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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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출생 1941년 2월 4일
일제 강점기 한국 전라남도 목포시
거주지 대한민국 대한민국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별칭 지하(地下), 본명은 김영일
학력 서울대학교 미학과 졸업
직업 시인, 작가, 소설가, 사상가,
종교 로마 가톨릭
배우자 김영주
자녀 아들 김원보, 아들 김세희

김지하(金芝河, 1941년 2월 4일 ~ )는 대한민국시인이자 작가이며 사상가이다. 《토지》로 알려진 소설가 박경리의 사위이다. 본명은 김영일(金英一) 이다. 1969년황톳길을 발표하여 문단에 데뷔하였다.

목포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미학과를 졸업했으며, 종교는 본래 개신교였으나 천주교로 개종하였다. 1964년 한일정상회담 반대 시위에 가담하여 구속되었다. 현재는 동국대학교원광대학교의 석좌교수를 겸임하고 있다. 필명은 지하(地下)였으나 뒤에 필명이 굳어져 이름처럼 사용하게 되었다.

목차

[편집] 이력

[편집] 생애 초기

원주중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로 유학, 중동고등학교로 진학했다. 그뒤 서울대학교 미학과에 진학하여 1966년 서울대학교 미학과를 졸업했다. 서울대학교 재학 중에 4·19혁명5·16 군사 정변을 겪었고, 6·3사태 등을 접하면서 그는 학생운동에 가담하여 깊이 관여하게 된다. 1966년 서울대 졸업 후에도 박정희 정권의 장기집권에 반대하는 운동에 가담, 동참하였다.

[편집] 문단 데뷔 이후

1969년황톳길을 발표하여 문단에 정식으로 데뷔하였다. 필명은 '지하'(地下)였는데 이것이 굳어져 이름처럼 사용되면서 이름을 지하(芝河)라 하게 되었다.

1964년 한일회담을 반대한 학생시위에 적극 가담했다가 체포·투옥되어 4개월 동안 옥살이를 했으며, 1970년 정치인과 재벌, 관계의 부패와 비리를 질타한 오적(五賊)을 발표하여 반공법 위반으로 체포·투옥되었다가 풀려났다. 이를 오적 필화 사건이라 한다.

73년 4월 소설가 박경리의 딸 김영주와 결혼했고, 아들 김원보·김세희 형제가 태어났다. 그러나 1974년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의 연루자로 지목 체포되고 긴급조치 4호 위반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후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가 1975년 2월 형집행정지로 석방되었다. 그러나 '인혁당 사건'의 진상을 밝혔다가 같은 해 3월 13일 서울에서 원주 집으로 가려고 나오다가 중앙정보부에 연행 다시 구속되었다.[1] 75년 이후 재판을 받고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가 다시 무기징역에 징역 7년형을 추가로 선고받았다. 유신 정권이 붕괴되고 전두환 정권 출범 이후인 1980년 12월 형집행정지로 석방되었다.

[편집] 생애 후반

1980년대 이후 각 종교의 생명존중 사상을 수용하고 생명운동을 벌이는 데 힘썼다. 1991년 분신정국 당시 김지하는 1991년 5월 5일, 조선일보에 쓴 '젊은 벗들! 역사에서 무엇을 배우는가:죽음의 굿판을 당장 걷어 치워라'라는 글로 분신자살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는 생명에 대한 그의 존중심에서 나온 비판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노태우정부를 돕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되면서 많은 이들의 비난과 원성을 사게 되었다. 1990년대 이후 박두진,고은의 시, 황석영,최인훈,이청준,박경리 등의 작품과 함께 그의 작품도 유럽과 미국에 번역되어 소개되기도 했다.

2007년 대선 전에 손학규를 한나라당에서 탈당하도록 권유했다. 손학규는 한나라당을 탈당해 민주당에 입당했다.[2]

[편집] 작품세계

그리스도교사상과 불교의 미륵사상, 화엄사상, 유교, 선불교·기(氣)철학 등의 여러가지 사상들을 교리에 얽매이지 않고 재해석하고 이를 모두 융합, 수용하여 자신만의 독특한 생명사상을 제창했으며, 풍자력을 갖췄으면서도 생명사상을 바탕으로 한 담시와 서정시를 썼다.

