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의 눈동자
| 장르 | 드라마 |
|---|---|
| 방송 시간 | 매주 수·목요일 밤 9시 50분 |
| 방송 분량 | 50분 |
| 방송 기간 | 1991년 10월 7일 ~ 1992년 2월 6일 |
| 방송 횟수 | 36회 + 스페셜 1회 |
| 방송 국가 | |
| 방송사 | MBC 문화방송 |
| 기획 | 최종수 |
| 제작 | 이강훈 |
| 연출 | 김종학 |
| 원작 | 김성종 |
| 조연출 | 이창순, 이광훈 |
| 각본 | 송지나 |
| 출연자 | 채시라, 박상원, 최재성 |
| 음성 | 2채널 스테레오 사운드(아날로그) 한국어 |
| 자막 | 청각 장애인들을 위한 자막 방송 |
| 여는 곡 | Main title Love Theme - 최경식 작곡 |
| 닫는 곡 | End Title Love Theme - 최경식 작곡 |
《여명의 눈동자》(黎明의 눈동자)는 1989년에 기획하였고 1991년 10월 7일부터 1992년 2월 6일까지 방영된 MBC 문화방송 창사 30주년 기념 특별기획 드라마이다.
소설가 김성종의 《여명의 눈동자》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1][2] 최종수가 기획, 김종학이 연출[3]했고, 송지나가 극본을 썼다. 총 36부작이며 한 회당 50분의 방송 분량이며 마지막회인 36부는 특별히 1시간 40분의 방송 분량으로 방송을 내보냈다. 중국 본토와 필리핀 등에서 현지 로케이션으로 총 제작비 72억 원, 한 회당 제작비 2억 원이 들었다.[4]
일제 강점기인 1943년 겨울로부터 한국 전쟁 직후인 1953년 겨울까지 10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세 명의 주인공 윤여옥, 최대치, 장하림이 겪는 인생역정을 그렸다. 사전제작, 현지 로케이션 등은 1991년 당시에는 매우 획기적인 시도였으며,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하였다. MBC 드라마 다시 보고싶은 드라마 1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5][6]
목차 |
[편집] 제작
[편집] 기획과 촬영
1989년 10월부터 창사 30주년 기념특집극으로서 기획에 들어가 그 다음해인 1990년 5월 3일부터 MBC 정동 스튜디오에서 실내 촬영을 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당시 총 10권의 분량의 소설 《여명의 눈동자》를 바탕으로 기획, 제작되었는데 극본을 쓴 송지나는 《여명의 눈동자》 소설을 현대사의 굴곡진 시점과 일치시켜서 암울한 전근대를 살았던 구세대들의 젊은 모습과 사랑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하였다. [7]총 36부작인 이 드라마를 위해 연기자 800여 명과 중국의 현역 중국 인민군 군인 200여 명을 비롯 국내외 보조 출연자 20,000여 명이 참가하였다. 일본군으로서의 모습을 실감나게 표현하기 위해, 주인공 최대치 역을 맡은 최재성을 비롯하여 장항선, 박인환 등도 모두 삭발하였다. 음향의 대부분이 야외촬영이 많아서 후시녹음으로 진행되었으나, 때때로 국내 세트장이나 스튜디오 안에서는 동시녹음으로 녹음되었다. 사실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촬영 시 크레인 등을 이용하였고 워낙 전투 장면이 많아 폭약 등의 특수효과도 많이 사용하였다.
