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영종 (5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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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데발라 게게엔 칸
ᠰᠢᠳᠢᠪᠠᠯᠠ
ᠭᠡᠭᠡᠨ
ᠬᠠᠭᠠᠨ
지위
몽골 카간
대원대몽골국 황제
재위 1320년 4월 19일-1323년 9월 4일
대관식 1320년 4월 19일
전임자 아유르바르와다 부얀투 칸
후임자 예순테무르 칸
이름
보르지긴 시데발라(몽골어: ᠪᠣᠷᠵᠢᠭᠢᠨ
ᠰᠢᠳᠢᠪᠠᠯᠠ
, 한국 한자孛兒只斤 碩德八剌 패아지근 석덕팔랄)
연호 지치(至治, 1321년–1323년)
묘호 영종(英宗)
칸호 게게엔 카간(몽골어: ᠭᠡᠭᠡᠨ
ᠬᠠᠭᠠᠨ
gegeen qaγan, 한국 한자格堅 可汗 격견 가한)
시호 예성문효황제(睿聖文孝皇帝)
신상정보
출생일 1303년 2월 22일
사망일 1323년 9월 4일
왕조 원조
가문 보르지긴
부친 보르지긴 아유르바르와다
모친 온기라드 라드나시리

원 영종 시데발라(元 英宗 碩德八剌, 1303년 2월 22일 ~ 1323년 9월 4일)은 원나라의 제5대 황제(재위: 1320년 ~ 1323년)이다. 묘호는 영종(英宗), 시호예성문효황제(睿聖文孝皇帝), 존호계천체도경문인무대소효황제(繼天體道敬文仁武大昭孝皇帝)이다. 휘는 보르지긴 시데발라(한국 한자孛兒只斤 碩德八剌 패아지근 석덕팔랄, 몽골어: ᠰᠢᠳᠢᠪᠠᠯᠠ Шадбал)이다. 몽골식 칭호는 게게엔 칸(格堅汗)이다.

생애[편집]

인종 아유르바르와다의 장자로 연우 3년(1316년) 12월, 황태자에 책립되었다. 몽골의 역대 대칸 가운데 중국식 제위계승법에 의거해 적장자이면서 황태자를 거쳐 정식으로 즉위한 최초의 인물이다. 비교적 안정된 인종의 치세가 1320년에 끝나고, 2년 후 조모인 흥성태후가 죽자 다시 정쟁이 재연되었다.

과거 무종 카이산은 즉위 당시 경쟁 세력인 안서왕(安西王) 아난다(阿難答)를 제압했던 동생 인종의 공로를 치하하며 황태자로 삼아 후계를 보장한 한편 인종이 조카에게 제위를 넘겨준다는 소위 '무인수수(武仁授受)'의 약조를 한 바 있었다. 그러나 무종 사후에 그의 아들인 쿠살라는 황실의 냉대를 받다가 연우 4년(1317년) 운남으로 유배당하던 도중 섬서에서 반란을 일으킨 사건에 연루되어 중앙아시아로 도주했고, 그를 지지한 장교단 역시 숙청당했다.

시데발라에게 제위가 돌아가게 된 배경엔 흥성태후와 그녀를 보좌한 테무데르 일파의 책동이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는데, 이는 무종계 세력을 배척하는 동시에 시데발라의 어머니가 태후와 같은 옹기라트 씨족이었던 만큼, 어리고 유약한 후계자를 조종하기 수월할 것이란 계산이 고려되었기 때문이다. 본래 시데발라는 자신을 태자로 세우려는 흥성태후에게 스스로 어리고 능력이 없다는 이유를 들어 대통은 쿠살라가 이어받아야 마땅하고, 그를 보좌하겠다며 고사했으나, 결국 태후의 의지대로 관철되었다. 책립 후 중서령 및 추밀사를 겸임했고, 곧바로 연우 4년 윤정월엔 시데발라의 책봉 조서가 공표되었다.

