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언론 통폐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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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언론 통폐합(言論統廢合)은 1980년 당시 대통령이던 전두환의 지시 아래 추진된 언론 통폐합 조치이다.

전개[편집]

1979년 10·26 사건12·12 군사반란을 거치면서 실권을 잡은 전두환은 계엄포고령에 따라 모든 언론 보도를 검열했다. 1980년 2월 전두환은 보안사 정보처에 언론반을 신설했다. 언론반에서는 K공작계획으로 언론인을 회유하고 언론사의 논조를 민주화 여론에 부정적인 방향으로 전환하기 위한 언론 공작을 했다. 이러한 언론인 접촉 공작은 1980년 8월 하순까지 추진됐다. 보안사와 중앙정보부는 파악된 언론인들의 동정, 언론사 시안 등을 토대로 언론의 공정성, 공공성을 회복한다는 구실로 언론 통폐합 사전 작업을 했다. [1]

1980년 11월 11일 신군부는 계엄해제 이후 예상되는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서는 언론통폐합이 필요하다는 인식 하에 언론통폐합의 실행을 결심하고, 허문도 등은 「언론창달계획」을 입안, 1980년 11월 12일 전두환의 결재를 득한 후, 집행을 보안사에 위임했다. 집행을 위임받은 보안사는 1980년 11월 12일 오후 6시경부터 언론사 사주들을 연행․소환하여 통폐합조치를 통보하고 이의가 없다는 내용의 각서를 강제로 받았다.[2]

전두환 대통령의 지시 아래, 1980년 11월 14일 한국방송협회, 신문협회등은 총회를 열고 방송, 신문 통합 등 소위 '대한민국 언론의 개혁'을 골자로 하는 건전 언론 육성과 창달에 관한 결의문을 발의했다. 이에 따라 중앙지 신문은 7개에서 6개로, 지방지 신문도 14개에서 10개로 줄었다. 합동통신과 동양통신이 해체·통합되면서 연합통신이 설립되어 대한민국의 유일한 통신사가 됐다. 방송에서는 한국방송공사민영 방송동양방송, 동아방송, 전일방송, 서해방송, 한국FM을 강제합병하고, 민영방송 문화방송의 주식 65%를 강제인수함으로써 대한민국 최대의 언론 기관이 됐고, 문화방송은 제휴민영방송사인 춘천문화방송, 원주문화방송, 강릉문화방송, 삼척문화방송, 대전문화방송, 청주문화방송, 충주문화방송, 전주문화방송, 광주문화방송, 목포문화방송, 여수문화방송, 대구문화방송, 안동문화방송, 포항문화방송, 부산문화방송, 울산문화방송, 마산문화방송(現MBC경남), 진주문화방송(現MBC경남),, 남양문화방송(現제주문화방송)의 지분의 반 이상을 문화방송으로 강제 양도 시키고, 한국방송공사에게 자사의 주식 65%가 강제로 넘어가며 법적 공영방송이 되었다. 민주화운동에 기여해왔다는 평가를 받는 기독교방송은 보도 기능을 폐지당하고 종교방송만 방송하게 했다. 이후 대한민국의 방송국은 한국방송공사, 문화방송계열국, 기독교방송, 극동방송, 아세아방송 등 26개로 축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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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통폐합은 '건전한 언론의 육성과 발전'을 명분으로 하였지만, 실제 목적은 정치 권력을 통해 언론 기관을 통제하는 것이었다. 이 정책은 노태우 정권이 들어서기 이전까지 계속되었다.

관련 판결[편집]

서울지방법원은 1996년 8월 26일 전두환에 대해서는 사형을, 노태우에 대해서는 징역 22년 6월을 선고하면서, “1980. 7. 이○○ 언론대책반장이 작성한 보도검열 비협조자등 언론계 해직대상자의 명단을 이○○ 문화공보부장관을 통해 해당 언론사에 통보, 각 언론사에서 대상자들의 사직을 종용하여 933명이 해직되게 하고, 일방적으로 언론기관 통폐합 방안을 마련 후 군 정보 수사기관을 동원해 이를 실행하였다.”는 것을 확인했다. 1997년 4월 17일 대법원은 상고를 기각하면서 “국보위 상임위원장 전두환은 공직자 숙정, 언론인 해직, 언론 통폐합 등 중요한 국정시책을 결정하고 이를 대통령과 내각에 통보하여 시행하도록 함으로써, 사실상 국무회의 내지 행정 각 부를 통제하거나 기능을 대신하여 헌법기관인 행정 각부와 대통령을 무력화시킨 사실이 있다”며, 언론인 해직 및 언론통폐합을 내란죄의 일부라고 판단했다.

진실화해위의 조사 결과[편집]

2010년 1월 7일 서울 충무로에 있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는 지난 1980년 11월 당시 전두환 신군부가 정권을 장악할 목적으로 언론통폐합과 언론인 강제 해직을 주도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진실화해위는 2007년 11월 조사 개시 결정 이후 2년 동안 4만5000쪽의 광범위한 자료 수집과 150여명의 관계자 진술, 29개 언론사가 제출한 서면답변과 증빙자료를 토대로 이 같은 내용을 밝혀냈다.

신군부의 언론사 통폐합 및 정기간행물 폐간, 언론인 해직은 법적 근거가 없었다. 통폐합 대상 선정은 80년 4월 언론사주 및 기자 동향 파악을 시작으로 친정부 성향 여부, 특정 정치인과의 친소 여부에 따라 결정됐다. 보안사 요구에 불응할 경우 세무사찰 및 경영감찰 등의 위협도 가했다. 언론사 대표가 부재중일 경우 권한도 없는 총무부장 등에게 대리로 각서를 작성케 했다.

신군부는 또 동향파악을 통해 언론계 저항세력을 30%로 규정하고 이들을 해직하도록 언론사에 강요했다. 해직 언론인 명단은 보안사가 선정해 각 언론사에 전달한 것으로 드러났다. 보안사에서 넘긴 명단은 900여명이었고, 실제 해직된 언론인은 1500명에 달했다고 한다. 특히 해직 언론인 가운데 30여명은 삼청교육대에 3주간 입소해 혹독한 시련을 겪었으며, 나머지 해직 언론인들도 취업이 제한돼 가정파탄, 생계곤란, 불명예 등의 고통을 당했다.

신군부는 내용이 외설적이고 부조리하며 사회불안을 조성한다는 이유로 정기간행물 172종의 등록을 취소시켰지만 이를 뒷받침할 근거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3]

연결 고리[편집]

참고 기사[편집]

  1.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신군부의 언론통제사건 조사결과보고서 32~42쪽
  2. 진실화해위원회 8권 1980년 언론사 통폐합 및 언론인 강제해직 사건 849쪽
  3. 신군부, 권총들이대며 포기각서 강요 (국민일보 2010년 1월8일자)

같이 보기[편집]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