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민국의 대외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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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민국
Flag of the Republic of China.svg National Emblem of the Republic of China.svg


중화민국의 정치와 정부






  • 감찰원
    • 원장: 장보야
    • 부원장: 쑨다촨




이 문서에서는 중화민국의 대외 관계(中華民國의 對外 關係)에 대해서 다룬다.

외교에 있어서 특필해야할 점은 현재 분단국가인 중화민국 정부가 스스로를 중화인민공화국에 대하여 "중국의 정통 정부"라고 하고 있는 점이다. 중화민국은 냉전 구도 하에서,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친서방 진영에 편입되어 있었다. 국공 내전으로 인해 영토의 대부분을 잃게 되었지만 연이어 발발한 한국 전쟁에서 중화인민공화국중국인민지원군을 불법으로 조직해 한국 전쟁에서 수세에 몰리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구원함으로써, 오히려 궁지에 몰렸던 중화민국은 유엔의 안보리 상임이사국 지위가 부각되며 소생하였다.

그러나, 1971년 10월 25일에 유엔 총회 결의 제2758호로 유엔 내 상임이사국 지위와 의석을 모두 중화인민공화국에게 빼앗기면서 중화민국의 외교적 고립은 급물살을 타기 시작하였다. 비슷한 시기에 미국의 헨리 키신저가 비밀리에 베이징을 방문해서 저우언라이와 회담을 가졌고, 1972년 2월 21일 미국 대통령 리처드 닉슨과 중화인민공화국의 최고 지도자 마오쩌둥 간의 정상 회담이 이뤄진 이후부터 중화민국은 국제사회에서 비주류로 물러나고 중화인민공화국에게 밀리게 되었다. 장제스 사망 후 1979년 최대의 우방이었던 미국과 단교하는 등 자유 진영과의 결별을 맛보아야 했다. 또한, 중화인민공화국하나의 중국 원칙을 내세워 중화민국은 불리한 위치로 추락하게 되었다.

수교국[편집]

현재 중화민국유럽 1개국, 오세아니아 6개국, 아프리카 1개국, 중남미 9개국의 총 17개국과 공식 외교 관계를 맺고 있다.

유럽 (1개국)


오세아니아 (6개국)


아프리카 (1개국)

중앙아메리카 (4개국)


카리브 제도 (4개국)


남아메리카 (1개국)

하나의 중국[편집]

현재 분단국가중화민국중화인민공화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 천명에 따라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하는 나라는 중화민국과 외교 관계를 수립할 수 없는 상태이다. 그러나, 이는 형식적인 외교 관계에 국한된 것이며 실질적으로 중화민국이 중화인민공화국의 일부라는 것을 완전히 받아들이는 나라는 거의 없다.[1] 특히, 미국일본, 대한민국, 유럽 연합(EU)은 중화인민공화국을 견제하려는 목적으로 지금도 중화민국과의 교류 관계를 어느 정도 유지하고 있다.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된 이후 공산주의 국가들을 중심으로 다수의 국가들이 중화민국과의 외교관계를 단절하고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를 하였다. 특히, 소련은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다음날 중화민국과 단교하고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하였다. 중화민국이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 상임이사국 지위를 잃게 되었던 1971년 10월 25일유엔 총회 결의 제2758호 채택을 전후하여 많은 국가들이 중화인민공화국과 국교를 수립하고 중화민국과 외교관계를 단절하였다.

1971년 6월 11일 리비아가 중화민국과 외교관계를 단절하면서 중화인민공화국의 수교국(당시 63개국)과 중화민국의 수교국(당시 62개국)의 수가 역전되었다. 이후 1972년에는 일본, 1979년에는 미국이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를 수립함으로써 중화민국의 수교국은 계속 감소하였다. 1992년 8월 23일대한민국과의 외교관계가 단절됨으로써 아시아에서 중화민국의 수교국은 한 국가도 없게 되었다.

