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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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한호(林漢浩, 1752년 ~ 1827년)는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 자는 경소(景昭), 시호는 정간(貞簡), 본관은 나주이다.
생애
[편집]1783년에 생원이 되어 1792년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암행어사를 지냈다. 1800년 이조참의를 거쳐 사간원, 대사간이 되었다가 대왕대비 김씨의 수렴청정을 논의(수렴청정을 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세움)하였다가 파직되어 안주에 유배되었다가[1] 1804년 대왕대비의 동의하에 대사간에 복직[2], 1805년 강원도관찰사가 되었다가[3] 형조판서, 이조판서, 우빈객을 지내고 우의정에 제수되었다. 중추부판사에 제수된 후에는 서얼의 등용을 주장하여 서자도 조정에 출사할 수 있게 하였다.[4] 생전에 인품이 소박하고 자손이 많아 복인(福人)으로 불렸다.[5]
사후
[편집]안동김씨의 세도가 김조순과 더불어 당대의 권력자라고 칭송받았으며 1827년에 죽고 정간(正懇)이라는 시호를 받았다.[6]
각주
[편집]- ↑ 《조선왕조실록》 순조 5권, 3년(1803 계해 / 청 가경(嘉慶) 8년) 6월 11일(갑술) 1번째기사
- ↑ 《조선왕조실록》 순조 6권, 4년(1804 갑자 / 청 가경(嘉慶) 9년) 8월 24일(경진) 3번째기사
- ↑ 《조선왕조실록》 순조 7권, 5년(1805 을축 / 청 가경(嘉慶) 10년) 4월 1일(갑인) 2번째기사
- ↑ 《조선왕조실록》 순조 26권, 23년(1823 계미 / 청 도광(道光) 3년) 9월 9일(갑술) 1번째기사
- ↑ 《조선왕조실록》 순조 29권, 27년(1827 정해 / 청 도광(道光) 7년) 10월 15일(정해) 1번째기사
- ↑ 《조선왕조실록》 순조 32권, 32년(1832 임진 / 청 도광(道光) 12년) 4월 5일(신사) 2번째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