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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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 선거
대한민국
2002년 ←
2007년 12월 19일
→ 2012년

투표율 63.0%
  Sebastián Piñera - Lee Myung-bak (cropped).jpg Jungdongyoung2007.jpg LEEHAECHANG2010.jpg
후보 이명박 정동영 이회창
정당 한나라당 대통합민주신당 무소속
득표수 11,492,389 6,174,963 3,559,681
득표율 48.7% 26.1% 15.1%

PESK2007 RESULT MAP.png

광역시·도별 우세지역
이명박
정동영

선거전 대통령

노무현
열린우리당

대통령 당선자

이명박
한나라당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 선거(大韓民國 第十七代 大統領 選擧)는 대한민국의 제17대 대통령을 선출하기 위한 선거로 2007년 12월 19일 수요일에 실시되어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총 12시간 동안 투표가 진행되었다. 3765만 3518명의 유권자 중 2373만 2854명이 투표에 참여했다. 투표율은 63.0%로 역대 최저 투표율을 기록하였다. 기업인 출신으로서 경제 성장 공약을 내세운 이명박 후보가 개표 4%만에 당선 확실로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되었다.[1]

선거 정보[편집]

투표일[편집]

1987년 10월 29일 개정된 헌법 제68조에 따르면 대통령 선거는 임기만료일 70일 전부터 40일 이전에 실시해야 한다. 1998년 개정된 공직선거법에는 임기만료일 70일 전의 첫 번째 수요일로 규정되어 있다. 현행헌법의 부칙에 의하여 대통령의 임기는 헌법의 시행일로부터 개시되도록 정해져 있다. 현행헌법이 1988년 2월 25일에 시행되었으므로 대통령의 임기는 취임 후 5년이 경과한 해의 2월 24일에 만료된다. 1987년 이후 대통령 선거는 5년마다 12월 16일(1987년),12월 18일(1992,1997), 12월19일(2002,2007)에 실시되었다.

선거 일정[편집]

선거권자[편집]

1988년 12월 19일 이전에 태어난 만 19세 이상 대한민국 국민은 선거권이 있다.

후보자[편집]

1967년 12월 19일 이전에 생일을 맞은 만 40세 이상 대한민국 국민은 후보가 될 수 있다.

비주류 대선 주자의 등장 및 퇴장[편집]

주요 대선 후보 선출[편집]

한나라당[편집]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 한나라당 후보자 선출 선거.

한나라당이명박서울시장은 재임 시절 버스체계 개편과, 청계천 복원을 통해 큰 인기를 얻고 있었다. 그러나 당내에서는 오히려 2년간 대표를 지내며 대한민국 제17대 총선에서 위기에 빠진 당을 구해내고 대한민국 제6회 지방 선거를 압승으로 이끈 박근혜 전 대표가 세를 과시하고 있었다. 당에서는 둘의 화합을 중재하려 했으나, 경선 룰은 생각보다 쉽게 정할 수 없었다. 이명박 후보 측은 당의 결정에 따른다는 입장이었는데, 이 경우 자신에게 유리하게 국민 참여폭을 늘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반면 박근혜 후보 측은 ‘원칙’을 내세우며 룰 변경을 거부했다.

3월 18일 결정된 경선룰에 따르면 선거인단이 4만 명에서 20만명으로 (일반선거인단은 1만 2천 명에서 6만 명으로) 늘었고, 전당대회는 6월에서 8월로 연기되었다. 손학규 전 경기지사는 경선룰에 반발해 곧바로 탈당한 뒤, 후에 창당되는 대통합민주신당에 참여하였다.

6월 13일 후보 등록이 완료되었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 박근혜 전 대표, 홍준표 전 클린정치위원장, 원희룡 전 최고위원, 고진화 의원 등이 후보로 등록하였다. 그 중 고진화 후보는 7월 20일 사퇴한다.

여권에는 지지율이 높은 후보도 없었고, 범여권 정당의 지지율은 지리멸렬한 반면 한나라당의 지지율은 50%를 상회했기 때문에 한나라당 경선은 곧 본선으로 여겨졌고, 달아오른 경선 과정에서 이명박 후보 측에는 BBK 문제가, 박근혜 후보 측에는 정수장학회 문제가 붉어져나왔다.[3]

그 과정에서 친인척 관여 부동산 투기 의혹, 부인의 15차례 위장전입 의혹, BBK 관련 주가조자 의혹, X파일 존재론, 산악회 선거법 위반 논란, 도곡동 땅 문제 등이 붉어지며 이명박 후보의 지지율을 조금씩 끌어내렸다. 이 상황에서 타 후보들은 1985년 이명박 후보의 처남과 형 이상은 씨가 도곡동 일대의 땅을 잔뜩 매입한 후 지하철 개통으로 차익을 엄청 남기고 1995년 포스코에 되판 사건을 문제 삼았다.