2008년 4월, 마잉주 중화민국 총통은 수교국을 늘리기 위한 경쟁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였다.[2] 중화인민공화국에서도 사실상 이에 동의해 중화민국 수교국과의 외교관계 수립을 거절했지만 2013년 11월 15일 감비아가 중화민국과의 외교 관계를 단절하면서 깨지고 만다.[3] 그러나 중화인민공화국은 감비아와의 수교를 보류하여 중화민국과의 암묵적 합의를 지켰다.

2016년 5월에 차이잉원이 중화민국 총통으로 취임하면서부터 중화민국과 수교한 국가들의 수가 줄어들고 있다. 중화인민공화국은 중화민국에서 정권이 교체되자 보류하고 있던 감비아와의 재수교를 [2016년]] 3월 17일에 단행하였다. 중화민국은 2016년 12월 21일상투메 프린시페와의 외교 관계를 단절하였다. 2017년 6월 12일파나마와의 외교 관계를 단절하였다. 2018년 4월 30일도미니카 공화국과, 5월 24일부르키나파소와, 8월 21일엘살바도르[4] 각각 단교하였다.

미수교국[편집]

중화민국은 1949년에 중화인민공화국의 성립으로 인해 분단되기 전까지 중국 정부로서 국제 사회에서 외교관계를 행사하는데 걸림돌이 없었다. 그러나 분단 국가가 된 이후부터 하나의 중국 원칙에 따라 점차적으로 수교국을 중화인민공화국에게 하나 둘 빼앗기기 시작했다.

양안 모두 미수교국[편집]

이 문단에서는 모든 미수교국을 나열하지는 않고, 현재 중화인민공화국 및 중화민국 양안과 모두 외교관계를 맺지 않은 국가들을 소개한다.

각국과의 관계[편집]

대한민국[편집]

1992년까지 대한민국아시아에서 중화민국의 마지막 수교국이었다. 양국의 관계는 분단국가인 상황을 공유하여 반공 운동에 협력하였고 둘 다 제2차 세계 대전일본 제국에게 피해를 입은 등 역사적 배경이 비슷하다. 한국 전쟁 때, 중화인민공화국중국인민지원군을 파견하여 적극적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지원했고, 반대로 중화민국은 대한민국을 원조하였다. 이로 인해 냉전 동안 양국은 강력한 동맹을 과시하고 있었다. 국부천대 이후부터 1992년에 외교가 단절되기 전까지 대한민국은 대륙의 중화인민공화국을 통상적으로 중공(中共)이라 부르고, 중화민국을 자유중국(自由中國)이라고 부르며 구분하였다. 그러나, 1992년대한민국 외무부중화인민공화국과의 수교를 공식 선언함으로써 양국의 외교관계는 단절되었고, 1993년 비공식 관계를 재개하여 현재는 타이베이 대표부를 통해 사실상 외교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이런 외교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민간교류는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한류 열풍을 타고 쑹산~김포 간 항로가 부활하였고, 투자보장협정 체결 논의도 진행 중에 있다.[5] 대한민국의 대(對)중화민국 수출은 148억 3049만USD, 중화민국의 대(對) 대한민국 수출은 136억 4708만USD(각 2010년)에 달하여, 중화민국은 대한민국에 있어서 제 6위의 수출국, 제 8위의 수입국이다.[6] 2012년 중순부터 한국인에 대한 중화민국의 무비자 입국 허용은 30일에서 90일로 연장되었고 워킹홀리데이제도도 2011년부터 적용되어 양국간 활발한 민간외교가 진행 중이다. 중화민국 내의 한국 교민 사이트는 '대만 하늘채(www.hanulche.net)'이고 다음과 네이버에도 비슷한 인터넷카페가 운영되고 있다.

