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제3대 대통령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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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3대 대통령 선거
대한민국
1952 ←
1956년 5월 15일
→ 1960

투표율 94.4%
  Rhee Syng-Man in 1956.jpg 조봉암.jpg
후보 이승만 조봉암
정당 자유당 (대한민국) 무소속
득표수 5,046,437 2,163,808
득표율 70% 30%

1956 South Korean election result map.png

광역시·도별 우세지역
이승만

선거전 대통령

이승만
자유당 (대한민국)

대통령 당선자

이승만
자유당 (대한민국)

대한민국 제4대 부통령 선거
대한민국
1952 ←
1956년 5월 15일
→ 1960

투표율 90%
  Chang Myon 194804'.png 만송 이기붕.JPG
후보 장면 이기붕
정당 민주당 자유당 (대한민국)
득표수 4,012,654 3,805,502
득표율 46.4% 44%

선거전 부통령

함태영
무소속

부통령 당선자

장면
민주당

1956년 5월 15일 국민들의 직접선거에 의해 실시된 제3대 대통령 선거제4대 부통령 선거이승만 후보를 제3대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선거 운동 이전[편집]

1948년 제정된 헌법과 1952년 개정된 헌법의 제55조는 대통령의 임기와 연임에 대하여 "대통령의 임기는 4년으로 한다. 단, 재선에 의하여 1차 중임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 헌법 규정대로라면 이승만은 더 이상 출마조차 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승만은 또 다시 자신이 집권하기 위해 '초대에 한해서 중임을 철폐한다'는 내용을 담긴 개헌안이 사실상 부결되었으나 '사사오입의 원리'를 내세워 2차 개헌을 통과 시키는데 이를 '사사오입 개헌'이라고 한다.

대통령후보 선출[편집]

선거는 정·부통령 선거사상 최초로 여당과 야당이 후보지명과 확고한 러닝 메이트 시스템 속에 정당대결로 진행되었다.

자유당[편집]

집권 자유당은 3월 6일 임시대의원대회에서 만장일치로 이승만 대통령과 이기붕 국회의장을 정·부통령 후보로 지명하였다.

민주당[편집]

민주당3월 29일 전국대의원대회에서 신익희 전 국회의장과 장면 전 총리를 각각 정·부통령 후보로 지명하고 《못살겠다. 갈아 보자》라는 구호하에 자유당을 공격하였다.

득표순위 이름 득표수 득표율 비고
1 신익희 954 50.3% 대통령 후보
2 장면 745 39.3% 부통령 후보
3 김준연 207 10.9%
총투표수 1898

진보당추진위원회[편집]

진보당창당을 준비하던 진보당창당추진위원회는 3월 31일 진보당 전국추진위원대표자회의를 열고 만장일치로 조봉암 전 농림부장관을 대통령후보로 지명, 무소속으로 출마하였다.

선거 운동 기간[편집]

4월 25일 신익희와 조봉암은 비밀회동을 가지고 신익희로 단일후보를 내기로 하였으나 선거운동기간 중인 5월 5일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신익희가 전라남도, 전라북도 지방을 유세하는 도중에 뇌일혈로 졸도하여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여 선거운동의 양상은 급변하였다. 제3대 대통령선거에서 민주당의 신익희 후보가 선거운동기간 중 급서하게 되자 대통령은 당선은 이승만이 '따논 당상'이었지만 민주당을 지지하고 자유당 정권에 비판적 의사를 표명했던 유권자들은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권리를 나타냈다.

선거일[편집]

그것은 무효표를 던지는 것이었다. 투표수 9,067,063표 가운데 무효표가 무려 1,856,818표로 20.5%에 이르렀는데 대다수 신익희를 추모하기 위한 투표가 많았다. 이러한 현상은 야당세가 상대적으로 강한 서울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서울은 투표자수 608,741명 중에 284,359명이 무효표를 던져 유효투표율은 53.8%밖에 되지 않았다. 반면에 서울의 유권자들은 부통령선거에서는 96.4%의 유효투표율에 야당의 장면 후보에게 76.9%의 압도적인 지지를 보냈던 것이다. 유권자들의 두 번째 반응은 이승만에게 유일하게 대결할 수 있었던 무소속 조봉암의 지지로 나타났다. 제2대 대통령선거전에서 11.3%의 득표율에 그쳤던 조봉암이 30%의 지지율을 확보하였다. 이것은 이승만에게는 부담스런 장애물이었고, 조봉암에게는 후에 선거운동 자금 출처와 관련하여 용공으로 몰려 '처형'되는 계기로 작용하게 되었다.

