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
| 고은 髙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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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생 | 1933년 8월 1일 (79세) (現 |
| 별칭 | 아호는 파옹(波翁) 불교 승려 시절 법명은 일초(一超) |
| 직업 | 시인, 소설가 |
| 국적 | |
| 학력 | 전라북도 군산고등보통학교 중퇴 |
| 활동 기간 | 1958년 ~ |
| 주요 작품 | 《오십년의 사춘기》 등 |
| 주요 수상 | 2007년 그리핀 시인상 평생공로상 2007년 노던 캘리포니아 북 어워즈 |
| 종교 | 불교 |
고은(髙銀, 본명: 고은태(髙銀泰), 1933년 8월 1일 ~ )은 대한민국의 대표적 참여시인이자 소설가이다. 전라북도 옥구 출생으로 호는 파옹(波翁)이며 본관은 제주(濟州)이다.
전라북도 군산고등보통학교 4학년을 중퇴하였다. 이후 그 어떤 교육기관에도 적을 두지 않았다. 한국 전쟁으로 전란 시기였던 1952년 일본 조동종의 군산 동국사에 출가하여 중관학 권위자인 중장혜초로 부터 일초(一超)라는 법명을 받고 불교 승려가 되었다. 이후 10년간 참선과 방랑을 거듭하며 시를 쓰기 시작하였다.
1958년 조지훈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에 《폐결핵》을 발표하며 등단하였다. 1960년대 초에 본산(本山) 주지, 불교신문사 주필 등을 지냈고, 1960년 첫 시집 〈피안감성〉(彼岸感性)을 내고 1962년 환속하여 본격적인 시작활동에 몰두하게 되었다.
고은의 문학적 성향은 <문의 마을에 가서>를 낸 1974년을 기준으로 크게 둘로 나뉘는데, 그의 전기 시들은 허무의 정서, 생에 대한 절망, 죽음에 대한 심미적인 탐닉이 주를 이루는 반면 후기 시들은 시대상황에 대한 비판과 현실에 대한 투쟁의지를 담고 있다. 그 뒤 '자유실천 문인협의회' 대표로 행동면에서 활약하기도 했다.
그는 노벨 문학상 후보로 자주 거론되고 있는데, 세계 각국에서 그가 잘 알려진 것은 노벨문학상 후보라는 것 이전에 그의 시가 20여개국에 번역되어 많은 영감을 주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실제로 2005년에는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매년 여러 나라에서 그를 초청하는 등 그의 시는 국경을 초월하고 있다는 점을 증명하고 있다. 특히 북유럽에서 그의 시는 높은 평가를 받는다. 노르웨이에서는 자국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 비에른스티에르네 비에른손을 기린 비외른손 훈장을 수여했고, 스웨덴에서도 자국 노벨 문학상 수상자 하뤼 마르틴손을 기리는 상인 동시에 동아시아권 문학에 주는 상인 시카다(Cikada)상을 수여하였다. 스웨덴의 한 언론매체 기사에서는 그를 군산의 제왕(Kungen av Kunsan)이라 칭할 정도였다. [1]
목차 |
학력[편집]
- 전라북도 옥구 미룡국민학교 졸업
- 전라북도 군산고등보통학교 중퇴
명예 박사 학위[편집]
경력[편집]
- 2010년 4월 9일 '만인보' 완간
- 2008년 단국대학교 석좌교수(2008~현재)
- 2007년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 초빙교수
- 2004년 제4회 베를린문학페스트벌 자문위원
- 2001년 세계한민족작가연합 회장
- 2000년 국가보안법폐지 국민연대 고문
- 1999년 내셔널 트러스트운동 추진본부 공동대표
- 1999년 제1회 만해축전 대회장, 제 4회 만해시인학교 교장
- 1999년 한일 문화교류회의 의원
- 1999년 상록수문화사랑회 명예이사장
- 1999년 하버드대학교 옌칭스쿨, 버클리대학교 객원교수
- 1998년 제2건국 범국민추진위원회 위원
- 1997년 작가 최명희와 혼불을 사랑하는 사람들 회원
- 1996년 YH사건기념동지회 회원
- 1996년 불교문학현상공모운영위원회 위원장
- 1995년 문학의해 조직위원회 위원
- 1994년 통일시대 민주주의 국민회의 추진위원회 고문
- 1994년 광복5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위원
- 1994년 경기대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교수
