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원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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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정만주원류고》(欽定滿洲源流考, 만주어: ᠮᠠᠨᠵᡠᠰᠠ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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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sei Toktobuha Manjusai Da Sekiyen-i Kimcin Bithe)는 청 제국 때 내각대학사 아계(阿桂, 만주어: ᠠᡤᡡᡳ Agūi), 군기대신 우민중(于敏中), 수석군기대신 화신(和珅, 만주어: ᡥᡝᡧᡝᠨ Hešen), 동각대학사 동고(董詁)가 건륭제의 재가를 받아 편찬한 만주의 원류 및 지명, 문화 등을 고찰하는 총 20권으로 이루어진 관찬서이다.

편찬 경위[편집]

건륭제는 건륭42년(1777년) 만주의 연혁, 근원 및 지명 등에 대하여 상세히 조사하여 관찬서를 편찬하라는 재가를 내렸고, 대학사 아계, 군기대신 우민중, 동각대학사 동고, 수석군기대신 화신 등의 명의로 경연강관·태자태보·동각대학사 동고가 주체가 되어 35명의 학자들이 이 책을 편찬하였다. 약 1년간의 작업을 거쳐 건륭 43년(서기 1778년) 《흠정만주원류고》라는 제목으로 총 20권의 책이 완성되었다. 이 책의 제목에는 "황제가 직접 썼다"는 뜻을 가진 흠정(欽定, 만주어: Hesei Toktobuha)이란 글자가 들어가 있는데, 그 이유는 내각에 책의 제작을 처음 지시한 것도 황제였고, 학자들이 초고를 하나씩 완성할 때마다 항상 황제에게 미리 올려 읽어보고 수정하게 하였기 때문이다.

내용[편집]

한인사대부의 문, 만주 전사의 무를 겸한 고관을 비롯한 35명이 동원되었으며, 17세기 청 제국은 고증학의 학풍이 꽃을 피워 만주원류고의 곳곳에 지명·인명·관명 등에 대하여 만주어·몽골어 등에 의하여 그 연원을 고증한 성과를 삽입했다.

자신들의 선대인 숙신[1][2] 읍루[3], 물길[4], 말갈[5], 발해[6][7][8][9][10], 건주, 완안 등을 만주의 원류로 삽입했고, 만주족의 원류라고 보기힘든 한국사의 삼한과 신라, 백제의 위치를 만주 지역으로 보았는데, 요서경략설을 지지했고, 신라의 계림(鷄林)을 음운이나 지리적 연혁으로 보아 오늘날 중국의 길림으로 비정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금나라의 시조 함보의 출자를 신라로 확정하여 이러한 연고로 금나라의 국호를 신라 왕성에서 유래하였다고 추측하면서 이외에 부여옥저 그리고 와 함께 만주의 원류로 삽입했다.

건륭제는 만주족과 여진족이 장백산맥이라는 공통의 지역적 기원 및 같은 혈통을 가졌다는 점에서 청 제국의 만주족 설립자들과 그보다 몇 세기 전에 금조를 세운 여진족 설립자들을 연결시킴으로써, 만주족의 역사에 대한 웅대한 묘사를 정립하려는 목적으로 만주원류고를 편찬하도록 하였다.

만주족의 역사에 관한 이와 같은 기술을 작성하여 출판한 건륭제는 많은 것을 염두에 두었다. 첫째, 만주족의 고대를 사람들에게 보여줌으로써 그는 만주족 제국의 유산을 입증하고, 이를 통해 청 제국 통치의 정통성을 강조하기를 희망했다. 둘째, 그는 만주족이 사실 명나라에 굴복한적이 없었다고 주장함으로써 만주족 지도층이 명나라에 불충한 것이 아니며, 만주족 지도층을 배신한 것은 한족 황제였다는 점을 보여주기를 바랬다. 이것은 천명이 만주족에게 넘어왔다는, 정통성을 강화하기 위한 논증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셋째, 문서기록에 근거하여 만주족 국가의 성장에 대한 전반적인 기술을 제공함으로써 건륭제는 만주족 자신의 정치적, 문화적 활력에 대한 어떠한 의심도 떨쳐버리게 하려고 생각했으며, 자신의 백성들에게 만주족 초기의 신화보다는 진실한 역사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흥미롭게도 건륭제는 만주족의 야만적인 기원을 숨기려고 노력하지 않았는데, 심지어 그는 여진족을 잔인하고 폭력적으로 묘사한 고대 중국인의 묘사를 인용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는 명대 이후 작성된, 마찬가지로 무례한 기술에 대해서는 인용을 거부했다. 명대 이후의 기록은 너무나도 정곡을 찌르고 있다. 사실 당시 그는 이러한 기록 대부분이 유통되지 못하도록 금지했다.