미국[편집]

미국과 중화민국은 1912년에 수교하였으며, 미국은 국공 내전제2차 세계 대전 중에 전(全) 중국의 합법정부로서 중화민국을 지원하였다. 1979년 1월 1일부터 미국이 중화인민공화국과 전격 수교하면서 "하나의 중국" 원칙에 따라 양국은 자연히 단교되었으나, 미국은 국내법인 타이완관계법을 통해 중화민국에 대한 안보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즉, 단교된 이후에도 중화민국에 대한 군사적 지원이 계속 제공되고 있고, 미국재대만협회를 통한 비공식적인 협력 관계도 계속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과 중화민국 간에는 공식적인 외교 관계만 단절되었을 뿐, 현실적으로는 밀월 관계가 지속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차이잉원의 돌발 행동으로 인하여 양안 관계는 물론, 미국과 중화인민공화국 관계가 요동치고 있다. 그러던 중 2018년, 미국은 중화민국측 인사와 미국측 인사의 자유로운 상호 방문을 촉진하는 '대만여행법' 을 통과시키므로 중화민국과 미국의 관계가 새로운 관계로 접어들었다. 또한, 미국은 중화민국에 비공식 대사관을 개소시키는 한편, 미군의 무기와 해병대를 파견한다는 가능성도 전해지고 있다.

일본[편집]

일본은 1972년에 중화인민공화국과 국교를 수립하면서 중화민국과 단교하였으며, 중화민국과는 민간 차원의 이익대표부를 설치해 교류하고 있다. 현재 중화민국에게 남은 영토의 대부분인 타이완청일 전쟁의 결과로 일본에 할양된 1895년부터 1945년까지 50년 간 일본 통치 시기를 겪고 근대화의 초석을 닦았던 곳이다. 중화민국과 일본은 제2차 세계 대전 기간에 중일 전쟁의 적대관계에 있었다. 그 후 연합국의 일원으로서 일본에 승전하여 1945년부터 중화민국이 타이완을 지배권 안에 두게 되었고, 1949년부터는 국공 내전으로 인하여 중화민국의 중심지가 되었다.

중화민국과 일본은 중일 전쟁의 적국이었지만, 전쟁 후에는 미국을 주축으로 한 반공 진영에 함께 속하게 되었다. 1952년 4월 28일 양국은 중일화평조약(또는 타이베이 조약)을 체결하여 외교 관계를 수립했다. 그러나, 1972년에 일본이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하면서 외교관계가 단절되었고, 중일화평조약도 사실상 폐기되었다. 안보에 있어서는 중화민국은 타이완관계법을 배경으로 미국과 밀접한 관계에 있고, 미일 동맹을 가진 일본과도 간접적인 협력 관계에 있다. 중화민국과 일본은 서로 센카쿠 열도(일본이 실효 지배)의 영유권을 주장하며 종종 분쟁이 발생했지만 아직 심각한 충돌은 없었다.

양국은 단교 이후에도 지리적으로 인접한 까닭에 경제적·문화적으로 어느정도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오고 있다. 중화민국은 일본 외의 국가 중에는 처음으로 일본의 신칸센고속철도 기술에 반영했다. 중화민국의 대중 문화는 대한민국 뿐만 아니라 일본 대중 문화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다. 2005년에 일본 정부가 중화민국 국민에게 90일간의 단기 방문 사증 면제를 시행한 이후 양국간 인적 교류가 크게 늘고 있다. 중화민국에는 중국 국민당민주진보당의 양대 정당이 있는데, 타이완 본성인을 주요 지지기반으로 삼는 민주진보당이 다른 정당보다 일본에 우호적인 정당이다.

