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구 (서울특별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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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8월 28일 (토) 17:57 판

중구
중구의 위치
중구의 위치
행정
국가대한민국
법정동74개
청사 소재지창경궁로 17 (예관동 120-1)
지리
면적9.96km2
인문
인구138,811명 (2008년)
세대58,174세대 (2008년)
상징
나무소나무
장미
까치
지역 부호
웹사이트http://www.junggu.seoul.kr/junggu

중구(中區)는 서울특별시의 중앙부에 있는 자치구이다. 서울 도심부 한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다. 북쪽으로는 종로구, 남쪽으로는 용산구와 잇닿아 있다. 남산은 중구의 중앙에 자리를 잡고 중구 각 지역을 동서남북으로 연결하고 있다. 서울시청 등 각종 관공서와 기업체들의 본사 건물, 재래시장 등이 밀집한 곳이다.

대한민국의 수많은 광역시에서 중구라는 자치단체명을 사용하기 때문에 대민 표어 등에는 서울 중구란 표기를 흔히 볼 수 있다.

역사

1943년 4월 1일 구제도 실시를 전제로 경성부 전역에 7개 사무소가 설치되어 중구지역에는 중앙사무소가 설치되었고, 동년 6월 10일 구제도가 실시되어 경성부 직할구역소로 중구(행정관청 명칭은 중구역소)가 설치되었다. [1] 이 때의 관할 구역은 북미창정, 남미창정, 장곡천정, 태평통1정목(丁目), 태평통2정목, 남대문통, 봉래정1정목, 봉래정2정목, 욱정(旭町)1정목·2정목·3정목, 장교정, 무교정, 다옥정, 명치정1정목·2정목, 남산정1정목·2정목·3정목, 영락정1정목·2정목, 본정1정목·2정목·3정목·4정목, 대화정(大和町) 1정목·2정목·3정목, 주정(鑄町), 일지출정(日之出町), 왜성대정(倭城臺町), 동서헌정(東西軒町), 서사헌정(西四軒町), 신정(新町), 화원정(花園町), 병목정(竝木町), 광희정(光熙町) 1정목·2정목, 초음정(初音町), 앵정목1정목·2정목, 황금정1정목(黃金町一丁目)·2정목·3정목·4정목·5정목·6정목·7정목, 주교정, 방산정, 입정정, 임정(林町), 약초정(若草町)이었다. 해방 이후 1946년 9월 28일 서울시는 서울시 헌장에 의해 경기도를 벗어나 도(道)와 같은 지위를 갖게 되어 서울시 중구로 승격되었으며 1946년 10월 1일 기존의 (町)의 행정구역을 (洞)으로 일괄 변경하였다. [2]

1970년 3월 17일 조선호텔은 지하 2층, 지상 18층 규모의 최신식 호텔을 새로 지어 개관하였다. 1971년 10월 18일부터 서울 시청 광장과 맞닿아 있는 화교 상가가 철거됐다. 한국화약이 소공동 땅을 화교로부터 매입하여 호텔부지를 확보하였다. 소공동 일대 도심 재개발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1973년 한국화약은 소공동 부지 지하 3층, 지상 22층 짜리 호텔을 짓기 시작해 1976년 9월에 준공했다. 서울 도심부 재개발 사업 제1호 사업으로 플라자호텔이 탄생한 것이었다.

1975년 10월 1일 서대문구 서소문동 등과 성동구 황학동 등과 용산구 한남동 일부가 중구로 편입되었다. [3]

1975년 행정구역 개편
개편 전 개편 후
서대문구 서소문동, 정동, 순화동, 의주로2가, 중림동, 의주로1가, 충정로1가 전부 및 합동, 충정로3가 일부 중구 서소문동, 정동, 순화동, 의주로2가, 중림동, 의주로1가, 충정로1가
성동구 황학동, 무학동, 흥인동신당동, 상왕십리동 일부 중구 황학동, 무학동, 흥인동, 신당동

