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M. 케네디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동: 둘러보기, 검색
에드워드 M. 케네디
Edward M. Kennedy

출생 1932년 2월 22일
미국 미국 매사추세츠 주 보스턴
사망 2009년 8월 25일 (77세)
미국 미국 매사추세츠 주 하이애니스포트
학력 하버드 대학교 A.B.
버지니아 대학교 로스쿨 LL.B.
직업 정치인
활동 기간 1962 ~ 2009
정당 민주당
종교 로마 가톨릭

에드워드 무어 (테드) 케네디(Edward Moore "Ted" Kennedy , 1932년 2월 22일 ~ 2009년 8월 25일) 는 미국의 정치인이다. 제35대 대통령 존 F. 케네디의 막내동생이며, 1962년부터 2009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연방 상원의원을 지냈다.

경력[편집]

정치활동 입문[편집]

케네디 대통령 형제. 좌측부터 존(잭), 로버트(바비), 에드워드(테드)

매사추세츠 주 보스턴에서 아일랜드계 가문인 아버지 조지프 패트릭 케네디와 어머니 로즈 피츠제럴드 케네디 사이의 9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하버드 대학교를 졸업하였고, 네덜란드헤이그에 있는 헤이그 국제법률대학교에서 공부하였다. 1959년 버지니아 대학교 로스쿨에서 법학 학위를 취득하고 변호사 자격을 얻었다. 1960년 형 존의 대통령 선거운동을 도왔으며, 존이 대통령에 당선되면 존의 상원의원 후임으로 그가 지목되었다.

상원의원 당선[편집]

존은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나, 에드워드는 연방 상원의원 피선자격인 만30세가 되지 않아 바로 상원의원이 되지 않았으며, 1962년 보궐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어 곧바로 상원의원 자리에 올랐다. 1964년 정식 선거에서 다시 당선되었다. 형들인 존 F. 케네디와 로버트 F. 케네디의 사회복지정책과 인종차별철폐를 계승하면서, 이러한 정책을 실현시키는 데 기여하여 미국 진보정치계의 핵심인물로 부각되었다. 1969년 상원의 민주당 원내총무가 되었고, 차기 대통령 후보로 유력시되었다. 그러나 차파퀴딕 스캔들 등 여러 가지로 물의를 빚어 원내총무의 자리에서 1970년 물러났고, 1972년 대통령 선거전에는 나서지 않았다. 상원의원 직위에는 계속 도전하여, 1970년1976년에도 압승을 거두며 당선되었다.

1980년 대통령 선거전에서는 지미 카터 대통령을 대신할 민주당의 유력한 후보로 떠올랐으나, 지미 카터 대통령이 민주당 후보로 선출되었다. 1982년1988년 상원의원 선거에서도 다시 상대 후보를 큰 차이로 제치고 당선되었고, 1994년에는 유력 정치인의 아들인 미트 롬니를 맞아 다소 힘겨운 싸움을 벌였으나, 역시 무난하게 당선되었다. 2000년2006년 선거에서도 또다시 높은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건강악화[편집]

그는 2008년 대통령 선거에서 버락 오바마 후보 지지를 선언하여,[1] 오바마 후보는 민주당의 대표적인 정치인 중 하나인 그의 든든한 지원을 받으며 민주당 예비선거에서 일찌감치 승기를 잡을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었다. 그러나 에드워드 케네디는 2008년 5월, 갑자기 건강이 악화되어 발작증세를 보였으며, 진단 결과 악성 뇌종양 판정을 받았다.[2] 곧 수술을 받고 투병 생활을 시작했으며, 투병 생활 도중에도 종종 상원에 등원하고, 8월 전당대회에 참여하여 버락 오바마 후보 지지를 호소하였다.[3]

죽음[편집]

알링턴 국립묘지에 있는 에드워드 케네디의 묘

2009년 들어 그의 용태는 호전과 악화를 거듭한 가운데, 의료보험 개혁 입법 통과를 위한 활동을 계속하였다. 2009년 1월 버락 오바마 대통령 취임식 오찬 도중 실신하였으나, 곧 회복되었다. 그 해 3월 영국 명예 KBE훈장(외국인대상 명예훈장)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상태는 더욱 악화되었다. 2009년 7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그의 업적을 기려 미국 민간인 최고 훈장인 대통령 자유 훈장을 수여했으나, 거동이 불편하여 수여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2009년 8월 11일 누나 유니스 케네디 슈라이버가 사망하여 누나를 방문했으나, 장례식에는 참석하지 못했다. 누나가 세상을 떠난 후 상태가 더욱 악화되어 8월 25일(미국 동부시각 기준) 매사추세츠 주 하이애니스포트의 자택에서 평생의 과업이던 의료보험 개혁 입법을 손보지 못한 채 77세로 사망하였다.

그는 1962년부터 세상을 떠난 2009년까지 무려 46년간이나 상원의원으로 재직했으며, 이전의 여러 스캔들을 극복하고 미국 진보정치의 대부로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고, 미국의 대표적인 정치명가인 케네디 가의 대표로 활발한 활동을 했다. 그의 아들인 패트릭 J. 케네디도 정계에 진출하여 하원의원으로 재직중이다.

그의 시신은 보스턴케네디 대통령 기념 도서관/박물관에 안치되어 각계 각층의 조문 행렬이 이어졌으며, 8월 29일 전현직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장례식이 거행되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장례식에서 조사를 낭독했다. 유해는 형 존과 바비가 묻힌 알링턴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버락 오바마와 테드 케네디

주석[편집]

  1. 케네디 가문 “오바마 지지”한겨레 2008년 1월 28일자
  2. 에드워드 의원 악성뇌종양… 정계 '쾌유기원' 밀물 조선일보 2008년 5월 22일자
  3. 민주당 전당대회, 뇌종양 투병 케네디 의원 깜짝 등장 한국일보 2008년 8월 27일자

같이 보기[편집]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