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파시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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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무 천황의 신화적 일본 건국 2600주년을 축하하는 1940년 새해 기념 엽서

일본 파시즘(일본어: 日本ファシズム, 영어: Japanese facism) 혹은 천황제 파시즘(일본어: 天皇制ファシズム, 영어: statism in Shōwa Japan, Shōwa nationalism)은 메이지 유신부터 일정 기간 동안 일본제국에서의 우파(자유국가인 현 일본의 입장에서는 좌파)의 정치적 이데올로기였던 혼합 정치 사상이다.


이러한 국가주의 운동은 쇼와 천황 치세의 쇼와 시대 초기 동안 일본 정치를 지배하였다. 이는 일본 민족주의, 군국주의, 국가자본주의와 같은 사상이 혼합된 것이었으며, 다수의 현대 일본 정치 철학자와 사상가에 의하여 제안되었다.

기원[편집]

공격적인 대외 정책과 청일 전쟁에서의 승리, 러일 전쟁에서의 승리로 일본은 제국주의 열강의 반열에 들었다. 서구 열강의 존중을 얻고 1800년대에 체결된 불평등 조약을 개정하는 것은 오로지 강한 군대를 통해야 한다는 관념은 일본의 새로운 해외 영토를 유지하기 위한 강한 군대에 대한 필요성을 강화시켰다.

일본의 군부는 스스로를 부패와 관련하여 정치적으로 청렴하다고 생각하였고, '자유 민주주의' 정당을 이기적이라고 비난하였다. 또한 정당이 군대에 적절한 비용을 제공하고 사회적,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실패하여 국가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재벌과 정치인의 유착 또한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군부는 '자유시장 경제체제 기반의 자본주의'보다는 '계획 경제(dirigisme)'와 '전 산업에 대하여 국가가 직접 통제'하는 모델을 선호하였다. 또한 일본제국 내에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인기를 낮추기 위해, 국가가 지원하는 사회 보장 제도를 늘리는 것을 지지하였다.

군국주의자와 중앙 정부, 황족의 특수한 관계는 정치적 권력을 가진 국가의 수장으로서 천황이 특별한 지위를 갖는 것과 천황이 국가주의적 우익 운동과 관계를 맺는 것을 지원하였으나, 일본의 정치적 사상은 20세기까지 상대적으로 유럽의 정치 사상과 관련이 적었다.

이러한 군부가 우위를 점하는 상황에서 일본은 국가가 깊숙히 관여하는 매우 위계적이며 배타적인 경제 체계를 발달시켰다. 메이지 유신 동안, 독점 기업의 발생은 급격하게 늘어났다. 독점 기업은 일본이 세계적인 경제 강국이 될 수 있도록 역할을 하였기 때문에 이러한 현상은 부분적으로 국가의 개입에 의한 것이었다. 국가는 스스로 일부 독점 기업을 소유했고, 나머지 독점 기업은 재벌이 소유하였다. 독점 기업은 경제의 행심적 부분을 관리하였고, 다른 활동들은 중앙 은행과 황족 등 그에 적합한 정부의 부처에서 통제하였다. 이러한 경제적 배분은 이후의 유럽 파시스트의 조합주의 모델과 유사하다.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