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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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두영
鄭斗英
출생 1968년 12월 31일(1968-12-31) (50세)
대한민국 부산광역시
국적 대한민국
신장 163cm
체중 59kg
혈액형 B형
혐의 연쇄살인
죄값 사형(집행되지 않음)
피해자 수 18
사망자 수 9
부상자 수 9
범행기간 1999년 6월 2일-2000년 4월 8일[1]
주무기 둔기
체포일자 2000년 4월 14일
수감처 대전교도소

정두영(鄭斗英, 1968년 12월 31일 ~ )은 1999년 6월부터 2000년 4월까지 9명의 시민을 살해한 연쇄 살인자이다. 정두영은 1999년 6월부터 강도행각을 벌이면서 17명을 살상하였다.

생애[편집]

정두영은 1968년 부산직할시에서 3남 1녀중 막내로 태어났지만 2세 때 아버지가 숨지고 어머니가 재혼하자 삼촌집에 맡겨졌다. 정두영은 늘 자신의 왜소한 외모 탓에 심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는데 1986년 처음으로 살인을 저질렀을 때의 동기도 단지 그가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고아원에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정두영은 체포 후 진술에서 남들처럼 평범한 가정을 갖고 싶었다고 했다고 한다. 이를 위해 그때까지 절도 및 강도로 모은 돈을 쓰지 않고 통장에 모았고 그 총액은 1억 3천만 원에 달했다. 그는 강도행각으로 총 10억을 모아 결혼도 하고 PC방과 아파트를 마련할 계획이었다고 했다.[2]

2016년 9월 28일 대전 교도소에 수감되어있던 도중 작업장에서 일을 하며 몰래 만들어 둔 사다리를 이용해 탈옥을 시도하던 중 붙잡힌 사실이 보도되었다. 3개의 교도소 담 중 2개를 뛰어넘고 마지막 담을 넘지 못하고 붙잡혔으며 정확한 탈옥시도 날짜는 대전교도소 측에서 밝히지 않고있다.[3]

정두영의 친형은 공범이었는데 장물을 처리 하는 일을 하였다. 친형은 정두영이 살인을 했다는 사실은 알지 못하였다.

주요 사건 일지[편집]

  • 1999년 6월 2일 부산 서구 부민동의 부유층 주택가에서 혼자 집을 지키던 가정부 이영자를 머리와 얼굴 부위가 거의 으스러질 정도로 잔혹하게 가격한 후 사망에 이르게 하였다. 당시 피해자의 집이 부산고등검찰청의 검사장 관사의 옆집이라는 사실이 화제가 되어 수사에 참고로 하였으나 후일 우연한 일로 밝혀졌다.
  • 1999년 9월 15일 부산 서구 동대신동 고급빌라촌에서 금품을 훔치면서 역시 가정부를 잔혹하게 폭행하여 사망에 이르게 하였다.
  • 1999년 10월 21일 울산광역시 남구의 고급 주택에서 어머니(53)와 아들(24)을 둔기로 수십 차례 강타하여 사망에 이르게 하였다. 이 사건을 통해 경찰에서는 일반 강도살인에서는 볼 수 없는 '과다 공격'에 대해 주목하였으나 부산에서 발생한 이전의 사건들과의 연관성은 전혀 검토되지 않았다.
  • 2000년 3월 11일 부산 서구 서대신동 고급 주택에서 두 명의 여성을 야구 방망이로 때려 살해하려했으나 한명이 아기가 있다며 살려달라고 호소하자 중상만을 입히고 '아기 잘 키워, 신고하면 죽인다'라는 말과 함께 이불을 덮어씌운 후 살려준다. 경찰에서는 이 생존자의 진술을 토대로 2,30대 나이에 키가 작고 왜소한 용의자의 몽타주를 작성해 전국 경찰에 수배한다.
  • 2000년 4월 8일 부산 동래구 DCM 철강 정진태(76) 회장의 집에서 정 회장과 가정부를 칼로 찔러 살해하고 정 회장의 친척인 김할머니를 주먹과 발로 마구 때려 실신시키고는 사망한 것으로 착각하여 현금과 수표 2,430만원을 훔쳐 달아났으나 김 할머니는 출동한 경찰에 의해 병원에 응급 후송된 후 목숨을 건지고 이후 충남 천안에서 잡힌 정두영을 직접 대면하여 부산, 경남 지역 연쇄 살인 사건의 범인임을 지목하여 일체의 범행에 대한 정두영의 자백을 이끌어낸다.

형사 재판[편집]

1심[편집]

2000년 7월 21일. 부산지방법원은 강도살인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된 정두영에게 유죄를 모두 인정하여 사형을 선고했고, 장물취득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된 그의 형 정부영과 또다른 공동 정범 김종준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각각 선고했다. 피고인들은 이에 불복하여 부산고등법원에 항소장을 제출했다.[4]

2심[편집]

2000년 11월 30일, 부산고등법원은 이들에 대한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항소를 모두 기각하고 정두영에게 사형, 정두영 형 정부영과 공범 김종준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유지했다. 정두영은 대법원에 상고를 포기, 사형이 확정되어 현재는 대전교도소에 복역중이다.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1]
  2. “[연쇄살인범 정두영]"돈 마음껏 쓰고싶어 범행". 동아일보. 2000년 4월 16일. 
  3. '연쇄살인범 정두영' 대전교도소 탈옥 시도…담 3곳 중 2곳 넘어”. SBS. 2016년 9월 28일. 
  4. “검찰, 연쇄살인범 정두영에 사형 구형”. 연합뉴스/동아일보. 2000년 7월 7일. 2010년 10월 24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09년 12월 19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