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원류고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흠정만주원류고》(欽定滿洲源流考, 만주어: ᡝᡥᠰᡝᡳ
ᡨ᠋ᠣᡴ᠋ᡨ᠋ᠣᠪᡠᡥ᠊ᠠ
ᠮᠠᠨᠵᡠᠰᠠᡳ
ᡩᠠ
ᠰᡝᡴᡳᠶᡝᠨ  ᡳ
ᡴᡳᠮᠴᡳᠨ
ᠪᡳᡨᡥᡝ
Hesei Toktobuha Manjusai Da Sekiyen-i Kimcin Bithe)는 청 제국 때 내각대학사 아계(阿桂, 만주어: ᠠᡤᡡᡳ Agūi), 군기대신 우민중(于敏中), 수석군기대신 화신(和珅, 만주어: ᡥᡝᡧᡝᠨ Hešen), 동각대학사 동고(董詁)가 건륭제의 재가를 받아 편찬한 만주의 원류 및 지명, 문화 등을 고찰하는 총 20권으로 이루어진 관찬서이다.

편찬 경위[편집]

건륭제는 건륭42년(1777년) 만주의 연혁, 근원 및 지명 등에 대하여 상세히 조사하여 관찬서를 편찬하라는 재가를 내렸고, 대학사 아계, 군기대신 우민중, 동각대학사 동고, 수석군기대신 화신 등의 명의로 경연강관·태자태보·동각대학사 동고가 주체가 되어 35명의 학자들이 이 책을 편찬하였다. 약 1년간의 작업을 거쳐 건륭 43년(서기 1778년) 《흠정만주원류고》라는 제목으로 총 20권의 책이 완성되었다. 이 책의 제목에는 "황제가 직접 썼다"는 뜻을 가진 흠정(欽定, 만주어: ᡝᡥᠰᡝᡳ
ᡨ᠋ᠣᡴ᠋ᡨ᠋ᠣᠪᡠᡥ᠊ᠠ
Hesei Toktobuha)이란 글자가 들어가 있는데, 그 이유는 내각에 책의 제작을 처음 지시한 것도 황제였고, 학자들이 초고를 하나씩 완성할 때마다 항상 황제에게 미리 올려 읽어보고 수정하게 하였기 때문이다.

내용[편집]

한인사대부의 문, 만주 전사의 무를 겸한 고관을 비롯한 35명이 동원되었으며, 17세기 청 제국은 고증학의 학풍이 꽃을 피워 만주원류고의 곳곳에 지명·인명·관명 등에 대하여 만주어·몽골어 등에 의하여 그 연원을 고증한 성과를 삽입했다.

자신들의 선대인 숙신[1][2] 읍루[3], 물길[4], 말갈[5], 발해[6][7][8][9][10], 건주, 완안 등을 만주의 원류로 삽입했고, 만주족의 원류라고 보기힘든 한국사의 삼한과 신라, 백제의 위치를 만주 지역으로 보았는데, 요서경략설을 지지했고, 신라의 계림(鷄林)을 음운이나 지리적 연혁으로 보아 오늘날 중국의 길림으로 비정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금나라의 시조 함보의 출자를 신라로 확정하여 이러한 연고로 금나라의 국호를 신라 왕성에서 유래하였다고 추측하면서 이외에 부여옥저 그리고 와 함께 만주의 원류로 삽입했다.

건륭제는 만주족과 여진족이 장백산맥이라는 공통의 지역적 기원 및 같은 혈통을 가졌다는 점에서 청 제국의 만주족 설립자들과 그보다 몇 세기 전에 금조를 세운 여진족 설립자들을 연결시킴으로써, 만주족의 역사에 대한 웅대한 묘사를 정립하려는 목적으로 만주원류고를 편찬하도록 하였다.

만주족의 역사에 관한 이와 같은 기술을 작성하여 출판한 건륭제는 많은 것을 염두에 두었다. 첫째, 만주족의 고대를 사람들에게 보여줌으로써 그는 만주족 제국의 유산을 입증하고, 이를 통해 청 제국 통치의 정통성을 강조하기를 희망했다. 둘째, 그는 만주족이 사실 명나라에 굴복한적이 없었다고 주장함으로써 만주족 지도층이 명나라에 불충한 것이 아니며, 만주족 지도층을 배신한 것은 한족 황제였다는 점을 보여주기를 바랬다. 이것은 천명이 만주족에게 넘어왔다는, 정통성을 강화하기 위한 논증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셋째, 문서기록에 근거하여 만주족 국가의 성장에 대한 전반적인 기술을 제공함으로써 건륭제는 만주족 자신의 정치적, 문화적 활력에 대한 어떠한 의심도 떨쳐버리게 하려고 생각했으며, 자신의 백성들에게 만주족 초기의 신화보다는 진실한 역사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흥미롭게도 건륭제는 만주족의 야만적인 기원을 숨기려고 노력하지 않았는데, 심지어 그는 여진족을 잔인하고 폭력적으로 묘사한 고대 중국인의 묘사를 인용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는 명대 이후 작성된, 마찬가지로 무례한 기술에 대해서는 인용을 거부했다. 명대 이후의 기록은 너무나도 정곡을 찌르고 있다. 사실 당시 그는 이러한 기록 대부분이 유통되지 못하도록 금지했다.

