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산 코발트광산 학살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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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 코발트광산 학살사건한국 전쟁 기간 중에 경산 코발트 광산에서 보도연맹 회원들을 처형한 사건이다. 주민 증언에 따르면 처형은 1950년 7월 20일 경부터 9월 20일 경까지 계속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통칭 경산 안경공장 학살사건이라고 불리기도 하나 이는 사건 현장 앞에 들어선 안경공장 때문에 잘못 알려진 이름으로, 안경공장은 사건이 일어난지 약 30년 이상 지난 1988년 이곳에 들어섰다가 1997년 부도로 폐업하였으며 해당 사건과는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다.

위치[편집]

경북 경산시 평산동에 위치한 코발트 광산에는 수평 갱도와 수직 갱도가 있어 이곳에서 학살이 이루어졌다. 그 뿐 아니라, 인근 대원골에서도 학살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1]

피해자[편집]

사건의 피해자는 크게 대구형무소부산형무소 수감자와 보도연맹원의 두 부류로 나뉜다. 1960년에 이루어진 대한민국 제4대 국회 양민학살 특위의 조사에 따르면 대구형무소 재소자 1402명이 7월에 학살되었다고 한다. 또, 대구형무소에서 부산형무소로 이감된 것으로 기록된 1404명 중 1172명의 명단이 부산형무소 재소자 명단에 나오지 않아 이 사람들도 학살된 것으로 추정된다.

1950년 당시, 경산, 청도, 영천, 창녕, 밀양 등의 지역의 보도연맹원들은 한국전쟁 직후 검속되었고, 이후 학살된 것으로 추정된다. 피해자 유족들에 따르면 대부분 좌익 사상이나 반공 활동과는 무관한 단순부역자나 농민이었다.

정부 추산 2,000여 명, 유가족 추산 3,500여 명이 학살당했다.[2]

사후 처리[편집]

갱도는 폐쇄된 상태로 있었으나, 2005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이 국회를 통과해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설치되고, 2006년 4월 25일 정부 주도로 조사가 시작되었다. 2009년 11월 17일 진실화해위원회는 경산 코발트 광산 등지에서 발생한 민간인 희생사건군·경에 의한 집단 학살이라고 판정했다. 또한 전체 희생자 수는 1,800명을 상회할 것으로 추정되나 정확한 희생자의 수는 확인되지 않은 것으로 밝혔다. 진실화해위원회는 "경산코발트광산 등지에서 발생한 민간인 희생사건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라는 일차적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군과 경찰이 관할지역의 국민보도연맹원 등 예비검속자들과 대구형무소에 미결 또는 기결상태로 수감되어 있던 사람들을 불법 사살한 민간인 집단희생사건이다. 비록 전시였다고 하더라도 범죄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민간인들을 예비검속하여 사살한 것은 명백한 불법행위이다."라고 덧붙였다.[3] 하지만 이후 수습작업이 진행되지 않아 수습된 유해는 유족회가 마련한 컨테이너 안에 방치되어 있다.[4] 2020년 5월 20일 과거사관련업무지원단 활동을 재개하는 법률안이 통과되었다.

관련 미디어[편집]

같이 보기[편집]

참고 문헌[편집]

  1. 경산시의회 2003 『경산시 평산동 코발트광산 민간인학살 진상조사 청원심사결과보고서』
  2. 노용석, 경산 코발트광산의 학살실태와 진상규명 방안, 한국제노사이드연구회 2006년 동계워크숍, 2006.
  3.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홈페이지 경산 코발트 광산 등지에서 발생한 민간인 희생사건 조사보고서[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4. http://news.mt.co.kr/mtview.php?no=2013051006018236509
  5. 경산 코발트광산 학살사건 이후 촬영된 광산 내부 최초 공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