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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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경영
許京寧

출생 1947년 7월 13일(1947-07-13) (67세)
대한민국 대한민국 서울
거주지 대한민국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별칭 허본좌
학력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법학과
직업 가수 (본좌엔터테인먼트소속), 정치인 (민주공화당 총재)
순자산 6억원[1]
배우자 없음
자녀 없음
부모 허남권(부), 조계식(모)
웹사이트 공식사이트 http://www.huhkyungyoung.com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pims/main/pims_main.asp?tid=42024432

허경영(許京寧, 1947년 7월 13일[2][3] / 1950년 1월 1일?[4] ~ )은 대한민국정치인이자 가수로, 현재 본좌엔터테인먼트 소속이다. 박근혜에 대한 명예훼손과 17대 대선 때 허위 사실 유포 혐의로 체포되어 1년 6개월 동안 수감생활을 했다.

2007년 대선까지는 주로 정치행보를 보여왔으나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와 결혼설로 명예훼손 고소를 당해 징역살이를 하고 출소한 2009년부터는 가수행보를 보이고 있다. 2009년 8월 14일 첫 번째 디지털 싱글 'Call Me' 를 발표하며 가수로 데뷔하여 싸이월드 뮤직차트를 비롯한 다수의 음악차트에서 1위에 오르며 화제를 모았으며, 이러한 성공에 힘입어 정식앨범을 발매할 계획도 밝혔었다.[5] 2009년 9월 18일엔 2번째 디지털 싱글 '허본좌 허경영'을 'Right Now' 콘서트에서 선공개하였으며, 이 곡은 같은 해 10월 15일 디지털 싱글로 발매되었다.

생애[편집]

출생과 성장[편집]

본인의 저서 <무궁화 꽃은 지지 않았다>에 따르면 아버지인 허남권(許南權, 1918년 ~ 1950년 6월 22일)은 훗날 GS 그룹의 일가가 되는 허정구의 조카로 원래는 만석꾼에 대지주였으며 LG그룹의 설립자금을 대었다고 한다. 하지만 본인 소유의 일만여 마지기의 땅을 소작인들에게 무상으로 나누어준 것을 다른 지주들에게 사상범으로 고발당해 한국 전쟁 발발 사흘 전인 1950년 6월 22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처형당했다고 한다.

1950년 초 겨울, 어머니 조계식(趙桂植)은 허경영을 임신한 몸으로 남편의 면회를 위해 중량교 다리 밑 가마니 움막에서 기거하고 있었으며 당시 겨울이라 얻은 산후병으로 3년만에 사망했다고 한다. 농가에서 주는 방을 거절하고 남편을 살리기 위해 촛불을 켜놓고 기도했다고 한다. 죽기직전 허경영을 지리산 지수마을에 데려다 놓는다.(이후 허경영은 지수초등학교 38기 졸업생이 된다.) 그러나 검찰에서 조사한 결과, 1947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난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대해 허경영은 박철쇼에 출연해 1947년 7월 13일은 시골에서 붓으로 쓰다보니 생긴 실수이며 1950년 1월 1일이 자신의 진짜 생일이고 자신은 서울특별시 중랑교 다리밑 가마니 움막에서 태어났다고 주장한다.

허경영이라는 이름은 아버지가 옥중에서 유언으로 지은 이름으로 자라서 꼭 남북통일을 이루고 서울을 세계의 중심이 되게 해서 가난한 국민들을 구하게 하라는 뜻이 담긴 허락할 허(許)편안할 경(京)편안할 영(寧)이라고 한다. "서울의 동쪽에는 동경이 있고 서울의 서쪽에는 서경이 있고 서울의 남쪽에는 남경이 있고 서울의 북쪽에는 북경이 있으므로 서울은 네개의 위성수도를 거느린 세계 제일의 수도가 될것이니 애기 이름을 서울을 편안하게 하도록 허락할 허, 서울 경, 편안할 영 으로 해주시오."라고 했다고 한다.

허경영의 어머니는 한 살 때부터 몸이 너무 아파서 젖을 먹일 수가 없는 중환자였고 마을 사람들이 가마니 움막에서 겨울에 허경영을 낳다가 얻은 병명(의사한테 정확히 진단명을 받은게 아니라 어떤 병명인지는 알 수 없다.)을 막연히 산후병으로만 알았지만 혹시 전염이 되지 않을까 해서 허경영을 어머니 옆에 가지 못하게 했다. 그래서 허경영은 마을 사람들의 젖을 얻어먹고 자랐다고 한다.

세 살 때 어머니의 상여가 나갈 때 동네 아주머니들이 허경영을 보고 너네 엄마 꽃가마 타고 서울 간다는 말을 할 때 허경영은 그것을 믿고 춤을 추면서 아이들에게 자랑을 했고 그 때 온 동네 사람들이 울었다고 한다. 그 때 허경영은 어머니의 죽음을 알지 못한 채 떠나보냈다고 한다.

한국 전쟁의 틈 속에서 전쟁고아가 되어 지리산의 아버지로부터 토지를 나누어받은 농부의 양아들이 되어 초등학교 시절 새벽 4시부터 6년간 서당을 다녀 주역 등 30여 권의 한문서적과 사서삼경 등 유교서적 등을 모두 배웠으며, 국민학교 졸업 때는 모두 중학교를 갔는데 머슴살이를 하느라 허경영만 중학교를 가지 못했다고 한다.

