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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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電氣, electricity)는 전자에 의해 생기는 전하전기 에너지를 뜻한다. 전하는 전기장을 형성한다. 전기 에너지는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데, 이 두 에너지들을 전위(전기적 위치 에너지)로 나타낸다. 전기를 저장하는 것을 축전이라고 한다. 전기의 흐름을 전류라 하며, 이를 방해하는 정도를 저항이라 한다. 전기 회로전력을 가진다.

일반적인 용도에서 "전기"라는 낱말은 수많은 물리적인 효과를 일컫는다. 그러나 과학 분야에서 이 용어는 모호하므로 다음과 같이 구체적인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전기는 17세기와 18세기까지 비록 과학적인 진보가 오지 않았을지라도, 고대 이래로 연구되어 왔다. 전기가 19세기 후반까지 되지 않았을지라도, 전기 기술자들은 산업적인 사용과 거주에 관한 사용에 전기를 사용할 수 있었다. 이 시기는 전기 기술 발전에 있어 빠른 확장이 목격되었다. 에너지 원천으로서 전기의 비범한 융통성은 운송, 난방, 빛, 통신, 계산을 포함하는 거의 무제한으로 응용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력은 현대 산업 사회의 중추이다.[1]

역사[편집]

전기의 어떤 지식이 있기도 오래전에 사람들은 전기물고기로부터 충격을 인식하고 있었다. 기원전 28세기 고대 이집트 문명의 문장은 "나일강의 뇌신 (雷神)"으로서 이 물고기를 언급했으며, 모든 다른 물고기의 "보호자"로서 그것들을 기술했다.

전기의 발견[편집]

18세기까지 탐구해 오던 정전기와는 다른 전기, 즉 전류를 발견한 것은 이탈리아의 파비아대학 물리학 교수 볼타였다. 그는 런던 왕립학회(협회)로 보낸 편지에서 전류를 만들어내는 장치(볼타 전퇴(電堆))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30, 40, 60 또는 그 이상의 은판을 한 장씩 주석판 또는 아연판 위에 겹친다. 그리고 물 또는 소금물, 나무 잿물 등 양도액에 적신 두꺼운 종이 또는 가죽을 2개의 금속 사이에 끼운다. 3개의 도체를 모두 이와 같은 순서로 배열한다는 것, 이것이 나의 새 장치의 조립방식의 전부이다." 그리고 볼타는 이 장치가 효과는 약하지만 라이덴 병과 흡사하며, 팔에 쇼크를 주는 것으로 보아 미리 외부로부터 전기를 주는 일 없이 연속적으로 전기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볼타장치의 원리는 다른 금속 사이에 도체의 액을 적신 것을 끼운다는 것이다. 이 원리의 착상을 볼타는 갈바니로부터 얻었다. 볼로냐대학의 갈바니는 개구리 다리의 경련을 관찰하고 그 원인을 '동물전기'라 생각하였다. 갈바니의 논문을 받은 볼타는 처음에는 이 동물전기설을 받아들였으나 마침내 그 원인이 동물전기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으며 그는 2개의 금속 접촉이 바로 개구리 다리의 근육의 경련을 일으키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1792). 그리고 여러 가지 다른 종류의 금속(또는 목탄도 포함하여)이 어떤 이치로 전기를 발생시키는가를 아연, 주석, 납, 철, 구리, 백금, 금, 은, 석묵(石墨), 숯 등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금속계열의 표를 1794년에 발표하였다. 이 계열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일수록 전기 발생이 크다. 이어 볼타는 근육과 신경을 젖은 천, 두꺼운 종이 등으로 바꾸어 갔다. 이 생각이 결국은 전류의 발견과 전퇴 발견에 연결된다.

갈바니[편집]

1780년, 해부한 한 마리의 개구리를 기전기가 놓인 테이블 위에 놓고 우연히 메스의 끝으로 가볍게 개구리 다리의 신경을 건드렸다. 그 때 모든 근육이 갑자기 경련을 일으킨 것처럼 수축되고 동시에 기전기에서 전기 불꽃이 튀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이 원인으로서 2가지를 생각할 수 있었다. 한 가지는 동물의 몸 자체에 따른 현상이고, 다른 한 가지는 금속을 접촉시켰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다. 갈바니는 전자를 따랐다. 동물에는 뇌수에서 나와 신경을 통하여 근육으로 흘러 들어가는 '동물전기'라는 것이 있어 그것이 금속에 의하여 회로가 만들어졌을 때 작용한다고 생각하였다. 이것을 그는 근육을 바깥쪽으로, 신경을 안쪽으로 한 라이덴 병과 같은 것이라고 말하였다. 1791년 갈바니는 이상의 모든 결과를 「근육운동에 대한 전기작용에 관하여」라고 제목을 붙여 볼로냐 과학아카데미의 잡지에 발표하였다. 그 후 갈바니의 설에 의문을 품기 시작한 볼타와의 사이에 논쟁이 있었으나, 그는 언제나 자기 주장을 옹호하였다.

볼타[편집]

최초의 논문은 1769년 21세 때에 발표한 「전기화(電氣火)의 인력에 대하여」였다. 이 논문과 다음 논문으로 그는 프랭클린의 생각을 빌어 모든 물질은 양음 전기의 평형상태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1775년에는 오늘날 쓰이고 있는 전기쟁반을 발명하였다. 또 1776년에는 전기불꽃으로 메탄가스를 폭발시키는 장치를 발명하고 전기 피스톨이라고 이름지었다. 이 원리는 후일, '볼타의 유디오미터(1790)'가 되었다. 1779년, 파비아대학 물리학교수가 되었으며, 이후 40년간 이 곳에 봉직하였다. 그 동안 1782년에는 예민한 금박험전기가 붙은 축전기를 고안하였다. 1792년에는 갈바니의 동물전기의 생각을 비판하였고, 많은 실험 결과 금속이 어떠한 형태로 결합되었을 때 전기를 발생하는가를 조사하여 1794년에 전기화학 계열의 표를 발표하였다. 1801년, 나폴레옹의 초청으로 파리를 방문, 프랑스 학사원의 대집회에서 전퇴의 실험을 해 보였으며, 나폴레옹은 그에게 금메달을 주었다. 전압의 단위 볼트(V)는 그의 이름을 딴 것이다.

같이 보기[편집]

참조[편집]

  1. Jones, D.A. (1991). 《Electrical engineering: the backbone of society》, 1–10쪽. doi:10.1049/ip-a-3.1991.0001

참고 자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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