전당대회를 6일 전인 8월 14일 검찰은 형 이상은 씨의 몫 일부가 이명박 후보의 차명계좌라는 중간수사발표가 하면서 이명박 사퇴론이 거세졌다. 그러나 다음날 대검찰청 정동기 차장이 곧바로 “도곡동 땅은 이명박 후보 소유라는 증거가 없다.”라는 말을 던지며 가까스로 수습한다. [3]

순위 기호 이름 여론조사 선거인단 총 득표 비고
비율 비율 비율
1 1 이명박 16,868 64,216 81,084 후보 확정
51.54 49.06 49.56
2 3 박근혜 13,986 64,648 78,634
42.74 49.39 48.06
3 2 원희룡 1,079 1,319 2,398
3.30 1.01 1.47
4 4 홍준표 793 710 1,503
2.42 0.54 0.92
- 5 고진화 - - - 후보 사퇴

8월 20일, 이명박 후보는 경선을 통해 한나라당 17대 대선후보로 확정되었다.

민주노동당[편집]

심상정 노회찬 권영길 합 계
제주 196 197 234
광주전남 508 655 1749
대구경북 990 957 1035
대전충남 752 736 925
해외 9 3 8
전북 422 660 1429
경남 911 677 2686
부산 532 592 1076
울산 599 347 1407
충북 497 323 332
강원 392 414 498
수도권 4256 3917 7674
총합 10064 9478 19053

결선투표 결과

득표순위 이름 득표수 득표율 비고
1 권영길 19,109 52.7% 당선
2 심상정 17,122 47.3%
총투표수 36,231

9월 15일 권영길은 경선을 통해 민주노동당 17대 대선후보로 확정되었다.

대통합민주신당[편집]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 대통합민주신당 후보자 국민경선.

집권여당이던 열린우리당은 낮은 지지율 때문에 중도개혁통합신당, 중도통합민주당 등의 이합집산을 거쳐 대통합민주신당으로 재집합하게 된다. 8월 22일 후보 등록 결과,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 손학규 전 경기지사, 이해찬 전 총리, 한명숙 전 총리, 유시민보건복지부 장관, 천정배법무부 장관, 신기남 전 열린우리당 의장, 추미애새천년민주당 최고위원, 김두관행정자치부 장관 등이 후보로 등록하였고, 9월 5일 여론조사 결과에 따른 예비경선으로 정동영, 손학규, 이해찬, 한명숙, 유시민 후보가 경선 후보로 결정되었다. 이 과정에서 투표율 오류가 발생하여 논란이 되었다.[3] 이후 본경선 여론조사가 쟁점이 되었는데, 지지율이 비교적 높았던 손학규 후보 측은 무려 여론조사 50%를 제안했고, 정동영 후보 측은 여론조사 불가를 주장했다. 결국 당은 여론조사 비율을 10%로 결정했다.

유시민 손학규 정동영 이해찬 합 계
제주울산 2890 4089 5265 3404
강원충북 사퇴 5279 8645 5511
광주전남 19906 26065 9826
부산경남 4508 6689 6614
모바일 1차 7649 7004 6285
모바일 2차 21359 19288 10535
모바일 3차 41023 35846 28464
여론조사 17525 21850 10216
잔여지역 47461 86332 29273
총합 사퇴 168799 216984 110128

울산-제주, 강원-충북에서 잇달아 정동영 후보에게 밀린 손학규 후보는 9월 19일 “신당 경선이 조직, 동원선거라는 구태정치로 회귀하고 있다.”며 칩거한다.[3] 칩거 사흘째인 9월 21일 다시 복귀했으나 ,[3] 선거대책본부를 해체하고 오후 부산지역 TV 토론회에 불참하며 사실상 당 지도부가 주도하는 경선을 포기하겠음을 밝힌다. 그리고 23일 다시 복귀한다.

