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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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舊約聖經, 히브리어: הברית הישנה, 라틴어: Vetus Testamentum, 영어: Old Testament) 또는 구약성서(舊約聖書)는 ‘유대교 성경’ (Hebrew Bible, תנ"ך 타나크)을 기독교 경전의 관점에서 가리키는 말이다. 정확한 범위에 대해서는 교파마다 논란이 있다.

명칭

5세기에 신약성경이 결정되면서 경전의 경계를 명확하게 구분짓기 위해 사용되기 시작한 명칭이었다. ‘구약’이란 말은 ‘옛 계약’이란 의미의 한자어이며, 기독교의 관점에서, 신약성경과 대비되는 신과의 ‘옛 계약’이 적힌 책이라는 의미로 쓰이므로, 유대인에게는 용인되지 않는다. 구약성경을 히브리어 성경이라고도 한다. 구약성경은 율법서, 예언서 및 성문서 등으로 분류되며, 기독교 종파에 따라 분류 체계에 차이가 있고, 일부 낱권은 제2 경전 또는 외경으로 분류된다.

유래와 결정 과정

유대교

구약성경은 유대교의 경전이며, 유대교에서는 '타나크(TANAK)'라고 부른다. 전통적인 증언은 기원전 1500년~400년 사이에 유대민족의 구전 전승이 문자로 기록되었다고 주장하지만, 성서학계에서는 실제 문헌 작성 연대를 훨씬 나중으로 이해한다. 토라(모세오경)의 경우에는 주로 유대왕국 후반부터 바빌론 유수기에, 케투빔(성문서)와 느비임(예언서, 선지서)의 경우에는 바빌론 유수기부터 예루살렘 귀환 이후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현재의 타나크 내 24권의 모든 문서가 유대교의 경전으로서 공식적으로 인정받게 된 것은 AD 90년 경의 얌니야 회의로 추정되어 왔다.(그러나 얌니야 회의에서 특정한 문헌의 타나크 목록 추가 및 배제가 논의된 것이 아니라는 주장도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주장은 얌니야 회의는 나자렛 이단 세력(후의 기독교)의 축출을 주 목적으로 하였다고 본다.)

구약성경의 각 문헌들이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전통적인 증언에 주로 의존해 왔지만(벤 시락의 집회서나 에스라 등의 증언), 현재 성서학계의 연구는 여러 갈래의 전승들이 본문 비평을 통해 다양한 기록자에 의해서 기록, 채색되었고, 지역 및 시대에 따라서 다른 갈래의 문서들이 만들어졌다고 추정한다. 히브리어 전통을 보존했던 팔레스타인 유대인들은 그렇지 못했던 다른 지역의 유대인들에 비해 신학적인 우월성을 가지게 되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이들 세력이 지지하는 문서와 그 목록이 경전성을 인정받게 되었다. 얌니야 회의이후 이들 세력의 지지를 받지 못한 문서들이 유대교 안에서 경전성을 배제당하는데, 신뢰성 있는 히브리어 원문의 존재 유무가 가장 핵심적인 경전성 결정의 기준이 되었다. 이전까지 디아스포라 유대인, 그리고 새롭게 대두되던 기독교 세력이 사용하던 그리스어 번역 성경인 70인역은 얌니야 회의에서 인정된 히브리어 성경인 타나크와의 내용적 차이의 문제와, 히브리어 원문이 없이 그리스어 번역본만 존재하는 문헌들도 있어 그 출처의 신뢰성을 의심받았고, 결국 유대교 안에서 축출당하였다. 70인역을 대신하여 유대교는 히브리어를 모르는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을 위해 타나크를 대본으로 하여 아퀼라역을 새롭게 번역하였다.

