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리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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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리 전투
한국 전쟁의 일부
US 3rd infantry troops, before Imjin River patrol, Korea 17-April-1951.jpg
미국 제3보병사단이 임진강 정찰을 준비 중이다.
교전국

유엔의 기 유엔

중화인민공화국 중화인민공화국
지휘관

미국 매슈 리지웨이
영국 토마스 브로디
영국 제임스 칸
벨기에 알베르트 크라하이
룩셈부르크 요제프 웨거너

필리핀 디도시오 S. 오제나
중화인민공화국 펑더화이
병력

영국 제29보병여단

벨기에 벨기에 유엔 사령부

  • 룩셈부르크 제1파견대
중화인민공화국 중공군 제20군

설마리 전투, 글로스터 고지 전투, 또는 임진강 전투는 (Labanan sa Ilog Imjin, 중국어 간체자: 雪马里战斗, 병음: Xuě Mǎ Lǐ Zhàn Dòu) 1951년 4월 22일부터 4월 25일까지 중국인민지원군임진강 하류의 유엔군을 공격하면서 발생한 전투이다. 중국인민지원군은 대한민국의 수도였던 서울을 점령하기 위해 임진강 지역을 공격했다. 이 전투는 중공군 춘계공세의 일부로, 춘계공세의 목적은 1951년 3월 유엔군의 성공적인 반격 작전 이후 유엔군이 38도선 북쪽의 캔자스 선까지 진출한 것에 맞서 유엔군에 잃은 영토를 되찾는 것이었다.

전투가 벌어진 유엔군의 구역은 영국 육군 제29보병여단이 맡고 있었고, 영국군 3개 보병대대와 벨기에 유엔 사령부 소속인 벨기에 보병대대 1개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전차와 포병의 지원을 받았다. 수적으로 병력이 열세였음에도 불구하고, 제29보병여단은 3일 간 진지를 고수했다. 제29보병여단의 부대원들은 결국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설마리 전투에서 영국 제29보병여단이 시간을 벌어준 덕택에 가평 전투와 같이 다른 지역에 있었던 유엔군은 중공군 공세의 추진력을 꺾을 수 있었고, 서울 북쪽으로 유엔군이 철수해 중공군에 대한 방어작전을 마련할 수 있었다. 이후 중공군은 서울 북쪽의 노네임 선에서 공세가 중단되었다.

"규모가 작더라도 전투의 흉포함은 전세계의 상상을 사로잡았다."[1] 특히, 글로스터셔 연대의 제1대대는 235고지에서 중공군에 의해 포위되었고, 이 고지는 글로스터 고지로 알려지게 되었다. 글로스터셔 대대를 비롯한 제29보병여단이 설마리 전투에서 보여준 저항은 영국 군사사와 전통의 중요한 일부분이 되었다.[2][3]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Battle of the Imjin〉, 《Gloster valley》, Seoul: Office of the Defence Attaché, British Embassy, 2008년 4월 2일에 확인함 .
  2. Hastings 1987, 250쪽: "just once, the British played a part which captured the imagination of the Western world".
  3. Fehrenbach 2001, 30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