하위 행정구역

행정동명 법정동명 설명
소공동 북창동(北倉洞) 조선시대 관아인 선혜청의 북쪽창고가 있는데서 붙여졌다. [4] 북미창정(北米倉町)은 1943년 6월 10일 설치된 중구의 관할로 편성되었다.[1] 1946년 10월 1일 북창동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2] 1979년 롯데백화점 본점이 소공동에서 문을 열었다.
소공동(小公洞) 조선 태종의 둘째딸인 경정공주(慶貞公主)의 궁이 있었으므로 속칭 작은공주골이라 하던 곳을 한자로 소공주동이라 하였고 이를 줄여서 소공동이라 부르게 되었다. [4] 장곡천정(長谷川町)은 1943년 6월 10일 설치된 중구의 관할로 편성되었다.[1] 1946년 10월 1일 소공동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2]
충정로1가(忠正路) 조선시대에는 한성부 서부 반송방 지역이었다. 1914년 죽첨정이라고 하였고, 1946년 충정로로 바뀌었다. 1975년 10월 1일 충정로1가는 중구 관할이 되었다. [3] 충정로2, 3가는 여전히 서대문구 관할이다.
서소문동(西小門洞) 서울성곽 8문의 하나인 서소문에서 유래되었다. [4] 1936년 행정구역 개편 때 서소문정(~町)이라 불렀다. [5] 1943년 6월 신설된 서대문구에 속하였고, 1946년 10월 1일 서소문동으로 이름이 바뀌었다.[2]1975년 10월 1일 중구 관할이 되었다. [3]
정동(貞洞) 조선 태조의 계비인 신덕왕후의 정능이 현재 정동 4번지에 있었는 바, "貞"자를 따서 붙여진 이름이다. [4] 1936년 행정구역 개편 때 정동을 정동정(貞洞町)이라 고쳐 불렀다. [5] 1943년 6월 신설된 서대문구에 속하였고, 1946년 10월 1일 정동으로 이름이 바뀌었다.[2] 1975년 10월 1일 중구 관할이 되었다. [3] 3번지에는 성공회의 성당인 성공회 서울주교좌대성당이 있다.
순화동(巡和洞) 의주로변 이화여고중앙일보사가 자리한 곳에 위치한 곳이다. 화천정(和泉町)은 1943년 6월 신설된 서대문구에 속하였고, 현재의 순화동은 광복 후 1946년 10월에 순청동의 "순(巡)"과 화천정의 "화(和)"를 따서 지은 명칭이다. [4] [2] 1975년 10월 1일 중구 관할이 되었다. [3]
태평로2가(太平路) 한성부 서부 여경방(餘慶坊), 황화방(皇華坊), 양생방(養生坊) 및 남부 회현방(會賢坊) 지역으로 1914년에 통폐합되었다. [6] 대한상공회의소 부근의 중국 사신을 접대하던 태평관의 이름을 따서 경성부 태평통1정목, 태평통2정목으로 지었다. [5]
의주로1가(義州路) 한성부 서부 반석방(盤石坊) 및 반송방(盤松坊) 지역으로 1914년 의주통1정목과 의주통2정목으로 나눠져 통폐합되었다. [6] 의주통1정목은 1943년 6월 신설된 서대문구에 속하였고, 1946년 10월 1일 의주로1가로 이름이 바뀌었다.[2]1975년 10월 1일 중구 관할이 되었다. [3]
남대문로2가(南大門路) 1936년 행정구역 개편 때 남대문통(南大門通)이라 불렀다. [5]
양동(陽洞): 1914년에 기존의 양동일부(陽洞一部) · 대리문동일부(大里門洞一部) · 소리문동일부(小里門洞一部) · 지하(地下) · 도저동(桃楮洞)을 관할로 한 어성정(御成町)이 설치되었고 [6] 1946년 양동으로 개칭되고 남대문로5가에 속하였다가 1980년 7월 1일 폐동되었다.
