캬흐타 조약 (172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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캬흐타 조약(러시아어: Кяхтинский договор, 만주어: ᠵᡠᠸᠠ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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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wan Emu Hacin-i Bithe, 중국어: 布连斯奇条约)은 1727년6월 25일 청 제국제정 러시아 사이에 맺은 조약이다. 캬흐타1689년 청·러 간에 네르친스크 조약이 체결된 후에 생긴 러시아 마을인데, 러시아와 외몽골의 국경에 있어서 청 제국의 매매성(賣買城)과 대치하고 있다.

1689년의 네르친스크 조약으로 청·러 양국민 간 교역의 자유가 허락되자 몽골 방면으로 러시아 상인들이 몰려들었다. 그러나, 몽골 방면의 국경이 불명확하고 교역과 관련된 분쟁이 점차 늘어나자, 청·러 양국은 통상문제를 조정하고 러시아와 외몽골 사이의 국경을 확정할 목적으로 11개조로 구성된 이 조약을 체결하였다.

조약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몽골 지역의 국경을 정함. - 현재의 러시아몽골의 국경선.
  2. 러시아 대상(隊商)을 200명의 인원으로 3년에 한번씩 베이징(北京)에 올 수 있게 함.
  3. 캬흐타와 아르군 강변에 교역장(交易場)을 설치함.
  4. 러시아가 베이징에 교회를 설립하고 선교사와 어학(語學) 연구생(5명)을 둠.

네르친스크 조약- 캬흐타 조약(이하 청 - 러 조약)은 청 제국과 러시아가 서로 '대등한 위치'를 가지고 조약을 맺은 것인데, 많은 이들이 아편 전쟁 후의 '불평등 조약 체제'에 집중하기 때문에 '평등 조약'인 것에 주목하지 청 - 러 조약이 왜 만주어로 기록되었는지는 주목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왜 청 - 러 조약의 기록을 만주어로 남겼냐 하면, 청 - 러 조약이 평등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즉, 중국적 화이(華夷)개념에 따르면 '이(夷)'인 러시아와 맺은 조약은 '불평등 조약'이어야 한다. 천자의 나라인 중국이 상위, 러시아가 하위인 조약이어야 한다는 것. 하지만 중가르 칸국 문제의 해결에 쫓기던 청 제국은 러시아에 불평등 조약을 강요할 수 없었고, 결국 청 - 러 조약은 평등 조약이 되었다. 즉, 중국적 중화 세계 개념으로는 용납할 수 없는 조약이기에 청 - 러 조약의 기록은 한문 기록이 전무하고 만주어로만 기록되었으며, 조약의 체결 자체에도 한족 관리는 참여하지 못했다. 이는 청조가 청 - 러 조약에 대한 한문 기록에서는 '대등'이나 '평등'을 연상케하는 구절이나 어휘를 없애거나 모호하게 만든 것에서도 입증된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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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구범진, 《청나라, 키메라의 제국》 제4장 청 제국과 러시아, 민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