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전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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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전주의는 18세기 말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에서 발전한 미술 사조다.

역사적 배경[편집]

  • 태양왕 루이 14세(바로크)의 죽음 이후 중앙집권이 약화되고, 귀족들의 밝고 유쾌한 향락문화(로코코)가 급증한다. 회화 주제는 주로 육체적 쾌락, 우아함, 가벼운 사랑을 담고 있었다. 북미 식민지를 독점하여 기세 등등한 영국의 귀족, 엘리트들에게 로코코는 프랑스의 퇴폐적이고 타락한 문화 혹은 지난 유행으로 느껴졌다. 이러한 경향이 신고전주의를 낳았고, 각국에 신고전주의가 전파된다.

전파[편집]

  • 근대적 의미로서 새로운 양식의 출발이라 할 수 있는 신고전주의의 전파 당시 화가, 상인, 디자이너, 건축가 등의 예술계 사이에 공통적 흐름이 있었다. 그들은 국제적으로 긴밀한 네트워크를 형성해 의도적으로 '취향'을 만들어 전파했고, 빠른 보급으로 이윤을 창출할 수 있었다. 당시 폼페이 발굴 등으로 고대 문화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이는 그랜드 투어의 호황으로 이어졌다. 그랜드 투어는 유럽의 귀족 청년 층이라면 6개월 이상 이태리(로마, 나폴리)를 여행하며 고대 문화를 답습하던 경향을 말한다.

특징[편집]

  • 신고전주의는 고전적 내용, 역사적 내용, 엄숙함, 공공을 위해 개인을 희생하는 모습, 애국심, 영웅적 모습 등을 강조했고 따라서 트로이가 인기를 끌었다. 영국인들은 자기들의 현재 모습을 고대 그리스인에 이입하려 했다. 1756년~63년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 간의 영토 분쟁으로 벌어진 7년 전쟁과 1754년~63년 프랑스와 영국이 식민지를 두고 벌인 전쟁에서 영국이 모두 승리해 국가적 위상이 높아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 신고전주의 회화의 특징은 연극무대 처럼 한정된 공간, 단순한 구도, 건축적 배경이 많고, 등장인물은 적다. 또한 숨어있는 비극적 감정을 표현하고자 한다. 여기서 <화가, 귀족, 딜러>의 네트워크는 대중적 취향을 형성하고, 그랜드투어를 가지 못하는 영국 귀족들에게 '판매'했다.

발전양상[편집]

  • 영국에서 시작된 신고전주의는 프랑스에서 절정을 맞이한다. 루이 16세는 기존의 세태(14·15세의 향략적 분위기)에 대한 불만을 가지고 벗어나고자 프랑스 아카데미를 설립하고 이를 통해 계몽주의와 애국적 이미지를 환기하려 했다. 조셉 마리 비엥을 아카데미 원장으로 임명한 후 체계적으로 (특히 역사화 부분에서) 화가를 양성하기 시작한다. 1774년, 역사화의 한층 체계적 발전을 위해 아카데미에 대한 새로운 노선을 설정하는데, 이는 왕의 주관하에 애국적인 내용의 역사화를 매년 특정 점 생산하도록 한 것이다.
  • 당시 프랑스의 모든 화가는 도제 시스템으로 키워졌다. 각각의 길드에는 여러 공방이 소속되어 있으며 공방에는 장인과 도제가 속해있는 식이었다. 공방의 활동은 왕에 의해 통제받지 않았으나 프랑스 아카데미가 설립되면서 정부, 귀족, 교회에 의해 중앙집권적 통제가 시작되었다. 아카데미의 설립 후 모든 화가들이 거기에 소속되고 왕의 주문과 지도를 받았다. 아카데미 회원들은 1년에 두 번 열리는 살롱전에 참가할 수 있었는데 이 전시는 공공에 열람되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기대와 관심이 모이는 행사였다. 이 살롱전을 통해 왕을 중심으로 하는 정부가 그들의 고귀한 미적 취향을 대중에게 전파하게 되었고, 공적인 미술비평의 기회도 형성되었다. 도제는 아카데미 회원이 되기 위해 살롱전 1위상인 그랑프리를 수상하고, 그 후에는 로마에서 1년간 수련을 한 뒤 아카데미의 작품 심사를 받아야 비로소 가입이 가능했다.
  • 살롱전에서 회화 작품의 가치는 역사, 인물, 장르, 정물, 풍경 순 으로 등급이 매겨졌다. 역사화의 주제는 자연에서 유래된 것이 아니라 이성적인 것(성경, 신화, 고대사, 당대의 역사적 사건 등)에서 유래되었으므로 가치있다고 여겼다. 여성화가의 경우 아카데미에 가입은 가능하나 그랑프리 수상은 불가능했으며 역사화를 그릴 수 있는 훈련도 받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