일곱 살때 기이한 만남이 있었는데 어느 날 오후 늦게 집에서 소죽을 끓이던 중 지리산에서 경주 불국사쪽으로 가는 길에 들렀다는 한 늙은 탁발승이 집으로 찾아와 시주를 청하자 시주했더니, 스님이"너는 이 집 아이가 아니구나"하길래 허경영이 "스님은 그것을 어떻게 아십니까?"했더니 "심부름 온 사람은 속히 돌아가야 하는 법, 너의 부모님은 너를 이 세상에 데려다 주면 곧바로 떠나야 하는 거야"하고 했다. 그래서 "그것을 어떻게 아십니까?" 했더니 "그것은 네 얼굴에 쓰여 있느니라, 너는 지금부터 열심히 한문을 배워야 한다. 그리고 너는 14살이 되면 지리산의 정기를 다받게 될 터이니 그 때는 서울로 가서 삼각산의 정기를 받은 뒤 장차 공부를 해서 남북통일을 이루는 정치 지도자가 될 것이며 푸른 대문의 열쇠를 네개를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스님은 새삼 강조하라도 하듯이 "네 부모님의 함자가 무엇인고?"라며 질문을 하자 허경영은 "아버지 존함은 허락할 허, 남쪽 남, 권세 권이며, 어머니 존함은 나라 조, 계수나무 계, 심을 식 입니다."라고 하자 그 스님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래! 훌륭한 선물을 주는 사람은 그 대가를 바라지 않고 일찍 떠나는 법이란다. 공자와 석가를 낳은 어머니도 모두 일찍 떠나셨으니라. 그래야 더욱 큰 고통 속에서 강한 열매가 되는 거란다. 또한 가난한 음지의 젊은 시절을 보내 보아야 고통받고 가난한 사람들의 가슴을 감동시킬 수 있게 된단다. 네 아버지, 어머니의 이름을 합쳐보니 허남권조계식은 남쪽 나라의 권세의 월계수 나무를 심는 것을 허락한다로 되어 있으니 한 사람의 인물을 이 땅에 심어놓고 급히 떠나야 하는 이름이란다"하고 말했다. 라고 한다.

일곱살 때 나무하고, 풀뜯고, 소먹이고, 군불 때고, 겨울에는 소죽 끓이고, 농사일을 도우며 온갖 머슴이 하는 일을 다 하면서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던 허경영은 스님의 말을 듣고 한문을 배우러 서당에 다니기 시작한다. 그래서 주역 등 30여 권의 한문책을 배워 이미 유학을 거의 끝냈다고 한다.

서울로 올라오기 얼마 전 이미 20리 길을 걸어 중학교를 통학하는 그 마을의 초등학교 동기생 백 여 명이 날마다 예쁜 교복을 입고 떼를 지어 논두렁 길을 걸어 중학교를 통학한다. 그런데 허경영은 항상 새벽 일찍 밭언덕과 논두렁에서 풀을 베며, 이슬에 흠뻑 젖은 채 다 떨어진 옷을 입고 있는 모습을 보이자 안타까움을 느끼고 하루는 친구들이 돈을 모아 서울에 올라가 서울에 올라가 공부할 것을 종용하며 손에 들고 있는 낫과 지게를 뺏고 대신 신문지에 싼 돈을 건넨 일화가 있었다. 하지만 허경영은 일손이 부족한 양아버지 걱정에 쉽게 떠나지 못했다. 그러던 허경영은 탁발승려의 말대로 초등학교에 졸업하면 서울로 반드시 가야한다고 생각해서 15살에 서울로 올라왔다고 한다.

서울에 도착에 처음에 남대문 시장 지하도 입구에서 구두를 닦으며 무허가 합숙소에서 협성고등공민학교라는 야간중학교를 다녔는데 밤이면 담배연기 때문에 공부를 할 수 없어 결국 수유리 화계사로 찾아가 주지인 승산 이행원 주지스님의 양아들이 되었다. 그곳에는 동국대학교 불교대학 승려 이백여 명의 석림회라는 기숙사가 있었기에 승려가 이백 오십여 명되는 대가족이었는데 허경영은 그곳에서 하루에 일천 명분의 밥짓는 일을 하면서 야간엔 광화문에 있는 야간고등공민학교를 졸업한다. 그때 허경영은 이미 초등학교 때 유교의 중용사상을 배운 데 이어 그 절에서 불교의 팔만대장경과 불교의 중도사상을 3년간 배웠다./(숭산문중의 확인을 거치치 않은 본인의 주장이다.)

초등학교 때 배운 한문 지식으로 팔만대장경을 쉽게 배울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과정인 협성상업전수학교에 들어갔다. 절의 일이 많아 고등학교 공부가 어렵게 되자 어떤 승려의 안내로 광화문에 있는 학교에서 가까운 세검정의 작은 암자를 소개받아서 그곳으로 떠난다.

1966년 세검정 암자에서 책가방 한개가 전부인 허경영은 산을 올라가는데 다섯 명의 아주머니가 해저녁에 산에서 내려오길래 "여기 청룡사란 암자가 어디 있느냐?"며 길을 물었더니 그 아주머니들은 "학생이 왜 해저녁이 절을 찾느냐?"며 되묻다가 있을 곳이 없어서 절에가서 낮에 일해주고 밤에 학교를 다니기 위해서라고 했더니 자기들은 삼각산 제일기도원에서 기도를 하고 내려오는 길이라면서 광화문에 있는 내수동 교회의 목사님한테 가면 공부할 수 있다며 허경영을 그 교회로 데리고 간다. 그곳에서 허경영은 내수동 교회의 홍근섭 목사의 양아들이 되어 야간 고등학교를 다니는 2년간 교회를 다니며 기독교의 구약, 신약, 모세의 오경을 배우며 주일반을 맡아 가르쳤다.