뒤이어 1990년 6월부터 해외 촬영을 시작하여 필리핀에서 최대치가 소속된 일본군 제15사단의 버마 행군 장면과 하림이 근무하는 군 야전 병원의 모습을 찍기 위해 사이판의 모습 등을 촬영하였으나 현지 여건상 일본인과 비슷한 사람들을 구하기 쉽지 않아 현지 필리핀 원주민을 엑스트라로 대거 동원하여 극의 여러 장면들을 촬영한 후 성우들의 후시녹음으로 장면을 완성하였다.[8] 특히 1991년 2월, 당시 대한민국과 국교를 맺지 않던 중화인민공화국으로 들어가 하얼빈 교외와 상하이, 난징, 쑤저우, 구이린에서 731 부대, 팔로군 옌안 본부 장면 등을 촬영함으로서 극과 원작의 완성도를 높였다. 또한 제주 4·3 항쟁 장면을 찍기 위해 1991년 5월에는 제주도에서 촬영하였다.[8] 방송 시작 전까지 1년 5개월의 긴 사전 제작 기간을 가졌으나 정작 방송 시작 후에도 촬영을 완전히 끝맺지 못하고 마지막회인 제36부 방송일인 1992년 2월 6일 하루 전날인 2월 5일에서야 마지막 장면인 최대치와 윤여옥의 최후 장면을 다 촬영하고 방송 시작 10분 전에서야 마지막회 편집 작업이 마무리되어 제작·촬영의 2년 4개월 간의 일정을 끝맺었다.[4]
[편집] 설정
《여명의 눈동자》는 세 주인공의 엇갈린 삶이 점차 엮어가면서 점차 사랑과 갈등의 사이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처음에 주인공 윤여옥이 위안부(일본군성노예)로, 장하림은 대학생, 최대치는 일본군 학도병으로 각기 다른 인생이지만 우연의 순간으로 만나며 서로 좋아하고 사랑을 하지만 역사와 이념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리는 당시 현대사의 설정을 차용하였다.[9] 본래 소설 《여명의 눈동자》는 세 남녀간의 사랑과 갈등, 그리고 시대적 아픔과 배경에 초점을 맞추었으나 송지나가 각색한 드라마에서는 이러한 요소와 더불어 현대사의 자본주의-공산주의 이데올로기적 요소,[10] 그리고 해방 정국과 대한민국 정부수립 초기의 어수선한 정치적 요소까지 가미하여 만들었다.[11]
[편집] 음악
《여명의 눈동자》 OST는 작곡가 최경식이 작·편곡하였고 모스크바 방송 교향악단이 연주를 하였다.[12] 당시 최경식의 애절하면서도 시대상을 잘 보여주는 음악은 40만장이나 팔리며 큰 인기를 끌었으나 앨범 중 2번 곡인 ‘여옥의 테마 - Sub Title Theme’가 영화 드레스드 투 킬(Dressed to Kill) 메인 테마곡을 표절하였다는 표절시비에 휘말려서 앨범이 리콜되고 앨범제작이 중단되기도 하였다.[12][6] 특히 열차가 달려나오는 오프닝 테마와 함께 시작하는 오프닝 테마곡인 피아노 반주곡 Main title Love Theme는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드라마 오프닝 테마곡 중 하나이다.
[편집] DVD 출시
2006년, 드라마가 끝난지 14년 뒤에 드라마 본편 36편과 스페셜 다큐멘터리 1편 등 총 37편이 담긴 DVD 박스세트가 출시되었다.[6] 드라마 본방송으로 방영되었을 때보다 화질을 개량하여 보다 선명하게 보이게 하였다.
[편집] 출연진
[편집] 제작진
- 기획 - 최종수
- 원작 - 김성종
- 극본 - 송지나
- 작·편곡 - 최경식
- 편집 - 조인형
- 촬영 - 임이랑, 한숙동, 서득원, 조수현
- 촬영보 - 연석돌, 유종수, 최안식
- 조명 - 송문섭
- 조명보 - 김근수, 강호일, 이범호
- 무대 디자인 - 서정남, 성철중, 전진권, 유현상, 백성흠
- 그래픽 디자인 - 김양배
- 타이틀 제작 - 제일기획
- 미술지원 - 김종수, 이영우, 마봉두
- 장치 - 권오룡, 박오순, 전인수
- 사식 - 우상원
- 분장 - 유재영, 김봉천, 장 진
- 미용 - 오순심, 김명춘
- 의상 - 이혜란, 박근성
- 장신구 - 신 걸
- 소도구 - 백공기, 송재호, 강홍대, 이건무
- 특수효과 - 박광남, 민치순
- 기술감독 - 최 천
- VCR 편집 - 이현미
- 중국 촬영협조 - 장보영, Li Production
- 필리핀 촬영협조 - Video Cinema Resources
- 녹화 - 강자중
- 음향 - 김완식
- 영상 - 정원식
- 녹음 - 신기옥, 고희철
- 음악 - 정용국
- 효과 - 김주식, 황창욱, 이종렬, 김기수, 최석봉
- 기록 - 이현미, 권왕례
- 행정 - 이종태, 윤병철
- 섭외 - 박창식
- 진행 - 서정민, 민완식, 정흠문
- 제작지휘 - 이강훈
- 조연출 - 이창순, 이광훈
- 연출 - 김종학
- 해설 - 이봉준
[편집] 뒷이야기
- 1~4부까지는 월~목요일(1991.10.7 ~ 10) 연속 방영되었고, 5부부터 수·목요일에 정규 방영되었다.