파라과이[편집]

현재 파라과이남아메리카에서 중화민국의 유일한 수교국이다. 지난 1947년부터 2008년까지 파라과이 국정을 독점했던 우파 성향의 콜로라도당 정부는 중화민국과 전통적 외교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2008년에 좌파 성향의 페르난도 루고가 대통령으로 취임한 이후에는 중화인민공화국과의 외교 관계에 대한 뜻을 여러 차례 밝힌 바가 있다. 중화민국은 대(對) 남미 외교에서의 교두보 상실을 우려하였고 파라과이 루고 대통령의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중화민국은 파라과이와 단교될 가능성이 상존하지만 현재까지 외교 관계는 계속 유지되고 있다.[7]

바티칸 시국[편집]

현재 바티칸 시국유럽에서 중화민국의 유일한 수교국이다. 1922년 로마 교황청의 첫 중화민국 대표가 베이징 시에 부임했으며, 1942년에 양국은 공식 수교하였다. 1946년 중국 교구가 설정되면서 난징 시에 주중 바티칸 대사관(라틴어: Nuntiatura Apostolica in Sinis)이 개설되었다. 국공 내전의 영향으로 1949년 10월 중국 대륙에는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되었으며, 중화민국 정부는 타이베이 시로 옮겼다. 당시의 주중 바티칸 대사 안토니오 리베리 주교는 1951년까지 중국 대륙에 계속 주재하다 대륙을 장악한 중국 공산당 정권에 의해 추방되어 동년 9월 6일 영국령 홍콩으로 갔으며, 이듬 해에 타이베이 시로 갔다. 1942년 이래 바티칸은 중화민국과 외교 관계를 유지했으며, 타이베이에 주중 대사관을 재개설하였다. 1967년 천주교중국주교단(현 천주교타이완지구주교단)이 타이베이에서 결성되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편집]

중화민국이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중화인민공화국몽골을 제외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동아시아에서 중화민국과 수교한 적이 없는 유일한 국가이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전통적 우방이라는 점에서 양국의 교류는 미미하였으나, 1992년부터는 무역, 관광 등의 민간 교류가 확대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2010년에 대만 기업 중 미사일 부품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수출한 기업이 적발되기도 하였다.[8]

러시아[편집]

러시아 제국 시기에는 몽골의 독립을 지원하기도 하였으며, 소비에트 연방 시기에는 중국 국민당과 우호 협정을 맺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 공산당의 정치적 독립을 지지하는 바람에 적대 관계가 되었다.

중화민국은 현재 러시아(러시아 연방)가 지배하고 있는 강동육십사둔, 탕누우량하이 등을 자국의 영토로 간주하고 있으나, 아직 서로 문제삼지는 않고 있다. 현재 양국은 양국 수도에 대표부를 설치해 교류하고 있다.

몽골[편집]

1911년 10월 우창의 봉기에서 시작한 신해혁명으로 청나라가 멸망하고 중국 대륙이 혼란에 빠지자, 외몽골은 그 해 12월 봉기하여 중화민국으로부터 자치권을 부여받았다. 1913년 티베트우르가에서 몽장 조약을 체결하였고 러시아에서 10월 혁명이 일어나자 1920년에 국민당이 외몽골의 자치를 철폐시켰으나, 그 해에 反중국·민족해방을 목표로 몽골 인민혁명당이 결성되었다. 1921년담딘 수흐바타르가 인민혁명군을 조직하여 재차 봉기하여 외몽골의 독립을 성취하였다.

1946년에 중화민국은 소련과의 협정에 따라 몽골의 독립을 인정하였으나, 국부천대 이후 중화민국은 1953년에 몽골의 독립 승인을 번복하고 해당 협정을 폐기하였다. 그 후 중화민국은 몽골의 유엔 가입에 대한 거부 의사를 표명하였다. 이에 소련이 아프리카 신생 독립국의 유엔 가입에 대한 거부 의사를 시사하고 미국소련 측을 견제하기 위해 몽골의 가입을 반대하지 않는 쪽으로 입장을 선회하자, 중화민국은 결국 더 이상의 반대를 포기하였고 몽골은 1961년에 유엔의 회원국이 되었다.

