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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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

출생 1927년 3월 27일
소련 소련 아제르바이잔 바쿠
사망 2007년 4월 27일 (80세)
러시아 러시아 모스크바
국적 러시아 러시아
별칭 슬라바(Slava)
직업 첼로 연주자, 지휘자

므스티슬라프 레오폴도비치 로스트로포비치(러시아어: Мстисла́в Леопо́льдович Ростропо́вич, 1927년 3월 27일 ~ 2007년 4월 27일)는 소련 시절 아제르바이잔 출신의 러시아인 첼로 연주자이자 지휘자이다. 뛰어난 기교 및 해석능력 뿐만 아니라(특히 드보르작과 하이든의 첼로 협주곡에 대한 해석이 유명하다.) 다양한 새로운 곡들을 소화하는 면모를 보여 20세기에서 가장 뛰어난 첼로 연주가로 손꼽힌다. "슬라바"(Slava)라는 애칭으로도 불린다. 아제르바이잔 SSR바쿠 에서 태어나, 2차 세계대전 동안 모스크바 동쪽 10시간 거리의 오렌부르크로 옮겨 거주하다가 1943년 모스크바에 정착했다. 이후 1970년대에 정치적 이유로 시베리아에 유배되었다가 1974년 미국으로 망명했고, 1978년 소련 시민권을 박탈당했다.

1987년 영국 명예 KBE훈장(외국인대상 명예훈장)을 받았으며, 1995년 폴라음악상을 수상하였다.[1]


전체적 요약/전기[편집]

로스트로포비치는 10세 때부터 파블로 카잘스의 제자로 유명했던 첼리스트인 아버지로부터 연주를 배우다가, 1943년 모스크바로 옮기면서 모스크바 음악학교에서 공부했다. 그는 쇼스타코비치프로코피예프로부터 사사를 받기도 했다. 로스트로포비치는 1942년 첫 첼로 협주를 한 이후로 수차례에 걸쳐 프라하와 부다페스트의 각종 대회에서 수상을 했고 1945년에 소련 연주대회에서 우승하면서 첼리스트로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1950년에는 스탈린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후 모스크바 음악학교와 레닌그라드 음악학교에서 강의하다가 1956년 정식 첼로 교수가 되었다. 이후 로스트로포비치는 볼쇼이 극장 소속의 소프라노 갈리나 비시넵스카야와 결혼했다.

1953년 그를 위해 프로코피예프가 작곡한 첼로소나타(Cello Sonata in C, Op.119)와 작곡가의 죽음으로 미완이 된 소나타를 드미트리 카발레스키(1904년~1987년, 러시아의 동요 작곡가)와 함께 완성해 성공적으로 초연하기도 했다.

1964년, 로스트로포비치는 당시 서독에서의 첫 연주를 시작으로 작곡가들로부터의 많은 헌정곡을 시연했다. 1968년 8월 21일, 소련 국립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런던에서 안토닌 드보르자크의 곡으로 오케스트라 데뷔 공연을 하던 중 그날 밤 소련의 체코 침공 소식에 눈물을 흘렸다는 일화가 있다.

그의 스승인 쇼스타코비치는 구 소련의 공산주의 정치를 반대하다가 교수직을 박탈당하며, 로스트로포비치 역시 학교를 중퇴하고 시베리아로 유배를 당했다. 그는 소련시민권을 박탈당하여 여러 국가의 제안을 뿌리치고 모나코에서 비자만 발급받은 뒤 무국적자로써 미국에서 활동하였다. 이후로 소련에서의 연주를 금지당했으나, 1993년 러시아 헌법사건에서 서방 세계와 함께 옐친 대통령 측을 옹호함으로써 러시아와의 관계를 개선했다. 옐친 대통령이 그의 시민권회복을 제안했으나 거절하고 세계인의 삶을 선택했다.

2007년 푸틴 대통령의 초청으로 크렘린 궁에 방문한 후,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어 장암으로 사망했다. 모스크바 노보데비키에 묻혔다.

참고[편집]

  1. 1995 | Polar Music Priz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