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흥륜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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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흥륜사지
(慶州 興輪寺址)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사적
2012년 5월
종목사적 제15호
(1963년 1월 21일 지정)
면적11,683m2
시대신라
위치
경주 흥륜사지 (대한민국)
경주 흥륜사지
주소경상북도 경주시 사정동 281-1번지
좌표 북위 35° 49′ 42″ 동경 129° 12′ 25″ / 북위 35.82833° 동경 129.20694°  / 35.82833; 129.20694좌표: 북위 35° 49′ 42″ 동경 129° 12′ 25″ / 북위 35.82833° 동경 129.20694°  / 35.82833; 129.20694
정보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정보

경주 흥륜사지(慶州 興輪寺址)는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었던 사찰로서, 신라 최초로 세워진 흥륜사가 있던 곳이다. 전해오는 기록에 따르면 금당·탑·좌경루·남문·강당 등이 절 안에 있었고, 보현보살의 벽화도 있었다고 한다. 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15호로 지정되었다.

개요[편집]

흥륜사는 신라에서 가장 먼저 지어진 절로 불교를 전파하기 위해 온 고구려 승려 아도(阿道)가 지은 것이라 전한다. 신라 미추왕이 절을 짓도록 하였다고 하나 창건 연대가 정확하지 않으며, 규모가 작고 검소하여 초가집을 짓고 불법을 강연하는 정도였다고 한다.

미추왕이 죽자 절은 곧 폐허가 되었고, 그 후 법흥왕 14년(527)에 이차돈의 순교로 다시 짓기 시작하여 진흥왕 5년(544)에 완성되었다. 진흥왕은 이 절을 ‘대왕흥륜사’라 하고 백성들이 중이 되는 것을 허락하였으며, 왕 자신도 만년에는 스스로 삭발하여 법운이라는 법명을 받고 절의 주지가 되었다. 이후 흥륜사는 대법회를 열고 왕실과 국가의 평안을 기원하는 신라의 큰 절이 되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불국사와 석굴암을 창건한 김대성이 전생에 밭을 보시한 절이 흥륜사이고 김현(金現)이 호랑이와 인연을 맺었다는 절도 이곳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금당 안에는 선덕여왕 때 김양도가 만들었다는 미륵삼존불상이 모셔져 있고, 동쪽 벽에는 아도·이차돈·혜숙·안함·의상을 그린 신라 10성의 상(像)을 그린 벽화가, 서쪽 벽에는 표훈·원효·혜공·지장·사파의 상을 모셔 놓았다고 전한다. 금당지 앞에는 8각탑지와 서쪽의 경루가 있고 이를 둘러싼 회랑지가 조사되었다. 흥륜사의 남문은 길달문이라고 불렀는데, 귀신인 길달(吉達)이 지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신라말 반란군에 의해 불탄 것을 경명왕 5년(921)에 다시 지었으며, 조선시대에 화재로 불타 폐사되었다. 절터에는 신라시대의 석조물 가운데 가장 큰 석조와 배례석이 있었는데,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또한 신라의 미소로 일컫는 사람얼굴 모양의 수막새가 출토되었다.

지금은 1980년대에 새로 지은 흥륜사가 자리하고 있으며, ‘영묘사’라고 새겨진 기와조각이 출토되어 선덕여왕 때 창건된 영묘사터로 보기도 한다.

같이 보기[편집]

참고 자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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