이로 인해 오히려 손학규 후보 측의 지지율이 떨어지면서 정동영 후보가 역전하기 시작했고 친노진영 이해찬 후보는 한명숙, 유시민 후보가 잇달아 이해찬 지지를 밝히고 사퇴하면서 조금씩 지지율을 높였으나 두 후보의 지지율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이후에도 정동영 후보 측은 동원선거로 비판을 받았다. 실제 일부 지역에서 대리인들에 의해 서류가 접수되어 선거인단에 포함된 경우가 드러났으나, 당에서는 의혹을 입증하기에는 불충분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결국 정동영후보 측의 조직동원 및 관권선거 의혹으로 10월 2일 경선 잠정 중단 사태까지 발생했다. 10월 9일부터 경선이 재개되며 손학규,이해찬 후보의 요청으로 지역투표가 일괄적으로 치러졌고, 10월 15일 정동영 후보가 대통합민주신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었다.

민주당[편집]

김민석 이인제 신국환 장상 조순형 합 계
인천 422 735 251 67 508
전북 1094 5236 211 582 2023
대구경북강원 205 1456 2430 142 588
부산경남울산 691 1023 235 58 사퇴
서울 1581 2852 499 544
충청경기 982 4792 579 348
광주전남 6078 11664 586 552
여론조사 2802 5158 809 317

이인제 후보가 조순형 대세론을 깨고 압도적인 선도를 달리자 일어난 이인제 후보의 조직동원 및 관권선거 의혹으로 제주경선이 무산되고 조순형 후보가 사퇴하는 등 난항을 겪었으나 결국 10월 16일 이인제 후보가 압도적으로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었다.

창조한국당[편집]

11월 4일 창조한국당은 대통령후보지명대회를 갖고 모바일 찬반투표에서 94.9%의 찬성을 받은 문국현을 대통령후보로 지명했다

출마 후보[편집]

다음은 각 정당별 대통령 선거 입후보자이며, 표에 기재되어 있는 사람은 후보자로 등록한 사람이다.

제 17대 대통령 선거 후보자 명부[* 1]
기호 후보자 정당 직업 비고
1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정당인
2 이명박 한나라당 정당인
3 권영길 민주노동당 국회의원
4 이인제 민주당 국회의원
5 심대평 국민중심당 국회의원 사퇴
6 문국현 창조한국당 정당인
7 정근모 참주인연합 정당인
8 허경영 경제공화당 정당인
9 전관 새시대참사람연합 정당인
10 금민 한국사회당 정당인
11 이수성 화합과도약을위한국민연대 정당인 사퇴
12 이회창 무소속 정치인

주요 사건[편집]

  • 11월 7일 前 한나라당 총재인 이회창 후보가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대선 출마를 선언하였다.. 이로써 50%가 넘는 지지율로 사실상 선거를 주도하던 이명박 후보의 지지율에 타격을 받으며 대선은 새로운 국면으로 진입하였다.[4]
  • 11월 16일 김경준이 귀국하였다.
  • 12월 3일 국민중심당 심대평 후보는 무소속 이회창 후보로의 보수 대통합 단일화에 합의했다.[5]
  • 12월 5일 검찰이명박 후보의 BBK 주가조작 연루 의혹 수사에 대한 발표를 하였다.[6] 옵셔널벤처스 주가조작, BBK 실소유주, ㈜다스 실소유주 의혹 모두 '무혐의'라고 결론지었다.
  • 12월 6일 김종필총리한나라당에 입당하고 이명박 후보에 대한 지지를 선언하였다.
  • 12월 6일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가 주관하는 제17대 대통령 선거 후보자토론회를 KBSMBC로 생중계하였다. 정동영, 이명박, 권영길, 이인제, 문국현, 이회창 (기호순) 후보가 토론자로 출연하였고 정치, 외교, 통일, 안보분야에 대한 주제로 토론하였다.
  • 대통합민주신당을 탈당한 김혁규 전 의원이 12월 11일 무소속 이회창 대선후보에 대한 지지를 공식 선언하고, 캠프에 합류했다.
  • 12월 11일에는 제17대 대통령 선거 후보자토론회가 2차로 정동영, 이명박, 권영길, 이인제, 문국현, 이회창(기호순) 후보가 참석하여 사회, 교육, 문화, 여성분야에 대한 주제로 열렸다.
  • 13일부터 대통령 선거를 위해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일이 금지되었다.
  • 12월 13일 기호 11번 화합과 도약을 위한 국민연대 이수성 후보가 대통령 후보직을 사퇴했다.[7]
  • 12월 13일에는 제17대 대통령 선거 후보자토론회가 3차로 정근모, 허경영, 전관, 금민(기호순) 후보가 참석하여 열렸다.
  • 12월 16일에는 제17대 대통령 선거 후보자토론회가 4차로 정동영, 이명박, 권영길, 이인제, 문국현, 이회창(기호순) 후보가 참석하여 경제, 사회에 대한 주제로 열렸다.
  • 12월 18일 참주인연합 정근모 후보는 도산공원에서 이회창 후보와 회동을 갖고 이 후보 지지선언과 함께 정책연대를 선언했다. 이 경우는 단일화를 한 것이지만 법적으로 사퇴시한을 넘겼기 때문에 후보 자격은 유지되었다.
  • 대선 기간 중 이명박 후보의 집에 괴한이 권총을 들고 찾아와 협박을 했다. 괴한은 경호원들에 의해 붙잡혔으나, 이명박은 이 괴한을 경찰에 신고도 하지 않고 돌려보냈다.

