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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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국가(分断國家)란 본래는 하나의 국가를 지향하나, 실제로는 그 영역 전체를 지배하는 단일 통치 기구가 없어 이데올로기의 대립에 의해 복수의 지역으로 나뉘어 각각 다른 통치 기구가 공존하는 불안정한 상태를 말한다.

보통 일방의 주권만 부정되는 분리주의 또는 독립운동 따위의 개념과 달리, 궁극적으로는 통일국가에 대한 공통적 목표의식을 가지고 통일 의지를 표방하므로 분리를 부인하며, 따라서 쌍방의 주권이 동시에 부정된다. 분쟁 당사자들이 거의 동일한 범주에 대한 주권을 동시에 주장하는 적극적 권한 쟁의 형태의 대규모적 영토 분쟁의 양상을 보인다.

양자간의 통일에 대해서는 대체로 동의하지만, 통일에 대한 방법론과 권력 구성을 두고 이견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기 때문에 분단 상황은 오래 지속되는 편이다. 외부의 시선에서 볼 때는 각각 분리된 별개의 국가로 인식하기도 하고, 하나의 정체만을 인정하고 다른 정체의 주권은 상대 정체에 속한 것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현존하는 분단국가[편집]

한국의 분단1945년38도선을 경계로 미국소련이 각각 분할점령하면서 조짐을 보이게 되었다. 1948년 UNTCOK의 주관아래 실시된 5.10 남한 총선거를 바탕으로 8월 15일 대한민국이 북위 38도선 이남에 수립되었으며, 동년 9월 9일북조선인민위원회를 근간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북위 38도선 이북에 수립되었다. 1950년 6월 25일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대한민국에 대하여 한국 전쟁을 일으켰다가 1953년 7월 27일 체결된 휴전 협정 이후부터 현재와 같은 경계를 이루며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유엔의 감시 하에 휴전 상태에 있다. 양측은 초반 할슈타인 독트린 방식의 하나의 한국 외교원칙을 내세웠으나, 현재는 동시승인 및 수교를 사실상 용인하고 있으며 1991년에는 양측 모두 유엔에 가입하였다. 이 여파로 국제사회에서 분단국가보다는 각각의 독립된 주권국가로 인식되는 빈도가 월등히 높아져 분단국가로 분류되지 않기도 한다.
1912년 청나라에서 일어난 신해 혁명의 결과로 중화민국이 건국된 이후, 현대 중국의 분단은 1949년 10월 1일중국 공산당마오쩌둥천안문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을 선언하고, 중국 국민당장제스중화민국타이베이로 천도(국부천대)하면서 시작되었다. 양측은 현재까지 할슈타인 독트린 방식의 하나의 중국 외교원칙을 고수하여 동시수교를 불허하고 있으나, 1971년 10월 25일 유엔 총회에서 채택된 2758호 결의유엔에서 중국 대표의 지위를 갖던 중화민국의 대표 자격이 경질되자 탈퇴하였고, 이 여파로 중화민국의 외교적 입지가 현격히 좁아져 사실상 중화인민공화국이 타국과의 외교관계를 압도하게 되었다. 중화민국에서는 리덩후이를 시작으로 현실론적 관점에 입각한 두 개의 중국을 주장하기도 하며, 본성인의 주도에 의한 탈중국화 운동까지 가세하여 매우 복잡한 정세를 가지고 있다.
키프로스 섬의 분단은 1974년그리스 군사 정권의 지지를 받은 그리스계 민족주의자들이 쿠데타를 일으켰고, 이에 터키는 터키계 동족 보호를 명분으로 동년에 키프로스를 침공하여 북부를 터키군이 점령하였다. 터키의 키프로스 침공미국북대서양 조약기구로부터 비밀리에 후원을 받았다. 극단적 민족주의의 발호로 일어난 이 분쟁으로 인해 수 천 명의 난민이 발생하였으며, 터키의 후원으로 키프로스 섬 북부에서 실권을 잡은 터키계의 북키프로스 정부가 수립되면서 남북으로 분단되었다. 분단된 양측은 유엔에 의해 설정된 휴전선(Buffer Zone)을 사이에 두고 평화유지군의 중재로 제어되고 있다. 한편 북키프로스터키의 괴뢰 정권으로 간주한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는 북키프로스에 대한 교류를 지양하라는 취지로 유엔 회원국에 권고함으로써 현재까지 북키프로스는 터키만이 유일한 수교국으로 외교적 고립을 면치 못하고 있고, 남부의 키프로스 공화국의 경우 분단 이전인 1960년부터 유엔 회원국 지위를 유지해오고 있으며, 2004년 5월부터 유럽 연합 회원국으로 가입하였다.

