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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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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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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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미술의 역사[편집]

서양미술의 근원지는 현재의 유럽과 함께 중동지역, 서부와 남부 러시아를 기준으로 하며 이후에는 북 아메리카 지역까지 확장된다. 미술의 역사는 출토되거나 보존된 미술품을 기준으로 그 작품이 생겨나게 된 시대적 배경과 작가, 작가의 특성 등을 고려하고 있다. 미술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 그 자체이며 따라서 미술의 역사를 말할 때 각 시대의 역사적인 사건들과 그 파장 또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서양미술의 발전은 동양미술과 극히 많은 차이를 보인다. 서양미술의 역사의 시작은 고대의 기원전 4만년까지 올라가며 조각품과 동굴벽화에서부터 시작한다. 이후 여러 문명과의 교류를 거쳐가며 미술은 서양미술의 역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이집트 문명 시절에는 왕과 신을 거대한 조각상으로 표현하기도 했으며 피라미드스핑크스와 같은 유명한 고대 건축물을 남기기도 하였다. 서양미술은 조각과 그림, 직물에서 건축물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분야를 포함하고 있으며 르네상스에 이르기까지는 종교적인 목적으로 제작된 작품들이 대부분이었다. 이후 르네상스 시대를 거쳐 19세기에 이르면서 서양미술은 극적인 발전과 변화의 시기를 맞게 된다.

고대[편집]

'빌렌도프의 여인'(Woman from Willendorf) 기원전 4만년전 경.

서양 미술의 역사의 시작은 분명치 않다. 기원전 4만년 전에 호모 사피엔스의 등장 이후 인류는 발전을 거듭하면서 최초의 미술 형태를 이루는 돌 조각품을 만들게 된다. 기원전 3만년에서 2만 5천년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빌렌도프의 여인'(Woman from Willendorf)이라는 작은 조각품은 서양 미술의 역사에서 최초의 미술작품 중 하나라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고대에 만들어진 미술 작품들은 정확한 제작년도를 추정하기 힘들며 작가는 물론 어떤 민족이 제작했는가에 대해서도 알 수 없다. 즉, 미술의 역사는 사실상 이미 역사가 시작되고 오랜 시간이 지난 이후에서야 비로소 쓰여지기 시작한 것이다. 고대의 미술 작품은 대다수가 유럽과 남부 러시아를 걸쳐 광범위한 지역에서 발견되고 있으며 재료는 대부분 돌이나 짐승의 뼈를 조각한 작품이거나 동굴 벽에 그려진 벽화들이다. 고대에 만들어진 미술 작품들은 그 용도가 관상용이 아닌 종교적이거나 교육적인 이유라고 추정되며 사람의 모습이나 들소, 야생말, 다른 야생동물 등 일상적이고 그들이 흔히 보는 모습들을 소재를 다루고 있다.

초기 문명[편집]

메소포타미아[편집]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번창하기 시작한 이 초기 문명들은 아시아의 서부지역으로 오늘날의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요르단, 레바논, 시리아, 터키, 이라크와 이란이 있는 지역이다. 이 시기의 미술 작품들은 점점 더 복잡하고 많은 소재를 다루고 있으며 무늬와 문양을 패턴 형식으로 나타내는 등 디자인 적인 감각에서 많은 발전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미술작품들은 토기나 도자기 등 생활에 밀접한 필수품 위에 나타나기도 하며 조각품들은 고대의 미술품보다 더욱 자세하게 소재를 재현해내고 있다.

수메르 문명[편집]

수메르 문명은 기원전 4천년 전에 출현한 것으로 보인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강을 따라 번창한 수메르 문명은 농업 기술을 사용하여 불모지였던 땅을 농작지로 바꾼 후 그곳에 정착했다. 수메르 문명의 미술품으로는 토기의 겉면을 조각하여 부조의 형태를 만든 '우루크의 항아리'가 있다. 이 항아리는 세 개의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맨 위의 장면에는 보통 여인 혹은 그들이 믿었던 여신 이나나(Inanna) 혹은 여신의 사제로 여겨지는 여인에게 바구니를 건네는 남성의 모습과 남성의 뒤로 여러 개의 바구니, 항아리, 그리고 숫양들의 모습이 나타나 있다. 두 번째 장면에서는 나체의 남성들이 바구니에 공물 등을 담아 걸어가고 있다. 당시에는 신의 앞에 나아갈 때에는 반드시 옷을 벗는 것이 관습이었다. 그 아래 세 번째 장면에서는 가축들과 곡식들의 모습이 나타나 있다.

