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령 홍콩
영국령 홍콩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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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屬香港 / British Hong Kong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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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어 | 프랑스어: "Dieu et mon droit" / "신과 나의 권리"(神과 나의 權利) 영어: "God and my right" | |||
국가 | 하느님, 여왕 폐하를 지켜 주소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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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 빅토리아 시티 | |||
정치 | ||||
정치체제 | 왕령식민지 (1843 - 1981) 영국의 해외 영토 (1981 - 1997) | |||
영국 국왕 총독 | 빅토리아 여왕 (1841-1901) 엘리자베스 2세 (1952-1997) 크리스 패튼 (1992-1997) | |||
역사 | ||||
• 할양 • 신제 조차 • 반환 | 1842년 8월 29일 1889년 6월 9일 1997년 7월 1일 | |||
인문 | ||||
공용어 | 영어, 중국어, 광둥어 | |||
경제 | ||||
통화 | 홍콩 달러 |
영국령 홍콩(영어: British Hong Kong, 중국어: 英屬香港)은 1841년부터 1997년 6월 30일까지의 기간에 왕령식민지와 영국의 종속 지역으로 있었던 홍콩을 말한다.
역사[편집]
대영제국의 동인도 회사가 광둥성 근처 도시에 무역항을 건설한 이후에 이루어졌다. 1839년에 청나라의 승인으로 이루어진 아편 수입 금지안은 청나라와 대영제국 사이의 제1차 아편 전쟁을 낳았다. 홍콩 섬은 1841년 영국군에 의해 점령되었고, 난징 조약으로 청나라로부터 홍콩섬이 정식으로 양도되었다. 이듬해 영국은 빅토리아 시티의 건립과 함께 홍콩총독부를 신설하였다. 1860년 청나라의 제2차 아편 전쟁 패배 이후에 주룽(구룡)이 베이징 조약 하에 영속적으로 대영제국에 귀속되었다. 1898년에 대영제국은 홍콩과 인접한 북부 섬과 신 행정구역으로 알려진 신제(新界,신계)를 99년 간 조차받았다. 19세기의 홍콩은 대영제국의 주요 무역항이었다. 홍콩은 영국의 물산 집산지로써 활용되는 자유 무역항으로 선언되었고 주룽 반도-광동간 철도가 개통되었으며 또한 영국식 교육 시스템이 도입되었다. 1870년대~1880년대 이후 홍콩은 아시아의 영국령 중에서 가장 빅토리아 문화가 개화된 지역이 되었다.
1941년 12월 8일 일본 제국은 홍콩을 점령했으나 1945년 8월 영국이 다시 수복하였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되고 중화민국의 중국 대륙 지배가 상실되자, 더 많은 이민자들이 중국 공산당의 억압을 피해 홍콩으로 도망쳐 왔다. 1978년 중화인민공화국이 경제 개혁안을 시작했을 때, 홍콩은 중국 대륙에 투자되는 외국 자금의 주요 공급원이 되었다. 이듬해 경제 특구가 홍콩 바로 북쪽에 있는 선전에 건립되었고, 재정과 금융 분야에서 계속해서 영향력이 커지면서 홍콩의 산업은 제조업과 섬유에서 점진적으로 서비스 업종으로 대체되었다. 홍콩 주권 양도는 1997년 7월 1일 자정을 기점으로 치러졌고 둥젠화는 홍콩의 첫 번째 홍콩 특별행정구 정부 행정장관으로 취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