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범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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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범곤
禹範坤
경향신문 1982년 4월 27일자에 실린 사진
경향신문 1982년 4월 27일자에 실린 사진
출생 1955년 2월 24일
대한민국 경상남도 부산시 초량동[1]
사망 1982년 4월 27일(1982-04-27) (26세)
대한민국 경상남도 의령군 궁류면 평촌리
별명 미친호랑이·명사수
직업 경찰관
범행동기 증오범죄
현황 사망(자살)
피해자 수 91
사망자 수 62
부상자 수 29
범행기간 1982년 4월 26일 오후 7시 30분-1982년 4월 27일 오전 5시

우범곤(禹範坤, 1955년 2월 24일 ~ 1982년 4월 27일)은 하룻밤 사이 62명을 연속살해하고 자살한 대한민국경찰관이다. 1982년 4월 26일 경상남도 의령군 궁류면 궁류지서(지금의 궁류치안센터)에서 근무하던 중 총기난사로 다수의 마을 주민을 살상하고 수류탄으로 자살했다.

생애[편집]

부산 출생으로 해병대 복무 중 특등사수로 뽑히기도[2] 했던 순경 우범곤은 경찰관으로 임용된 후 1981년 4월부터 1982년 2월까지 청와대에서 근무한 적이 있었지만, 인사 과정에서 탈락하여 1982년 3월 의령군으로 좌천되었고, 동거인과의 사이가 몹시 좋지 않았다.[3] 당시 경찰은 평소 술버릇이 나빴던 우범곤이 동거인과 말다툼을 벌인 뒤 흥분 상태에서 우발적인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결론지었다.[4]

총기 난사 사건[편집]

1982년 4월 26일 오후 7시 30분경에 예비군 무기고에서 카빈소총 2정, 실탄 180발, 수류탄 7발을 들고 나왔다. 우범곤은 우선 우체국에서 일하던 집배원과 전화교환원을 살해하여 외부와의 통신을 두절시킨 후, 궁류면 내 4개 마을을 돌아다니며 전깃불이 켜진 집을 찾아다니며, 총을 쏘고 수류탄을 터뜨렸다. 자정이 지나자 우범곤은 총기 난사를 멈추고 평촌리 주민 서인수의 집에 들어가 일가족 5명을 깨운 뒤, 4월 27일 새벽 5시경 수류탄 2발을 터뜨려 자폭했다. 이 사건으로 주민 62명이 사망하는 참혹한 사태가 벌어졌으며, 29명이 중경상을 입었다.[5]

여파[편집]

이 사건으로 당시 내무부 장관이었던 서정화가 자진 사퇴하고, 후임으로 노태우내무부 장관으로 임명되면서 정치계에 입문하게 되었다.[6] 그리고 사건 당시 근무지를 이탈했던 의령서장 등 3명의 경찰관과 방위병 3명이 구속됐다.

한편 당시 의령경찰서장은 직무유기죄로 기소되었으나 당시 법원은 주관적으로 직무를 버린다는 인식이 없고 객관적으로는 직무 또는 직장을 벗어나는 행위가 없다고 보고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수사본부는 범인 우범곤의 수법이 너무 잔인해 일반인과 뇌조직이 어떻게 다른지를 가려내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시신을 보내 뇌세포 검사를 하려 했으나 검사가 불가능해 이를 포기함으로써 영구미제사건으로 남게 됐다.[7]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별명은 미친호랑이·명사수”. 의령군: 동아일보. 1982년 4월 28일. 2015년 5월 8일에 확인함. 
  2. 한홍구 우범곤 의령 총기 난사 사건[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한국현대사이야기》, 2009년 3월 31일 작성, 2011년 7월 4일 확인
  3. 동아일보,1982년 4월 28일,7면
  4. 경향신문,1982년 4월 27일,11면
  5. “28명 죽이고 초상집 문상… 부의금 3000원 낸 뒤 또 난사”. 한겨례. 2012년 4월 18일. 2019년 2월 19일에 확인함. 
  6. 노태우는 이것을 시발점으로 정치를 시작하여 대통령까지 올라가게 된다.
  7. “우순경 뇌해부포기, 세포이상 밝히려다”. 경향신문. 1982년 4월 29일. 2011년 1월 27일에 확인함.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