이승만이 얻은 득표는 무효표를 포함한 전체 득표의 불과 55.66%였다. (조봉암은 23.86%, 무효표가 20.48%) 그나마도 정확히 유효득표에서 둘째자리까지 딱 떨어지는 지지율과 부산에서의 부정선거 의혹 등으로 빛이 바랬다. '죽산이 득표에서 이기고, 개표에서 졌다'라는 말 외에도 여러 증언으로 나왔다. 조봉암의 고향인 강화군에서는 2만표 가량이 이승만 표로 둔갑했다는 증언도 있었다. [1] [2]

"조봉암이라는 사람을 공산주의자로 몰아서 죽인 것은 전적으로 1956년 대통령 선거 때문입니다. 사실상 조봉암이 이승만을 이긴 선거였거든요. (중략) (공화당 국회의원을 지낸 박종태 씨) 얘기가, 개표장에서 표를 100장 단위로 묶는데 조봉암 표가 워낙 많이 나오니까 조봉암 표 98장에다 앞뒤로 이승만 표를 한 장씩 붙이고는 이승만 표 100장으로 계산했다는 겁니다. 그런데도 나중에는 양쪽에 붙일 이승만 표가 부족했다고 합니다.[3]

조봉암이 낮은 득표를 받은 원인 가운데 하나는 야권의 분열이었다. 민주당은 조봉암의 좌파 경력을 문제 삼아 그를 이승만, 김일성보다 위험하게 여겼고, 이것이 신익희의 추모표가 무효표로 나온 원인이었다.

선거 결과[편집]

대통령 선거[편집]

득표순위 기호 이름 정당 득표수 득표율 비고
1 3 이승만 자유당 5,046,437 70.00% 대한민국 제 3대 대통령 당선 당선
2 1 조봉암 무소속 2,163,808 30.00%
- 2 신익희 민주당 선거 도중 사망
선거인 수 9,606,870
총투표수(투표율) 9,067,063(94.4%)
유효투표수(유효투표율) 7,210,245(79.5%)
  • 득표율은 유효투표수 대비 백분율을 가리킨다.

지역별 득표수[편집]

조봉암 이승만 합 계 유효투표율
서울 119,129 205,253 324,382 53.3%
경기 180,150 607,757 787,907 74.4%
강원 65,270 644,693 709,963 89.9%
충남 157,973 530,531 688,504 76.5%
충북 57,026 353,201 410,227 82.1%
전남 286,787 741,623 1,028,410 80.0%
전북 281,068 424,674 705,742 60.17%
경남 502,507 830,492 1,332,999 86.7%
경북 501,917 621,530 1,123,447 80.3%
제주 11,981 86,683 98,664 89.0%

부통령 선거[편집]

득표순위 기호 이름 정당 득표수 득표율 비고
1 1 장면 민주당 4,012,654 46.4% 대한민국 제4대 부통령 당선 당선
2 2 이기붕 자유당 3,805,502 44.0%
4 3 윤치영 대한국민당 241,278 2.8%
6 4 이윤영 조선민주당 34,926 0.4%
5 5 백성욱 무소속 230,555 2.7%
3 6 이범석 무소속 317,579 3.7%
선거인 수 9,606,870
총투표수 8,642,494
투표율 90%

대통령후보의 러닝 메이트를 잃은 민주당의 장면이 자유당의 이기붕을 46.4%의 높은 득표율로 누르고 당선되었다.

  1. http://www.kyeongin.com/news/articleView.html?idxno=563566
  2. http://www.kyeongin.com/news/articleView.html?idxno=563534
  3. 강원용 목사의 체험 한국현대사<신동아>, 2004.1월호 http://shindonga.donga.com/docs/magazine/shin/2003/12/29/200312290500013/200312290500013_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