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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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민(琴民, 1962년 9월 3일 ~ , 부산시 출생)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으로, 2007년 17대 대통령선거에 사회당 후보로 출마하였다. 대선에서 그는 '새로운 진보, 담대한 제안'이라는 슬로건과 함께, 기본소득 공약을 핵심으로 내걸었다. [1] 대선 후 금민은 "신자유주의를 넘어서는 대안모델을 제시"하고자 사회대안포럼을 만들어 금융위기 해법 등을 모색하는데 주력했다. 금민은 2010년 7월 서울 은평을 보궐선거에 진보진영 단일후보로 출마했다. [2] 현재 금민은 사회당 상임고문, 사회당 진보혁신과통합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기본소득네트워크의 운영위원이다.

목차

[편집] 약력

  • 1981년 서울 양정고등학교 졸업
  • 1985년 고려대학교 법학과 졸업
  • 2001년 독일 괴팅겐 대학교 법학과 박사 과정 수료
  • 2001~2003년 사회당 정치연수원 원장
  • 2004~2006년 인터넷신문 프로메테우스 주필
  • 2006~2008년 사회당 전 대표
  • 2007년 17대 대통령선거 사회당 대통령후보
  • 2008~2009년 사회대안포럼 운영위원장
  • 현 기본소득네트워크 운영위원
  • 현 사회당 상임고문
  • 현 사회당 진보혁신과통합위원회 위원장

[편집] 이력

[편집] 학창시절과 독일유학

금민은 전두환 정권이 통치하던 1981년에 고려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하여, 그 당시 많은 대학생들이 그러했듯이 칼 마르크스와 '과학적 사회주의'에 관심을 가졌고 이를 깊이 공부하기 위해 독일 유학에 올랐다. 그러나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을 목격하며 그는 "근대 정치철학을 근본적으로 되짚어 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3] 그는 1989년 괴팅엔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석사) 동 대학교에서 철학과 정치학을 수학하면서 2001년 법학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편집] 사회당 대선후보로 출마

2001년 금민은 귀국했고 사회당 정치연수원장을 맡아 정치 이론 교육에 주력했다. 2003년 이후 김진균 교수와 함께 사회비판아카데미를 만들어 학술운동을 펼쳤다. 2004년에서 2006년까지 인터넷신문 프로메테우스 주필로 한국 정치, 민주주의, 평화 문제 등에 대한 문필 활동을 했다. 2006년 금민은 사회당(당시 한국사회당) 미래전략기획단 단장을 맡았고 '사회적 공화주의'를 당의 방향으로 제안했다. [4]

금민은 2006년 10월 사회당 대표로 취임했고 2007년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에 후보로 출마했다. 금민은 슬로건으로 '새로운 진보, 담대한 제안'을 제시했으며, 출마 출사표로 "진보의 새로운 길을 찾고, 사회적 공화국을 완성하겠다"라고 하였다.[5][6] 금민의 주장은 신자유주의가 국민의 삶의 조건을 해체하고 있다는 인식에서 출발하여, 보편적 복지를 통해 국민 통합을 이루고, 이를 통해 진정한 국민주권을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7] 금민은 대선 정책으로 기본소득 지급으로 보편적 복지 실현, 노동사회혁신기금으로 고용과 성장이 선순환하는 경제, 연기금의 사회책임투자로 재벌의 사회적 통제, 한반도 비핵평화 실현 등을 제시했다. [8] 그러나 개표 결과 득표율은 0.1%를 기록하여, 금민은 득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회당 대표직을 사임했으며, 이후 진보정치 혁신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9] [10]

[편집] 사회대안포럼의 창립

금민은 2008년 10월, "촛불집회에서 나타난 대중의 저항을 미래에 대한 대안과 결합시켜야 한다"는 취지로 사회대안포럼을 창립했다. [11] 사회대안포럼의 주요 기획위원은 금민 이외에도 이갑영 인천대 경제학교수,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교수, 안효상 서울대 서양사강사, 최광은 사회당대표 등이었다. 사회대안포럼은 1회 심포지엄인 '금융위기와 경제대안'을 시작으로 2회 '금융시장 자본주의와 수탈경제' 3회 '기본소득의 사회대안적 가능성' 4회 '의료민영화 논쟁과 대안' 5회 '무상급식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등 총 다섯 차례의 심포지엄을 열었다.