교회재정이 어려워서 허경영은 목사님이 소개하는 교인이 경영하는 서울역의 동양당이라는 금반지를 만들어 수출하는 공장에 다니게 되었는데 신주와 금을 녹여서 24K,18K 등을 만드는 것을 담당했는데 금과 신주를 끓일 때 하얀 밀가루 같은 청산가루를 넣는데 그 일만 2년을 하다보니 매일 청산가루 때문에 코피를 흘려야 했다고 한다.

고3 시절 학비마련을 위해 청량리 위생병원(현재 삼육서울병원)에서 한 번에 3,000원씩 받으며 매혈을 했다고 한다. 결국 세 번째 매혈 후 잔디밭에서 의식을 잃고 혼수상태가 되었다가 깨어났고 한다.

학업과 건강문제로 19세에 세 번째 양아버지가 되는 목사집을 나와 홍제동의 안산 꼭대기의 달동네인 판자촌 위쪽 산중턱 약수터 옆에 2인용 군용텐트를 하나 쳐놓고 그곳에서 고등학교 3학년 과정을 다녔다. 광화문의 야간 고등학교가 끝나면 걸어서 홍제동 무악산까지 오면서 도중에 길거리에서 호떡 두 개를 사서 텐트에 도착해 저녁으로 한 개를 먹고 나머지 한 개는 아침 식사용으로 먹었다.

군용텐트에서 볼펜행상을 나가고 내복이 없다보니 교복 속에 신문지를 감고 학교에 나갔다가 체육시간에 학생들에게 발각되어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그런데 신문지를 모에 감고 지내면 겨울에 절대 옷에 이가 생기지 않았다. 텐트에 노루가 들어오고 들쥐가 들어와 코를 물어 다친 일 등 수많은 일화가 있었다.

눈보라가 치는 날 얼굴에 눈이 떨어져서 깨어보니 천막이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그래서 밤중에 천막을 찾으러 돌아다니느라 그만 바위 언덕에서 아래에 있는 판자집의 화장실로 미끄러 떨어져 오른쪽 다리가 부려져 한 달 동안 달동네 사람들이 준 라면 등을 먹으며 다리 기브스를 한 채 다리가 나을 때를 기다렸다. 그러다가 다리가 낫게 되자 판자촌 사람 중에서 실내용 샌달을 가내 부업으로 만드는 집이 있었느데 그 주인이 10켤레를 주면서 팔아서 학교에 다시 들어가라고 한다.

1968년실내용 슬리퍼를 신을만한 고급 동네인 장충동으로 갔는데 고급 주택 대문이 열리며 어떤 남자가 당시 처음보는 외국제 고급 자동차를 타고 나오려고 했다. 허경영은 "이 슬리퍼를 다 팔아야 학교를 갈 수 있으니 공부할 시간을 좀 주십시오."라며 슬리퍼를 내밀었다. 그 남자는 허경영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더니 허경영의 손을 잡고 집으로 들어가 양아들이 되어 줄 것을 부탁했는데 그 인물이 삼성 이병철 前회장이라고 한다.

그 이병철 회장이 비선(비공식적 라인)으로 허경영을 박정희 대통령의 비밀 정책보좌역으로 소개시켜주고 20살 허경영은 1969년부터 1979년 박 대통령 서거 전까지 10년간 비밀보좌를 했다고 한다.

LG그룹GS 그룹의 창설 과정에도 자신의 조부에게 아이디어를 낸 것이 발전의 계기가 되었다는 주장이다.(이에 대해 그것이 알고싶다는 관련 증인들을 통해 증거자료를 확보했으나 보도에서 누락해 명예훼손 소송에 휘말리기도 하였다.[6] 그러나 허경영 본인의 권유로 소송은 번복되었다.[7]) 삼성, GS 측에서는 이러한 허경영의 주장에 대해 반응하지 않고 있으며, 자신을 양아들로 삼았다는 승려나 목사의 경우 현재 생존해 있지 않기 때문에 사실을 알 길이 없다.

학력[편집]

비학위 수료[편집]

정치 활동[편집]

1997년 대선 이전[편집]