- 1993년 민주유공자장학재단 부회장
- 1992년 대통령 특별사면
- 1991년 한국문학예술대학원장
- 1990년 민족문학작가회 회장
- 1989년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회 창립의장, 남북작가회담 대표로 구속
- 1988년 민족문학작가회의 부회장, 월간 사회와 사상 편집위원
- 1987년- 1991년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공동의장
- 1987년 민주쟁취국민운동본부 상임공동대표, 민족문학작가회의 부회장
- 1986년 '만인보' 간행 시작
- 1980년 실천문학 창간, 노동학교 소장
- 1979년 민주주의와 민족통일국민연합 중앙상임위원회 부위원장
- 1978년 한국인권운동협의회 부회장
- 1974년 자유실천문인협의회 대표간사, 민주회복국민회의 중앙위원,'실천문학'창간
- 1971년 문학과 지성 편집위원
- 1969년 동화통신 부장대우
- 1964년 금강고등공민학교 설립
- 1963년 환속
- 1961년 평승려로 돌아감
- 1958년 불교신문 창간 초대주필
- 1957년 전등사 주지, 해인사 교무 및 주지대리
- 1951년 군산북중학교 국어교사
수상 경력[편집]
- 1974년 - 한국문학작가상
- 1988년 - 만해문학상 (시집 만인보)
- 1991년 - 중앙문화대상
- 2002년 - 금관문화훈장
- 2005년 - 노르웨이 국제문학제 비외른손 훈장
- 2006년 - 스웨덴 시카다상
- 2007년 - 제5회 영랑시문학상
작품 목록[편집]
시집[편집]
- 《피안감성》(彼岸感性) (1960)
- 《해변의 운문집》 (1964)
- 《신 언어의 마을》 (1967)
- 《새노야》 (1970)
- 《문의(文義) 마을에 가서》 (1974)
- 《부활》 (1975)
- 《제주도》 (1976)
- 《입산》 (1977)
- 《새벽 길》 (1978)
- 《고은 시선집》 (1983)
- 《조국의 별》 (1984)
- 《지상의 너와 나》 (1985)
- 《시여 날아가라》 (1987)
- 《가야 할 사람》 (1987)
- 《전원시편》 (1987)
- 《너와 나의 황토》 (1987)
- 《백두산》 (1987)
- 《네 눈동자》 (1988)
- 《대륙》 (1988)
- 《잎은 피어 청산이 되네》 (1988)
- 《그 날의 대행진》 (1988)
- 《만인보(萬人譜)》 (연작: 1986 ~ 2010년 4월 9일)
- 《독도》 (1995)
- 《허공》 (창비, 2008) ISBN 978-89-364-2292-9
시[편집]
- 〈선제리 아낙네들〉: 주제는 고단한 생활 속에서도 정겨움을 잃지 않는 민중들의 삶이다. [4]
- 〈머슴 대길이〉: 역사 속에서 소외당하고 천대 받는 계급이지만, 삶에 대한 긍정적 인식으로 남을 위해 넉넉한 인간미를 잃지 않고 사랑을 실천하는 인간상이 그려진다. [5]
소설집[편집]
- 《피안앵(彼岸櫻)》 (1962)
- 《어린 나그네》 (1974)
- 《일식(日食)》 (1974)
- 《밤 주막》 (1977)
- 《산산히 부서진 이름》 (1977)
- 《떠도는 사람》 (1978)
- 《산 넘어 산 넘어 벅찬 아픔이거라》 (1980)
- 《어떤 소년》 (1984)
- 《화엄경》 (1991) 화엄경 입법계품을 소설화 하였다.
에세이[편집]
같이 보기[편집]
- 《만인보(萬人譜)》
주석[편집]
- ↑ 이상주 기자. “‘고은 예찬’, 스웨덴 언론들 특필”, 《경향신문》, 2005년 11월 8일 작성. 2009년 10월 5일 확인.
- ↑ 천안,이준호기자. “고은 시인 단국대서 명예문학박사 (한국어)”, 《한국일보》, 2010년 8월 18일 작성. 2010년 8월 24일 확인.
- ↑ 명예학위도 동문으로 인정한다는 단국대학교의 규정에 따라 동문으로 분류
- ↑ [2009년 1월 5일] 강승원: 《EBS 수능특강 언어영역》, 초판, 한국교육방송공사, 12, 해설2쪽
- ↑ [2009년 1월 5일] 김인봉: 《EBS 수능특강 언어영역》, 초판, 한국교육방송공사, 해설53쪽. ISBN 9788954711159
참고 자료[편집]
바깥 고리[편집]
| 위키미디어 공용에 관련 미디어 자료가 있습니다. |
| 위키인용집에 이 문서와 관련된 문서가 있습니다. |
- (한국어/영어) 고은 홈페이지
- 나의 시가 걸어온 길 〈금요일의 문학이야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
1974년 민주회복국민선언 서명자 (총 71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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