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백 (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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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백(和白)은 신라 때에 나라의 중대사를 의논하던 귀족 회의 제도이며, 의결 방법은 만장일치제였다.

독특한 씨족 공동 사회의 유제(遺制)로서 《수서》 신라전에 〈共有大事則聚群官詳議而完之〉,《당서》 신라전에 〈事心與衆議號和 人異則罷〉라고 한 것을 보면, 화백 회의는 중대 사건이 있어야 개최되고 회의의 참석자는 보통 인민이 아닌 백관이라는 것, 또 여기서 한 사람의 반대라도 있으면 회의의 결정은 내리지 못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화백의 이 만장일치 제도는 단 한 번의 예외를 남겼는데 경순왕고려에 대한 항복 결정이었다.

또한 화백은 귀족의 단결을 굳게 하고 국왕과 귀족 간의 권력을 조절하는 기능을 담당하기도 했다. 일례로 “정치가 어지럽고 음란하다.”라는 이유로 화백에서 진지왕을 폐위하였다.

이 화백 회의와 신라 고유의 신앙과 결부된 경주 주위의 4영산인 청송산(東), 모지산(南), 피전(西), 금강산(北)과의 관련설이 있으나 자세하지 않다. 화백의 원칙은 귀족뿐 아니라 신라 전 사회에 널리 행하였고, 각계각층의 독재력의 발생을 억제하여 신라 국가의 완전성을 증가하는 요인이 되었다. 학자에 따라 남당(南堂) 회의로 보기도 한다.

화백회의에는 20명의 진골 출신자만이 참석했으며 각각 대등(大等)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들 중에서 자체 의결을 통해 의장격의 상대등(上大等)을 선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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