이런 식으로 탄생된 미술품들은 가장 초기의 문자 형태를 형성하는 데에 큰 기여를 한 것으로 보인다. 땅을 상징하는 가로 선의 활용과 조각과 조각 사이의 공간 등은 문자와 글의 초기 모습과 많이 닮아 있다. 당시 수메르 문명은 나름대로의 형태의 문학 문화 또한 갖고 있었다. 길가메시 서사시가 그것인데, 이 시는 인류 최초의 가장 위대한 시로 꼽히고 있다.

수메르의 신전에서는 그들이 섬기던 신과 여신을 조각한 것으로 보여지는 작은 조상들이 여럿 발견되곤 한다. 이들 조상들은 눈이 크게 과장되어 있으며 오늘날에는 사라지고 없지만 보석이나 조개의 껍질이 붙어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그들이 남긴 비문에 의하면 그들은 이러한 조상들이 단순히 신을 기쁘게 하기 위해 조각한 상이 아니라 생명을 갖고 있다고 믿었다.

아카드 문명[편집]

수메르 문명은 이후 기원전 2350년경 아카드인들에 의해 지배를 받게 된다. 이 시기부터 실물 크기의 왕의 조각상이 만들어지기 시작했으며 동으로 만든 왕의 두상 조각품은 현재 바그다드에 있는 이라크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이 두상 작품은 금속을 조각하는 기법에 있어 매우 높은 기술력과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다. 이 조각품도 마찬가지로 눈에 보석이나 조개 껍질을 장식하여 신과 같은 우상의 모습을 나타내려 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초대 왕 이었던 사르곤의 손자 나람신은 전쟁에서 이긴 기념으로 자신의 전승비를 조각하여 남기기도 했다. 이 전승비 속에서 그는 마치 신처럼 다른 군사들보다 두 배는 더 크며 불사의 몸을 갖고 있는 모습으로 나타나 있다. 이 전승비에는 나무와 언덕과 같은 경치 또한 조각되어 있으며 이것은 인류 최초의 풍경화의 형태로 여겨지고 있다. 언덕에 적혀진 비문은 훗날에 새겨진 것으로, 제작되었던 초기 시기에는 비문을 새겨넣지 않았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기원전 2180년 아카드 문명은 멸망하게 되었으며 단 하나의 도시 라가시만이 살아남게 되었다. 구데아의 평화로운 통치 아래 문학과 미술에 있어 많은 성취를 이루었다. 구데아 역시 이전의 아카드의 왕들처럼 실물 크기의 자신의 조각상을 만들긴 하였으나 그의 조각상은 이전의 조각상과는 많이 다른 모습을 띠고 있다. 그는 자신을 신격화하지 않고 신 Ningirsu를 섬기는 종이며 자신을 '양치는 목자'라 칭하였다. 그의 조각상에서는 옛 왕들의 조각상과 다르게 수염을 깨끗이 깎은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와 같은 조각상들은 매우 단단한 돌로 조각되어 있고 신전 주변에 안치되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Choogha Zanbil에 주재한 지구라트.
지구라트[편집]

수메르 문명이 번창할 시기에 지어진 신전들은 지구라트(Ziggurats)라고 불리고 있다. 이 신전들은 진흙을 빚어 만든 벽돌로 지어졌으며 높은 사제들과 왕에게만 출입이 허용된 성스러운 곳이었다. 이 신전들은 모세가 십계명이 적힌 석판을 받았던 시나이 산(Mount Sinai)와 같이 성스러운 산(Holy mountains)으로 여겨졌다. 평지에서 살았던 수메르인들에게 있어 산은 흐르는 물과 생명력을 가진 식물 등을 상징했다. 그들은 그들이 숭배하는 여신 Ninhursag를 '산의 여인'이라고도 불렀으며,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 보아 서양의 산에 대한 상징문화는 메소포타미아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바빌론 문명[편집]

기원전 2천년 이후부터 번창하기 시작한 바빌론 문명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역사에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함무랍비의 통치 아래 바빌론 제국은 마리(Mari)와 니네베(Nineveh)에서 페르시아 만까지 확장되었다. 함무랍비는 인류 역사 최초의 법전을 완성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법전은 stele라 불리는 석판 위에 새겨넣어져 있으며 이 석판의 윗쪽 부분에는 성스러운 산, 혹은 지구라트 위에 서서 인간의 모습을 한 신에게 법전을 받는 함무랍비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바빌론 문명의 조각품은 옛 수메르 문명이나 아카드 문명의 예술 문화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메트로폴리탄 미술 박물관에 전시된 통치자의 두상은 옛 아카드 인들의 동으로 만든 두상 조각을 연상시키는 모습을 하고 있다. 이 조각품 또한 눈동자가 비어 있는데, 보석이나 조개 껍질 따위를 채워넣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비교적 부드러운 모양을 하고 있으며 좀 더 자세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외에도 머리 부분이 심하게 훼손되었으나 매우 인상적인 여왕 Napirasu의 조각상(루브르 박물관)이 수사에서 발견되기도 하였다.

