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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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 방송(民營放送)은 국가가 운영하는 국영 방송이나, 공공기업체 등이 운영하는 공영 방송과 대비되는, 그 밖의 민간단체나 민간사업체가 운영하는 방송이다.

보통의 민영 방송은 상업적 광고방송을 겸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상업 방송'이라고도 칭하나, 몇몇 민영 방송은 공공 목적으로 하는 경우가 있으므로 '상업 방송'과는 개념이 다르다.

민영 방송은 주로 1920년대 미국에서부터 발전하였으며 현재 미국의 방송은 거의 민영 방송이다. 그리고 민영 방송은 주 수입원이 광고 방송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러한 민영 방송은 방송전파라는 공공재를 영리적 목적에 이용한다는 점과 그리고 과도한 상업주의의 끝을 달린다는 지적이 많은 편이다. 그리하여 최근의 민영 방송들은 표면적으로나마 공공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편이다.

민영 방송의 형태는 주로 선진국이나 신흥 공업국에서 많이 발달하는 편인데, 이는 개발도상국이나 후진국에서는 전파의 부족이라든지 지리적 여건 등이 허락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진국이나 신흥 공업국에서도 민영방송만이 그 자리를 채우지는 않는다. 앞서 말했듯이, 민영 방송의 폐단 그리고 국가기간방송의 필요성 등으로 인해 대부분은 공영 방송과 민영 방송을 병존시키는 형태를 띤다.

목차

[편집] 대한민국의 민영방송

[편집] 최초의 민영방송

대한민국의 최초의 민영방송은 기독교방송(CBS)으로, 1954년 12월 15일에 개국하였다. 상업목적의 최초의 민영방송은 문화방송(MBC)으로, 1961년 12월 2일에 개국하였다.

[편집] 1990년대 이후의 민영방송

[편집] SBS 중심의 네트워크 구축

현재 존재하는 대한민국의 민영방송은 KBSMBC, 기독교방송, 극동방송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1990년대 이후에 설립된 방송사들이다. 이는 제5공화국 시절 전두환 당시 대통령이 중심이 된 '신군부'의 지시로 1980년 12월 1일, 1980년 이전에 설립된 민영방송을 대부분 공영방송으로 강제 흡수시키거나, 폐국조치를 하여 자취를 감추었기 때문이다. 이후 10년 만인 1990년노태우 대통령의 민영방송 설립 금지 해지조치 이후 최초로 SBS1991년에 개국했고, 1995년을 시작으로 지역민영방송국이 SBS와의 방송 네트워크 협정을 체결하고 속속 개국하기 시작했다. 흔히 1995년에 개국한 지역민영방송을 1차 지역민방, 1997년에 개국한 민영방송을 2차 지역민방으로 구분하고 있다. 그러나 이후에 개국한 민영방송은 워낙 시기가 벌어져있고 그 숫자도 적은지라, 따로 차수를 붙이지는 않는다. 한편 SBS를 중심으로 한 전국 네트워크구축은 2002년에 완료되었다.

[편집] 독립(비네트워크) 민영방송의 등장

한편 1997년에 개국한 2차 지역민방 가운데, 인천지역을 중심으로 한 경인방송(iTV, 개국당시 인천방송)이 같은해 10월 11일에 개국하였다. 이는 1990년대 이후 어떠한 네트워크에도 가입하지 않은 첫 독립 TV민영방송으로써, 경쟁상대인 SBS에 비하여 상당히 불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대표적인 독립 민영방송사로써 자리매김해왔다.

1990년대 말 박찬호의 메이저리그 경기 중계권을 독점적으로 획득한 것을 계기로 방송권역을 기존의 인천지역에서 경기남부지역까지 확장하는등 전성기를 누렸으나, 이후 2004년 대주주 동양제철화학의 방송사의 경영개선 이행의 거부등을 이유로 노사양측이 대립해오다가, 급기야는 방송위원회의 재허가 추천 거부로 인해, 같은해 12월 31일을 끝으로 결국 iTV는 7년 2개월 만에 폐국하게 된다.

이후 2005년 3월 1일부터 아직 면허가 남아있는 iFM(현 SunnyFM)의 방송을 재개하였으나, TV방송은 iTV에서의 재개국이 실현되지 못하고 결국 다른 사업자로 넘어가게 되었다. 사업자 선정 중 많은 논란이 빚어져 계속 개국시기가 늦춰지다가 끝내는 최종적으로 (주)영안모자가 선정되었고, 2007년 12월 28일, iTV가 폐국한지 3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이후에야 경인TV(OBS)가 기존의 iTV를 대신하여 개국하였다. 그러나 2008년 현재 옛 iTV에 비해서는 인지도가 턱없이 낮다.

[편집] 관계 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