[편집] 작품과 저서

[편집] 시집

  • 대설 남 1~4
  • 타는 목마름으로
  • 황토(풀빛판화시선 1)
  • 민족의 노래 민중의 노래
  • 애린
  • 제자리를 찾는 시(1985)
  • 타는 목마름에서 생명의 바다로
  • 친애하는 국민여러분!
  • 별밭을 우러르며
  • 뭉치면 죽고 헤치면 산다
  • 한 사랑이 태어나므로
  • 말뚝이 이빨은 팔만사천개
  • 모로 누운 돌부처
  • 생명
  • 병든바다 병든지구
  • 동학이야기
  • 중심의 괴로움
  • 검은 산 하얀 방
  • 황토
  • 빈산
  • 생명과 자치
  • 2002 월드컵 포에버
  • 마지막 살의 그리움
  • 미의 여정
  • 셋과 둘 그리고 혼돈
  • 옛 가야에서 띄우는 겨울 편지 꽃과 그늘 기
  • 예감에 가득 찬 숲 그늘
  • 김지하의 화두
  • 당신을 버릴때
  • 절 그 언저리
  • 사이버 시대와 시의 운명

[편집] 기타

  • 율려란 무엇인가
  • 사상기행 1~2
  • 생명과 평화의 길
  • 유목과 은둔
  • 탈춤의 민족미학

[편집] 저작

  • 옹치격(김지하산문집)
  • 민족주의 평화 중용 (공저, 2007년, 까치)
  • 현대문명의 위기와 시대정신
  • 흰 그늘의 길:김지하 회고록
  • 생명학1~3

[편집] 학위

[편집] 상훈

  • 2006년 제10회 만해대상 평화부문상

[편집] 가족

  • 처 : 김영주
    • 아들 : 김원보
    • 아들 : 김세희
  • 장모 : 박경리(작가, 소설가)

[편집] 기타

[편집] 6.3 사태

이 부분의 본문은 6·3 사태입니다.

박정희 정권이 추진하던 한일회담이 굴욕외교회담이라 판단한 그는 서울대학교 후배 김덕룡, 고려대의 이명박, 이재오 등과 함께 6.3 시위에 참여한다. 한일회담을 반대한 학생시위에 앞장섰다가 체포된 그는 투옥, 4개월간 수감되었다가 풀려났다.

[편집] 오적 필화 사건

이 부분의 본문은 오적 필화 사건입니다.

1970년 부패된 정권을 비판한 《오적(五賊)》이라는 시를 써서 《사상계》 5월호에 실었는데, 이것이 신민당 기관지인 《민주전선》에 실리면서 문제가 되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100일 동안 옥살이를 했다.

1974년 민청학련사건에 연루되어 7월 9일 결심 공판에서 긴급조치 4호 및 국가보안법 위반, 그리고 내란선동죄 등의 죄목으로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감형받았다가 석방되었다.

[편집] 죽음의 굿판 사건

1980년대 이후 학생운동권들의 시위가 격화되는 가운데 한 학생운동가가 후배를 앞세운 뒤 쇠파이프와 각목으로 가격하여 살해했다는 누명을 쓴 사건이 발생했고, 후배의 분신자살 이후 유서를 대필한 누명을 쓰고 검거되는 일도 있었다.

군사정권은 붕괴되었으나 1991년 봄 운동권 인사들의 방북행위를 단속하자 학생운동가들이 투신, 분신자살이 속출했다. 김지하는 91년 봄 조선일보에 운동권을 질타하는 '죽음의 굿판론'을 제기했다.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 자살 전염병 등으로 학생운동가들의 과격성을 비난하였다.

정원식 교수에 대한 계란세례, 박홍 신부의 주사파론 주장이 동시에 터져나오면서 김지하의 학생운동가들 비난은 국민들의 동조를 얻었으나 그는 학생운동가들의 비난과 조롱에 시달림을 당했다.

대표작으로는 《오적》, 《》, 《황톳길》, 《타는 목마름으로[3] 등이 있다.

[편집] 죽음의 굿판

1991년 봄에 발표한 죽음의 굿판론에서 그는 학생운동가들의 공격성, 파시즘을 비판하였다. 두번째로 학생운동가들의 교조성과 의식화를 지적했고, 세 번째로는 '당신들의 그 숱한 죽음을 찬미하는 국적불명의 괴기한 노래들,당신들이 즐기는 군화와 군복,집회와 시위때마다 노출되는 군사적 편제선호속에 그 유령이 이미 잠복해 있었던 것이다. 당신들은 맥도날드햄버거를 즐기며 반미를 외치고 전사를 자처하면서 반파쇼를 역설했다. 당신들의 구호와 몸짓은 이미 순발적 정열을 이탈하여 의식화되었다.'며 자살을 예찬하는 광기를 지적했다. 학생운동가들의 교조성에 대한 비판은 당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편집] 논란

[편집] 변절 논란

1991년 봄에 발표한 학생운동가들의 폭력성과 맹목적성을 비난한 '죽음의 굿판론' 이후 그가 변절했다며 비난을 가해왔다. 1990년 일부 학생운동가들이 그에게 변절자 라는 비난을 제기하면서 논란이 되었다. 그러나 강경투쟁론에 대한 비난, 학생운동가들의 자살, 투신, 분신, 학생운동과정에서의 부조리를 지적한 것에 대한 역반발이라는 관측도 있다.

[편집] 황석영 옹호 논란

그는 2008년부터 변절자로 낙인찍혀서 네티즌들로부터 맹공격을 당하던 작가 황석영을 공개적으로 옹호하였다. 작가라면 좌든 우든 왔다갔다 할 수 있는 자유가 있어야 된다는 것이다. 어떤 틀에 묶이거나 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오갈수 있어야 된다는 관용과 자유에 대한 시각을 피력했다.