과거의 분단국가[편집]

베트남의 분단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일부였던 베트남이 1945년 9월 2일호치민의 주도로 하노이바딘 광장에서 베트남의 독립을 선언하고 베트남 민주 공화국의 수립을 선언하였다. 베트남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은 프랑스가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을 벌이게 되었으나, 1954년 3월 13일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베트남군이 대승을 거두고 프랑스군이 철수를 하면서 베트남은 완전한 독립을 맞았다. 그러나, 서구 열강은 제네바 협정을 통해 베트남을 다시 북위 17도를 기준으로 분단시켰고, 기존에 약속한 전국 선거를 거부한 채 응우옌 왕조의 마지막 황제였던 바오 다이를 내세워 베트남국을 수립하였다. 베트남국은 얼마 지나지 않아 응오딘 지엠의 주도로 베트남 공화국으로 변모하여 남북 대결이 본격화되었다. 미국통킹만 사건을 빌미로 베트남 전쟁을 일으켰으나, 결국 1973년 파리 협정을 맺고 미군은 철수하였다. 1975년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의 주도로 베트남 공화국의 수도 사이공이 함락되었고, 1976년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남북이 통일되었다.
예멘은 과거에 오스만 제국령이었던 북예멘(예멘 아랍 공화국)과, 영국령이었던 남예멘(예멘 인민 민주 공화국)으로 분단되어 있었다. 1990년에 남북 통일정부 구성에 평화적으로 합의하였으나, 얼마 후 권력분배에 관한 갈등이 촉발하여 다시 분단 상황으로 돌아가 남북대전으로 비화했다. 이 내전은 군사력에서 우위에 있던 북예멘의 군대가 남예멘의 수도 아덴을 점령하여 남예멘이 멸망하면서, 비로소 예멘의 통일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최근에는 옛 남예멘 지역을 중심으로 분리독립 요구가 증가하고 있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한편 북예멘 중 상당수 지역에서 우세한 시아파를 믿는 후티가 반란을 일으켰고, 후티가 수도를 장악한 이후 남예멘 분리주의자들은 남예멘의 독립을 유보하고 남예멘 출신 하디대통령의 정통 예멘정부를 따르기로 하면서 또다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독일은 네 개의 점령지역으로 나뉘었으며, 연합국에 의해 독일이 분할 점령된 원래 목적은 독일이 재결합하지 못하게 억제하여 전쟁을 도모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냉전의 영향으로 프랑스·영국·미국의 점령 지역은 독일 연방 공화국이 수립되었고, 소비에트 연방의 점령 지역은 일부가 폴란드인민공화국소비에트 연방으로 편입된 후 독일 민주 공화국이 수립되었다. 다만 서베를린소비에트 연방의 점령 지역이 아니었던 탓에 독일 연방 공화국월경지가 되어 지리적으로 수도의 역할을 하지 못했고, 독일 민주 공화국에 둘러싸인 서베를린은 독일 분단을 상징하는 도시가 되었다. 1961년 독일 민주 공화국서베를린의 고립을 촉진하기 위해 베를린 장벽을 세우기도 하였다. 1990년 10월 3일 독일 민주 공화국이 해체되면서 독일 민주 공화국의 관할에 있었던 독일 지역이 독일 연방 공화국에 병합하는 형태로 독일의 재통일이 완성되었다.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