기독교

기독교에서는 유대교의 '타나크'를 '구약'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382년에 로마 공의회에서 새롭게 정한 경전들을 '신약(New Testament)'이라고 부르기로 397년 카르타고 공의회에서 결정했기 때문이다. 초창기의 기독교는 유대교의 한 분파로서 역사에 등장하였고, 따라서 '신약성경'으로 분류된 문헌 안에서 언급된 "성경"이라는 모든 표현은 곧 '구약성경'을 의미한다. 그러나 기독교의 경우에는 그리스어 문화권의 디아스포라 유대인 세력과 이방인들을 중심으로 성장하였고, 따라서 디아스포라 유대인이 신앙을 유지하기 위해 히브리어 성경을 그리스어로 번역하여 사용했던 70인역이 그대로 기독교의 경전이 되면서 외경논란의 화근이 되었다. 내부적으로 높은 권위를 인정되던 주요 문헌들이 70인역의 것을 주로 인용하였기에 기독교의 호교론적 입장에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초대교회는 히브리어 원문과 70인역의 차이에 대한 유대교 측의 비판에 대하여 상당히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기독교 안에서는 구약정경의 개념이 유대교에 비해서 상당히 늦게 정해졌다. 유대교는 1세기 얌니야 회의에서 70인역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부분(오역, 히브리어 원문과 내용이 다름, 히브리어 원문 출처가 없는 번역본의 존재 등)에 대하여 2세기 이후 기독교 내부에서도 히브리어 지식을 본격적으로 습득한 멜리투스 등이 동조하기 시작하면서 70인역의 경전성 문제를 둘러싸고서 갈등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의 갈등은 상당히 일찍 시작되었는데, 4세기 로마 제국콘스탄티노플로 천도한 이후에 기존 로마 교구의 위상을 어느 수준까지 인정할 것인가의 정치적 문제가 갈등의 출발점이 되었다. 이 내적 갈등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서방교회가 70인역의 위치에 대하여 초대교회의 전통적 호교론의 입장을 견지하자, 동방교회는 상대적으로 학술적인 입장에 서서 유대교 측의 입장을 제한적으로 받아들인 새로운 입장을 옹호하게 되었다.

특히 4세기에 기독교로마 제국에게 공인된 이후, 급격히 교세가 확장되면서 로마 제국이 콘스탄티노플로 천도하는 상황에서 신약성경을 포함한 경전 확립의 필요성이 요청된 4세기 후엽에 그 갈등은 극에 달하였다. 당시에 경전의 확정 작업이 막바지에 이른 가운데, 아타나시우스히에로니무스 등의 일부 저명한 신학자들은 구약 부분에서 유대교 히브리어 경전 본문과 그 목록의 우월성을 주장하였고 특히 히브리어 원본없이 그리스어 번역본만 있는 문헌들을 '아포크리파'라고 분류하며 그 권위를 상대적으로 낮잡아 보았지만, 아우구스티누스를 중심으로 한 서방교회의 전통적 호교론자들은 그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마침내 397년 카르타고 공의회에서 유대교에게는 인정되지 않은 그리스어 번역본의 경전성을 인정하며 '구약성경'을 일단 확정지었다. 그러나 서방교회 내부에서 비판이 완전히 가라앉은 것은 아니었으며, 긴 세월에 걸쳐 일부 문헌 목록의 제외와 재분류 등 내부적으로 조정이 있었고, 동방교회에서도 카르타고 공의회의 일방적인 결정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로 입장을 견지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일부 개신교계 성서학자들은 히에로니무스가 경전적인 문헌과 교회의 문헌을 나누어 불가타 성서에 실었는데, 필사자가 구분없이 필사를 하는 바람에 제2경전도 정경으로 여겨지게 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출처 필요]

그러나 외경에 대한 해묵은 갈등이 본격적으로 대두된 것은 16세기의 종교 개혁에 의해서였다. 특히 마르틴 루터는 신약성서와 구약성서의 각 문헌들 사이에 권위의 차이가 존재한다고 주장하면서(Kanon im Kanon), 이 중 구약정경 구성에 대해서는 유대교 측의 입장을 확고하게 지지하였다. 칼뱅의 경우에도 과거 카르타고 공의회의 신뢰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면서 루터와 크게 다르지 않은 입장을 취하였다. 그러나 로마 가톨릭교회는 1545년의 트리엔트 공의회를 통해 정경에 대한 도전적인 주장들을 모두 일축하였고, 제2경전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여 과거에 '외경'으로 분류되기도 하였던 일부 문헌들에 대하여 다른 성경 문서들과의 동등한 수준의 경전성을 공식적으로 재확인하였다.