여론 조사[편집]

초기 여론조사

날짜 이명박 박근혜 손학규 정동영 이해찬 문국현 권영길 이인제 비고
5월 16일[* 1] 48.9 22.4 4.6 2.5
5월 26일[* 2] 47.3 23.4 6.6 3.1
6월 9일[* 3] 41.3 24.9 6.1 1.9
6월 21일[* 4] 37.8 26.1 6.5 1.8
7월 1일[* 5] 39.4 27.6 5.3 2.4
7월 14일[* 6] 40.0 25.8 7.3 3.3
7월 21일[* 7] 37.2 27.6 6.7 2.0
9월 20일[* 8] 50.6 4.8 8.5 3.3 한나라당 후보선출
10월 6일[* 9] 53.3 6.3 10.5 3.7 5.5
10월 10일[* 10] 58.0 7.5 11.4 4.6 4.6
10월 16일[* 11] 51.9 20.2 8.7 3.6 3.3 신당 및 민주당 후보선출
  1. 李, 소폭 상승(48.9%)- 朴, 변화 없어(22.4%), 문화일보-한국사회여론연구소, 5월 17일.
  2. 이 47%, 박 23%… 대선구도 8개월째 변화없어, 조선일보-한국리서치, 5월 28일.
  3. 이·박 충청서 박빙… 영·호남선 이(李)가 10~12%P 앞서, 조선일보-한국갤럽, 6월 11일.
  4. 李·朴 지지율差 11%P로 줄어, 문화일보-한국사회여론연구소, 2007년 6월 17일.
  5. 이·박, 충청·영남서 접전… 수도권선 이 44·박 25%, 조선일보-한국갤럽, 2007년 7월 2일.
  6. 이·박 격차, 남성에선 22%P… 여성에선 6.7%P, 조선일보-한국리서치, 2007년 7월 16일.
  7. 이명박 37.2% 박근혜 27.6%, 조선일보-한국갤럽, 2007년 7월 23일.
  8. 정동영, 손학규 제치고 2위로 껑충, 중앙일보-미디어다음·리서치앤리서치, 2007년 9월 20일.
  9. 李 53.3% 鄭 10.5% 孫 6.3%, 동아일보, 2007년 10월 6일.
  10. 정동영-손학규 0.9%P차 대혼전, 한겨레신문, 2007년 10월 12일.
  11. 정동영 후보 지지율 20%대 첫 진입, CBS와 리얼미터, 2007년 10월 16일.

정당 후보 선출 이후 여론조사

날짜 이명박 이회창 정동영 문국현 권영길 이인제 모름/무응답 비고
10월 16일[* 1] 51.9 20.2 8.7 3.6 3.3
11월 7일[* 2] 39.8 19.8 10.5 3.9 3.4 1.7 20.9 이회창 출마 선언 직후
11월 18일[* 3] 36.8 17.1 13.2 6.6 2.3 1.2 22.9 김경준 귀국 직후
11월 26일[* 4] 39.3 16.9 13.5 6.6 3.6 1.9 18.1 후보 등록 마감
12월 7일[* 5] 40.4 16.6 16.2 8.0 5.6 1.3 11.8 BBK 검찰 수사발표[6]
12월 12일[* 6] 45.4 13.6 17.5 6.7 3.9 0.9 11.8 언론 발표 가능 마지막 여론조사
  1. 정동영 후보 지지율 20%대 첫 진입, CBS와 리얼미터, 2007년 10월 16일.
  2. 李 39.8% 昌 19.8% 鄭 10.5% 지지받아, 한국지방신문협회와 리서치앤리서치, 2007년 11월 8일.
  3. 이명박, 1주일새 고학력층·서울서 10~7%p 이탈, 리서치플러스, 2007년 11월 17일.
  4. ‘1강 2중’ 구도 유지, KBS, 2007년 11월 26일.
  5. 이명박 40.4%, 이회창·정동영 박빙, YTN-한국리서치, 2007년 12월 6일 실시.
  6. 세대·이념·지역구도 약화, 조선일보-한국갤럽, 2007년 12월 12일 실시.

