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수경
| 임수경 | |
|---|---|
| 출생 | 1968년 11월 6일 (44세) |
| 국적 | |
| 학력 | 한국외국어대학교 신문방송학 박사과정 수료 |
| 경력 | 민주통합당 19대 비례대표 국회의원 |
| 직업 | 정치인 |
| 웹사이트 | http://blog.naver.com/su_blog |
임수경(林琇卿[1], 1968년 11월 6일 ~ )은 대한민국의 학생운동과 통일운동가 출신 정치인이다.[2] 1989년 대한민국 정부의 허가를 받지 않고, 민간통일운동으로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대표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양에서 개최된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석하였다. 한국 전쟁으로 한반도 군사 분계선이 가로막힌 이후 공개적으로 휴전선을 걸어서 넘은 최초의 민간인으로 기록되었다.[3] 이후‘통일의 꽃’이라는 별칭을 갖게 되었다.[4] 2012년 4월 민주통합당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이 되었다.
목차 |
생애 [편집]
학생 운동 [편집]
임수경은 1968년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임판호는 전라남도 해남군 출신으로 목포고등학교를 졸업하였고, 어머니 김정은은 전라남도 함평군 출신이다.[5] 임수경은 진명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외국어대학교 용인 분교 불어과에 입학한 후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에 가입하여 활동하는 등 사회운동에 관심을 가졌다.
대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이던 1989년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양에서 열린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대표로 선발되었고, 전대협 측은 비밀리에 파견 계획을 세웠다. 임수경은 서울을 떠나 출국하였는데, 출국 당시 행선지를 일본으로, 출국 목적을 관광으로 밝혔다. 그러다가 동독 동베를린을 거쳐 북한에 들어갔다. 그가 허가를 받지 않고 북한에 들어갔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면서 한국에서 큰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그는 천주교 신자 보호를 위해[6]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에서 ‘평양 장충성당 축성 10주년 기념미사 봉헌’의 명목으로 공식 파견한 문규현 신부와 함께 판문점을 통해 걸어서 한국으로 귀환하였고, 동시에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되었다. 임수경은 징역 5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 1992년 12월에 가석방으로 풀려났다.
사회 활동 [편집]
1992년 12월, 가석방으로 풀려 난 이후, 1993년에 사면되었다. 같은 해 8월에 한국외국어대학교를 뒤늦게 졸업했고, 이후 서강대학교 대학원을 거쳐 미국 코넬 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에서 공부했다.
임수경은 그 후 사회운동가로 활동하면서 몇몇 대학에서 강의를 했으며, 이후 오스트리아 빈 평화대학원 등에서 공부를 했다. 2011년 4월 5일 함세웅, 고은, 윤민석 등과 함께 미 문화원 방화사건을 일으킨 ‘김은숙을 위한 작은 음악회’를 열었다.[7]
정치 활동 [편집]
2012년 5월 민주통합당의 비례대표가 되어 제19대 국회의원이 된다.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면서 직접 정치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계기를 묻는 질문에 "(탈북자인) 황장엽 북한 노동당 비서가 사망했을 당시 나는 민주당에 쫓아가 대표 면담을 제의했다. 국립묘지 안장 반대 논평을 왜 안 내느냐고, 정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묻고 싶었다." 라며 탈북자인 황장엽씨가 국립묘지에 묻히는 것을 보고 이에 반대하기 위해 직접 정치를 생각하게 되었다고 발언했다.[8]
2012년 8월23일 경비업법 일부 개정법률안 대표발의(임수경의원등 52명)했다.
세계청년학생축전 참가사건 [편집]
1989년 3월 20일 소설가 황석영이 평양에 들어간 닷새뒤, 기독교 장로회 목사 문익환은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상임고문 자격으로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초청을 받고 1989년 3월 25일 대한민국 정부에 통보를 하고 북한에 방북했으나,정부는 인정하지 않은 김일성과 두차례 회담하여 7·4 남북 공동 성명의 통일 3대원칙을 재확인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하였다.
