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으로 건너뛰기

"퇴레게네 카툰"의 두 판 사이의 차이

1 바이트 제거됨 ,  2개월 전
[[오고타이 칸]]은 [[보라쿠친 카툰]] 소생 [[쿠추]]를 후계자로 지명하였으나, 1234년 11월 쿠추가 남송 원정 중 덕안부에서 전사했다. 오고타이 칸은 쿠추의 아들 시레문을 후계자로 지정하였다. 또한 오고타이 칸은 [[툴루이]] 가문의 [[몽케]]를 잠재적 후계자로도 보았다.
 
퇴레게네는 이에 반발하여 자신의 아들 [[귀위크]]를 후계자로 정할 것을 요구했으나, 오고타이는 거절하였다. 오고타이는 1241년 가을 사냥을 나갔다가, 그해 12월 과도한 음주로 인한 [[알콜 중독]]성 병으로 갑자기 사망했다. 그녀는 제국내의 다양한 경쟁 권력의 균형을 맞추고, 5년 동안 전 [[몽골 제국]]을 다스렸을 뿐만 아니라 그녀의 아들 [[귀위크 칸]]이 즉위할 무대를 설정하였다.
가을 사냥을 나갔다가, 그해 12월 과도한 음주로 인한 [[알콜 중독]]성 병으로 갑자기 사망했다. 그녀는 제국내의 다양한 경쟁 권력의 균형을 맞추고, 5년 동안 전 [[몽골 제국]]을 다스렸을 뿐만 아니라 그녀의 아들 [[귀위크 칸]]이 즉위할 무대를 설정하였다.
 
[[1241년]] [[오고타이 칸]]이 죽자 우구데이의 숙부로 칭기즈 칸의 막내동생인 [[테무게|테무게 옷치긴]]이 대칸의 유궁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군대를 이끌고 우구데이의 황후들이 거처하는 오르두(행궁)로 오자, "우리는 당신의 의붓딸이며 당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다. 무장한 많은 군대를 이끌고 온 것은 무슨 까닭인가? 왜 모든 백성과 군대를 불안하게 만드는가?"<ref>Rashid al-Din, J. A. Boyle tr., The Sucessors of Genghis Khan, Columbia University Press, 1971, 178쪽.</ref>라는 항의하며 거절하였다. 앞서 서방 원정을 나갔던 우구데이의 아들 [[구유크]]가 도착했다는 보고를 듣고 테무게는 대칸의 자리를 포기, 퇴레게네 카툰에게 우구데이에 대한 조의를 전하고 철군하였다. 이러한 옷치긴의 거병은 앞서 우구데이가 옷치긴에 대해 시행했던 중앙집권정책에 수반한 강한 견제책에 대한 반발에서 비롯된 것이었다.<ref>김호동 「구육과 그의 시대」 『근세 동아시아의 국가와 사회』 일조각, 1998, 123~124</ref> [[테무게 옷치킨]]은 오고타이의 조문을 왔다는 핑계를 대고 만주로 되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