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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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tuhan.JPG

바투(1207년 ~ 1255년)는 몽골제국 킵차크 칸국의 칸(재위:1242년~1255년)으로 칭기즈 칸의 손자이며 주치 칸의 차남이다. 주치 칸의 아들들 중에 훌륭한 칸 이라는 별명의 그는 부친 속령에 대한 통치권을 계승하였다.

바투의 영토는 이르티쉬의 서쪽인 세미팔라틴스크, 악몰린스크, 투르가이 또는 약튜빈스크, 우랄스크, 아다지, 호레즘 본토(히바)를 포함하였고, 또한 킵차크 인들의 땅부터 볼가 강 서쪽의 정복지인 제베수베에테이의 원정으로 얻은 땅을 포함하였다.

1227년 8월 18일 칭기스 칸이 죽은 뒤, 혈통 문제가 불거져 바투와 칭기스 칸의 다른 손자들 간의 알력다툼이 나타났다. 우구데이 칸은 주치의 혈통 문제를 거론하며 바투를 모욕한 자신의 아들들을 책망했지만, 사촌들에게 모욕을 당한 바투는 킵차크 칸국을 건설하고 몽골 본국과의 직접적인 관계는 끊어버렸다.

바투는 몽골 전승에는 '훌륭한 임금'이라 하나, 러시아인들에게는 무자비한 정복자로 알려져 있다.
바투는 1237년러시아의 도시 쿠르스크, 벨고로드, 랴잔 등을 파괴했고 1238년에는 러시아 노브고로드 주크레스테츠키 군을 침략했다.
1241년 4월 11일 셔요 강 다리의 전투에서 헝가리의 벨라 4세를 무찔렀다.

그는 칭기즈 칸 가문의 장로로서 제국의 대칸을 둘러싼 권력 분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여, '대칸 옹립자'도 알려져 있다.

1241년우구데이 칸이 죽자 대칸의 자리를 두고 우구데이의 아들인 귀위크 와 바투 사이에 분쟁이 발생했다. 1246년, 귀위크는 바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쿠릴타이를 소집하여 대칸 에 올랐다.

귀위크의 즉위 이후 두 사람의 대립은 더욱 격화되어 1248년에는 전쟁 직전까지 치닫았지만 그 해에 귀위크가 사망하여 무산됐다. 그 이후 바투는 툴루이 의 왕비 소르칵타니 와 손 잡고 우구데이계 와의 분쟁이 다시 발생했다. 바투는 1251년에 쿠릴타이를 통하여 툴루이의 장남 몽케대칸에 오르도록 도왔다.

바투와 그의 장남 사르타크가 죽었을 때 바투의 형제 베르케(1205 이후 ~ 1266/1267)가 킵차크 칸국을 계승하였다. 베르케는 몽골의 그의 사촌들과 통합하려하지 않았으며 훌라구 칸과는 전쟁을 하였다. 그러나 베르케는 중국을 그의 이론적인 상부로 공공연히 인식하였다. 사실 베르케는 그때까지 독립적인 군주였다. 다행스럽게도 베르케는 유럽 공략에 관하여 바투와 이해를 공유하지 않았다.

바투는 적어도 4명의 자식을 낳았는데 토코 칸 은 차남이다.

전 임
주치
제1대 킵차크한국의 칸
1242년~1255년
후 임
사르타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