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트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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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트족의 석조물
픽트족의 십자가

픽트족(Picts)은 로마 제국 시기부터 10세기까지 스코틀랜드 북부와 동부에 거주하던 부족이다.

민족[편집]

픽트(Pict)라는 이름은 라틴어 핀게레(Pingere)에서 온 것으로 얼굴에 문신이나 색을 넣었다는 의미이다. 에메니우스는 297년 자신의 저서에서 이들을 픽트족이라 기록하고 있다. 픽트족이 스스로를 부른 이름은 전해지지 않는다.[1]

픽트족은 영국의 민족 가운데 하나인데, 그들의 실체는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몇몇 학자들은 픽트족이 영국 원주민이 아니라고 말한다. 첫 번째 그들의 언어는 켈트어, 갈루아어, 브리튼 원주민어, 잉글랜드어 와도 전혀 다른 언어 였다고 한다. 이들을 칼레도리아인 후손으로 보기도 하지만, 브리튼 원주민은 사나운 픽트족을 좋아하지 않았고, 오히려 로마 교회에 동화되었다. 픽트족은 4개의 부족의 연합체 이루어져 있었고, 북부에만 고립된 민족이 아니라, 아일랜드인, 브리튼인, 스코트인, 앵글인, 색슨인과 모두 교섭 하였다.

영화 킹아더에는 로마 교회에 동화된 영국 원주민 브리튼인과 픽트인, 색슨인이 등장한다. 여기에서 브리튼인과 픽트인은 관계가 좋지 않은 것으로 묘사된다. 기록에 따르면 픽트인은 브리튼 원주민 여성을 자주 납치하여 아내로 삼는 풍습이 있었다고 하며, 성격이 매우 사나웠다고 한다. 브리튼 원주민이 앵글족과 색슨족에 원병을 청한 이유도, 픽트족과 스코트족의 브리튼 원주민 압박의 배경이 있었다.

픽트인들 스스로 기원 설화에 따르면 그들이 스키타이에서 건너왔다고 주장한다. 스키타이는 이란계 민족에 속하고 장신에 강건한 체구를 가졌으며, 광대뼈가 나오고 털이 많았다고 한다. 픽트인은 스키타이와 같이 몸에 문신을 새기는 풍습이 있었다. 일부에서는 픽트라는 말이 문신이 아닌 배를 뜻하며, 이것은 배를 타고 건너온 사람이라는 은유적 표현이라고도 한다. 배를 타는 민족으로는 바이킹이 있었지만, 픽트족은 그들보다 거칠고 원시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6세기의 영국 수도승이었던 길다스가 기록하기를 털이 부수수하고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픽트족들을 배에 나누어 태워 로마인들이 버리고 간 스코틀랜드 지방에 "처음으로" 정착시켰다고 한다. 즉 픽트인이 브리튼 원주민이 아니었다는 점이 유추되고 있다. 기원후, 800년대에 영국 수도승 네니우스(Nennius)는 픽트족은 처음 오크니 제도에 정착한 후, 남쪽으로 침입했다고 했고, 8세기초 노섬브리아 성직자 비드는 픽트인들이 보트를 타고 항해하다가 폭풍에 밀려 영국에 상륙했다고 기록했다. 픽트족은 처음 북아일랜드로 갔지만 켈트족이 나눠줄 땅이 없다고 하자 북부 영국으로 건너갔다는 것이다. 10세기 이전에는 픽트족이 스코트족을 정벌하였으나, 10세기 이후에는 스코트족이 픽트족을 정벌하여 통합되었다.

픽트족은 모계상속 사회였다. 왕실 혈통이 여성 핏줄로 계승되었는데, 스코트랜드 하이랜드 부족에게도 나타난다. 아이들의 양육은 친부가 아닌 양부에게 맞겨졌다고 한다. 이들은 어려서부터 무사 교육을 받았고 사냥을 즐겼다고 한다. 영국내 픽트족의 거주지는 대체로 포스 강클라이드 강의 이북 지역이었으며 로마 시대 역사가들과 클라우디오스 프톨레마이오스의 세계지도에 언급된 현재 스코트랜드, 칼레도리아인의 추정하기는 하는데 명확하지 않다. 이들은 게일어달 리아타라 불린 픽트랜드 지역에 왕국을 세웠다. 1세기 알바 왕국이 팽창하자 픽트족은 독자적인 정체성을 상실하고 스코트족으로 동화되었다.

픽트족과 관련한 기록은 매우 적은 편이다. 6세기 베다 베네라빌리스가 남긴 《잉글랜드 교회사, Historia ecclesiastica gentis Anglorum》 등에서 언급되고 있다. 오랫동안 픽트족은 그 생활상이 밝혀지지 않은 신비스런 부족으로 남아 있었다. 최근 유럽 각지의 고대 말중세 초의 역사를 비교하면서 픽트족에 대해 보다 일반적인 이해가 이루어지고 있다.

역사[편집]

900년 경 스코틀랜드의 국가
서부의 달 리아타, 북동부의 포트리우는 픽트족의 부족 연맹체였다. 남부에 후일 스코틀랜드 왕국으로 발전한 알바 왕국이 위치해 있다.

유럽의 고대 말기에 픽트족이 몇 개의 부족으로 나뉘어 있었는지는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픽트족은 로마 제국의 성장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었으며 그들의 주요 거점은 현재 스코트랜드 칼레도니아이었다.[2]픽트족의 역사의 시작 점이 정확히 어떤 시대인지 역사가들은 규정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것은 구분과 명칭의 의미가 시대에 따라 변형되어 정확한 판단 근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암흑 시대라 불리던 유럽의 중세 초기에 이르러 픽트족에 대한 본격적인 기록이 이루어졌다. 이는 그 이전의 시기와 달리 스코틀랜드 북부에 강력한 권력이 등장하였기 때문이다. 서부의 달 리아타 왕국은 7세기 경 엥글로족의 왕국이었던 베르니시아의 속국이 된다. 베르니시아는 후일 노섬브리아 왕국으로 성장하여 당시 브리튼 섬에서 가장 강력한 왕국이 된다.[3] 9세기에 바이킹의 침공으로 달 리아타는 멸망한다. 바이킹의 왕 케틸 플레이트노우즈맨 섬, 아이슬란드와 더불어 달 리아타를 자신의 영토로 삼았으며 아이슬의 군주 칭호를 사용하였다.

840년대 무렵 케네스 맥알핀이 바이킹에 대항하여 군대를 일으켰으며 후일 알바 왕국을 건립한다. 알바 왕국은 10세기경부터 주변의 픽트족 왕국을 정복하였으며 11세기 무렵 스코틀랜드 전역을 자신의 영토로 하게 되었다. 이로써 픽트족이라는 명칭은 바이킹이 영국에 들어면서 자연스럽게 소멸되었고, 북부 픽트족은 스코트족에 동화되었고 중부 픽트족은 앵글로족에 동화되었다.

함께 보기[편집]

주석[편집]

  1. The Cruithni are discussed by Byrne, Irish Kings and High-Kings, pp. 106–109, Ó Cróinín, Early Medieval Ireland, pp. 48–50.
  2. Geary, Patrick J., Before France and Germany: The creation and transformation of the Merovingian World. Oxford U.P., Oxford, 1988. 0-19-504457-6
  3. Higham, N. J., The Kingdom of Northumbria AD 350–1100. Sutton, Stroud, 1993. ISBN 0-86299-7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