그는 만주족이 금조의 통치 아래에서 처음 맺은 결실을 수세기에 걸쳐 계속해서 발전시켜, 이제 자신의 통치 아래에서 활짝 만개했다는 사실을 증명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6세기의 조상에게 하던 모욕적인 묘사를 16세기의 만주족 조상에게 하는 것은, 만주족이 고대에서 현재까지 순조로운 역사적 진보를 이룩했다는, 건륭이 대중들에게 전달하고 싶었던 메세지에 위배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설명의 힘이 얼마나 강했던지, 결론적으로 주요한 주장을 뒷받침할 고고학적 증거도 거의 나타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20세기에 작성된 만주족에 관한 근대적인 기술 역시 건륭제가 처음으로 지적한 것과 같은 장소를 계속해서 언급했고, 중국의 고대에서 확실하게 만주의 근거를 찾으며, 만주족이 청 제국의 지배력을 갖도록 성장한 것을 거침없는 역사적 진보의 결과라고 표현함으로써, 모든 만주족에게 처음으로 논리정연한 국사를 제공하는데 성공했다.[11] 이는 만주족의 정체성에 대한 청 제국의 시도의 정점이다.[12]

영향[편집]

조선의 실학자들은 우리 고대사의 영역을 만주로 넓혀 연구를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18세기 말 이후에 남인의 실학자들은 치밀한 고증작업을 통해서 고대사의 중심무대를 한반도에서 찾았다. 그러한 이유는 《요사(遼史)》 계통의 자료들이 모두 북방종족들이 자신의 역사를 주류로 부각시키기 위해 억지로 한반도에 있는 지명도 만주로 끌여 들여, 한반도를 역사의 주변적 위치로 격하시키려 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1778년, 《만주원류고》의 출현은 어떤 의미에서는 한국사의 말살 내지는 전락을 의미했기 때문에 당시의 조선의 식자들에게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따라서 이에 대한 학문적 반박이 요구되었던 때문에 18세기 말 이후의 학자들이 한국 고대사의 중심무대를 한반도에 비정하려고 하였던 것은 한국사를 축소하고자 하였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청 제국에 대한 주체성을 견지하기 위한 민족주의의 발로였던 것이다.[13] 이처럼 잘못된 역사디리 연구가 배척되어가고 있었는데, 불행히도 새삼 《만주원류고》를 주목하는 세력이 등장하게 됐는데 바로 일본인들이었다.

만주국을 중국과 분리시켜 일본제국주의의 만주 진출을 합리화하는 침략 논리를 개발하고 있었던 일본 학자들에게 《만주원류고》는 적합한 책이었다. 《만주원류고》은 식민사관만선사관에 안성맞춤으로 어울렀던 것이다. 이 만선사관은 만주를 차지해야 한민족의 영광이 있다고 생각하는 유사역사학에 그대로 계승되어 있다.[14]

구성[편집]

이 책은 총20권으로, 부족, 강역, 산천, 국속 등 4개 부문으로 나뉘어 있다.[15]

  • 1. 부족(部族) : 권 1부터 권 7까지로, 숙신, 부여, 읍루, 삼한, 물길, 백제, 신라, 말갈, 발해, 완안, 건주 등 여러 부와 이웃에 있던 색륜[16], 비야객[17]등의 흥망성쇠에 대하여 기록하고,[18] 뒤에 《〈금사(金史)〉성씨고(姓氏考)》를 덧붙였다.[19]
  • 2. 강역(疆域) : 권 8에서 권 13까지로, 지리 방위에 따라 점대면(點帶面)과 어느 지점의 성과를 전면적으로 넓히는 것을 통해서, 도시와 읍·촌락을 묘사하고, 뒤에 《명위소성참고(明衛所性站考)》를 덧붙였다.
  • 3. 산천(山川) : 권 14에서 권 15으로, 동북의 나라의 주요한 산맥을 묘사하되, 산맥의 역대 칭호 등 연역의 정황을 파악하였으며, 뒤에 단단대령(單單大嶺)의 여러 산들을 덧붙였다.
  • 4. 국속(國俗) : 권 16에서 권 20으로, 기사(騎射)·관복(官服)·정교(政敎)·제사·제천(祭天)·잡례(雜禮)·관제(官制)·언어·물산(物産) 등을 일일이 소개하였다.