2000년 천수이볜 집권 시기의 중화민국 외교부는 대표부를 설치하는 등 몽골을 사실상의 독립국처럼 대우하게 되었다. 그러나, 명목상으로는 여전히 외몽골 지역은 중화민국의 강역으로 간주하여 몽골에 대한 중화민국의 입장이 다소 모호한 상태에 빠졌다. 물론 이것은 현재 몽골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인데, 몽골은 하나의 중국 원칙에 따라 중화인민공화국만을 합법한 중국 정부로 여기고 있지만, 실제 중화민국이 여전히 통치하는 영역에 대해서 중국 공산당 정권의 영향력이 사실상 미치지 못한다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 볼 수 있다.

현재 외몽골 지역과 관련된 업무는 행정원몽장위원회가 관장하고 있으나,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 있는 대표부는 중화민국 외교부가 관장하고 있다. (→몽골)

중화인민공화국[편집]

중화인민공화국과의 관계는 보통 양안 문제를 의미한다. 중화민국국공 내전으로 인해 타이완 등의 일부 도서 지역을 제외한 영토의 대부분을 상실한 이래 영토 수복과 반공에 대한 정책을 대대적으로 실시하였다.

한국 전쟁으로 인해 중화인민공화국이 널리 인정받지 못하고 있을 때, 중화민국은 유엔에서 상임이사국의 지위를 담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1971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유엔에 가입하고, 유엔 총회 결의 제2758호에 따라 중화민국의 권리가 박탈됨에 따라 유엔에서 탈퇴하였다.

처음에는 소련을 중심으로 한 공산 진영의 국가들이 중화인민공화국과 관계를 맺으면서 단교했고, 점차 외교 관계를 단절하는 나라들이 늘어났다. 그 결과 현실적으로 중화민국의 권리를 인정해주는 나라가 급감하여 국제사회 전반에서의 중화인민공화국 측 주장이 훨씬 강력해졌다. 올림픽 경기에서도 중화인민공화국의 정치적인 압력으로 인해 중화민국은 차이니스 타이베이라는 이름으로 출전하며 청천백일만지홍기국가(國歌)를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장제스장징궈가 통치하던 시기에는 영토 수복을 궁극적인 목적으로 하였으나, 중화인민공화국의 세력이 너무 강성해져서 중화민국 내부에서도 본토 수복만을 열렬하게 지지하는 사람은 계속 감소하고 있는 추세에 있으며, 천수이볜이 통치하던 시기에는 타이완 지구 만으로 지정학적인 독립을 꾀하는 세력이 꽤 늘어났으나, 마잉주가 통치하는 시기에 들어서는 본토수복과 지정학적인 타이완지구 독립에 대한 사람들이 크게 엇갈리기 시작했다.

특히 1987년 8월 이후 우편을 교환하는 등 양안의 교류가 확대되었고, 2008년 상호 해운로, 항로가 개설되면서 양안관계가 느리게나마 회복되고 있다.

티베트[편집]

중화민국은 티베트를 자국 영토로 간주하고 있지만 달라이 라마의 타이완 방문을 허용하는 등 티베트 망명 정부와도 일정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티베트 망명 정부는 타이베이 시에 대표부를 두고 있다.

중화민국 정부는 외교부에서 대표부 업무를 하고, 별도로 행정원대륙위원회가 티베트 영유권 관련 업무를 맡고 있다.

홍콩[편집]

중화권과 '아시아의 네 마리 용'에 속하는 중화민국과 홍콩은 경제적·문화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홍콩은 영국령 홍콩 시절부터 중화민국의 가장 중요한 무역 상대 중 하나였으며, 홍콩 주민은 일본인 다음으로 중화민국을 가장 자주 방문한다.

중화민국 정부는 홍콩에 행정원대륙위원회가 운영하는 중화여행사(中華旅行社)를 두고 있고, 중화인민공화국홍콩 특별행정구 정부는 타이베이 시홍콩관광진흥청홍콩무역발전국 사무소를 두고 있다. 마잉주 정부의 출범 이후부터 홍콩 특별행정구 정부는 중화민국과의 대표부 설치를 검토하고 있다.

