뉘른베르크 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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뉘른베르크 재판(영어: Nuremberg Trials, 독일어: Nürnberger Prozesse)은 1945년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열린 나치 독일의 전범들과 유대인 학살 관여자들에 대하여 열린 연합국 측의 국제 군사 재판이다. 일반적으로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이라고 부르거나 뉘른베르크 국제 군사 재판이라고도 한다. 당시 피고들은 침략 전쟁 등의 공모와 참가, 계획, 실행과 전쟁 범죄, 비인도적 범죄(유대인 학살) 등의 이유로 기소되었다. 당시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 시 논쟁이 된 부분은 '사병' 즉, 들과 부사관들의 경우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었는데, 이들이 지은 죄에 대해서는 어떻게 처벌해야 할 것인가였다. 이후 유나이티드 아티스트에서 뉘른베르크 재판을 소재로 한 영화 뉘른베르크 재판(Judgment at Nuremberg.1961)를 만들기도 했다.

1차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편집]

이 재판은 1945년 10월 1일부터 이듬해까지 1년 동안 1급 전범 24명을 기소했다. 이들 중 2명은 구금 중 자살 또는 병으로 죽어 나머지 22명에 대하여 판결이 내려졌는데, 헤르만 괴링 등을 비롯한 12명에 대하여는 사형(이 중 헤르만 괴링10월 15일 음독 자살), 루돌프 헤스 등 3명은 종신형, 알베르트 슈페어 등 3명은 징역형, 나머지 3명은 형이 면제되었고, 12명 중 음독 자살한 헤르만 괴링과 전쟁 중에 행방불명되었다가 나중에 전사한 것으로 확인된 마르틴 보어만을 제외한 나머지 10명의 사형집행은 10월 16일 실시되었다. 재판장은 영국의 제프리 로런스(Geffrey Lawrence) 경이, 수석 검사는 미국의 로버트 잭슨(Robert Jackson) 대법관이 맡았다.

2차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편집]

2차 재판은 나치 독일의 전쟁 범죄인 유대인 학살에 대한 재판이다. 1946년 12월부터 1949년 3월까지 있었고, 유대인 학살 만행에 관여한 의사, 관료, 법률관 185명이 기소되었다. 피고 중 25명에게 사형이, 20명에게 무기 징역이 선고되었다. 제노사이드 즉, 학살이 죄로 규정되어 재판이 벌어진 일은 전쟁이 끝난 후 인권의식을 가진 지식인들에 의해 제노사이드가 죄로 규정되어야 한다는 움직임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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