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 선거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 선거(大韓民國 第十七代 大統領 選擧)는 대한민국의 제17대 대통령을 선출하기 위한 선거로, 2007년 12월 19일에 실시되어,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총 12시간 동안 투표가 진행되었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3765만 3518명의 유권자 중 2369만 385명이 투표에 참여했다. 이번 투표는 잠정 62.9%가 참여해 사상 최저치로 밝혀졌다.[1] 기업인 출신으로서 경제회복 공약을 내세운 이명박 후보가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되었다.
목차 |
[편집] 선거 정보
[편집] 투표일
1987년 10월 29일 개정된 헌법 제68조에 따르면 대통령 선거는 임기만료일 70일 전부터 40일 이전에 실시해야 한다. 1998년 개정된 공직선거법에는 임기만료일 70일 전의 첫번째 수요일로 규정되어 있다. 현행헌법의 부칙에 의하여 대통령의 임기는 헌법의 시행일로부터 개시되도록 정해져 있다. 현행헌법이 1988년 2월 25일에 시행되었으므로 대통령의 임기는 취임 후 5년이 경과한 해의 2월 24일에 만료된다. 1987년 이후 대통령 선거는 5년마다 12월 16일(1987년),12월 18일(1992,1997), 12월19일(2002,2007)에 실시되었다.
[편집] 선거 일정
- 2007년 2월 28일 인구 기준일.
- 2007년 4월 23일 ~ 예비 후보자 등록.
- 2007년 11월 21일 ~ 11월 25일 선거인명부 작성 및 부재자 신고, 명부 작성.
- 2007년 11월 25일 ~ 11월 26일 후보자 등록 신청.
- 2007년 12월 12일 선거인명부 확정.
- 2007년 12월 13일 ~ 12월 14일 부재자투표소 투표.
[편집] 선거권자
1988년 12월 19일이나 그 이전에 생일을 맞은 만19세 이상 대한민국 국민은 선거권이 있다.
[편집] 후보자
1967년 12월 19일 또는 그 이전에 생일을 맞은 만40세 이상 대한민국 국민은 후보가 될 수 있다.
[편집] 출마 후보
다음은 각 정당별 대통령 선거 입후보자이며, 표에 기재되어 있는 사람은 후보자로 등록한 사람이다.
| 기호 | 후보자 | 정당 | 직업 | 비고 |
| 1 | 정동영 | 대통합민주신당 | 정당인 | |
| 2 | 이명박 | 한나라당 | 정당인 | |
| 3 | 권영길 | 민주노동당 | 국회의원 | |
| 4 | 이인제 | 민주당 | 국회의원 | |
| 5 | 국민중심당 | 국회의원 | 사퇴 | |
| 6 | 문국현 | 창조한국당 | 정당인 | |
| 7 | 정근모 | 참주인연합 | 정당인 | |
| 8 | 허경영 | 경제공화당 | 정당인 | |
| 9 | 전관 | 새시대참사람연합 | 정당인 | |
| 10 | 금민 | 한국사회당 | 정당인 | |
| 11 | 화합과도약을위한국민연대 | 정당인 | 사퇴 | |
| 12 | 이회창 | 무소속 | 정치인 |
[편집] 후보 등록 후 후보직 사퇴 및 단일화
- 국민중심당 심대평 후보는 2007년 12월 3일 무소속 이회창 후보로의 보수 대통합 단일화에 합의했다.[2]
- 화합과 도약을 위한 국민연대 이수성 후보는 2007년 12월 13일 대통령 후보직을 사퇴하고 아무도 지지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한때 이수성 후보가 정동영 후보를 지지한다고 알려졌으나, 이수성 후보는 이를 부인했다.
- 참주인연합 정근모 후보는 2007년 12월 18일 도산공원에서 이회창 후보와 회동을 갖고 이 후보 지지선언과 함께 정책연대를 선언했다. 이 경우는 단일화를 한 것이지만 법적으로 사퇴시한을 넘겼기 때문에 후보 자격은 유지되었다.
[편집] 선거 동향
[편집] 주요 대선 후보 선출
- 7월 24일에는 열린우리당·중도통합민주당의 탈당파, 손학규 측 일부 세력과 이른바 시민사회세력이 미래창조대통합민주신당(가칭)의 창립을 준비하기로 합의했다. 이른바 ‘제3지대 신당’이지만, 구성원이 당적을 자주 변경하는 등의 모습을 보인데에 대한 비판도 있다.[3]
- 8월 20일 이명박은 경선을 통해 한나라당 17대 대선후보로 확정되었다.
