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석 (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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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석
李康石
이승만 일가와 이기붕 일가 (사진에서 맨 오른쪽에 있는 이가 이강석)
이승만 일가와 이기붕 일가
(사진에서 맨 오른쪽에 있는 이가 이강석)
출생일 1937년 2월 5일
출생지 일제 강점기 경성부
사망일 1960년 4월 28일(1960-04-28) (23세)
사망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경무대
본관 전주(全州)
별명 호(號)는 산남(山南), 산은(汕隱)
종교 유교(성리학) → 개신교(감리회)
정당 무소속
부모 이승만(양부)
프란체스카 도너(양모)
이기붕(생부)
박마리아(생모)
친척 이강희(누나)
이강욱(남동생)
이봉수(양형)
이인수(양형)
복무 대한민국 육군
복무 기간 1958년 ~ 1960년
최종 계급 대한민국 육군 소위
지휘 소대장, 작전장교

이강석(李康石, 1937년[1] 2월 5일 ~ 1960년 4월 28일)은 대한민국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육군 장교이기붕의 아들이자 이승만의 양자이다.

생애[편집]

이강석은 1957년 3월 26일, 이승만의 83세 생일에 맞추어 양자로 입적되었다. 부부였던 이승만프란체스카 사이에 소생이 없었다. 이승만에겐 전처인 박승선(朴承善, 1876년 12월 15일 ~ 1911년 6월 13일)과의 사이에 이봉수(李鳳秀, 1896년 4월 17일 ~ 1904년 3월 16일)란 아들이 있었지만, 미국 체류 중에 병사했으며 이승만은 그 죽은 아들을 늘 잊지 못했다고 한다.

아들에 대한 이승만의 집착과 이기붕의 아들인 이강석에 대한 프란체스카의 애정으로 이강석은 이승만의 83세 생일에 맞춰서 양자로 입적된다.

양자 입적 후 이강석과 관련된 추문 역시 들끓었다. 이강석은 서울대 법대를 다녔는데, 학교에서는 이강석의 ‘부정편입’ 문제로 말이 많았다. 서울대 법대생들이 동맹휴학에 돌입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하자, 이강석은 서울대 법대를 중퇴하고 육군사관학교로 재입학하여 14기로 나왔으며, 대한민국 육군 소위로 임관하였다.

이승만의 양자로 입적된 이강석의 권력도 역시 막강했는데, 이를 근거로 대표적인 예가 어느 청년이 이강석을 사칭한 사건인 '가짜 이강석 사건'을 들을 수 있다.

1959년에는 미국 유학, 5월 25일 미국 포트 베닝 (Fort Benning) 보병학교에서 군사 교육을 마치고 귀국했다.[2]

이강석은 수많은 정치테러와 부정선거로 인해 수많은 국민들을 죽게 만들었던 아버지 이기붕을 매우 증오했었다. 1960년 3·15 부정선거에 대해 민중들이 항거한 4·19 혁명으로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 성명을 발표한 지 이틀 뒤인 4월 28일, 경무대에 비서가 쓰던 36호실에서 가장 증오했고 미국으로 도주하려고 했던 아버지 이기붕과 어머니 박마리아와 사랑했던 남동생 이강욱을 권총으로 쏘고 자살했다.

가족 관계[편집]

  • 아버지 : 이기붕 (李起鵬, 1896년 12월 20일 ~ 1960년 4월 28일)
  • 어머니 : 박마리아 (朴瑪利亞, 1906년 4월 19일 ~ 1960년 4월 28일)
  • 누나 : 이강희 (李康姬, 1935년 12월 19일 ~ 1949년 5월 31일)
  • 남동생 : 이강욱 (李康旭, 1940년 5월 26일 ~ 1960년 4월 28일)

학력[편집]

이강석을 연기한 배우들[편집]

TV 드라마[편집]

함께 보기[편집]

각주[편집]

  1. 이기붕 일가 자살 기사를 실은 1960년 4월 29일 동아일보 기사에는 이강석의 나이를 24세로 기재하고 있다.
  2. e-영상역사관 » 대한뉴스 :클립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