남대문로3가
남대문로4가
회현동 남대문로5가
봉래동1가(蓬萊洞) 봉래정1정목은 1943년 6월 10일 설치된 중구의 관할로 편성되었다.[1]
봉래동2가 봉래정2정목은 1943년 6월 10일 설치된 중구의 관할로 편성되었다.[1]
남창동(南倉洞) 남미창정(南米倉町)은 1943년 6월 10일 설치된 중구의 관할로 편성되었다.[1] 1946년 10월 1일 남창동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2]
회현동1가(會賢洞) 조선 초기에는 한성부 남부 호현방(好賢坊) 지역이었고, 1914년에는 호박동(琥珀洞)과 창동(倉洞)·회동(會洞)·남산동(南山洞)·장동(長洞)·낙동(駱洞) 각 일부를 욱정(旭町)1정목(丁目)·2정목·3정목으로 개편하였다. [6] 1943년 6월 10일 설치된 중구의 관할로 편성되었다.[1] 1946년 10월 1일 회현동1가~3가로 명칭이 변경되었다.[2] 여배우 이승연회현동에서 태어났다.
회현동2가
명동 회현동3가
태평로1가 ↑ 위의 태평로2가 설명으로 대신
남대문로1가 ↑ 위의 남대문로2~5가 설명으로 대신
장교동(長橋洞) 장교정은 1943년 6월 10일 설치된 중구의 관할로 편성되었다.[1]
무교동(武橋洞) 무교정은 1943년 6월 10일 설치된 중구의 관할로 편성되었다.[1] 무교통에는 조흥은행의 본점이 있었다.
다동(茶洞) 다옥정(茶屋町)은 1943년 6월 10일 설치된 중구의 관할로 편성되었다.[1]
삼각동(三角洞) 삼각정은 1943년 6월 10일 설치된 중구의 관할로 편성되었다.[1]
수하동(水下洞) 수하정은 1943년 6월 10일 설치된 중구의 관할로 편성되었다.[1]
수표동(水標洞) 수표정은 1943년 6월 10일 설치된 중구의 관할로 편성되었다.[1]
명동1가(明洞) 면적은 0.91 ㎢이다. 대부분 상가지역이다. 서울에서 땅값이 가장 비싼 지역이다.
명동2가
남산동1가(南山洞) 남산정1~3정목은 1943년 6월 10일 설치된 중구의 관할로 편성되었다.[1]
남산동2가
남산동3가
을지로1가(乙支路) ↓ 아래의 을지로3~7가 설명으로 대신
을지로2가
저동1가(苧洞) 1910년 훈도방 저동계 저동이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일본식 지명인 영락정1정목(永樂町一丁目)~2정목이 되었다가, [6] 1946년 저동1가~2가로 명칭이 환원되었다.
충무로1가(忠武路) 을지로3가와 더불어 편집디자인 기획사들과 출력소들이 밀집되어 있다.
충무로2가
필동 충무로3가
필동1가(筆洞) 대화정(大和町) 1정목(丁目), 2정목, 3정목은 1943년 6월 10일 설치된 중구의 관할로 편성되었다.[1]
필동2가
필동3가
주자동(鑄字洞) 주정(鑄町)은 1943년 6월 10일 설치된 중구의 관할로 편성되었다.[1]
남학동(南學洞) 일지출정(日之出町)은 1943년 6월 10일 설치된 중구의 관할로 편성되었다.[1]
예장동(藝場洞) 왜성대정(倭城臺町)은 1943년 6월 10일 설치된 중구의 관할로 편성되었다.[1]
장충동 장충동1가(奬忠洞) 동서헌정(東西軒町)은 1943년 6월 10일 설치된 중구의 관할로 편성되었다.[1]
장충동2가 서사헌정(西四軒町)은 1943년 6월 10일 설치된 중구의 관할로 편성되었다.[1] 한국자유총연맹이 장충동에 위치해 있다.