이 때 전대협은 평양에서 열린 세계청년학생 축전에 임수경을 대표로 보냈다. 임수경은 북한의 청년들과 통일 문제를 협의하였다. 이를 지지하고 임수경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천주교 정의 구현 사제단은 문규현 신부를 북한에 파견하였다.[9]
일정 [편집]
| 위키문헌에 이 글과 관련된 자료가 있습니다. |
- 1990년 6월 11일 징역 5년, 자격정지 5년 선고 (국가보안법상의 탈출과 잠입, 회합, 고무 찬양, 금품 수수 등 13가지 죄목으로 유죄판결) : 재판장 송재헌
- 1992년 12월 24일 3년 5개월 옥살이 후 가석방
- 1999년 3월 1일 사면 복권
- 2001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의 공식적인 허락을 받아 평양에서 열린 ‘민족통일대축전’에 참석
영향 [편집]
임수경이 행했던 행동과 옷차림이 유행하여 금지되었던 반팔 티셔츠가 다시 허용되는 등[10] 북한 주민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11] 귀국길에 있어서도 제3국을 통하지 않고 북조선과 당국과 유엔사령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문규현 신부의 손을 잡고 판문점을 통하여 귀국했다.
1990년 8월 15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조국통일상을 수여하였다.[12] 김일성종합대학은 10월 12일 열린 제43회 대학 졸업식에서 명예학생으로 등록된 임수경에게 졸업증을 수여했다.[13] 박관오 총장이 수여하고 외국 졸업증은 명예졸업증이 아닌 정규졸업증이었다.[13]
논란 [편집]
자녀 익사와 악플 [편집]
2005년에 필리핀에서 어학연수 중이던 초등학생 외아들이 현지에서 사고로 익사하는 사건이 있었다.[4] 이 사건이 보도되면서 임수경의 방북 전력과 관련하여 악성 댓글이 달렸고, 임수경은 댓글을 단 네티즌을 고소하였고, 이들은 벌금형을 선고받았다.[14][2]
탈북자 비난 논란 [편집]
2012년 6월 한 술좌석에서 탈북자들과 북한 민주화 운동을 하고 있는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 등을 ‘변절자’라고 비하한 것이 논란이 일었다. 그녀는 탈북자 대학생에게 “어디 근본도 없는 탈북자 ××들이 굴러와서 대한민국 국회의원한테 개기는 거야? 대한민국 왔으면 입 닥치고 조용히 살아”라고 발언했다.[15]
탈북자 단체는 이에 대해, “북한에서 자유를 찾아 내려온 대한민국 국민인 탈북자를 변절자라고 하는 것은 심각한 모욕”, “탈북자가 변절자라면 임수경은 종북주의자”라며 “이번 사건은 2만4000명의 입국 탈북자와, 중국과 제3국에서 생명의 위협을 안고 사는 10만 탈북자에 대한 모독”이라고 항의했다.[16] 임수경은 이후, 기자회견을 통해 “한 청년이 보좌관에게 '북한에서 총살감'이라고 한 발언에 대해 감정이 격해져 나온 발언이었다”고 해명하고, “변절자라는 표현 역시 학생운동, 통일운동 한 하태경 의원에 대한 표현이었을 뿐 탈북자에게 한 말이 아니었다”, “자신의 불찰이며, 부적절한 발언으로 상처받은 분들께 사과드린다”라고 밝혔다.[17]
트위터 논란 [편집]
이명박 정부를 비난하는 글을 주로 리트윗 하고 "일부러 국가보안법을 위반한다"는 트위터 글을 덧붙였다. 북한의 체제 선전사이트 '우리민족'에 올라온 남한 정부 비난글을 리트윗하면서 북한에 대신 사과 드린다고 썼다. 트위터상에서는 이런 임 의원의 활동을 "북한 대변인이냐" "섬뜩하고 황당하다"는 반응이 이어졌다.[18][19] 새누리당 심재철 최고위원에 의하면, 임수경은 '우리민족끼리’의 글을 북한 체제를 풍자·조롱할 목적으로[20][21] 리트위트했다는 이유로 박정근이 구속(국가보안법 위반)된 데[22] 대한 국가보안법 폐지를 요구하는 일종의 불복종운동 성격의 퍼포먼스에 동참한 것이라고 주장했다.[23]
학력, 이력, 저서 [편집]
- 학력
- 1986년 진명여자고등학교 졸업
- 1993년 한국외국어대학교 용인캠퍼스 불어과 졸업
- 1997년 서강대학교 언론대학원 졸업
- 1999년 코넬 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 연구과정
- 2002년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법학과 졸업
- 2003년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 신문방송학과 박사 수료
- 2009년 오스트리아 유럽 평화대학원(EPU)수료
- 이력
- 월간 ‘해인’ 객원기자
- KTV ‘통일로! 미래로!’ 진행
- 방송통신위원회 남북방송교류추진위원회 위원
- 한국외국어대학교, 성공회대학교 언론학 강의
- 라디오21 ‘임수경의 원코리아’ 진행
- 2009년 ~ 2010년 성공회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외래교수
- 2010년 노무현재단 상임운영위원
- 2012년 5월 30일 ~ 제19대 국회의원 (민주통합당 비례대표)
- 상훈
- 1993년 사월혁명회 사월혁명상
- 1990년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올해의 여성상
- 1987년 한국외국어대학교 외대문학상 소설부분문
- 저서
- 《참 좋다! 통일 세상》 (황소걸음, 2003년) 박재동 그림
- 《어머니, 하나된 조국에 살고 싶어요》 (돌베개, 1990년)
- 《어머니, 하나된 조국에 살고 싶어요 :림수경 항소리유서》 (평양출판사, 1991년)
같이 보기 [편집]
주석 [편집]
- ↑ 조선닷컴 포커스
- ↑ 가 나 “'시궁창' 댓글 문화, 도 넘었다”, 《SBS》, 2006년 1월 26일 작성.