선거 결과[편집]

  • 선거인수: 37,653,518명
  • 총투표자수: 23,732,854명
  • 투표율: 63.0%

후보자별 득표[편집]

득표순위 기호 이름 정당 득표수 득표율 비고
1 2 이명박 한나라당 11,492,389 48.7% 대한민국 제 17대 대통령 당선 당선
2 1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6,174,681 26.1%
3 12 이회창 무소속 3,559,963 15.1%
4 6 문국현 창조한국당 1,375,498 5.8%
5 3 권영길 민주노동당 712,121 3.0%
6 4 이인제 민주당 160,708 0.7%
7 8 허경영 경제공화당 96,756 0.4%
8 10 금민 한국사회당 18,223 0.07%
9 7 정근모 참주인연합 15,380 0.06%
10 9 전관 새시대참사람연합 7,161 0.03%
- 5 심대평 국민중심당 - - 기권
- 11 이수성 화합과도약을위한국민연대 - - 기권
총투표수 23,732,854
  • 위 표에서 득표율 15% 이상을 획득한 후보자는 선거비용 전액 환급 대상자이다.
  • 득표율은 총투표수 대비 백분율을 가리킨다.
  • 득표율이 10% 이상 15% 미만인 후보는 선거비용 반액 환급 대상자이나 이에 해당하는 후보는 없었다.

지역별 득표수[편집]

광역시·도별 대선 투표결과 우세지역
파란색 :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주황색 :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
정동영 이명박 권영길 이인제 문국현 정근모 허경영 전관 금민 이회창 합 계
서울 1,237,812 2,689,162 116,344 23,214 358,781 3,013 22,405 911 3,501 596,226 5,051,369
인천 286,565 593,283 42,069 7,612 84,814 797 5,769 323 1,068 183,057 1,205,357
경기 1,181,936 2,603,443 144,830 30,513 354,492 3,378 23,554 1,312 3,207 670,742 5,017,407
강원 136,668 376,004 28,129 6,085 42,552 615 5,063 436 849 127,102 723,503
대전 159,700 246,008 17,207 7,223 48,143 467 2,356 204 683 195,957 677,948
충남 192,999 313,693 32,132 22,592 43,383 934 3,814 568 1,131 304,259 915,505
충북 165,637 289,499 25,285 7,965 39,884 561 3,435 321 759 162,750 696,096
광주 527,588 56,875 13,597 7,118 31,524 398 1,547 96 289 22,520 661,552
전남 757,309 88,834 23,178 23,074 31,289 938 2,179 517 743 34,790 962,851
전북 777,236 86,149 18,139 6,550 26,573 590 1,777 270 538 34,530 952,352
부산 236,708 1,018,715 48,901 4,599 94,285 770 7,351 406 1,198 346,319 1,759,252
울산 70,736 279,891 43,607 1,884 28,605 271 2,059 121 467 90,905 518,586
대구 75,932 876,719 25,777 1,847 50,514 367 3,375 221 727 228,199 1,263,678
경남 189,463 843,662 82,645 4,935 73,893 1,310 6,063 612 1,261 329,486 1,533,330
경북 96,822 1,033,957 39,327 3,823 47,345 819 4,696 699 1,458 195,526 1,424,472
제주 81,570 96,495 10,954 1,674 19,421 152 1,273 144 344 37,495 249,522

기타[편집]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이명박 압승 요인은? MBC 뉴스 2007년 12월 19일
  2. 고일환 기자 (2007년 1월 16일). “고건 "대통령 선거 불출마". 《연합뉴스》 (네이버 - 연합뉴스). 2007년 6월 16일에 확인함. 
  3. 정용관 기자 (2007년 6월 13일). “김근태 “대선불출마… 탈당”, 이해찬 19일 공식 출마선언”. 《동아일보》 (동아닷컴). 2007년 6월 16일에 확인함. 
  4. 이회창, '대선 출마' 기자회견, YTN, 2007년 11월 7일
  5. 안용수 기자 (2007년 12월 3일). “昌-沈 후보 단일화 전격 합의”. 연합뉴스. 2007년 12월 3일에 확인함. 
  6. 검찰, 이명박 후보 관련 의혹 모두 무혐의, YTN, 2007년 12월 5일.
  7. 이수성 후보사퇴..사실상 `鄭 지지', 연합뉴스, 2007년 12월 13일.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