2002년 대선 출정식
  • 새마을 운동한국방송통신대학교 설립을 주도하였다고 주장하나 이를 뒷받침할 객관적 근거는 전혀 제시되지 않고 있다.
  • 1972년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고 제대한 후, "대한불우자 보호협회"를 만들어 운영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8]
  • 그것이 알고싶다의 보도에 따르면, 허경영은 정치에 입문하기 전인 1970~80년대 동안 사업을 하여 상당한 돈을 벌었다.
  • 1987년 김대중, 김영삼이 총재를 지낸 신민당과 같은 이름의 신민당의 부총재를 역임하고, 13대 대통령선거 당시 대선후보로 추대되어 선출되었기까지 했으나 출마하지 못했다.[8]
  • 1991년 서울특별시 은평구의원 선거에 민중당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 1992년 10월 24일 진리평화당을 창당하였다.[9] 14대 대선 후보로 진리평화당은 당초 허경영을 후보로 등록하고자 하였다가 마지막 순간 현홍균 당고문을 후보로 선출하고, 후보 등록 마감일인 1992년 11월 25일 마감 3분전인 오후 4시 57분에 서류 제출을 시도하였으나, 시간내에 기탁금 3억원이 준비되지 않아 후보 등록을 하지 못하였다.[10]
  • 1997년 11월 26일 15대 대선 공화당 대선후보로 후보 등록을 하였고, 9억 9천만원의 재산을 신고하였다.[11][12] 개표 결과 0.2% 득표를 하였다.[13]:선거공보 및 포스터에 허경영 후보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에서 중앙위원을 지냈다고 적었으나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측에서는 그러한 사실은 허위라며 문제를 제기하였다.[14]
  • 2002년 11월 제16대 대선 후보 민주공화당 대선후보로 등록하고자 하였으나 기탁금 문제로 등록을 포기하였다.[15]
  • 2004년 대한민국 17대 총선에서 민주공화당 비례대표 1번은 허경영 대표였다.[16]
  • 2004년 10월 20일 조용필을 상대로 죽은 부인이 그림을 샀었는데 대금 50만 달러를 다 지불하지 않았다며 제기한 소송에서, 그림을 샀었다는 자체가 허위일 것이라며 재판부는 원고패소 판결을 내렸다.[17]

1997년 대통령 선거 출마[편집]

1987년 대선 당시 김대중, 김영삼 대통령이 총재를 지낸 바 있는 유력야당이 아닌 다른 신민당의 부총재로 취임하여 대통령후보로 본격적인 정치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이후 진리평화당(1992년), 공화당(1997년), 경제공화당 후보(2007년)로 계속 출마하였다. 특히 2007년 대선에서는 IQ 430의 천재정치, '제2의 박정희' 슬로건, 산삼뉴딜, 국회의원 자격고시, 출산수당 3천만원, 몽골과의 국가 연합론 등을 주장하는 등 독특한 공약들로 관심을 끌었다.[18]

2007년 대통령 선거 출마[편집]

그는 2007년 대선에 출마하기 위해 열린우리당에 입당했다. 2006년 2월 기자 회견을 통해 2006년 7월 열린우리당에 기간당원으로 입당하였으며 열린우리당 대선 경선에 참여하여 딴지일보를 포상하고 청와대에 탱크를 진격시킬 것이라고 호언장담하였다.[19]

딴지일보와의 인터뷰 이후 매우 유명해졌으며, 딴지일보는 이어지는 수차례의 인터뷰를 통해 역설적으로 그를 선전해주었다. 그의 독특하고도 황당한 기행과 정책이 인터넷을 중심으로 인기를 모아 '허본좌'라는 별명이 붙었는데, 대선 이후에도 인터넷 정책홍보, KBS의 텔레비전 프로그램인 폭소클럽2, 연예가중계, MBC PD수첩(그에 대한 비판 내용만 있음)과 SBS 그것이 알고 싶다(그에 대한 비판 내용만 있음) 등 TV 프로그램 출연을 계속하며 화제가 되었다.

주요 공약[편집]

  • UN본부를 판문점으로 이전
  • 만 65세 이상 노인들에게 건국수당 매월 70만원씩 지급
  • 결혼수당 남녀 각 5000만원씩 지급 (재혼 제외)
  • 출산수당 출산시마다 3000만원씩 지급

득표[편집]

2007년 12월 19일, 17대 대선에 기호 8번 경제공화당 후보로 선거에 참여했으며, 0.4%의 득표율(약 9만7천여표)을 기록하여 7위를 했다. 이명박, 정동영, 이회창 등의 주요 후보들과 함께 토론회에 다수 참여했던 이인제 후보가 0.68% 득표를 한 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높은 득표율이다. 이러한 높은 득표율은 웹상의 인기와 아울러 기성 정치에 대한 불만과 냉소가 반영된 결과라는 분석이 있다.[20]

특히 아래의 지역에서는 이인제 후보보다 높은 득표율을 기록하였다.

  • 서울특별시 : 강남구, 강동구, 강서구, 광진구, 마포구, 서초구, 송파구, 양천구, 중랑구
  • 경기도 : 구리시, 과천시, 성남시 분당구, 용인시 수지구, 수원시 영통구, 안양시 동안구, 고양시 일산동구
  • 부산광역시 : 중구, 동구, 서구, 남구, 북구, 금정구, 동래구, 부산진구, 사상구, 사하구, 수영구, 연제구, 영도구, 해운대구, 기장군 (강서구를 제외한 모든 구)
  • 대구광역시 : 중구, 동구, 서구, 남구, 북구, 달서구, 수성구, 달성군
  • 울산광역시 : 중구, 동구, 남구, 북구
  • 강원도 : 강릉시(허경영 1.01%로 전국 최다 득표율), 속초시
  • 경상북도 : 경산시, 경주시, 구미시, 봉화군, 상주시, 안동시, 울릉군, 울진군, 청도군, 청송군, 포항시 북구, 포항시 남구
  • 경상남도 : 거제시, 거창군, 김해시, 사천시, 산청군, 양산시, 진주시, 진해시, 창원시, 함안군

부산, 대구, 울산의 경우, 대부분의 선거구에서 허경영 후보가 이인제 후보를 제쳤으며, 부산 동래구, 대구 남구, 대구 수성구의 경우 2배가 넘는 득표를 하였다.[21]

대선 이후[편집]

대선에서의 인기를 바탕으로 허경영은 이후 각종 TV 프로그램에 등장하여 여러 가지 기행을 선보이며 자신의 입지를 넓혀가고 있었다. 대선 이후에는 경제공화당 사이트를 통해 자신의 정책을 계속 홍보 중이며, 18대 대통령 선거 출마 계획을 밝혔으나 출마하지 않았다.