- 8월 23일 문국현은 대선 출마를 선언하였다. 후에 창조한국당 17대 대선후보가 되었다.
- 9월 15일 권영길은 경선을 통해 민주노동당 17대 대선후보로 확정되었다.
- 10월 15일 정동영은 경선을 통해 대통합민주신당 17대 대선후보로 확정되었다.
- 10월 16일 이인제는 경선을 통해 민주당 17대 대선후보로 확정되었다.
- 11월 7일 이회창은 한나라당을 탈퇴하고 17대 대선 출마를 선언하였다.
[편집] 비주류 대선 주자의 등장 및 퇴장
- 고건은 이른바 중도·개혁 세력의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2007년 1월 16일 불출마를 선언했다.[4]
- 한나라당 주요 후보인 손학규는 3월 19일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범여권에 합류하였다.
- 정운찬은 2007년 4월 30일 불출마를 선언했다.(중도개혁세력)[5]
- 김근태는 2007년 6월 12일 불출마를 선언했다.(대통합민주신당)[5]
- 한명숙은 2007년 9월 14일 이해찬후보와 후보단일화를 선언하고 후보를 사퇴하였다.(대통합민주신당)
- 유시민은 2007년 9월 15일 불출마를 선언했고 이해찬 후보 캠프에 합류하였다.(대통합민주신당)
- 고진화는 2007년 7월 20일 후보를 사퇴하였다.(한나라당)
[편집] 주요 사건
- 11월 7일 前 한나라당 총재인 이회창 후보가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대선 참가를 발표하였다. 이로서 50%넘는 지지율로 선거를 주도하던 이명박후보의 지지율에 타격을 받으며 대선은 새로운 국면으로 진입하였다.[6]
- 11월 16일 김경준이 귀국하였다.
- 12월 3일 국민중심당 심대평은 무소속 이회창 후보로의 보수 대통합 단일화에 합의했다.[2]
- 12월 5일 검찰은 이명박 후보의 BBK 주가조작 연루 의혹 수사에 대한 발표를 하였다.[7] 옵셔널벤처스 주가조작, BBK 실소유주, ㈜다스 실소유주 의혹 모두 '무혐의'라고 결론지었다.
- 12월 6일 김종필 전총리가 한나라당에 입당하고 이명박 후보에 대한 지지를 선언하였다.
- 12월 6일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가 주관하는 제17대 대통령 선거 후보자토론회를 KBS와 MBC로 생중계하였다. 정동영, 이명박, 권영길, 이인제, 문국현, 이회창 (기호순) 후보가 토론자로 출연하였고 정치, 외교, 통일, 안보분야에 대한 주제로 토론하였다.
- 대통합민주신당을 탈당한 김혁규 전 의원이 12월 11일 무소속 이회창 대선후보에 대한 지지를 공식 선언하고, 캠프에 합류했다.
- 12월 11일에는 제17대 대통령 선거 후보자토론회가 2차로 정동영, 이명박, 권영길, 이인제, 문국현, 이회창(기호순) 후보가 참석하여 사회, 교육, 문화, 여성분야에 대한 주제로 열렸다.
- 13일부터 대통령 선거를 위해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일이 금지되었다.
- 12월 13일 기호 11번 화합과 도약을 위한 국민연대 이수성 후보가 대통령 후보직을 사퇴했다.[8]
- 12월 13일에는 제17대 대통령 선거 후보자토론회가 3차로 정근모, 허경영, 전관, 금민(기호순) 후보가 참석하여 열렸다.
- 12월 16일에는 제17대 대통령 선거 후보자토론회가 4차로 정동영, 이명박, 권영길, 이인제, 문국현, 이회창(기호순) 후보가 참석하여 경제, 사회에 대한 주제로 열렸다.
[편집] 여론 조사
초기 여론조사
| 날짜 | 이명박 | 박근혜 | 손학규 | 정동영 | 이해찬 | 문국현 | 권영길 | 이인제 | 비고 |
|---|---|---|---|---|---|---|---|---|---|
| 5월 16일[* 1] | |||||||||
| 5월 26일[* 2] | |||||||||
| 6월 9일[* 3] | |||||||||
| 6월 21일[* 4] | |||||||||
| 7월 1일[* 5] | |||||||||
| 7월 14일[* 6] | |||||||||
| 7월 21일[* 7] | |||||||||
| 9월 20일[* 8] | 한나라당 후보선출 | ||||||||
| 10월 6일[* 9] | 3.7 | ||||||||
| 10월 10일[* 10] | 4.6 | ||||||||
| 10월 16일[* 11] | 신당 및 민주당 후보선출 |
- ↑ 李, 소폭 상승(48.9%)- 朴, 변화 없어(22.4%), 문화일보-한국사회여론연구소, 5월 17일.