- 극중 최대치 역을 맡은 최재성은 드라마 장면 도중 뱀을 뜯어먹는 장면을 촬영했는데 실제로 살아있는 뱀을 뜯는 법을 배워서 껍질을 뜯어가며 먹었다.
- 난징에서 헤어지기 전, 최대치(최재성 분)과 윤여옥(채시라 분)이 철조망에서 나눈 키스신, 소위 ‘철조망 키스신’은 팬들로부터 명장면으로 꼽는다. [13][6]
- 총 제작기간이 2년 4개월, 출연자와 엑스트라가 모두 21,000명이다.
- 이 드라마로 채시라, 최재성, 박상원은 인기를 끌었다.[6][14][15] 그러나 박상원은 대사처리 테크닉이 부족하다는 평과 채시라는 마네킹 연기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16]
- 1992년 2월 25일 채시라는 모교 동국대학교 졸업식에서 '여옥 역을 맡아 학교의 명예를 드높인 점'을 인정받아 민병천 당시 동국대 총장으로부터 공로상을 받았다.[17]
- 광고비만 36억 원을 기록하여 역대 최대 규모의 광고 수주 기록을 남겼다.[15]
- 제1부부터 50%의 시청률을 넘겼고 줄곧 평균 시청률이 44.3%였다.[18] 마지막회가 방송된 1992년 2월 6일 58.4%의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였다.
- 한 고등학교에서는 시청을 권장하는 내용의 훈화가 있었으며, 일부 학교에서는 역사교육 자료의 일환으로 녹화테이프 제공 요청이 있었다. [19]
- 4·3항쟁을 다룬 내용이 방영된 뒤, 문화방송에 제주도민들로부터 '이 사건을 TV에서 다루어준 것만으로도 감사한다'라는 격려의 전화가 쇄도하였다.[20]
- 2006년 KBS에서 여명의 눈동자 등장인물 성격과 스토리 전개 등을 리메이크한 서울 1945가 방송되었다.[21]
[편집] 수상
[편집] 드라마에 대한 말
《여명의 눈동자》는 당시 대한민국 드라마에는 거의 없던 사전제작을 이용하여 드라마의 완성도를 크게 높였으며 큰 스케일과 탄탄한 각본으로 원작보다 더 낫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리얼리즘을 잘 살려서 멜로의 극적 구조 안에 추악한 현실의 수레바퀴에 깔려 스러지는 당대 젊음의 욕망과 이상을 비극적 정조로 그려냈다.[22] 특히 위안부·제주 4·3 항쟁을 소재로 하는 등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과감한 묘사와 철저한 고증, 현지 로케이션, 그리고 1991년 당시에 썼던 화려한 영상기법은 사실감을 크게 높였다는 평가도 받는다. 대한민국 드라마의 제작기술을 국제적 수준으로 높였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극 중 일본어, 중국어, 영어가 나올 때 자막처리를 함으로써 '국제적 수준의 드라마로구나'라는 쾌감을 느끼게 했다는 평가도 있다. 또한 냉전논리에 좌우되지 않고 우파와 좌파의 당시 활동에 대해 균형있는 시각을 견지하려 한 제작진의 노력이 보인다는 찬사를 받았다.[20] 당시 《여명의 눈동자》 스페셜 다큐멘터리에 출연해 인터뷰를 한 중앙대학교 영화학과 김정옥 교수는 시간에 쫓기지 않고 미리 2/3 이상의 분량을 만들어서 완벽성을 추구하려 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었다고 말했다.
제작진은 '이념보다 인간성을 우위에 두었다'라고 이 작품을 설명했지만, 드라마 속의 인간들은 상황과 이념에 묶여 수동적으로 끌려다니는 인간상을 보이고 있다. 당시 지식인들은 능동적으로 이념적 지향점을 찾았음에 반해 작품의 인물들은 수동적 인간상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평가가 있었다. 또한 역사에 대한 허무주의, 이념에 대한 극도의 혐오감 등이 또다른 지배이념이라는 비판도 있었다.[15]
구성에 있어서는 몇가지 상투적 기법이 사용되었고 또한 위안부의 모습을 너무 감상적으로 그렸다는 평가까지 나왔다. 또한 당시 흔하지 않았던 드라마 속의 키스신, 731부대의 잔인한 생체실험 장면이나 뱀을 산 채로 뜯어먹는 등의 자극적이고 참혹한 장면이 과연 안방드라마로 적합한가에 대한 논란이 있었으며 방송위원회가 각종 제재조치를 가하기도 했다.[20]
[편집] 고증 오류
- 현준혁은 조만식과 함께 소련군정장관 로마넨코(A.A. Romanenko)가 있는 사령부에 들렀다가 돌아가던 중 평양시청 앞에서 백의사의 백관옥에게 암살당했지만 극중에서 군중들사이에 연설중 저격맞는것으로 나온다.