허경영 관련 PD수첩 방송내용을 비판하는 1인시위

명예훼손 등으로 징역[편집]

그는 예전부터 여러 언론을 통해 자신과 박근혜 한나라당(현재의 새누리당) 전 대표가 단순한 친분 이상의 관계이며 결혼할 것이라는 주장을 자주 했었다. 2007년 대선 때 이런 이야기가 더욱 널리 퍼졌고 급기야 박근혜 전 대표측이 2007년 12월 13일 공식적으로 소송을 제기했다[22]. 이로 인해 2008년 1월 22일검찰로부터 사전 구속영장을 받았다. 그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명예훼손 혐의를 비롯,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 취임식에서 대한민국 대표로 참여했다고도 주장하는 등의 선거법위반혐의로 사전 구속영장이 신청된 다음날인 1월 23일 영등포구치소에 수감되었다. 이후 검찰은 허경영에게 징역 3년을 구형하였다. 그러나 조지 W. 부시 취임식에 참석했던 백성학 영안모자 회장 등 여러 증인들에 의하면, 허경영이 취임식에 참석한 것은 사실이라고 한다. 하지만 허경영이 주장하고 있는 사진은 전문가들의 분석결과 합성된 것으로 밝혀졌다.[23]

한편 구속된 그는 애초에 18대 총선에서 서울 은평구 을 선거구(문국현, 이재오가 출마한 지역구)에 옥중 출마할 예정이었지만, 3월 26일 경제공화당 홈페이지를 통해 여러 가지 사정상 총선에는 출마할 수 없으며, 향후에 있을 보궐선거 등에 출마할 것을 발표했지만, 이후 재판 등으로 인해 출마하지는 못했다.

4월 21일 서울 남부지법에서 열린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징역 3년을 구형하였다. 그는 재판 초기 자신이 결백하다며 죄를 부인했지만, 마지막에는 "나는 죄를 짓지 않았다. 예수,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 이건희 삼성 회장처럼 나 역시 국가에 엄청난 공헌을 했는데 자그마한 티끌로 흠을 잡는 것은 부당하다" 다며 판사와 검사에게 선처를 호소했다.[24]

5월 15일 1심 선고공판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대선 과정에서 허위 사실을 유포하고, 법정에서까지 잘못을 뉘우치지 않았다"고 선고 이유를 밝혔다.[25] 그러나 그는 판결에 불복해 서울고등법원에 항소하였지만,[26] 10월 9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에서도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으며, 12월 24일 대법원에서도 원심을 확정하였다.[27][28] 이듬해인 2009년 7월 23일 그는 형기를 마치고 만기 출소하였고, 케이블 채널 온스타일과 협의하여 방송인 김구라와 토크쇼 '구라만땅'을 진행할 것으로 알려졌으나, 김구라 측에서는 이를 부인하였다.[29]

출소 이후의 행보[편집]

출소한 이후 허경영은 머니투데이를 비롯한 여러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본인이 언급한) 마이클 잭슨 뿐만 아니라 저명인사들은 꼭 죽기 3일 전에 영혼의 형태로 나를 찾는다. 나를 찾아오는 이유는 죽음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 인기에 비하면 TV에서 극심한 괄시를 받았기 때문에, 스스로 방송국 하나를 인수하거나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이미 인터넷은 장악을 했으니 방송국 인수나 설립을 통해 '본좌 허경영쇼' 등의 프로그램을 만들어 서서히 방송을 장악할 것"이라고 발언하는 등 비현실적인 주장을 이어갔다.[30]

2009년 7월 23일, 형기를 마치고 출소한 그는 케이블 채널 온스타일과 협의하여 방송인 김구라와 '구라만땅'이라는 토크쇼를 진행하기로 했다고 밝혔으나[29], 김 씨와 방송사는 이를 부인하였다. 한편 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 마이클 잭슨의 영혼이 자신을 찾아 왔다거나, 수영선수 박태환의 세계 선수권 대회 부진이 본인의 이름을 부르지 않아서 그렇다고 발언하는 등의 이해하기 어려운 언행을 계속하였지만,[31] 사회적 문제로 비화되지는 않았다.

허경영은 을왕리에 위치한 모 팬션에 거주하면서 총 4권으로 구성될 '동방의 등불' 및 '허경영의 첫사랑'을 집필 중에 있는데, 위클리경향과의 인터뷰를 통해 서울 은평구 국회의원 재보선 불출마, 허경영 쇼에 대한 구상, 18대 대선 도전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32][33]

한편 허경영은 2009년 8월 14일, 디지털 싱글 'Call Me' 를 공개하였다. 발매 하루 만에 싸이월드 BGM(배경음악) 차트 1위에 등극하며 화제를 모은 이 곡의 작곡에는 록밴드 뷰렛의 기타리스트 이교원이 참여하였으며, 작사는 허경영 본인이 직접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5][34]

2009년 9월 18일 홍익대학교 브이홀에서 단독 콘서트를 마쳤다.[35]

SBS와의 진실 공방[편집]

2009년 10월 17일, 11월 28일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는 '신드롬 뒤에 숨겨진 진실, 허경영은 누구인가?'라는 프로그램을 총 2회에 걸쳐 방송하였다. 이 프로그램은 현재 과도하게 부풀려져 있는 그의 거짓된 모습을 밝히고 대중에게 경각심을 일깨워주기 위해 제작되었다고 한다.

