-보우2">[[s: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동양사상/한국의 사상/조선전기의 사상/조선전기의 종교사상#보우|동양사상 > 한국의 사상 > 조선전기의 사상 > 조선전기의 종교사상 > 보우]],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ref> 그후 하산하였는데, 이후 다시 [[설악산]] [[백담사]](白潭寺)의 [[승려]]로 있던 중, [[문정왕후]](文定王侯)가 선{{.cw}}교(禪敎) 양과를 부활시키자 판선종사도대선사 [[봉은사]] [[주지]](判禪宗寺都大禪師奉恩寺住持)가 되고 [[봉선사]](奉先寺) 주지로서 [[교종]](敎宗)을 맡았던 [[수진]](守眞)과 더불어 선{{.cw}}교 양 면에서 그 위세가 빛나기 시작하였다.<ref name="글로벌-보우2"/>


나중에 [[유신]](儒臣)들의 배척을 받아 [[제주]](濟州)로 유배되고, 거기서 죽었다. 또한 그의 힘으로 재흥했던 [[선교양종]]의 과(科)도 폐지되고 말았으나 그때에 들어온 승려들 가운데 [[임진왜란]] 때에 근왕호국(勤王護國)의 충성을 다한 [[휴정]](休靜){{.cw}}[[유정]](惟政) 등이 배출되어 법맥이 이어진 것은 [[조선의 불교]]로서는 매우 다행한 일이었다.
나중에 [[유신]](儒臣)들의 배척을 받아 [[제주]](濟州)로 유배되고, 거기서 죽었다.<ref name="글로벌-보우2"/> 또한 그의 힘으로 재흥했던 [[선교양종]]의 과(科)도 폐지되고 말았으나 그때에 들어온 승려들 가운데 [[임진왜란]] 때에 근왕호국(勤王護國)의 충성을 다한 [[휴정]](休靜){{.cw}}[[유정]](惟政) 등이 배출되어 법맥이 이어진 것은 [[조선의 불교]]로서는 매우 다행한 일이었다.<ref name="글로벌-보우2"/>


== 사상 ==
== 사상 ==
보우의 [[선 (불교)|선]](禪) 이해는 틀리지 않았지만 크게 독창적인 점은 없고 약간 소극적인 [[공 (불교)|공]](空)의 편견에 치우쳐 심경불이(心境不二)의 묘제(妙諸)는 언급이 부족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보우의 [[선 (불교)|선]](禪) 이해는 틀리지 않았지만 크게 독창적인 점은 없고 약간 소극적인 [[공 (불교)|공]](空)의 편견에 치우쳐 [[심경불이]](心境不二)의 묘제(妙諸)는 언급이 부족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ref name="글로벌-보우2"/>


그러나 그의 '''일정설'''(一正說)은 그 표현의 묘(妙)를 얻은 것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는 일정설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그러나 그의 '''일정설'''(一正說)은 그 표현의 묘(妙)를 얻은 것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는 일정설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ref name="글로벌-보우2"/>


{{인용문|하나라는 것은 둘도 아니고 셋도 아니며, 성실하여 망녕됨이 없는 것을 말하니 하늘의 이치이다. 그 이치(理)가 공막(空漠)하여 아무런 조짐이 없지만 만상(萬象)이 울창하여서 물(物)의 어느것 하나 그 이치를 갖추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러나 그것의 체(體)를 말하면 하나(一)일 따름이니 처음부터 물(物)이 둘이나 셋 있는 것은 아니다.…… 바르다(正)는 것은 치우치지 않고 그릇됨이 없고 순수하며 잡되지 않는 것은 이르는 것이니 곧 사람의 마음이다. 그 마음이 안정되어 딴 생각이 없고, 천지만물의 이치가 어디 한 군데 해당되지 않는 곳이 없으며 영통(靈通)하여 어리석지 않으니, 천지만물의 모든 일에 어느것 하나 응하지 않는 것이 없고, 일찍이 한 생각도 사사로이 치우치거나 그릇된 적이 없다.}}
{{인용문|[[하나]]라는 것은 둘도 아니고 셋도 아니며, 성실하여 망녕됨이 없는 것을 말하니 [[하늘]]의 [[이치]]이다. 그 [[이치]](理)가 공막(空漠)하여 아무런 조짐이 없지만 만상(萬象)이 울창하여서 물(物)의 어느것 하나 그 이치를 갖추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러나 그것의 체(體)를 말하면 [[하나]](一)일 따름이니 처음부터 물(物)이 둘이나 셋 있는 것은 아니다.…… [[바르다]](正)는 것은 치우치지 않고 그릇됨이 없고 순수하며 잡되지 않는 것은 이르는 것이니 곧 [[사람]]의 [[마음]]이다. 그 [[마음]]이 안정되어 딴 생각이 없고, 천지만물의 이치가 어디 한 군데 해당되지 않는 곳이 없으며 영통(靈通)하여 어리석지 않으니, 천지만물의 모든 일에 어느 것 하나 응하지 않는 것이 없고, 일찍이 한 [[생각]]도 사사로이 치우치거나 그릇된 적이 없다.}}