헤프트 테페(Haft Tepe) 부근에 위치한 Chogha Zanbil의 지구라트는 메소포타미아 근방에서 발견된 지구라트들보다 훨씬 더 큰 건축물이다. 이 지구라트는 푸른색과 초록색의 벽돌로 지어진 세 개의 신전과 합병되어 있으며 기원 전 1250년경에 지어졌을 것이라고 예상되고 있다. 이 건축물은 원래 5층 정도의 높이로 지어졌을 것이라고 추정되나, 현재는 심하게 훼손되었다. (→지구라트 참조)

인더스 문명[편집]

오늘날의 파키스탄인더스 문명수메르 문명과 무역거래를 해왔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無

초기 이집트 문명[편집]

초기의 이집트 문명은 다른 문명과 마찬가지로 거대한 나일 강을 따라 번성했다. 나일 강은 초기의 이집트 인들에게 농업을 위한 경작지, 나무, 풀, 돌, 식물, 그리고 운송 수단 등 여러가지를 제공했으며 고대 이집트 문명이 거대한 제국으로서 거듭나는 밑거름이 되었다. 이집트 문명은 군주제로, 고대 이집트 인들은 사막화된 땅에 둘러싸여져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해주는 나일 강 주변으로 모여들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나일 강하피(Hapy) 신이 수호하고 있다고 믿었으며 신들의 신이었던 태양신 [[라 (신화}|라]](Ra 혹은 Re)와 마찬가지로 가장 중요한 신들 중 하나로 여기며 숭배했다.

선왕조 시대[편집]

나일 강의 북쪽 지대는 험준한 계곡이 많은 곳으로 이곳의 대다수의 주민들은 사하라신석기 시대 문화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던 유목민들이었으며, 이들이 살던 지역은 석기 시대의 돌 조각과 벽화의 흔적을 현재까지도 찾아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메삭(Messak)에서 발견된 동물을 그린 벽화나 도기 등은 이집트의 북쪽 지방에서 발견되었으며 신석기 시대인 기원전 4천년에서 3천2백년 사이에 만들어졌을 것이라고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도기에 그림을 그려넣는 것은 기원전 4천년이 끝나갈 무렵에는 점점 사라져가는 풍습이 되어버린 듯하다. 이 시기에 발견된 그릇 등으로 미루어 봤을 때, 고대 이집트인들은 이미 돌을 조각하거나 구멍을 뚫고 윤이 나도록 다듬는 데에 숙련된 기술을 사용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장례식 때에는 흙을 빚어 만든 작은 남성이나 여성 모양의 조상과 시신을 함께 묻기도 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이 조상들이 죽은 이들의 시중을 들게 되며 이후 죽은 이들은 영생을 얻게 된다고 믿었다. 이러한 믿음은 이집트의 미술 문화에 있어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같은 시기에 무덤 안에서 그림들이 발견되기도 했는데, 아마로 만든 옷 조각이나 벽에 그려졌던 그림 등은 현재 카이로에 주재한 이집트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이 두 그림은 모두 나일 강에서의 삶을 묘사하고 있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하마나 갑판 선실이 있는 배, 그리고 노를 젓는 이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모든 것은 납작한 실루엣 형식으로 그려졌으며, 구석기 시대의 동굴 벽화처럼 어떠한 기준이나 법칙이 없는 납작한 2차원의 공간 속에 그려져 있다. 그러나 소재나 용도에 있어 이 작품은 선대의 어떤 미술 문화와도 구분된다. 그러므로, 이집트의 미술 문화는 나르메르왕이 북 이집트와 남 이집트를 합병 통치하기 이전부터 이미 천천히 꽃을 피우고 있었던 것이다.