허경영이 주장하는 부시 미 전 대통령과의 만찬과 관련하여 해당 만찬은 "돈만 주면 누구든지 갈 수 있는 만찬"(뉴욕 한인권익신장위원회 회장)이었다고 방송하였고 "부시와 함께 찍은 사진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등과 함께 찍은 사진등은 모두 합성"(유경선 중앙대 사진학과 교수)이라고 밝혔다. 이에 허경영 측에서는 "미 전 대통령 취임식 만찬에 대통령이 직접 참여하는 장소에 누구든지 갈 수 있다는 것은 '그것이 알고 싶다'측의 이해하기 힘든 결론"이라고 대답했다.

또한 허경영은 끊임없이 이의가 제기되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관계에 대한 반론으로 자신의 저서(무궁화 꽃은 지지 않았다, 새나라)를 증거로 제시하였으나 취재결과 그의 책에 담긴 추천사에 대해 "서울대 문학박사가 주술관계가 맞지 않는 글을 쓸리가 없다. 대필의 모습이 보인다"(한양대 국문과 교수)라고 소감을 밝혔으며, 서울대 문학박사의 지인에 따르면 "그리하지 말라고 하였으나 끝내 (허경영이) 말을 듣지 않아 포기하였다"라고 응답해주었다. 여기에 허경영 측은 "추천서에 기재돼 있는 사인이 본인이 작성한 게 맞느냐 아니냐에 주안점을 두어 허총재의 박 대통령 보좌관 경력을 마치 허위인 것처럼 유도한 방송한 것"이라 못박았다.

허경영이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인물들과 자꾸 인연이 있음을 강조하는것에 대해 정신과 전문의 송형석 박사는 "어렸을때부터 고생해온 이런 분들일 수록 자기 자존심이 너무 어린 나이에 낮아져 버렸기 때문에 반대로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한다며, 계속 거기에 집착하여 너무 거대한 인물들과 자신을 동일시 함에 따라 현재도 진행 중으로 판단되지만, 신적인 존재로까지 자신을 연관시키는 중"이라고 그의 심리상태를 설명하였다.

또한 허경영은 자신의 사업경력과 결혼사실을 부정해왔는데, 86년까지 "사업은 하지 않고 봉사활동만 했다"는 그의 주장에 대해 "허경영은 젊었을때 인쇄업을 하였다"(정OO, 중학교 동창), "사업수완이 좋아 정치만 하지 않았다면 중견그룹으로 성장했을 정도다"(공화당 관계자)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미혼이었다는 허경영의 주장과 달리 주변 사람들에게 탐문 취재한 결과 3번의 결혼을 하였고 5살 난 아이도 있다고 밝혔다.

일반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 이러한 사실들을 부정하는 그의 태도에 대해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이수정 교수는 "일종의 망상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은 본인의 이미지에 대해서 나름대로의 일관성 있는 모습을 갖고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자화상과 벗어난 과거의 여러가지 객관적인 증거를 인정하기를 껄끄러워 하며 이 사실이 밝혀질 경우 본인을 굉장히 격이 떨어지는 사람이라고 인식한다" 고 하였다.[36]

2009년 10월 22일 평화방송 열린세상 오늘 이석우입니다의 인터뷰에서 허경영은 자신의 과거 인쇄업과 결혼사실에 대해 "IMF로 사업이 위기에 처한 친구를 위해 잠시 인쇄업을 맡았다."고 밝혔고 이어 "고아원을 운영하는 도중 고아를 호적에 올리기 위해 몇차례 호적상으로 결혼을 한 것으로 유전자 조사까지 받을 용의가 있다."라고 하였다.[7]

취재진이 허경영과 채무[37] 관계에 얽힌 여러 사람들을 취재하던 도중에 채권자에게 일부를 변제해주면서 방송금지가처분 신청을 하겠다는 공증을 받았고 공증도 함께 방송되었다.

한편 허경영 측은 SBS 그것이 알고싶다의 방송에서 사실을 왜곡했다면서 이에 대해 고소를 할 방침이라고 밝혔다.MBC가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MBC PD수첩이 허경영에 대한 비판내용을 방송하였기 때문이라며 SBS도 조심하라는 취지의 협박성 발언한것 뿐만아니라 취재도중에 허경영이 '허경영 돈도 없는놈 그거돈 몇푼받았다고 더럽게 ** SBS **하고 자빠졌네, 이 **들!'이라는 욕설도 퍼부었다. 또 마지막에 진행자인 김상중씨는 '우린 허경영씨에게 당부하고 싶습니다. 자신에게 인해 상처를 안고 가는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더이상 혹세무민 하기 않기를 바랍니다. 우린 앞으로 허경영씨가 걸어가는 행보를 끝까지 지켜보겠습니다.' 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38][39]

주장 및 어록[편집]

허경영은 수차례 돌발적인 발언으로 큰 화제를 모았다.그리고 허경영은 자신이 모든 창녀들을 만났다고, 저서를 통해 자신이 박정희의 비밀 보좌관이라고 주장한 것은 물론, 2007년 대선에서는 자신의 IQ가 430에 이르며, 축지법 등을 구사할 수 있다는 발언으로 화제를 모았다.