묵정동(墨井洞) 신정(新町)은 1943년 6월 10일 설치된 중구의 관할로 편성되었다.[1]
광희동 충무로4가 ↑ 위의 충무로1~3가 설명으로 대신
충무로5가
예관동(藝館洞) 화원정(花園町)은 1943년 6월 10일 설치된 중구의 관할로 편성되었다.[1]
쌍림동(雙林洞) 병목정(竝木町)은 1943년 6월 10일 설치된 중구의 관할로 편성되었다.[1]
광희동1가(光熙洞) 광희정(光熙町) 1정목,2정목은 1943년 6월 10일 설치된 중구의 관할로 편성되었다.[1]
광희동2가
오장동(五壯洞) 초음정(初音町)은 1943년 6월 10일 설치된 중구의 관할로 편성되었다.[1]
인현동2가(仁峴洞)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필동·산림동·대인현동 등의 각 일부와 상동, 회동 등이 통합되어 일본식 지명인 앵정정1정목이, 회동·대인현동·관정동·예동·인현동 등의 각 일부와 소인현동이 통합되어 일본식 지명인 앵정정2정목이 되었다. [6]
을지로6가 고구려 을지문덕(乙支文德) 장군의 성씨인 을지(乙支)를 따서 지은 이름이다.
을지로7가
을지로동 을지로3가
을지로4가
을지로5가
저동2가 ↑ 위의 저동1가 설명으로 대신
인현동1가 ↑ 위의 인현동2가 설명으로 대신
주교동(舟橋洞) 주교정은 1943년 6월 10일 설치된 중구의 관할로 편성되었다.[1]
방산동(芳山洞) 방산정은 1943년 6월 10일 설치된 중구의 관할로 편성되었다.[1]
입정동(笠井洞) 입정정은 1943년 6월 10일 설치된 중구의 관할로 편성되었다.[1]
산림동(山林洞) 임정(林町)은 1943년 6월 10일 설치된 중구의 관할로 편성되었다.[1]
초동(草洞) 약초정(若草町)은 1943년 6월 10일 설치된 중구의 관할로 편성되었다.[1]
신당1동 무학동(舞鶴洞) 1966년 하왕십리동 중에서 무학동을 법정동으로서 분리하였다. 1975년 10월 1일 중구 관할이 되었다. [3]
흥인동(興仁洞) 1966년 7월 신당동 중에서 흥인동이 법정동으로 분동되었고, 1975년 10월 1일 중구 관할이 되었다. [3]
신당동(新堂洞) 1975년 10월 1일 중구 관할이 되었다. [3] 정치인 이윤영은 1975년 10월 15일에 신당동에서 사망하였다.
신당2동
신당3동
신당4동
신당5동
신당6동
[황학동]] 황학동(黃鶴洞) 1966년 7월 신당동 중에서 황학동이 법정동으로 분동되었고, 1975년 10월 1일 중구 관할이 되었다. [3]
중림동 의주로2가 의주통2정목은 1943년 6월 신설된 서대문구에 속하였고, 1946년 10월 1일 의주로2가로 이름이 바뀌었다.[2] (↑ 기타는 위의 의주로1가 설명으로 대신)
중림동(中林洞) 중림정은 1943년 6월 신설된 서대문구에 속하였고, 1946년 10월 1일 중림동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2] 1975년 10월 1일 중구 관할이 되었다. [3]
만리동1가(萬里洞) 봉래정3정목은 1943년 6월 신설된 서대문구에 속하였고, 1946년 10월 1일 만리동1가로 이름이 바뀌었다. [2] 1975년 10월 1일 중구 관할이 되었다. [3]
만리동2가 봉래정4정목은 1943년 6월 신설된 서대문구에 속하였고, 1946년 10월 1일 만리동2가로 이름이 바뀌었다. [2] 1975년 10월 1일 중구 관할이 되었다. [3]