- ↑ 이 47%, 박 23%… 대선구도 8개월째 변화없어, 조선일보-한국리서치, 5월 28일.
- ↑ 이·박 충청서 박빙… 영·호남선 이(李)가 10~12%P 앞서, 조선일보-한국갤럽, 6월 11일.
- ↑ 李·朴 지지율差 11%P로 줄어, 문화일보-한국사회여론연구소, 2007년 6월 17일.
- ↑ 이·박, 충청·영남서 접전… 수도권선 이 44·박 25%, 조선일보-한국갤럽, 2007년 7월 2일.
- ↑ 이·박 격차, 남성에선 22%P… 여성에선 6.7%P, 조선일보-한국리서치, 2007년 7월 16일.
- ↑ 이명박 37.2% 박근혜 27.6%, 조선일보-한국갤럽, 2007년 7월 23일.
- ↑ 정동영, 손학규 제치고 2위로 껑충, 중앙일보-미디어다음·리서치앤리서치, 2007년 9월 20일.
- ↑ 李 53.3% 鄭 10.5% 孫 6.3%, 동아일보, 2007년 10월 6일.
- ↑ 정동영-손학규 0.9%P차 대혼전, 한겨레신문, 2007년 10월 12일.
- ↑ 정동영 후보 지지율 20%대 첫 진입, CBS와 리얼미터, 2007년 10월 16일.
정당 후보 선출 이후 여론조사
| 날짜 | 이명박 | 이회창 | 정동영 | 문국현 | 권영길 | 이인제 | 모름/무응답 | 비고 |
|---|---|---|---|---|---|---|---|---|
| 10월 16일[* 1] | ||||||||
| 11월 7일[* 2] | 이회창 출마 선언 직후 | |||||||
| 11월 18일[* 3] | 김경준 귀국 직후 | |||||||
| 11월 26일[* 4] | 후보 등록 마감 | |||||||
| 12월 7일[* 5] | BBK 검찰 수사발표[7] 후 | |||||||
| 12월 12일[* 6] | 선거 전 언론 발표 가능 마지막 여론조사 |
- ↑ 정동영 후보 지지율 20%대 첫 진입, CBS와 리얼미터, 2007년 10월 16일.
- ↑ 李 39.8% 昌 19.8% 鄭 10.5% 지지받아, 한국지방신문협회와 리서치앤리서치, 2007년 11월 8일.
- ↑ 이명박, 1주일새 고학력층·서울서 10~7%p 이탈, 리서치플러스, 2007년 11월 17일.
- ↑ ‘1강 2중’ 구도 유지, KBS, 2007년 11월 26일.
- ↑ 이명박 40.4%, 이회창·정동영 박빙, YTN-한국리서치, 2007년 12월 6일 실시.
- ↑ 세대·이념·지역구도 약화, 조선일보-한국갤럽, 2007년 12월 12일 실시.
[편집] 선거 결과
- 선거인수: 37,653,518명
- 총투표자수: 23,732,854명
- 투표율: 63.0%
[편집] 후보자 별 득표
| 득표순위 | 기호 | 이름 | 정당 | 득표수 | 득표율 | 비고 |
|---|---|---|---|---|---|---|
| 1 | 2 | 이명박 | 한나라당 | 11,492,389 | ||
| 2 | 1 | 정동영 | 대통합민주신당 | 6,174,681 | ||
| 3 | 12 | 이회창 | 무소속 | 3,559,963 | ||
| 4 | 6 | 문국현 | 창조한국당 | 1,375,498 | ||
| 5 | 3 | 권영길 | 민주노동당 | 712,121 | ||
| 6 | 4 | 이인제 | 민주당 | 160,708 | ||
| 7 | 8 | 허경영 | 경제공화당 | 96,756 | 0.4% | |
| 8 | 10 | 금민 | 한국사회당 | 18,223 | 0.07% | |
| 9 | 7 | 정근모 | 참주인연합 | 15,380 | 0.06% | |
| 10 | 9 | 전관 | 새시대참사람연합 | 7,161 | 0.03% | |
| - | 5 | 심대평 | 국민중심당 | - | - | 기권 |
| - | 11 | 이수성 | 화합과도약을위한국민연대 | - | - | 기권 |
| 총투표수 | 23,732,854 | |||||
- 위 표에서 득표율 15% 이상을 획득한 후보자는 선거비용 전액 환급 대상자이다.