과거 노무현, 김대중, 마이클 잭슨 등 유명 인사들이 사망하기 직전 자신의 꿈에 나타났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40][41]

허경영 신드롬[편집]

  • 경향게임스 2009년 9월 16일자 51면 기자 방담 코너의 '게임 업계에 부는 허경영 신드롬' 기사에는 다음과 같은 부분이 있다.

지난 대선 당시 ‘허본좌’ 신드롬을 일으켰던 허경영 경제공화당 총재가 게임 업계에도 그 열풍을 몰고 왔다고 하는데요. 이른바 ‘허경영’ 이름 석자를 세 번 외치면 모든일이 이뤄진다는 설입니다. 실제로 온라인 게임 ‘와우’에서는 한 유저가 주사위를 굴릴 때 ‘허경영’을 세 번 외쳤더니 90% 이상 성공을 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타 게이머들로부터 비상한 관심을 끌었습니다.[42] 이는 게임업체에서도 예외가 아닌데요. 업계 관계자들이 잘못한 일을 보고 하거나 내기를 걸 때 ‘허경영’ 주문을 외치면 바로 소원이 이뤄진다고요. 단, 전제조건은 진심으로 ‘허경영’을 외쳐야 한다고 하니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역대 선거 결과[편집]

선거명 직책명 대수 정당 득표율 득표수 결과 당락
1991년 구시군의회의원선거 은평구의원(갈현제1동) 초대 무소속 21.1% 1,565표 3위 낙선[43]
1991년 시도의회의원선거 서울특별시의원(은평구 제1선거구) 초대 민중당 8.5% 2,451표 4위 낙선[44]
제15대 대통령 선거 대통령 15대 공화당 0.2% 39,055표 7위 낙선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국회의원(민주공화당 비례대표 1번) 17대 민주공화당 0.11% 24,360표 등록취소 낙선
제17대 대통령 선거 대통령 17대 경제공화당 0.4% 96,756표 7위 낙선

가수 활동[편집]

기획사[편집]

본좌엔터테인먼트는 허경영 1인기획사로 설립한 종합 엔터테인먼트 매니지먼트 회사로 허경영의 보좌관인 박병기가 대표로 있다.

기타 연예 활동[편집]

강의석이 제작한 영화에 허경영이 특별출연한 적이 있다.[45]

허경영의 어록[편집]

"내 눈을 바라봐..." (내 눈을 바라봐 뒤에 자신의 소원을 말하면 그대로 이루어 진다고 주장함) "고등학교 때 부터 430.." (허경영씨 본인의 아이큐는 어렸을 때 부터 430이라고 주장함)

음반[편집]

디지털 싱글[편집]

  1. Call Me (2009년 8월 14일)
  2. 허본좌 허경영 (2009년 10월 15일)
  3. 허경영의 크리스마스 캐롤(2009년 11월 30일)
  4. Red Angels (2010년 6월 11일, 월드컵 응원가)
  5. Right now (2010년 12월 8일)

베스트 앨범[편집]

  1. BEST T7(10차원 우주음악) (2010년 12월 22일)

비공개 싱글[편집]

  1. 북행열차

광고 모델[편집]

  • 변락에프과립 홍보대사[46]
  • 불패온라인 홍보모델[47][48]

저서[편집]

  • 무궁화 꽃은 지지 않았다》 (ISBN 978-89-952568-0-0)
  • 2000년대의 한국대통령은?
  • 《LOTTO 복권신문》(허경영이 17대 대선 당시 발행해 유포한 것으로 재판부에서 판결되었다. 또한 이 신문은 언론중재위원회에서 공정성 및 형평성 위반으로 경고문 게재 징계를 받았다.)[49][50]
  • 이 외에 《유녀》, 《그가 오고 있다》, 《동방의 등불》, 《내 눈을 바라봐 넌 행복해지고》 등의 저서와 《한국 노사 협의의 미래》, 《분배가치와 사회복지》, 《불우자보호의 세계적 전망》등의 논문을 저술했다고 하나 확인되지는 않았다.

함께 보기[편집]

주석[편집]

