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령 남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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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령 남씨 (宜寧 南氏)
관향 경상남도 의령군
시조 남민 (南敏)
주요 중시조 남군보 (南君甫)
주요 인물 남재, 남은, 남경문, 남지, 남간, 남휘, 남이, 남효온, 남치신, 남치근, 남곤, 남포, 남이공, 남이흥, 남구만, 남극관, 남태제, 남공철, 남병길, 남정철, 남상돈, 남광우, 남덕우, 남재희, 남평우, 남주홍, 남충희, 남기춘, 남경필, 남현희, 남윤도, 남태희
인구(2015년) 162,729명
의령 남씨 대종회

의령 남씨(宜寧 南氏)는 경상남도 의령군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이다.

시조 남군보(南君甫)는 고려 충렬왕 때 통헌대부(通憲大夫) 추밀원직부사(樞密院直副使)이다.

역사[편집]

남씨성(南氏姓)은 신라 경덕왕 14년 시조(始祖) 영의공(英毅公) 민(敏)이 왕으로부터 남씨로 사성(賜姓) 받은 것이 시초이다. 1200년대 고려 후기에 이르러 남씨는 영양, 의령, 고성 삼관(三貫)으로 나누어졌다.

의령남씨의 관조(貫祖)는 고려 통헌대부(通憲大夫) 추밀원직부사(樞密院直副使) 남군보(南君甫)이다.

인물[편집]

의령 남씨는 조선 개국에 공을 세움으로서 중앙정계의 중추에 진출하여 상신(相臣) 6명과 대제학 6명을 배출하였다. 개국공신 남재(南在), 남은(南誾) 형제 중 남재의 후대에서 많은 경상(卿相)과 석학이 나왔다. 남재의 손자 3형제 중 남지(南智)는 좌의정, 남간(南簡)은 예문관 직제학, 남휘(南暉)는 태종의 부마(駙馬)가 되었다. 이밖에 중종 때 영의정을 지낸 남곤(南袞), 세조 때 장군 남이(南怡), 생육신의 한 사람인 남효온(南孝溫), 소북(小北)의 영수 남이공(南以恭), 소론(少論)의 영수 남구만(南九萬), 영조 때 양관대제학(兩館大提學)을 지낸 남유용(南有容), 순조 때 영의정을 역임한 남공철(南公轍), 철종 때 대제학을 지낸 남병철(南秉哲), 인조 때 우의정과 좌의정을 역임한 남이웅(南以雄), 정묘호란 때 평안도병마절도사로서 안주성을 사수하다가 자결, 순절한 남이흥(南以興) 등이 대표적 인물이다.

현대 인물로는 전 국무총리 남덕우, 현 경기도지사 남경필이 있다.

항렬자[편집]

  • 대종중

충청남도 아산군 도고면 시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