- 득표율은 총투표수 대비 백분율을 가리킨다.
- 득표율이 10% 이상 15% 미만인 후보는 선거비용 반액 환급 대상자이나 이에 해당하는 후보는 없었다.
[편집] 지역별 득표수
| 정동영 | 이명박 | 권영길 | 이인제 | 문국현 | 정근모 | 허경영 | 전관 | 금민 | 이회창 | 합 계 | |
|---|---|---|---|---|---|---|---|---|---|---|---|
| 서울 | 23,214 | 3,013 | 22,405 | 911 | 3,501 | ||||||
| 인천 | 797 | 5,769 | 323 | 1,068 | |||||||
| 경기 | 3,378 | 23,554 | 1,312 | 3,207 | |||||||
| 강원 | 615 | 436 | 849 | ||||||||
| 대전 | 467 | 2,356 | 204 | 683 | |||||||
| 충남 | 934 | 3,814 | 568 | 1,131 | |||||||
| 충북 | 561 | 3,435 | 321 | 759 | |||||||
| 광주 | 398 | 1,547 | 96 | 289 | |||||||
| 전남 | 938 | 2,179 | 517 | 743 | |||||||
| 전북 | 590 | 1,777 | 270 | 538 | |||||||
| 부산 | 4,599 | 770 | 7,351 | 406 | 1,198 | ||||||
| 울산 | 1,884 | 271 | 2,059 | 121 | 467 | ||||||
| 대구 | 1,847 | 367 | 3,375 | 221 | 727 | ||||||
| 경남 | 4,935 | 1,310 | 6,063 | 612 | 1,261 | ||||||
| 경북 | 3,823 | 819 | 4,696 | 699 | 1,458 | ||||||
| 제주 | 152 | 144 | 344 |
[편집] 기타
- 일부지역에서는 재보궐선거가 동시에 실시되었다.
[편집] 같이 보기
-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 대통합민주신당 후보자 선출 선거
-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 한나라당 후보자 선출 선거
-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 민주노동당 후보자 선출 경선
-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 민주당 후보자 선출 경선
[편집] 주석
- ↑ 대선투표율 잠정치 62.9%..사상 최저 연합뉴스, 2007년 12월 19일
- ↑ 가 나 안용수 기자. “昌-沈 후보 단일화 전격 합의”, 《연합뉴스》, 2007년 12월 3일 작성. 2007년 12월 3일 확인.
- ↑ `제3지대 신당' 누가 참여하나, 연합뉴스, 2007년 7월 24일.
- ↑ 고일환 기자. “고건 "대통령 선거 불출마"”, 《네이버 - 연합뉴스》, 2007년 1월 16일 작성. 2007년 6월 16일 확인.
- ↑ 가 나 정용관 기자. “김근태 “대선불출마… 탈당”, 이해찬 19일 공식 출마선언”, 《동아닷컴》, 2007년 6월 13일 작성. 2007년 6월 16일 확인.
- ↑ 이회창, '대선 출마' 기자회견, YTN, 2007년 11월 7일
- ↑ 가 나 검찰, 이명박 후보 관련 의혹 모두 무혐의, YTN, 2007년 12월 5일.
- ↑ 이수성 후보사퇴..사실상 `鄭 지지', 연합뉴스, 2007년 12월 13일.
[편집] 바깥 고리
- 연합뉴스, 선택! 2007 대통령 선거
- 네이버, 당신의 선택! 2007 대선
- (영어) South Korea's 'dirty' election, 당시 이명박 후보와 선거 결과를 비판하던 영국 BBC뉴스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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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통합민주신당 | ||
| 한나라당 | ||
| 민주노동당 | ||
| 민주당 | ||
| 기타 정당 | ||
| 무소속 | ||
| 굵은 글씨는 등록된 후보를, 가는 글씨는 경선에서 탈락하였거나 등록되지 않은 후보를 나타냄. [ ] : 해당 후보의 기호, ― : 중도 사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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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통령 선거 | ||
| 국회의원 선거 | ||
| 지방 선거 | ||
| 국민투표 | ||
| 재보궐 선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