연우 7년(1320년) 정월, 인종이 붕어하자 시데발라는 즉위에 앞서 선제(先帝)의 상(喪)을 주관하게 되었다. 이 공백기를 틈타 흥성태후는 테무데르를 중서우승상으로 복직시키고, 중서성 인사에 대한 물갈이를 통해 조정의 대권을 장악하고자 기도하였다. 같은 해 3월 11일, 대도의 대명전(大明殿)에서 즉위한 영종은 다음달에 칭기즈 칸의 원훈 무칼리의 후손으로 태자 시절부터 교유해왔던 바이주(拜住)를 중서평장정사(中書平章政事)로 기용한 데 이어서 중서좌승상으로 승진시키면서 테무데르의 전횡을 견제하고, 태후 직속 기관인 휘정원(徽政院)에 압력을 가하는 등 실권 회복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즉위 초기부터 조정내의 인사 이동 문제를 둘러싼 새 황제와 흥성태후 사이에 신경전이 고조된 가운데 연우 7년 5월, 영북행성의 평장정사 아산(阿散)과 중서평장정사 흑려(黑驢), 휘정사(徽政使) 시레문(失列門) 등 태후 세력과 가까운 인사들이 주동한 폐립 모의가 발각되었다. 이 음모는 케식 군단을 신속히 동원해 선수를 치고 나온 영종과 바이주에 의해 분쇄되었으며, 정치적 입지가 위축된 태후가 별궁으로 퇴거한 것을 계기로 체제 단속이 진행되었고, 휘정원을 배경삼아 아성을 구축해왔던 옹기라트파에 대해 일련의 탄압이 가해졌다. 나아가 영종 자신의 집권 정당성과 권위를 보강하기 위해 태묘(太廟)의 의례를 정비하고, 제사(帝師) 파스파(八思巴)를 추모하는 사찰을 건립하는 등 종교 행사에도 관심을 보였다.

지치 2년(1322년) 가을, 테무데르와 흥성태후가 연달아 사망하자 본격적으로 친정을 개시하게 된 영종은 이듬해 초에 걸쳐 휘정원의 혁파와 부역법 개정 및 법전 <대원통제(大元通制)>를 간행한 것을 위시로 한법(漢法)에 근거한 신정(新政)의 추진 의지를 내외에 천명했다. 이러한 조치는 세사(歲賜) 지급의 중단까지 수반되어 특권 계급인 몽골계 왕공 귀족층에게 반감을 불러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흥성태후 일파의 잔당을 겨냥한 공안 정국이 지속되면서 원조(元朝) 지배계급 내부에 새로운 갈등을 양산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지치 3년(1323년) 8월 4일, 상도를 출발해 대도로 남하하던 거가(車駕)가 남파(南波)에 체류하던 도중 테무데르의 양자이자 황제의 처남이기도 했던 어사대부 테그시(鐵失)가 진중에서 쿠데타를 일으켜 영종과 바이주를 암살했다.(남파의 변, 1323년) 몽골 지상주의가 대세였던 원대 역사상 예외적으로 부황 인종의 국정 방침을 계승해 지치신정(至治新政)이라 일컬어진 한화(漢化) 노선에 열의를 보인 영종은 후대 중국 사가들로부터 칭송을 받았으며, 그러한 관점에서 흥성태후나 기타 왕공 귀족들과의 알력은 종종 한지파(漢地派)와 막북파(漠北派) 간의 투쟁으로 설명되고 있다.

가족 관계[편집]

조부모와 부모[편집]

후비[편집]

  • 황후 : 장정의성황후(莊靜懿聖皇后) 이키레스씨(亦乞烈氏) - 영종의 정궁황후(재위 : 1321년 ~ 1323년)
  • 황후 : 아팔홀도로 2황후(牙八忽都魯 二皇后)
  • 황후 : 타이지반 황후(朶而只班 皇后)

각주[편집]

전임
아버지 아유르바르와다 부얀투 칸
제9대 몽골 제국 대칸
1320년 ~ 1323년
후임
당숙부 예순테무르 칸
전임
아버지 원 인종 아유르바르와다
제5대 중국 원나라 황제
1320년 ~ 1323년
후임
당숙부 원 태정제 예순테무르
전임
아버지 원 인종 아유르바르와다
중국 황제
1320년 ~ 1323년
후임
당백부 원 태정제 예순테무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