초기왕조 시대[편집]
나르메르의 팔레트 (The palette of Narmer)

고대 이집트 특유의 평면적인 미술 풍조의 시작은 바로 이 작품에서부터 비롯되고 있다. 나르메르의 팔레트는 이집트 문명의 초대 왕이었던 나르메르의 전쟁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된 부조 조각품으로, 이집트 문명의 독특한 예술 문화를 열었던 최초의 작품으로 기록되고 있다. 팔레트는 앞면과 뒷면으로 나뉘어 양면에 각각 조각과 문양을 새겨넣어 당시 이집트 문명의 문화와 풍습을 암시하고 있다.

팔레트의 앞면에는 목이 긴 두 마리의 괴수가 서로의 목을 둥글게 꼬아 동그란 원 형태를 이루고 있다. 둥그렇게 패인 이 원은 다른 부분보다 훨씬 깊게 패인 것으로 보아 종교의식 혹은 승리를 기념하기 위한 의식에 필요한 물감 따위를 담아두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두 괴수들은 지면을 나타낸 것으로 보이는 가로선 위에 서 있으며 팔레트의 중앙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 위에는 나르메르 왕이 남부 이집트의 통치자의 상징인 붉은 코브라 왕관을 쓰고 전쟁에서 사로잡힌 포로들의 목을 참수하는 장면을 바라보고 있다. 팔레트의 하단 부분에는 나약함을 상징하듯 벌거벗은 채 황소들에게 짓밟히는 적군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황소는 왕의 권력과 힘을 상징하기 위함으로, 적군의 성벽을 부수는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

팔레트의 뒷면에는 나르메르가 서서 포로를 죽이려하는 장면을 표현하고 있다. 나르메르는 다른 이들 보다 두 배 이상 큰 모습이며, 다른 이들과 분리된 지면을 밟고 서 있다. 또한 나르메르의 다리에는 근육의 모양새를 나타낸 것으로 보이는 선들이 패여있으며 이것은 그의 힘을 상징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오른편에 조각된 매는 하늘의 신 호루스(Horus)를 상징하며 북부 이집트의 신이기도 하다. 매는 남부 이집트를 상징하는 밧줄을 잡고 있으며 이 밧줄은 여섯 개의 파피루스로 이어지고 있다.

팔레트 위에 새겨진 모든 형태들은 각각 어떠한 상징성을 갖고 있으며 훗날 쓰임에 따라 여러가지 의미로 해석된 것으로 보인다. 이 팔레트 위에는 나르메르와 포로들의 모습이 사실적으로 묘사된 반면 초기 상형문자의 형태로 보이는 무늬 또한 조각되어 있다. 이로 미루어보아 이 팔레트는 나르메르의 승리를 실제로 발표하기 위한 성명이나 문서로 해석된다.

고왕국 시대[편집]
중왕국 시대[편집]

에게 해 문명, 크리티 지역의 미노아 문명[편집]

미케네 문명[편집]

중기 문명[편집]

이집트 문명[편집]

고대 이집트의 문명은 오늘날 가장 신비하고 위대한 미술 문화의 흔적이 많이 발견되는 시기이다. 신왕국 시대 때 이집트의 미술은 다른 문명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으며 또한 이후 가장 크게 발전하게 되는 그리스 문명의 미술 문화의 기반을 다진 것도 또한 이집트의 미술이다.

앗시리아와 바빌론 문명[편집]

그리스 문명[편집]

초기 그리스[편집]

서양미술과 동양미술의 비교[편집]

쓰이는 재료에 따른 그림의 분류[편집]

대상 및 기교에 따른 그림의 분류[편집]

서양미술의 시대별 분류 및 대표 화가[편집]

고대[편집]

중세시대[편집]

르네상스[편집]

초기 르네상스[편집]

중기 르네상스[편집]

후기 르네상스[편집]

매너리즘[편집]

17세기 바로크[편집]

18세기 (바로크, 로코코)[편집]

신 고전주의 (미술)[편집]

낭만주의[편집]

19세기[편집]

사실주의[편집]

상징주의[편집]

아카데미 예술[편집]

인상주의 (미술)[편집]

19세기 말 - 20세기 초[편집]

표현주의, 야수파[편집]

큐비즘[편집]

초현실주의[편집]

20세기 중후반에서 오늘날까지[편집]

다다이즘[편집]

초현실주의[편집]

팝 아트[편집]

미니멀리즘[편집]

페미니즘 [편집]

일러스트레이터[편집]

읽어보기[편집]

참고자료[편집]

  • Honour, Hugh and John Fleming, The Visual Arts: A History. 2005년. Person Edcation, Inc., Upper Saddle River, New Jersey. ISBN 0-13-19350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