국제 기구와의 관계[편집]

중화인민공화국의 압력으로 인해, 중화민국은 여러 국제 기구에서 퇴출되거나 그 지위가 격하되었다. 그럼에도 중화민국은 여러 국제 기구에서 차이니스 타이베이 등의 이름으로 회원국 활동하고 있다.

중화민국의 외교 연표[편집]

북양정부 (1912년 ~ 1927년)[편집]

국민정부 (1928년 ~ 1949년)[편집]

국부천대 (1950년 ~ 1970년)[편집]

1971년 ~ 1990년[편집]

1991년 이후[편집]

같이 보기[편집]

주해[편집]

  1. 1881년 10월 3일(광서 7년 8월 11일) 청나라와 공사급 수교.
  2. 1844년 7월 3일(도광 24년 5월 18일) 청나라와 영사관계 수립. 1858년 6월 18일(함풍 8년 5월 초8일) 공사급 수교.
  3. 서구 열강 중에선 처음으로 국가 승인.
  4. 1899년 12월 14일(광서 25년 11월 12일) 청나라와 공사급 수교.
  5. 1902년 9월 16일(광서 28년 8월 15일) 청나라와 공사급 수교.
  6. 1874년 6월 26일(동치 13년 5월 13일) 청나라와 공사급 수교.
  7. 1871년 9월 13일(동치 10년 4년 7월 29일) 청나라와 공사급 수교.
  8. 1869년 9월 2일(동치 8년 7월 26일) 청나라와 공사급 수교.
  9. 1863년 10월 6일 (동치 2년 8월 24일) 청나라와 공사급 수교.
  10. 1862년 8월 13일 (동치 원년 7월 18일) 청나라와 공사급 수교.
  11. 1865년 11월 2일(동치 4년 9월 14일) 청나라와 공사급 수교.
  12. 1847년 3월 20일(도광 27년 2월 초4일) 청나라와 영사관계 수립. 1908년 7월 2일(광서 34년 6월 초4일) 공사급 수교.
  13. 1863년 7월 13일(동치 2년 5월 28일) 청나라와 공사급 수교.
  14. 1858년 6월 13일(함풍 8년 5월 초3일, 율리우스력 1858년 6월 1일) 청나라와 공사급 수교.
  15. 1861년 9월 2일(함풍 11년 7월 28일) 청나라와 공사급 수교.
  16. 1842년 8월 29일(도광 22년 7월 24일) 청나라와 영사관계 수립. 1858년 6월 26일(함풍 8년 5월 16일) 공사급 수교.
  17. 1844년 10월 24일(도광 24년 9월 13일) 청나라와 영사관계 수립. 1858년 6월 27일(함풍 8년 5월 17일) 공사급 수교.
  18. 1866년 10월 26일(동치 5년 9월 18일) 청나라와 공사급 수교.
  19. 1864년 10월 10일(동치 3년 9월 초10일) 청나라와 공사급 수교.
  20. 1847년 3월 20일(도광 27년 2월 초4일) 청나라와 영사관계 수립.