이러한 로마 가톨릭교회의 결정에 종교개혁 세력은 반발하였으며, 결국 로마 가톨릭교회를 등지고 독립된 개신교가 등장하게 되었고, 그 안에서는 외경의 경전성을 부인하고 유대교의 타나크 24권을 재분류한 39권의 독자적인 구약정경의 목록을 확립하였다. 그러나 개신교 제 종파 안에서도 의견을 달리해서, 루터교성공회는 외경에 대해 '교리를 도출하는 근거가 되기는 어렵지만 신앙에는 유익한 문서'로 권장했던 아타나시우스나 히에로니무스의 입장에 가까운 편이며, 자체적으로 발행하는 성경에 '부록'으로서 삽입하기도 하였다. 특히 성공회는 아포크리파를 준정경으로 인정하여 봉독하기도 하면서 우호적인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칼뱅주의를 바탕으로 결정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신학적 영향을 많이 받은 개신교 보수적인 종파들은 외경에 대하여 교회 내 봉독을 금지하였고, 자체적으로 발행하는 성경 안에서 아예 완전히 배제하는 등 배타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사해 문서의 발견

1946년에 발견된 사해 문서에서 히브리 말 원본이 있었을 것이라고 막연히 추측되던 토빗기 등의 히브리어 판본이 포함된 채 발견되면서 히브리어 원본에 없었기 때문에 이들 문서들이 경전의 목록에서 제외되는 외경이라는 개신교 등의 주장은 설득력을 잃게 되었다. 로마 가톨릭교회동방 정교회제2 경전이라고 부르고, 개신교에서는 외경이라고 부르는 책이 정경(正經)인가의 여부는 다른 요소들에 의해 결정짓게 되었다.

구약성경의 목록과 구분

유대교와 기독교의 분류법은 서로 다르나, 기본 골격은 같다. 다만, 기독교 계통의 종파들도 서로 달라 개신교에서는 39권, 로마 가톨릭교회에서는 46권, 동방정교회에서는 49권으로 분류하고 있다. 수의 차이가 있는 것은, 70인역 성서의 전통에 따른 제2경전을 성문서 범주에 포함시키는지의 여부에 대한 차이 때문이다.

율법서

유대교 성서와 동일하게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등 모세오경을 취하여 구약성경의 가장 맨 앞에 두고 있다. 모세가 저술했다고 하여 모세 오경이라고도 한다.

역사서

역사서는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기록한 책들을 묶는 이름이다. 편의에 따라 두 부류로 세분화하기도 한다.

신명기 역사서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적인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다.

  • 여호수아
  • 사사기
  • 룻기
  • 사무엘상
  • 사무엘하
  • 열왕기상
  • 열왕기하

역대기 역사서

바벨론 포로 귀환 후에 다시 쓰여진 역사서이다.

  • 역대상
  • 역대하
  • 에스라
  • 느헤미야
  • 에스더

시가서

문학서라고 불리기도 하며, 총 5권이다.

  • 욥기
  • 시편
  • 잠언
  • 전도서
  • 아가

예언서

이사야, 예레미야, 예레미야애가, 에스겔, 다니엘 및 소예언서 12권이 이 범주에 속한다.

대선지서
  • 이사야
  • 예레미야
  • 예레미야애가
  • 에스겔
  • 다니엘

이상의 5 권을 “대선지서”로 분류하기도 한다.

소선지서

유대교 성서에서는 한 권으로 취급하나, 기독교에서는 각각의 12권으로 나누어 분류하고 있다.

  • 호세아
  • 요엘
  • 아모스
  • 오바댜
  • 요나
  • 미가
  • 나훔
  • 하박국
  • 스바냐
  • 학개
  • 스가랴
  • 말라기

제2경전 혹은 외경

  • 토빗기
  • 유딧
  • 에스더에 첨가
  • 지혜서
  • 시락
  • 바룩
  • 예레미야의 편지
  • 다니엘에 첨가
  • 마카베오 1서
  • 마카베오 2서
  • 마카베오 3서
  • 마카베오 4서

구약성경의 인물과 족보

같이 보기

바깥 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