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나리 유괴 살해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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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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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69년 (48–49세)
대한민국
혐의 살인, 특정범죄가중처벌법위반(약취·유인)죄
죄값 무기징역
범행동기 금전적 문제 및 연극성 성격장애
현황 수감중
수감처 청주여자교도소


박나리 유괴 살해 사건1997년 8월 30일 1989년생인 박나리(여성, 당시 8세)가 임신 중인 여성 전현주에게 납치되어 살해된 사건이다.[1] 피해자의 이름 그대로 박초롱초롱빛나리 유괴 살해 사건이라고도 하며, 사건의 통칭은 보도에서 대부분 살해된 박초롱초롱빛나리 양의 이름을 줄여서 부른 것이다. 전현주는 원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뒤 대법원에서 확정판결을 받고 현재 복역 중이다.

유괴 이전의 전현주[편집]

1969년 서울에서 태어난 전현주는 직업 군인이던 아버지를 따라 전국 각지를 이사다니며 유년기를 보냈고, 서울에서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나왔다. "의사 아니면 문필가가 되고 싶다"고 하였지만 무역학과에 입학하였고, 졸업 후 번번이 취업에 실패한 후 응급구조학 전공으로 미국 유학을 떠났으나 중도에 포기하였다. 1995년 전문대 문예창작과예 입학한 후 연극을 하던 남편과 1997년 2월 결혼했다.[1]

전현주는 평소에도 자주 거짓말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령 남편조차 학교를 제대로 졸업한 줄 알고 있었으나, 실제로는 미등록 제적된 상태였다. 주변에도 부모의 재산을 과시해왔으나, 공직자 재산 공개에 따르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1]

전현주는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 뒤, 친정으로부터의 재정지원없이 살면서도 씀씀이를 줄이지 못해 사채와 신용카드 빚을 만들었고, 집이 차압당하기까지 했다.[2] 경찰 조사에서는 470만원의 빚이 있다고 했으나, 검찰 조사 결과 5천만원의 빚이 있던 것으로 드러났다.

유괴 과정[편집]

전현주는 1997년 8월 30일 오후 3시경, 서울 잠원동 한신8차아파트 부근 뉴코아문화센터에서 영어수업을 마치고 나오던 초등학교 2학년생 박초롱초롱빛나리를 유인했다. 이 후 전현주는 8월 30일 오후 6시, 31일 오후 3시 52분, 밤 9시 3분까지 총 세차례에 걸쳐 명동과 남산 부근의 공중전화에서 박나리의 부모에게 2천만원을 요구하는 전화를 걸었다. 전화 뒤 명동 커피숍에 있다가 경찰의 수사와 추적에 걸린 전현주는 위기 의식을 느껴 박양을 목졸라 살해하고 경찰에 의해 검거됐다.

수사 및 전현주 체포[편집]

경찰은 명동에서 전화가 걸려왔을 당시 주변 커피숍에서 신분을 조사했고, 전현주는 이 과정에서 신분을 조사당했다. 9월 11일 전현주의 자택 주변에서 형사들이 배회함을 안 전현주의 아버지가 수사본부에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물었고, 대화 중 전현주의 아버지는 9월 1일 전현주가 가출했다는 사실을 경찰에게 알려줬다. 경찰은 전현주의 부모, 외삼촌과 통화 1시간 반 뒤, '행주산성에서 만나'의 전화 음성이 전현주의 것임을 확인했고, 결국 9월 12일 오전 9시 20분, 신림동의 여관에서 은신 중이던 전현주를 체포했다. 전현주는 검거 당시 임신 8개월의 임신부였다. 또 오전 11시 45분 경 동작구 사당동의 남편 극단 사무실에서 등산 가방 속에 있는 박나리 양의 시신을 발견했다.

경찰 조사[편집]

전현주는 경찰조사에서 성폭행에 의한 강압으로 범행을 저질렀으며 5명의 공범이 있다고 하다가 단독 범행이라고 주장하는 등 진술이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일부에서는 임신부 혼자 하기 힘들다는 점을 들어 공범이 있을 수 있다고 추측하기도 했다. 하지만 경찰은 전현주가 다른 공범들의 구체적인 인상착의를 제시하지 못한다는 점과 엉성한 수법, 적은 몸값을 이유로 단독범행임을 결론내렸다.

기소 및 재판[편집]

검찰에서 전현주는 다시 2명의 공범이 있는 주장을 폈다. 전현주의 남편과 어머니 역시 공범이 있다는 주장을 했으나, 검찰은 은행 CCTV에서 전현주와 박나리가 단 둘이 있으며, 메모지에서 범행 계획이 발견된 점을 근거로 단독범행이라고 발표했다. 전현주의 출산 뒤 진행된 공판에서도 전현주는 자신이 살해한 것이 아닌, 공범이 살해했다고 주장했다. 2차 공판에서 전현주는 자신을 성폭행한 20대 남자 2명과 여자 1명 등 총 3명의 공범이 더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증언대에 선 한 정신 감정의는 전현주에게 "연극성 성격장애"가 있다며 전현주의 공범 주장의 신빙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결국 검찰은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의 약취유인살해죄를 적용해 사형을 구형하였으나, 전현주는 최후 진술에서도 공범이 살해했다는 주장을 폈다.

판결[편집]

서울지검 형사3부 강신엽 검사는 사형을 구형했으나, 서울지방법원 형사합의21부(이윤승 부장판사)는 초범이고, 우발적 살인이라는 점을 참작하여 전현주에게 무기징역(특정범죄가중처벌법위반(약취·유인)죄)을 선고하였다. 항소심에서도 역시 무기징역이 선고되었고, 대법원은 전현주의 상고를 기각해 원심을 확정했다.

영향[편집]

당시의 수서 경찰의 공개수사 시기에 대한 논란이 있었었다. 실종 5일 후인 9월 3일부터 부모의 동의에 따라 경찰이 공개수사에 착수했으나, 일부에서는 생사도 불투명한 상태에서 불확실한 몽타주를 바탕으로 경찰이 공개수사를 결정한 것은 성급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공개수사를 하게 되면 범인의 검거 가능성이나 어린이의 생존 가능성 모두 줄어드는데, 이 사건의 경우 경찰이 명동에서 범인을 놓치면서 어쩔 수 없이 공개 수사로 가게 되었다는 분석이 있다.[3]

이 사건 수사가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며 학부모들이 자녀들을 자동차로 귀가시키는 사례가 부쩍 늘었다.[4] 한편, 판결 이후 전현주씨가 출산한 아기는 얼마 후 미국으로 입양되었으며, 전현주씨는 현재까지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다.

각주[편집]

  1. “[뉴스 파일] 진술 번복한 나리양 유괴용의자 전씨”. 조선일보. 1997년 9월 24일. 
  2. 최정훈·지정용 (1999년 9월 14일). “흡사 소설쓰듯… 범행은폐 메모까지/유괴범 전현주 ‘두얼굴 삶’”. 경향신문. 2010년 3월 15일에 확인함. 
  3. 전영식 (1997년 9월 13일). “생명 보호냐… 범인 검거 우선이냐/박 나리양 계기 과제로”. 문화일보. 
  4. 이준호·지정용 (1997년 9월 10일). “‘나리양 유괴’후 학부모 불안심리 확산”. 경향신문. 2010년 3월 15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