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5 부정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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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3월 15일 국민들의 직접선거에 의해 실시된 제4대 대통령 선거(제5대 부통령 선거)로 이승만 후보를 제4대 대통령으로 선출하였으나 부정선거로 밝혀져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고 결국 무효 처리되었다.
두 정당(자유당, 민주당)은 선거 운동에 몰두하였는데, 상황이 1956년 때와 비슷하게 되었다. 민주당 제2대 총재이자, 대통령 후보인 조병옥이 미국에서 돌아오는 도중에 갑자기 죽었다. 이에 자유당은 추악한 정치공세를 펼친다.
부정선거 전날(3월 14일) 자유당은 모든 선거함에 이승만과 이기붕이 찍혀 있는 위조 투표지를 무더기로 집어넣었고, 당일에는 돈을 주고, 한 사람이 투표지를 20장까지 가져가는 등의 선거 조작 행위를 저질렀다. 또한 자유당 당원들이 기표소까지 들어가 감시하고 야당인 민주당 선거 관리인을 투표소에서 쫓아내는 등의 부정이 있었다. 이에 민주당은 오후 4시 30분에 “3·15선거는 선거가 아니라 선거의 이름 하에 이루어진 국민주권에 대한 포악한 강도 행위”라고 규정하고 불법, 무효임을 선언했다.[1]
개표 과정 중에는 부통령 후보 이기붕의 표가 100%에 육박하는 결과가 나오자 이를 79%로 하향 조정하는 사태도 벌어졌다.[2]
선거 이후 1960년 3월 16일, 마산 등지에서 부정선거에 항거하는 시위(3·15 마산시위)가 발생하였으며 계속 일어나 계엄령까지 선포되었고, 곳곳에서 학생들이 죽어나갔고, 서울에서도 심심찮게 데모가 일어나 고려대학교 학생들이 귀가하는 도중에, 정치 깡패들이 그들을 덮쳐 학생 2명이 죽고, 수십 명이 부상당하는 참극이 벌어졌다. 이승만의 인기가 땅에 곤두박질 치고, 1960년 4월에, 마산 앞바다에서 실종되었던 김주열 학생이 최루탄이 눈에 박힌 주검으로 발견되었고, 이것이 4·19 혁명을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편집] 선거 결과
- 투표율 : 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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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주석
- ↑ 이에 민주당은~: 유숙란, 〈선거의 권위주의적 운용과 역기능〉, 한배호 편, 《한국현대정치론 I:제1공화국의 국가형성, 정치과정, 정책》(나남, 1990), 387쪽.
- ↑ 한영우, 《다시 찾는 우리 역사 (전면 개정판)》(경세원, 2004), 590쪽. ISBN 89-8341-05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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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공화국 | 1948년 (제1대) · 1952년 (제2대) · 1956년 (제3대) · 1960년 (제4대*) | |
| 제2공화국 | 1960년 (제4대) | |
| 제3공화국 | 1963년 (제5대) · 1967년 (제6대) · 1971년 (제7대) | |
| 제4공화국 | 1972년 (제8대) · 1978년 (제9대) · 1979년 (제10대) · 1980년 (제11대) | |
| 제5공화국 | 1981년 (제12대) | |
| 제6공화국 | 1987년 (제13대) · 1992년 (제14대) · 1997년 (제15대) · 2002년 (제16대) · 2007년 (제17대) | |