금민은 일련의 심포지엄을 통해 "현재의 자본주의는 공공의 것을 자본이 배타적으로 사유화하여 수탈하는 수탈경제" [12]라고 전제하고, 금융자본에 대한 통제와 과세를 통해 '모든 국민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자'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기본소득은 "국민주권의 실현에 필수적인 제반 조건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며 따라서 소득 보전 자체가 국민의 권리"이다. [13] 기본소득에 필요한 재원에 대해 금민이 제안하는 방식은 불로소득인 토지 거래 이익 및 금융 양도소득에 중과세하는 것이다. [13] 금민은 기본소득이 도입되면 내수중심 서민경제가 살아나고 노동시간이 단축되어 일자리가 더 많이 분배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편집] 기본소득네트워크 창립

금민은 이러한 기본소득 운동에 동의하는 지식인, 활동가들과 기본소득네트워크를 구성했고, 이 단체의 주최로 2010년 1월 기본소득 국제학술대회가 서울 서강대학교에서 개최되었다. 기본소득 국제학술대회에는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BIEN)를 창설한 필립 판 파레이스, 브라질 시민기본소득법 제정의 주역인 브라질 상파울루주 노동자당 상원의원 에두아르도 수플리시, 독일 좌파당의 기본소득 연방연구의원 로날드 블라슈케, 기본소득일본네트워크 코디네이터인 야마모리 도루 등 해외 유명 기본소득 활동가와 연구자도 참여했다. 대회 참석자들은 공동으로 기본소득 서울선언을 발표했다. [14]

[편집] 2010년 7월 은평을 보궐선거 출마

창조한국당 문국현 의원이 공천 과정에서 불법자금을 수수한 혐의로 의원직을 박탈당하자 2010년 7월 28일 은평을 보궐선거가 실시되었다. 이 선거에서 유력한 후보는 한나라당 이재오 후보였다. 금민은 이 선거에 사회당 후보로 출마하였는데, 민주노동당이 민주당 장상 후보와 후보 단일화를 하게 되자 진보신당을 비롯한 진보진영은 금민을 진보진영 단일후보로 추대했다. 금민은 김세균 교수, 우석훈 박사(<88만원세대> 저자), 노회찬 전 국회의원을 비롯한 지식인·정치인·노동자·학생의 개별적 지지와 진보신당·민주노총 서울본부 등 32개의 정당·시민사회단체의 지지를 받아 후보로 등록했다. 지지자들은 민주노동당을 향해 민주당의 장상 후보가 아니라 금민과 진보 단일화를 이루라고 촉구하기도 했다.[15] [16]

금민은 자신을 '진보대안후보'이자 '진짜 야당'이라고 주장했다. 이명박 정부를 극복하려면 단순한 반대에만 머물러선 안 되며, 투기 불로소득에 중과세하는 조세재정혁명, 탄소세 도입으로 재원 마련, 보편적 복지 및 기본소득 지급 등 구체적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17] 또한 금민은 민주노동당을 향해, 2002년 총리서리 시절 부동산 투기, 장남의 미국 국적 문제, 김활란상 제정 문제 등이 불거져 낙마했던 장상 후보와의 단일화는 진보의 가치를 저버린 것이라고 비판했다. [18] 투표 결과 한나라당 이재오 후보가 당선되었고 금민은 1%의 득표에 머물렀다. 금민 선거운동본부는 '묻지마 반MB연대'가 아닌 대안 중심의 연대가 시작된 것이 이번 선거의 성과이며 앞으로 진보정치 재구성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밝혔다. [19]

[편집] 진보혁신정당 추진

2011년에 들어서 민주당, 범야권과 진보정당들은 2012년의 정치 일정을 앞두고 통합과 재구성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금민은 2011년 4월 사회당 진보혁신정당 추진위원장을 맡아 진보통합 논의에 참여했다. 금민의 입장은 민주당과 국민참여당 등은 신자유주의 세력이므로 진보정당은 이들과 선을 긋고 진보적 대안 중심으로 통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간 민주노동당을 배타적 지지해온 민주노총에 대해서도, 조직 노동자 중심의 관점에서 민주노동당·진보신당 재통합만을 촉구할 것이 아니라, 불안정노동자를 중심에 두는 '새로운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20]

2011년 12월 현재,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 그리고 진보신당 탈당파 '통합연대'가 합쳐 통합진보당을 구성했고 진보신당과 사회당은 '진보좌파통합'을 추진하고 있다. [21]