  21. 1910년 1월 16일(선통 원년 12월 초6일) 청나라와 영사관계 수립.
  22. 1908년 5월 21일(선통 34년 4월 22일) 청나라와 영사관계 수립.
  23. 1908년 5월 21일(선통 34년 4월 22일) 청나라와 영사관계 수립.
  24. 1909년 1월 9일(선통 34년 12월 18일) 청나라와 영사관계 수립.
  25. 1904년 11월 4일(선통 30년 9월 27일) 청나라와 영사관계 수립.
  26. 일본의 침략과 국민정부에 대한 승인을 유지할 수 없다는 일본의 선언으로 단절되었다.
  27. 칠레 측에서 이 날짜에 단교하겠다고 1970년에 미리 통보했다.
  28. 아르헨티나 주재 대사관은 8월 15일에 폐쇄됨.
  29. 포르투갈 주재 대사관은 5월 31일에 폐쇄됨.
  30. 베트남 민주 공화국 베트남 민주 공화국[[파일:{{{국기그림-베트콩}}}|22x20px|border |베트남 민주 공화국|링크=베트남 민주 공화국]]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베트남 공화국 베트남 공화국을 4월 30일에 무력으로 멸망시키면서 남베트남 주재 중화민국 대사관은 4월 26일에 폐쇄되었고 대사관 청사와 부지는 [[파일:{{{국기그림-베트콩}}}|22x20px|border |베트남 민주 공화국|링크=베트남 민주 공화국]] 남베트남 공화국 임시혁명정부에 압류되었다. 중화민국 주재 남베트남 대사관은 5월 5일에 폐쇄되었다.
  31. 리비아 주재 대사관은 10월 22일에 폐쇄됨.
  32. 1978년 12월 16일에 미국에서 통보.
  33. 코트디부아르 주재 대사관은 4월 17일에 폐쇄됨.
  34. 1985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과 대사급 수교.
  35. 1987년 2월 6일 중화인민공화국과 대사급 수교.
  36. 1974년 3월 15일 중화인민공화국과 대사급 수교.
  37. 1991년 9월 12일 중화인민공화국과 대사급 수교.
  38. 1975년 7월 12일 중화인민공화국과 대사급 수교.
  39. 1990년 11월 16일 중화인민공화국과 대사급 수교.
  40. 남아공은 1996년 11월 27일에 단교를 미리 선언했다.
  41. 1993년 10월 12일 중화인민공화국과 대사급 수교.
  42. 1976년 10월 12일 중화인민공화국과 대사급 수교.
  43. 1980년 6월 25일 중화인민공화국과 대사급 수교.
  44. 1982년 03월 26일 중화인민공화국과 대사급 수교.
  45. 현지 시각으로 12월 20일
  46. 현지 시각으로 4월 30일