교통

중구는 퇴계로, 을지로, 청계천로, 남대문로, 왕십리길 등의 간선도로가 관통하고 서울 지하철 1·2·3·4·5·6호선이 통과하는 교통의 요충지다.

철도

(종로구) ← 시청역 - 서울역 → (용산구)
(서대문구) ← 시청역 - 을지로입구역 - 을지로3가역 - 을지로4가역 -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 신당역 → (성동구)
(종로구) ← 을지로3가역 - 충무로역 - 동대입구역 - 약수역 → (성동구)
(종로구) ←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 충무로역 - 명동역 - 회현역 → (용산구)
(종로구) ← 을지로4가역 -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 청구역 → (성동구)
(용산구) ← 버티고개역 - 약수역 - 청구역 - 신당역 → (종로구)

산업

남대문시장, 중부시장, 평화시장 등 대형 재래시장과 롯데, 신세계 등 대형백화점 및 명동, 충무로의 현대식 쇼핑가,굿모닝시티, 두산타워,동대문 밀리오레,명동 밀리오레,케레스타 등 신·구 유통 시장이 복합적으로 형성되어 서울의 중심적인 상업도시로 발전하고 있다. 소공동, 북창동 등 중구 핵심지대는 회사, 무역상사, 은행본점 등의 중추관리기능이 밀집됨으로써 중심업무 지구의 특성을 나타내고 있고, 핵심지역의 외곽도 보험 및 증권회사, 행정관리 기능과 전문 서비스 지구를 형성하고 있으며, 도서출판과 보도기능 같은 서비스 기능도 입지하고 있다. 이와 같이 중구의 중심 지대에는 중추관리기능이, 간선도로변에는 도심성 소매활동이 간선도로 후면에는 서비스활동이, 을지로청계천에는 기계, 기구, 부속품 등의 판매 지역이 서로 연계하여 분포되어 있다. 아울러 도심지역의 각 블록의 앞면에는 빌딩군을 이루고 있고 뒷면은 여전히 오래된 주택들이 남아있는 곳이 많으며 이들은 주로 음식점, 주점, 숙박업소로 이용되고 있어 역시 도시로서의 일면을 나타내고 있고 최근 도심재개발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건물

한국은행 등 금융기관과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 언론기관의 본사가 중구에 위치하고 있다.

한국은행 본점

교육 기관

  
  
  
  
  • 평생교육
  
  
  

문화

문화는 대표적인 것으로 충무아트홀,음악 등이 있다.

관광

청계천(淸溪川)은 서울특별시남산, 북악산 등에서 발원하여 종로구, 중구, 동대문구, 성동구 등을 거치며 중랑천과 합류한 뒤 한강으로 흘러드는 마른 하천이다. 본래의 이름은 개천(開川)이었으나 일제 강점기에 "청계천"으로 바뀌어 오늘날의 이름이 되었다.

숙박

특1급 호텔로는 [[소공동]의 호텔 롯데, 웨스틴조선호텔, 남대문로의 밀레니엄서울힐튼호텔, 태평로서울프라자호텔, 장충동신라호텔이 있다.

먹거리

신당동에 있는 떡볶이 골목은 떡볶이를 파는 가게들이 밀집해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서소문동에는 센나리라는 일본 청주와 어묵을 파는 술집이 있다.[7]

기타

충무로는 근대 영화 산업이 발전한 곳이었으며, 충무로 일대에는 유명한 극장이 지금도 존재한다. 이를 바탕으로 해마다 충무로 국제 영화제가 열린다.

주석

  1. 조선총독부령 제163호(1943년 6월 9일 공포) 참조.
  2. 서울시 헌장 제1조
  3. 구의증설및관할구역변경에관한규정 (제정 1975년 9월 23일 대통령령 제7816호)
  4. 소공동사무소 홈페이지
  5. 조선총독부 경기도 고시 제32호(1936년 3월 23일) 참조.
  6. 조선총독부 경기도 고시 제7호(1914년 4월 1일 시행) 참조.
  7. 박미향. "꾼"들에게 물어봐~ 그윽한 국물에 정종 한잔 [박미향기자의 삶과 맛] (23) "센나리". 한겨레. 2007년 12월 30일에 확인함.  |제목=에 지움 문자가 있음(위치 27) (도움말)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