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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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향원정
(景福宮 香遠亭)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보물
종목보물 제1761호
(2012년 3월 2일 지정)
수량1동
시대조선시대
소유국유
주소서울 종로구 사직로 161
정보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정보

경복궁 향원정 (景福宮 香遠亭)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경복궁 내에 있는 조선시대의 건축물이다. 2012년 3월 2일 대한민국보물 제1759호로 지정되었다.[1]

입지 현황 및 역사문화환경[편집]

향원정은 경복궁 북쪽 후원에 있는 향원지 내의 가운데 섬 위에 건립된 육각형의 정자이다. 향원지의 ‘향원(香遠)’은 ‘향기가 멀리 간다’는 뜻으로 북송대 학자 주돈이(1017∼1073)가 지은 '애련설(愛蓮說)'에서 따온 말로서 왕이나 왕족들이 휴식하고 소요하던 침전의 후원으로 여기에는 향원지(香遠池)와 녹산(鹿山)등 원림 (苑林)공간이 된다.

향원지는 세조 2년(1456)에 조성되어 취노정(翠露亭)이란 정자를 짓고 연꽃을 심었다는 기록이 「세조실록」에 보인다.

향원지는 4,605m2(약,1395평)의 방형인데,모를 둥글게 죽인 방형의 연지에는 연꽃과 수초가 자라고, 잉어 등 물고기가 살고 있다. 향원지의 수원(水源)은 북쪽 언덕 밑에 솟아나는 '열상진원(洌上眞源)'이라는 샘물이다.

이 향원정에 들어가는 다리인 '취향교'는 목교로서 1873년에 설치되었다. 원래는 건청궁에서 향원정으로 들어가도록 북쪽에 있었던 다리인데, 6·25때 부서진 것을 1953년에 복구하면서 남쪽으로 옮겨 놓았다. 조선시대 원지에 놓인 목교로는 가장 긴 다리(길이 32m,폭 165cm)이다.

현재 다리 동쪽으로는 담장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거기에 인유문(麟遊門)이란 일각문(一角門)이 열렸었고 또 그 남쪽에 봉집문(鳳集門)이 있어 연못은 한층 아늑한 정취(情趣)에 싸여 있었다..

향원정의 연못물은 1887년 3월 6일, 전등을 사용해 경복궁을 밝히는 데 사용되었다. 이는 한국역사상 최초로 전등이 켜진 것이었으며, 이 때 약 450개의 전구를 사용해 경복궁내 향원정을 중심으로 밝게 밝혔다. 그러나 발전기 냉각수로 사용되던 향원정의 물이 가열되어 연못 내의 물고기들이 다 익어 죽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에 사람들은 도깨비의 저주라고 생각해 한동안 전등운영이 중지되기도 하였다.

연혁 및 건축적 특징[편집]

향원정은 고종이 아버지 흥선대원군의 간섭에서 벗어나 친정체제를 구축하면서 정치적 자립의 일환으로 건청궁을 지었는데 그 건청궁 앞에 연못을 파서 그 가운데 섬을 만들고 세운 2층 정자로, 고종 4년(1867)부터 고종 10년(1873) 사이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향원정으로 가는 섬에는 나무로 만들어진 취향교라는 다리가 있으며, 남쪽에는 함화당, 집경당이 위치해 있다. 정자의 평면은 정육각형으로 아래·위층이 똑같은 크기이며, 장대석으로 마무리한 낮은 기단 위에 육각형으로 된 초석을 놓고, 그 위에 일층과 이층을 관통하는 육모기둥을 세웠다.

공포(栱包)는 이층 기둥 위에 짜여지는데, 기둥 윗몸을 창방(昌枋)으로 결구하고 기둥 위에 주두(柱枓:대접받침)를 놓고 끝이 둥글게 초각(草刻)된 헛첨차를 놓았다. 일출목(一出目)의 행공첨차(行工檐遮)를 받치고,다시 소로를 두어 외목도리(外目道里)밑의 장혀를 받친 물익공이다.

일층 평면은 바닥 주위로 평난간을 두른 툇마루를 두었고, 이층 바닥 주위로는 계자난간을 두른 툇마루를 두었다. 천장은 우물천장이며 사방둘레의 모든 칸에는 완자살창틀을 달았다.

처마는 겹처마이며 육모지붕으로, 중앙의 추녀마루들이 모이는 중심점에 절병통(節甁桶)을 얹어 치장하였다.

지정 가치[편집]

향원정은 왕과 그 가족들이 휴식을 취하는 공간으로 경복궁 후원의 아름다운 풍광 속에 안겨있는 상징적 대표 건물이다. 육각형 초석, 육각형 평면, 육모지붕 등 육각형의 공간을 구성하여 섬세하고 미려하게 다듬은 모든 구성요소들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 비례감이 뛰어난 정자로 역사적, 예술적, 건축적으로 가치가 높다.

사진[편집]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문화재청고시제2012-29호,《국가지정문화재(보물)지정》, 문화재청장, 대한민국 관보 제17711호, 2012-03-02

참고 자료[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