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푸 조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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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푸조약(중국어 정체: 黃埔條約, 간체: 黄埔条约, 병음: Huángpǔ Tiáoyuē) 또는 황보조약은 청나라와 프랑스 간의 아편전쟁의 결과물인 난징 조약의 마무리를 위한 조약으로 청나라 도광제 24년인 1844년 10월 24일, 청나라 정부의 전권대신 치잉(耆英)과 프랑스 대사 테어도어 드 라그레네와 사이에 맺은 조약이다. 마찬가지로 조약의 명칭은 조약이 서명된 황저우 부근의 황푸에서 체결되었기 때문에 지역명을 따서 불렀다.

개요[편집]

치잉(耆英)은 이미 1년 전인 1843년 10월에 영국과 후먼조약을, 1844년 7월에 미국왕샤조약을 맺은 인물이다. 미국과 왕샤조약을 체결한 3개월 뒤에 프랑스와도 조약을 체결하여 난징조약을 마무리 짓는다.

내용[편집]

내용은 영국이나 미국과 별로 다를 것이 없었다.

  • 다섯 개의 항구를 프랑스의 상인에게 개방한다.
  • 중국에서 프랑스의 치외법권을 인정한다.
  • 고정관세를 유지한다.
  • 영사를 상주시킬 권한을 갖는다.

결과[편집]

프랑스도 조계지를 할당받고, 100년간의 조계시대가 열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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