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유럽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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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유럽조어(Proto-Indo-European language, PIE)는 인도유럽어족에 속하는 언어들의 근간이 되었으리라고 여겨지는 언어이며, 이를 현대의 언어학자들이 재구성한 조어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기원전 6000년경에 처음으로 인도유럽어족의 조상격이 되는 언어가 등장하였다고 여겨지며, 이후 사템어켄툼어로 분리된 뒤, 다시 발트어파, 슬라브어파, 인도이란어파, 게르만어파 등으로 분화되었다.

이 언어의 성립에서 붕괴까지의 기간은 선사 시대에 있었다. 따라서 기록된 문자가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모두 구전에 의해서 자손으로 계승되어 직접적인 기록이 전혀 남아 있지 않다. 따라서 이후 파생된 언어를 통해 추정하여 재구성이 진행되고있다. 이에 대한 가설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그 두가지의 가설은 쿠르간 가설아나톨리아 가설이다.

발견과 재구성[편집]

인도유럽조어는 18세기라틴어, 고전 그리스어, 산스크리트어 등 당시 알려졌던 인도유럽의 여러 언어의 공통의 기원을 이루는 것으로서 제안되었다. 당초 다른 언어에서 떨어진 아나톨리아어파토카리아어파는 인도 유럽어에 포함되지 않았으며, 후두음 이론도 고려되지 않았다. 그러나 계속된 연구를 통해 이후 기록을 통하여 두 어파의 존재가 밝혀졌으며, 또 히타이트어에 후두음의 존재가 확인되면서, 이론적으로 인도유럽조어 붕괴 시기의 1000년 전에 우선 아나톨리아어파가 먼저 분화되었고, 이후 토카리아어파가 분화했다는 모형이 완성되었다.

인도유럽조어는 문자를 갖지 못했기 때문에 직접 증거는 존재하지 않으며, 음운 및 어형은 모두 이후 분화된 언어를 바탕으로 한 비교 분석하여 재구성한 것이다. 인도유럽어족에 속하는 언어의 단어의 대부분은 인도유럽조어에서 사용된 하나의 시조형을 기초로 일정한 음운 변화의 법칙에 의해서 파생된 것으로 생각된다.

화자[편집]

인도유럽조어를 사용했던 화자는 어떤 공동체 집단을 만들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이를 원(原) 인도유럽민족이라는 부르는 경우도 있지만, 이들이 단일한 민족 또는 인종에 있었다는 보장은 없다. 19세기 후반 이후 특히 나치 독일에서는 이것을 두고 "아리아 민족"(본래 아리아인의 뜻은 원(原) 인도·이란 민족이다)이라는 이름으로 불렀고, 독일인 등이 그 직계 자손인 것처럼 선전되었다(아리안 학설).

사회[편집]

다만 인도유럽어조어를 사용했던 화자 집단의 사회가 어떤 것이었는지는 어휘에서(또 민속학, 신화학 등의 지식도 참고.) 어느 정도 추정할 수 있다. 그들의 생활 양식은 거의 다음처럼 여겨진다.

목축농경이 주요 생업이었다. 일부 집단은 나중에 유목 생활에 들어가 정주적인 목축과 농경을 하는 집단의 주위에 펼쳐진 스텝 지역에서 생활하였다. 가축에는 , , 돼지가 있었으며 가축은 대표적 재산이기도 했다. 나중에는 수레을 끌기 위한 용도로 말과 소를 이용하였다. 또한 바다 또는 호수 등이 있었으나, 어업·항해는 별로 활발하지 않았다. 금속의 경우에는 아마 ·의 존재를 잘 알고 있었으나, 일상적으로는 순동기를 사용하였다(동기 시대).

사회 제도는 가부장제이며, 영어의 sister 등의 기준이 된 단어는 "자신의 여자"로 해석되기 때문에 족외혼제였을 가능성도 높다. 제사, 전사, 평민의 3계급으로 되어 있었다.

그들은 신들이 하늘에 있다고 생각했으며, 주신을 "하느님 아버지"(그리스의 제우스, 로마의 유피테르 참고)로 불렸다고 본다. 또한 "새벽의 여신"(그리스의 에오스, 로마의 아우로라 등)도 기원이 이 시대로 올라간다.

지역·연대[편집]

인도유럽조어의 화자 집단이 언제, 어디에 살고 있었는지는 고고학적으로 그들의 사회의 모습과 함께 다양하게 논의되고 왔다. 그 기원지에 대한 가설로는 크게 5,000-6,000년 전의 흑해·카스피해 북쪽(현재의 우크라이나)이라고 하는 쿠르간 가설과 8000-9500년 전의 아나톨리아(현재의 터키)로 하는 아나톨리아 가설이 있다. 그밖에 아르메니아 고원을 기원지로 하는 아르메니아 가설도 있다.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