  1. http://www.segye.com/Articles/News/Politics/Article.asp?aid=20071126002965&subctg1=&subctg2=
  2. 김미영 기자. "허경영 “수십억원 지지자가 모아줘…난 5년뒤 다시 출마”", 《한겨레》, 2007년 12월 22일 작성. 2007년 12월 27일 확인.
  3. 포커스 - 허경영 [ 許京寧 HUH KYUNG YOUNG ]. 조선닷컴. 2007년 12월 27일에 확인.
  4. 본인의 저서 《무궁화 꽃은 지지 않았다》에서 주장하고 있는 생년월일
  5. "허경영 ‘콜미’ 음원차트 1위 "정규앨범 낼것"", 《스타뉴스》, 2009년 8월 14일 작성. 2009년 8월 14일 확인.
  6. 배문희. "허경영 "SBS 그것이 알고싶다 보도는 완전 엉터리"", 《문화저널21》, 2009년 10월 22일 작성.
  7. "허경영 "박근혜 의원 명예훼손 진심으로 사과"", 《평화방송》, 2009년 10월 22일 작성.
  8. "대선출마 군소후보가 걸어온 길/허경영 후보", 《동아일보》, 1997년 11월 28일 작성. 2008년 1월 7일 확인.
  9. "진리평화당 대선후보/허경영위원장 지명", 《세계일보》, 1992년 10월 25일 작성. 2008년 3월 29일 확인.
  10. "후보등록 마감창구 “해프닝” 속출(돋보기)", 《경향신문》, 1992년 11월 26일 작성. 2008년 3월 29일 확인.
  11. "후보등록 첫날 스케치", 《조선일보》, 1997년 11월 27일 작성. 2007년 12월 12일 확인.
  12. "등록후보들 재산신고", 《조선일보》, 1997년 11월 27일 작성. 2007년 12월 12일 확인.
  13. "50년 만에 첫 여야 정권교체", 《문화일보》, 1997년 12월 19일 작성. 2008년 3월 29일 확인.
  14. "허경영 후보 경력 허위/“경실련 근무한적 없다”(난류한류)", 《세계일보》, 1997년 12월 11일 작성. 2008년 3월 29일 확인.
  15. "후보등록 마감...모두 7명출마", 《세계일보》, 2002년 11월 29일 작성. 2008년 3월 29일 확인.
  16. "[여의나루] 총선 후보 등록한 10개 정당", 《국민일보》, 2004년 4월 1일 작성. 2008년 3월 29일 확인.
  17. "[표주박] "그림값 50만달러 내라" 조용필 상대 소송 패소 법원 "죽은 부인과 계약 허위"", 《국민일보》, 2004년 10월 21일 작성. 2008년 3월 29일 확인.
  18. "'당선 매개 매관매직'까지, < PD수첩 >의 '허경영 검증'", 《오마이뉴스》, 2008년 1월 16일 작성. 2008년 1월 30일 확인.
  19. 송홍근 기자. "이색후보 황당공약 눈에 띄네", 《주간동아》, 2007년 10월 4일 작성.
  20. 송한진 기자. "허경영 후보의 선전과 정치 허무주의", 《뉴시스》, 2007년 12월 20일 작성.
  21. "중앙선거관리위원회", 2008년 1월 7일 작성. 2008년 1월 6일 확인.
  22. 오상헌 기자. ""나와 혼담 오가?" 박근혜, 허경영 후보 고소", 《머니투데이》, 2007년 12월 13일 작성.
  23. "위기의 허경영 "부시 사진도 합성"…결국 구속?", 《sbs》, 2008년 1월 22일 작성.
  24.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4/22/2008042201128.html 2008년 4월 22일 조선일보
  25. 원세일. "허경영씨 징역 1년6월 선고", 《조선일보》, 2008년 5월 15일 작성. 2008년 8월 15일 확인.
  26. 김은미. "허경영, 항소심서도 황당 주장 '여전'", 《뉴시스》, 2008년 7월 2일 작성. 2008년 8월 15일 확인.
  27. "박근혜와 결혼하겠다던’ 허경영 징역 1년6월 확정", 《쿠키뉴스》, 2008년 12월 24일 작성.
  28. 2008년 10월 10일 문화일보
  29. "허경영, 김구라와 토크쇼? 출소부터 구라만땅", 《매일경제》, 2009년 7월 24일 작성. 2009년 7월 24일 확인.
  30. "허경영 "인터넷은 장악, 방송사 인수하겠다" 허경영이 진리다", 《머니투데이》, 2009년 7월 30일 작성. 2009년 7월 30일 확인.
  31. "허경영이 말하는 박태환 선수의 부진 이유", 《조선일보》, 2009년 7월 30일 작성. 2009년 7월 30일 확인.
  32. "허경영, “국회의원보단 대선 노리겠다”", 《미디어스》, 2009년 7월 30일 작성. 2009년 7월 30일 확인.
  33. "허경영 차기대권 도전 선언..'첫사랑' 집필중", 《머니투데이》, 2009년 7월 28일 작성. 2009년 7월 28일 확인.
  34. "허경영, `콜미`로 가수에 도전장", 《한국경제》, 2009년 8월 12일 작성. 2009년 8월 12일 확인.
  35. "허경영, 18일 단독 콘서트 개최", 2009년 9월 8일 작성. 2009년 9월 8일 확인.
  36. "그것이 알고싶다", 《sbs》, 2009년 10월 17일 작성.
  37. 2009년 10월 18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 따르면 허경영의 채무는 약 7억 원이다.
  38. 신기한 기자. "허경영 '그것이 알고싶다' 고소 "사실 왜곡 했다"", 《투데이코리아》.
  39. 이나영 기자. "마늘도 거부한 금욕주의자 허경영, '실제론 몇차례 결혼과 아이도 있어'", 《투데이코리아》, 2109년 10월 18일 작성.
  40. '출소' 허경영 "잭슨 사망 3일 전 영혼이 찾아와" 주장. 세계일보, 2009-07-29 입력, 2009-07-29 확인.
  41. 허경영 총재 "DJ서거로 김정일 도발 가능성" 파란 뉴스, 2009-08-19 입력, 2009-08-19 확인
  42.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주사위 게임 결과 12
  43. 中央選擧管理委員會 (1991). 《區·市·郡議會議員選擧總覽》, 179쪽
  44. 中央選擧管理委員會 (1991). 《市·道議會議員選擧總覽》, 162쪽
  45. 강의석 제작 영화에 허경영 출연한다
  46. 허경영 공중부양의 비밀, 변락에프과립에 있다?
  47. 라이브플렉​스, 불패온라인 모델 허경영 출연 홍보영상 공개
  48. [온라이프존] 불패온라인, 허경영 불패당 기조연설 - 유튜브
  49. '허본좌’ 사전 구속영장 청구, 이제는 그만둬야 할 때
  50. 언론중재위원회 제17대 대선 선거기사심의위원회 5차 회의결과

바깥 고리[편집]

딴지일보 기사
관련 신문 기사
관련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