- ↑ 정청래 (2003년 10월 28일). 《사람만이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든다》. 황소걸음, 29쪽. 2011년 5월 14일에 확인.
- ↑ 가 나 “'통일의 꽃' 임수경씨 9살 아들 필리핀서 익사”, 《조선일보 (연합뉴스 인용)》, 2005년 7월 22일 작성. 2008년 4월 14일 확인.
- ↑ 민주당 유선호 위원장 인터뷰《스포츠서울》
- ↑ 문정현 신부. “방북 임수경 귀환 동행길에 동생을 떠밀다”, 《한겨레》, 2010년 7월 19일 작성. 2011년 5월 14일 확인.
- ↑ 남상욱 기자. “임수경씨 정의 위해 싸웠지만 잊혀진 사람, 기억시켜주고 싶어요”, 《한국일보》, 2011년 4월 4일 작성. 2011년 5월 4일 확인.
- ↑ 인용 오류:
<ref>태그가 잘못되었습니다.a1라는 이름을 가진 주석에 대한 내용이 없습니다. - ↑ 한국교회의역사. 한국천주교주교회의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12년 5월 4일에 확인.
- ↑ 박효민. 《북한 기독교 이해의 변화에 관한 연구》. 감리교신학대학교, 36쪽. 2011년 5월 14일에 확인.
- ↑ “두만강을 세 번 건넌 여자”, 《조선일보》, 2011년 4월 9일 작성. 2011년 5월 14일 확인.
- ↑ 북한,조국통일상에 임양ㆍ운동권 학생도, 한국일보 1990-08-17자, 02면
- ↑ 가 나 http://www.sisapress.com/news/articleView.html?idxno=27560#
- ↑ “'임수경 악플' 재판서 벌금 100만원 선고”, 《세계일보 (연합뉴스 인용)》, 2006년 3월 16일 작성. 2008년 4월 14일 확인.
- ↑ “근본없는 탈북자 XX, 임수경 막말 파문”, 《한겨레》, 2012년 6월 3일 작성. 2012년 6월 5일 확인.
- ↑ “임수경, 탈북자에 막말 파문, 탈북자단체 “林의 조국은 어디냐… 의원직 사퇴하라””, 《동아일보》, 2012년 6월 5일 작성. 2012년 6월 5일 확인.
- ↑ “임수경, 결국 사과 기자회견 "저의 불찰", "평소 탈북자에 대해 그런 생각하지 않고 있다"”, 《프레시안》.
- ↑ “"임수경, 북 대변인이냐" 트윗 글들 충격”, 《조선일보》, 2012년 6월 7일 작성. 2012년 6월 7일 확인.
- ↑ 임수경 의원, 北 '우리민족끼리' 전파‥연일 '악재' MBC 뉴스 2012년 6워 7일
- ↑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14651.html
- ↑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120203122930
- ↑ 한국, 온라인게시물 통제…표현의자유 위축뉴시스 2012년 5월 24일
- ↑ 임수경 ‘문제의 리트위트’는 ‘보안법 폐지’ 퍼포먼스 성격한겨레 2012년 6월 7일
바깥 고리 [편집]
- 임수경 - 트위터
- 임수경 블로그
- 평양축전 기간 북한의 "통일의 꽃" 영상
- 평양축전 기간 평양거리를 행진하는 임수경
- 평양축전을 마치고 북한에서 판문점으로 돌아오는 임수경의 영상
- 분단의 벽을 넘어- KBS 인물현대사(로그인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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