그러나 진중권으로부터 공개비판을 받았고, 이후 일부 네티즌들로부터 다시 비난과 인신공격을 당하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지원 발언과 맹목적인 비난의 부당함을 지적한 황석영에 대한 인신공격이 가해지자 그는 2009년 5월 18일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시비걸지 말라"고 일침을 가했다. "작가가 오른쪽으로 갔다 왼쪽으로 갔다 그럴 자유는 있어야 한다[4]"는 시각을 공개적으로 피력했다.

그는 기억력이 나쁠수록 좋은 작가 라는 독특한 이론을 제시했다.[5] 진중권황석영을 금붕어에 비유한 것에 대해서 그는 "작가라는 것이 아침마다 변한다. 기억력이 강한 작가일수록 엉터리다"라며 황 씨의 행보에 작가적 정당성을 부여했다. 이는 진 교수가 황 씨를 가리켜 '금붕어 기억력'이라고 비난한 것에 대한 노골적인 반박이다.[4] 5월 19일 진중권은 진보신당 당원게시판을 글을 올려 "기억력이 나쁜 작가일수록 좋은 작가라는 미학이론은 들을수록 해괴하다. 그렇다면 최고의 작가는 금붕어겠다. 금붕어의 눈앞에는 2초 마다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라고 비꼬았다.[4]

진중권 외에도 익명의 네티즌들로부터 인신비방을 당했지만 그는 진중권 이외에는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다.

[편집] 노무현 추종자들의 폭력성 지적

2009년 5월 노무현의 투신자살 이후, 친노무현 지지자 일각에서 이명박 정권이 죄없는 노무현을 죽게 했다며 보복을 다짐하는 여론이 나오자 그는 노무현 추종자들의 폭력성을 질타하며 언론 칼럼에 그들을 마르크스주의자들이라며 비판을 가했다. 김지하는 "봉하마을에서 악을 쓰는 카를 마르크스 신봉자[6]"들 이라는 것이다.

노무현의 죽음에 대한 일부 운동권들의 보복 다짐에 대해 그는 자살 미화와 생명의 존엄성 경시에 대한 경고성 비판을 곁들이기도 했다.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던 두 개의 명제 '생명과 평화'는 눈 씻고 봐도 그 어디에도 자취가 없다"며 "더욱이 자살한 사람 빈소에 촛불이 켜지고 있다. 비겁한 생명 포기에도 촛불인가. 촛불의 정체는 무엇인가"라며 문제를 제기했고, 이어 "시중의 유행어인 '따뜻한 자본주의', '착한 경제'는 돈과 마음의 결합"이라며 "봉하마을에서 악을 악을 쓰는 마르크스 신봉자들은 이것을 설명 못한다. 마르크스 화폐이론은 철저히 마음을 배제하기 때문"이란 글로 노 전 대통령 추모객들을 마르크스 신봉자로 규정했다.[6]

동시에 그는 노무현의 국민장에도 회의적인 시각을 제기했다. "7일간의 국민장, 비극적 숭배열에 의한 명백한 부패와 생명포기라는 비겁성의 은폐, 핵실험과 3개의 미사일 발사 따위가 여기에 대답할 수 있을 것인가?[6]"라는 것이다.

그러자 노무현 지지세력 중 일부는 "조문과 마르크스가 무슨 관계가 있는가" "자살까지도 애도하게 하는 이유는 왜 빼먹었는지" "삶은 무조건 고귀하고 죽음은 무조건 비겁한 것인가"라며 그의 글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 네티즌은 "김지하 시인 안목으로는 자살이라는 것이 비겁한 행동이었겠지만 고인을 추모하는 사람은 각자 자기 자신의 이유가 있어서 추모하는 것"이라며 "그걸 마치 옳지 않다라는 듯이 하는 자세가 별로 좋은 자세는 아니다[6]"며 그를 비판하였다.

[편집] 평가와 비판

[편집] 비판

김지하가 정치적으로 변절했다는 비난이 있으며 또한 진중권에게 비난적인 발언을 하기도 하였으며 노무현전 대통령의 죽음을 비난하는듯한 발언을 하여 반감을 불러왔다.

[편집] 김지하를 연기한 배우

[편집] 같이 보기

[편집] 주석

  1. '유신 광기 절정... 김지하의 신변에 불길한 예감', 《한겨레》1012,2,14
  2. 김지하“‘손아무개한테 가봐라’말하는 정도로 돕겠다”
  3. 이 시는 가수 김광석이 노래로 부르기도 하였다.
  4. http://www.newshankuk.com/news/news_view.asp?articleno=d20090519132523n8096
  5.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view.html?cateid=1067&newsid=20090519172904268&p=newsis
  6. http://www.dcnews.in/news_list.php?code=ahh&id=418969&curPage=&s_title=&s_body=&s_name=&s_q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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