[편집] 최근 정치 활동

[편집] 저서

  • 《사회적 공화주의》 (박종철출판사, 2007) ISBN 9788985022477
  • 《기본소득의 정치철학적 정당성》 (진보평론 45호, 2010)

[편집] 갈이 보기

[편집] 바깥 고리

[편집] 참고자료

[편집] 주석

  1. 프로메테우스. “"진보대연합은 한국사회당의 근거전략이자 장기전략" - [인터뷰] 금민 한국사회당 후보”, 2007년 11월 30일 작성. 2011년 12월 7일 확인.
  2. 참세상. “금민, "진보의 재구성을 위해 쉼없이 달려왔다"”, 2010년 7월 27일 작성. 2011년 12월 7일 확인.
  3. 금민, <사회적 공화주의> 8p
  4. "2007년 대선은 한국 사회에서 국가, 즉 공동의 것이 무엇인지, 공동의 것을 이루기 위한 사회적 조건이 무엇인지 답하는 자리가 되어야만 한다. 그리고 국민 모두의 공통성을 보장하는 사회적 공화국으로서 민주공화국을 새롭게 수립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신자유주의 이후 사회를 위한 초석을 닦을 수 있을 것이다." 금민, <사회적 공화주의> 12p
  5. 조계완 기자. “[금민] ‘새 진보’ 여기 있소이다”, 《한겨레21》, 2007년 11월 29일 작성. 2007년 12월 6일 확인.
  6. 김현수 기자. “대선후보 등록 ‘출사표’”, 《동아일보》, 2007년 11월 26일 작성. 2007년 12월 3일 확인.
  7. 최광은. “정치프레임이 실종된 2007년 대선…이대로 좋은가? - [칼럼] 허울이 아닌 현실의 ‘민주공화국’을 위하여”, 《데일리 서프라이즈》, 2007년 10월 28일 작성. 2007년 12월 3일 확인.
  8. 금민,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며 국민여러분께 드리는 글"
  9. 김현재 기자. “이명박 제17대 대통령 당선”, 《연합뉴스》, 2007년 12월 20일 작성. 2007년 12월 20일 확인.
  10. 이윤원 기자. “금민 한국사회당 대표 전격 사퇴 - “대선 결과 책임지겠다..진보정치 혁신안 제안할 것””, 《참세상》, 2007년 12월 28일 작성. 2008년 1월 2일 확인.
  11. 사회대안포럼 기획취지, 사회대안포럼 공식블로그
  12. 임세환 기자. “[심포지엄 금융시장자본주의는 수탈경제]”, 《프로메테우스》, 2008년 12월 19일 작성. 2011년 12월 9일 확인.
  13. 임세환 기자. “환급금은 시혜, 기본소득은 권리”, 《프로메테우스》, 2009년 1월 12일 작성. 2011년 12월 9일 확인.
  14. 유정인. “"기본소득은 신자유주의 넘는 디딤돌"”, 《프레시안》, 2010년 1월 27일 작성. 2011년 12월 9일 확인.
  15. 박세열 기자. “진보학자 등 324명 "금민을 은평을 진보단일후보로"”, 《프레시안》, 2010년 7월 1일 작성. 2011년 12월 9일 확인.
  16. 윤지연 기자. “7.28 선거 "728명 노동자 금민 지지 선언"”, 《참세상》, 2010년 7월 8일 작성. 2011년 12월 9일 확인.
  17. "보편적 복지, 진보대안만이 할 수 있습니다" <사회당 예비후보자홍보물>
  18. 참세상. “금민, "장상후보단일화는 유권자에 대한 모욕"”, 2010년 7월 26일 작성. 2011년 12월 9일 확인.
  19. 참세상. “금민, "진보의 재구성을 위해 쉼없이 달려왔다"”, 2010년 7월 27일 작성. 2011년 12월 9일 확인.
  20. 김홍규. “"새로운 진보정당, 불안정 비정규노동자를 정치세력화하자"”, 《프로메테우스》, 2011년 4월 24일 작성. 2011년 12월 9일 확인.
  21. 진성훈. “진보신당-사회당 '진보좌파통합' 추진키로”, 《머니투데이》, 2011년 12월 1일 작성. 2011년 12월 9일 확인.
  22. 사회당 브리핑 2011-11-03
  23. 사회당 브리핑 2011-11-17
  24. 사회당 브리핑 2011-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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