그는 만주족이 금조의 통치 아래에서 처음 맺은 결실을 수세기에 걸쳐 계속해서 발전시켜, 이제 자신의 통치 아래에서 활짝 만개했다는 사실을 증명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6세기의 조상에게 하던 모욕적인 묘사를 16세기의 만주족 조상에게 하는 것은, 만주족이 고대에서 현재까지 순조로운 역사적 진보를 이룩했다는, 건륭이 대중들에게 전달하고 싶었던 메세지에 위배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설명의 힘이 얼마나 강했던지, 결론적으로 주요한 주장을 뒷받침할 고고학적 증거도 거의 나타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20세기에 작성된 만주족에 관한 근대적인 기술 역시 건륭제가 처음으로 지적한 것과 같은 장소를 계속해서 언급했고, 중국의 고대에서 확실하게 만주의 근거를 찾으며, 만주족이 청 제국의 지배력을 갖도록 성장한 것을 거침없는 역사적 진보의 결과라고 표현함으로써, 모든 만주족에게 처음으로 논리정연한 국사를 제공하는데 성공했다.[11] 이는 만주족의 정체성에 대한 청 제국의 시도의 정점이다.[12]

구성[편집]

이 책은 총20권으로, 부족, 강역, 산천, 국속 등 4개 부문으로 나뉘어 있다.[13]

  • 1. 부족(部族) : 권1부터 권7까지로, 숙신, 부여, 읍루, 삼한, 물길, 백제, 신라, 말갈, 발해, 완안, 건주 등 여러 부와 이웃에 있던 색륜[14], 비야객[15]등의 흥망성쇠에 대하여 기록하였다.
  • 2. 강역(疆域) : 권8부터 권13까지로, 숙신부터 원나라에 이르기까지 여러 부족의 도시와 촌락에 대하여 역사서에 기록된 사료를 바탕으로 고증하였다.
  • 3. 산천(山川) : 권14부터 권15까지로, 각종 지리지에 기록된 것을 근거로 유명한 산과 강에 대하여 기록하였다.
  • 4. 국속(國俗) : 권16부터 권20까지로, 만주족 및 그 선대의 습속, 제사, 물산, 음식 등에 대하여 기록하였다.

한글 번역서[편집]

《만주원류고》의 한글 번역서는 다음과 같다.

  • 장진근 역주, 《만주원류고》, 파워북, 2008년
  • 남주성 저, 《흠정만주원류고》(상)(하), 글모아, 2010년

관련 도서[편집]

함께 보기[편집]

각주[편집]

  1. 孟森. 《淸史講義》. 8쪽. 
  2. Huang, P. 《New Light on the origins of the Manchu》. Harvard Journal of Asiatic Studies. 239~282쪽. 
  3. 趙展. 《對皇太極所謂諸申的辨正》. 
  4. 李德山. 《中國東北古民族發達史》. 38~39쪽. 
  5. 趙展. 《滿族文化與宗敎硏究》. 1쪽. 
  6. 姜成山 (2014). 《渤海王国の社会と国家》 (PDF). 桜美林大学大学院 国際学研究科. 4쪽. 2016년 8월 18일에 원본 문서 (PDF)에서 보존된 문서. 2018년 7월 29일에 확인함. 
  7. 酒寄雅志. 《渤海と古代の日本》. 校倉書房. 16쪽. ISBN 978-4751731703. 
  8. 大貫精夫. 《東北アシア考古學-世界考古學》. 同成社. 227쪽. 
  9. 노태돈·송기호·임상선·한규철. 《발해》. 국사편찬위원회. 83쪽. 
  10. Шавкунов Э.С. 《ПриморьеГосударство Бохай и памятники его культуры в》. 4~5쪽. 
  11. Elliott, Mark C. “Emperor Qianlong: Son of Heaven, Man of the World”. 《Library of Biography》. ISBN 978-0321084446. 
  12. Crossley, Pamela Kyle. “《Manzhou yuanliu kao》 and the Formalization of the Manchu Heritage”. 《Journal of Asian Studies》. JSTOR 2057101. 
  13. 장진근 역주, 《만주원류고》, 파워북, 2008년, 50~58쪽.
  14. 牛素嫻(2006), 清初的「索倫」諸部 색륜(索倫)은 에 사는 사람이라는 뜻인데, 솔론어를 사용하는 어웡키족의 한 갈래로 어웡키족, 다우르족, 오로촌족의 총칭이기도 했다.
  15. 한중관계연구소(2017) , 「아무르강의 어렵민, 허저족」, 『청아출판사』 2장(『허저족의 기원과 역사』), 62쪽 비아객은 허저족의 한 갈래로, 흑룡강 하구와 사할린섬 북부에 거주하였다. 겨울에는 개가죽 옷을 입고, 여름에는 물고기 가죽 옷을 입었다. 담비를 조공으로 바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