각주[편집]

  1. 실제로 대한민국중화민국과 약 45여년간 수교해 왔었지만, 현재 중화인민공화국과의 외교 관계를 중화민국까지 소급하여 셈하지는 않고 있다.
  2. “마잉주, 對中 외교전 중단 선언”. 연합뉴스. 2008년 4월 24일. 2013년 10월 1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09년 1월 10일에 확인함. 
  3. “감비아, 대만과 외교관계 단절”. 이투데이. 2013년 11월 16일. 
  4. 엘살바도르, 대만과 단교하고 中과 손잡아..대만 수교국 17개로 연합뉴스, 2018.8.21.
  5. 한국, 대만을 잊었는가?, 매일경제신문
  6. “국가별 수출입”. 한국무역협회. 
  7. “대만 "남미 유일수교국 파라과이와 관계유지 희망". 연합뉴스. 2008년 4월 25일. 
  8. 이상민 (2010년 9월 8일). “대만, 미사일부품 北수출 기업적발(종합)”. 연합뉴스. 2010년 9월 14일에 확인함. 
  9. http://www.oie.int/eng/OIE/PM/en_PM.htm
  10. “UNESCO, page2” (PDF). 2013년 1월 16일에 원본 문서 (PDF)에서 보존된 문서. 2011년 1월 31일에 확인함. 
  11. List of UIC members
  12. Separate Customs Territory of Taiwan, Penghu, Kinmen, and Matsu
  13. Sistema de la Integración Centroamericana SICA
  14. Memorandum of Understanding dated 14 May 2005 between the PRC and the WHO
  15. Invitation letter dated 30 April 2009 from the Director General of the WHO to the Minister for Health, Chinese Taipei
  16. “台灣宣布即日與馬其頓斷交”. BBC 중문판. 2001년 6월 18일. 2017년 3월 3일에 확인함. 
  17. “台灣正式宣佈與瑙魯斷交”. BBC 중문판. 2002년 7월 23일. 2017년 3월 3일에 확인함. 
  18. “基里巴斯轉與台灣建立邦交”. BBC 중문판. 2003년 11월 7일. 2017년 3월 5일에 확인함. 
  19. “利比里亞轉與大陸復交”. BBC 중문판. 2003년 10월 12일. 2017년 3월 3일에 확인함. 
  20. “中華民國(台灣)政府與萬那杜共和國政府基於平等互惠之原則暨發展兩國友好關係之共同意願,決定自二○○四年十一月三日起建立大使級外交關係”. 중화민국 외교부. 2004년 11월 3일. 2015년 7월 1일에 확인함. 
  21. “中華民國(台灣)政府與諾魯共和國政府基於平等互惠之原則及發展兩國友好關係之共同意願,決定自2005年5月14日起恢復大使級外交關係。”. 중화민국 외교부. 2005년 5월 14일. 2015년 7월 1일에 확인함. 
  22. “格瑞那達政府在中國利誘下,決定與中國建交,中華民國政府至表遺憾。中華民國政府為維護國家尊嚴與利益,決定自即日起終止與格瑞那達之外交關係,並停止一切援助計畫。”. 중화민국 외교부. 2005년 1월 27일. 2015년 7월 3일에 확인함. 
  23. “中華民國外交部茲鄭重聲明:塞內加爾共和國政府在中國金錢利誘及壓力下宣佈與中國「復交」,而將僅與我維持經濟、商業暨文化關係。中華民國政府對此至表遺憾,並基於維護國家尊嚴、主權及人民福祉,決定自即日起中止與塞內加爾共和國之外交關係,並停止一切援助計畫。”. 중화민국 외교부. 2005년 10월 25일. 2015년 7월 3일에 확인함. 
  24. “中華民國(台灣)外交部茲鄭重聲明:查德共和國政府頃屈服來自中國之強大壓力,決定與中國「復交」,中華民國(台灣)政府對此至表遺憾。中華民國(台灣)政府為維護國家尊嚴、主權及人民福祉,決定自即日起中止與查德共和國之外交關係,並停止一切援助計畫。”. 중화민국 외교부. 2006년 8월 6일. 2015년 7월 1일에 확인함. 
  25. “中華民國(台灣)政府與聖露西亞(St. Lucia)政府基於平等互惠之原則及發展台聖兩國友好關係之共同意願,決定自即日起恢復大使級之全面外交關係。”. 중화민국 외교부. 2007년 5월 1일. 2015년 7월 1일에 확인함. 
  26. “哥斯達黎加與台灣斷交轉與中國建交”. BBC 중문판. 2007년 6월 7일. 2017년 3월 3일에 확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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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 “為維護國家尊嚴、主權與利益,中華民國(臺灣)政府決定,自即日起中止與馬拉威共和國之外交關係,並停止一切援助計畫。”. 중화민국 외교부. 2008년 1월 14일. 2015년 7월 1일에 확인함. 
  29. “台灣政府宣佈同岡比亞斷交”. BBC 중문판. 2013년 11월 18일. 2017년 3월 3일에 확인함. 
  30. “中華民國政府基於維護國家尊嚴,決定自即日起終止與聖多美普林西比民主共和國之外交關係”. 중화민국 외교부. 2016년 12월 21일. 2016년 12월 21일에 확인함. 
  31. “中華民國政府基於維護國家尊嚴,決定自即日起終止與巴拿馬之外交關係”. 중화민국 외교부. 2017년 6월 13일. 2017년 6월 13일에 확인함. 
  32. “中華民國政府基於維護國家尊嚴,決定自即日起終止與多明尼加的外交關係”. 중화민국외교부. 2018년 5월 1일. 2018년 5월 1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