보우는 일정설(一正說)에서 하나(一)를 가지고 하늘의 이치를, 바른 것(正)을 가지고 사람의 마음을 이야기 하였는데 그 취지는 한국 민족 사상의 한 전통을 이루는 것으로 평가된다.
보우는 일정설(一正說)에서 하나(一)를 가지고 [[하늘]]의 [[이치]]를, 바른 것(正)을 가지고 [[사람]]의 [[마음]]을 이야기 하였는데 그 취지는 한국 민족 사상의 한 전통을 이루는 것으로 평가된다.<ref name="글로벌-보우2"/>


== 저서 ==
== 저서 ==

2011년 6월 18일 (토) 10:12 판

보우(普雨: 1515~1565)는 조선 명종 때의 승려이다.[1][2] 호는 허응당(虛應堂) · 나암(懶庵)이다.[1][2]

보우는 1530년 금강산 마하연암에 들어가 수도하다가, 명종의 모후로 불심(佛心)이 깊은 문정왕후(文定王后)의 신임을 얻어 1548년봉은사 주지가 되었다.[1] 그 후 선종교종을 부활시키고,[1] 문정왕후가 섭정할 때에 보우는 봉은사(奉恩寺)를 선종(禪宗)의 본산(本山)으로 삼았으며 봉선사(奉先寺)를 교종(敎宗)의 본산으로 삼았다.[2] 이와 더불어, 승과를 부활시키고 도첩제를 다시 실시하게 하는 등, 숭유억불 정책으로 탄압받던 불교의 부흥에 노력하였다.[1] 후에 도대선사에 올랐다.[1]

그러나 이러한 불교 부흥은 문정왕후의 죽음으로 일시적인 부흥에 그치고 종막을 고하였다.[2] 또한 보우도, 문정왕후가 죽자, 유림의 기세에 밀려 승직을 삭탈당하고 제주도유배되었다가 제주 목사가 참하였다.[1]

생애 및 활동

보우는 조선 중종 25년 금강산 마하연암(摩訶衍庵)에 입산하여 참선경학 연구에 전심하였다.[3] 그후 하산하였는데, 이후 다시 설악산 백담사(白潭寺)의 승려로 있던 중, 문정왕후(文定王侯)가 선 · 교(禪敎) 양과를 부활시키자 판선종사도대선사 봉은사 주지(判禪宗寺都大禪師奉恩寺住持)가 되고 봉선사(奉先寺) 주지로서 교종(敎宗)을 맡았던 수진(守眞)과 더불어 선 · 교 양 면에서 그 위세가 빛나기 시작하였다.[3]

나중에 유신(儒臣)들의 배척을 받아 제주(濟州)로 유배되고, 거기서 죽었다.[3] 또한 그의 힘으로 재흥했던 선교양종의 과(科)도 폐지되고 말았으나 그때에 들어온 승려들 가운데 임진왜란 때에 근왕호국(勤王護國)의 충성을 다한 휴정(休靜) · 유정(惟政) 등이 배출되어 법맥이 이어진 것은 조선의 불교로서는 매우 다행한 일이었다.[3]

사상

보우의 (禪) 이해는 틀리지 않았지만 크게 독창적인 점은 없고 약간 소극적인 (空)의 편견에 치우쳐 심경불이(心境不二)의 묘제(妙諸)는 언급이 부족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3]

그러나 그의 일정설(一正說)은 그 표현의 묘(妙)를 얻은 것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는 일정설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3]

하나라는 것은 둘도 아니고 셋도 아니며, 성실하여 망녕됨이 없는 것을 말하니 하늘이치이다. 그 이치(理)가 공막(空漠)하여 아무런 조짐이 없지만 만상(萬象)이 울창하여서 물(物)의 어느것 하나 그 이치를 갖추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러나 그것의 체(體)를 말하면 하나(一)일 따름이니 처음부터 물(物)이 둘이나 셋 있는 것은 아니다.…… 바르다(正)는 것은 치우치지 않고 그릇됨이 없고 순수하며 잡되지 않는 것은 이르는 것이니 곧 사람마음이다. 그 마음이 안정되어 딴 생각이 없고, 천지만물의 이치가 어디 한 군데 해당되지 않는 곳이 없으며 영통(靈通)하여 어리석지 않으니, 천지만물의 모든 일에 어느 것 하나 응하지 않는 것이 없고, 일찍이 한 생각도 사사로이 치우치거나 그릇된 적이 없다.

보우는 일정설(一正說)에서 하나(一)를 가지고 하늘이치를, 바른 것(正)을 가지고 사람마음을 이야기 하였는데 그 취지는 한국 민족 사상의 한 전통을 이루는 것으로 평가된다.[3]

저서

보우의 저서로는 《허응당집(虛應堂集)》·선게잡저(禪偈雜著》·불사문답(佛事問答)》 등이 있다.[1]

주석

참고 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