- 9월 총파업 당시 농성 중이던 철도노동자 1000명 검거, 간부 3명이 사망했지만 극중에서 전평계노조간부 16명 검거, 노동자 1200명검거, 2명 사망, 노동자들의해 스스로 미군정의 대한 항쟁한것으로 나온다.
- 1945년 7월 부민관 사건은 다이너마이트를 설치해서 폭파하면서 사망한 사람이 없이 대회장을 아수라장이 된 사건이자만 극중에서 OSS의 지시[23]로 폭탄을 투척하여 사망 1명, 중경상 2명으로 나오며 부민관 건물 고증도 틀리게 나온다.
[편집] 주석
- ↑ 1981년 4월 9일자 동아일보
- ↑ 1982년 12월 22일 경향신문
- ↑ 1990년 1월 19일 경향신문
- ↑ 가 나 1992년 2월 8일자 경향신문
- ↑ [1] iMBC 드라마 다시보기 - 여명의 눈동자
- ↑ 가 나 다 라 마 유지영 (2006년 12월 30일). 철조망 키스신 명장면 15년 흘러도 감동여전 (한글) (HTML). 2009년 3월 28일에 확인.
- ↑ 박유리, ‘꽃보다 남자’ 후속작은 물신주의에 대한 반성? 국민일보, 2009년 3월 3일
- ↑ 가 나 1991년 11월 15일 경향신문
- ↑ 윤여옥은 최대치와 처음 난징에서 만나지만 최대치가 버마로 원정을 떠난 후 자원하여 남방 위안부로 가서 그곳에 있던 장하림을 만나고 난 후, 해방이 되자 다시 서울에 돌아와 공산주의자가 된 최대치를 만난다.
- ↑ 주인공 최대치는 중국 본토로 건너간 후, 자신의 부인인 윤여옥의 아버지 윤홍철을 만난 후 사상의 갈등을 크게 겪는다.
- ↑ 1948년 제주 4·3 항쟁 발생 후, 미군정청장 윌리엄 딘 소장과 경무부장 조병옥, 민정장관 안재홍 등이 제주도에서 비밀회담을 가질 때 주인공인 장하림과 종로경찰서 수사과장 최두일이 그 자리에 있었다는 설정이 예이다.
- ↑ 가 나 성우제 (1992년 6월 18일). 대중음악계에도 러시아 바람 (한글) (HTML). 2009년 3월 24일에 확인.
- ↑ 안진용, 추억의 대박 드라마 다시 볼 수 있다, 한국일보, 2008년 5월 5일
- ↑ 채시라 《여명의 눈동자》가 연기의 터닝 포인트 뉴스엔
- ↑ 가 나 다 김동선 기자. “여명의 눈동자/갖가지 화제 뿌리고 종영”, 《서울신문》, 1992년 2월 8일 작성, p. 10면. 2009년 5월 2일 확인.
- ↑ TV評(평)「여명의 눈동자」드라마技法(기법)에 새地平(지평) 경향신문 1992년 1월 29일
- ↑ 이춘규 기자. “대학가 졸업화제 “만발”/탤런트 채시라 “학교명예 높였다” 공로상”, 《세계일보》, 1992년 2월 26일 작성, p. 21면. 2009년 5월 2일 확인.
- ↑ 전영선 기자. “‘국민 드라마’ 사라지나”, 《문화일보》, 2007년 3월 24일 작성.
- ↑ 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책 1990년대편》, 제1권 p.123-124
- ↑ 가 나 다 김현덕 기자. “TV극 신기원 개척/「여명의 눈동자」”, 《국민일보》, 1992년 1월 31일 작성, p. 19면. 2009년 5월 2일 확인.
- ↑ 마지막회 장면도 비슷하게 연출되었다.
- ↑ 손원제 한국 드라마 리얼리즘 어디 갔소? 한겨레, 네이버 뉴스 제공, 2004년 12월 7일
- ↑ 여옥,폭탄 넘겨주려다 발각 △특집드라마〈여명의 눈동자〉(M밤 9시55분) 한겨레 1991년 12월 4일
[편집] 바깥 고리
- (한국어) iMBC 드라마 다시보기 여명의 눈동자
- 《스페셜 다큐멘터리 - 여명의 눈동자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MBC 문화방송, 1992년 5월 15일 방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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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역사 드라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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