전서는 체례적으로 3개의 부분으로 나눌 수 있으니, 제1부분은 모든 류의 전면에 각종 설명과 안어(按語)를 하였는데, 8백 자에서 5천 자 등 한결같지 않다. 각권마다 모두 전어(前語)와 후어(後語)가 있는데 일반적으로 300자에서 550자 쯤 된다. 이러한 설명과 안어(按語)로써 작자의 여러 가지 관점을 설명표달하고 있다. 제2부분은 서중의 인용문인데, 대략 1,450조목이다. 제3부분은 본문의 옳고 그름을 논한 간주 부분으로, 전서의 1,800여 군데에 분산되어 있다. 총괄적으로 말하면, 전서의 각종 자료의 휘편(彙編)은 2,500여 조목에 달하지만, 그들은 결코 난잡하고 무질서한 것이 아니라, 문중에서 편자가 가한 설명·주석(注釋)·안어(按語) 등 동류의 소재를 횡적으로 관통시키며, 비교·보충과 고증을 통해서 독자들로 하여금 정보를 조사에 편하게 하고 있다.[20]

한글 번역서[편집]

《만주원류고》의 한글 번역서는 다음과 같다.

  • 장진근 역주, 《만주원류고》, 파워북, 2008년
  • 남주성 저, 《흠정만주원류고》(상)(하), 글모아, 2010년

관련 도서[편집]

함께 보기[편집]

각주[편집]

  1. 孟森. 《淸史講義》. 8쪽. 
  2. Huang, P. 《New Light on the origins of the Manchu》. Harvard Journal of Asiatic Studies. 239~282쪽. 
  3. 趙展. 《對皇太極所謂諸申的辨正》. 
  4. 李德山. 《中國東北古民族發達史》. 38~39쪽. 
  5. 趙展. 《滿族文化與宗敎硏究》. 1쪽. 
  6. 姜成山 (2014). 《渤海王国の社会と国家》 (PDF). 桜美林大学大学院 国際学研究科. 4쪽. 2016년 8월 18일에 원본 문서 (PDF)에서 보존된 문서. 2018년 7월 29일에 확인함. 
  7. 酒寄雅志. 《渤海と古代の日本》. 校倉書房. 16쪽. ISBN 978-4751731703. 
  8. 大貫精夫. 《東北アシア考古學-世界考古學》. 同成社. 227쪽. 
  9. 노태돈·송기호·임상선·한규철. 《발해》. 국사편찬위원회. 83쪽. 
  10. Шавкунов Э.С. 《ПриморьеГосударство Бохай и памятники его культуры в》. 4~5쪽. 
  11. Elliott, Mark C. “Emperor Qianlong: Son of Heaven, Man of the World”. 《Library of Biography》. ISBN 978-0321084446. 
  12. Crossley, Pamela Kyle. “《Manzhou yuanliu kao》 and the Formalization of the Manchu Heritage”. 《Journal of Asian Studies》. JSTOR 2057101. 
  13. 한영우, 《조선시대 사서를 통해 본 상고사의 이해》 (《계간경향(季刊京鄕)》 1987년 여름호
  14. 이문영 (2018). 《유사역사학 비판》. 역사비평사. 363~364쪽. ISBN 9788976965554. 
  15. 장진근 역주, 《만주원류고》, 파워북, 2008년, 50~58쪽.
  16. 牛素嫻(2006), 清初的「索倫」諸部 색륜(索倫)은 에 사는 사람이라는 뜻인데, 솔론어를 사용하는 어웡키족의 한 갈래로 어웡키족, 다우르족, 오로촌족의 총칭이기도 했다.
  17. 한중관계연구소(2017) , 「아무르강의 어렵민, 허저족」, 『청아출판사』 2장(『허저족의 기원과 역사』), 62쪽 비아객은 허저족의 한 갈래로, 흑룡강 하구와 사할린섬 북부에 거주하였다. 겨울에는 개가죽 옷을 입고, 여름에는 물고기 가죽 옷을 입었다. 담비를 조공으로 바쳤다.
  18. 장진근 역주, 《만주원류고》, 파워북, 2008, 50~58쪽.
  19. 吳松林, 《〈滿洲源流考〉綜述》, 2009, 1쪽
  20. 吳松林, 《〈滿洲源流考〉綜述》, 2009, 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